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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848)화 (847/1,192)

제848화

궁으로 돌아와 시무룩해 있던 그녀는 남제화와 강암룡이 걸어오는 모습을 발견했다. 무표정하던 남제화는 그녀를 보자마자 얼굴을 활짝 폈다. 그는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돌아왔느냐?”

“네.”

위지불이가 물었다.

“폐하, 의사당에서 오시는 길이에요?”

남제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그에 대해 그다지 말하고 싶지 않은 듯 급히 화제를 돌렸다.

“밥은 먹었느냐?”

“먹었어요. 셋째 오라버니가 밖에서 사 줬어요.”

남제화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왜 밖에서 먹었느냐? 넌 그 댁 어머님이 만드신 음식을 좋아하지 않았느냐?”

위지불이가 대충 둘러댔다.

“혹시 제가 질렸을까 봐 밖에서 사 준 것 같아요.”

사실 한향과 그녀의 어머니가 들어선 안 되는 이야기를 해야 했기 때문에 밖에서 만난 것이었다. 남제화는 짤막하게 대꾸하며 자연스럽게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들은 함께 정전으로 걸어갔다.

위지경용의 말 때문에 입맛이 떨어진 위지불이는 식사를 많이 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형형색색의 예쁘고 정교한 요리들이 탁자 위로 올라오자 입안 가득 군침이 돌았다. 위지불이는 참지 못하고 또 젓가락을 들었다. 남제화가 가볍게 놀렸다.

“방금 먹고 왔다면서 또 배가 고픈 게냐? 내가 황제이니 다행이지… 먹보인 너를 다른 사람이 어떻게 부양하겠느냐?”

위지불이는 한손에 맛있게 구워진 꿩 날개를 들고 먹다가 입가에 기름을 잔뜩 묻힌 채 대꾸했다.

“아내도 배불리 먹이지 못하는 남자한테는 시집가지 않을 거예요.”

남제화는 그녀가 너무 사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보다가 또 꿩 날개 하나를 집어 그녀 앞에 놓아 주었다. 그녀의 가는 팔다리는 보기만 해도 가슴이 시렸다. 그래, 더 많이 먹여야 했다.

* * *

밥을 다 먹고 남제화가 서재로 간 틈을 타서 위지불이는 몰래 강암룡에게 물었다.

“폐하께서 오늘 장로들과 갈등을 가지셨죠?”

강암룡은 한숨을 내쉬었다.

“알아차렸소?”

위지불이는 당연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녀는 남제화를 너무 잘 알았다. 조금만 기분이 달라져도 그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무슨 일 때문에요?”

강암룡은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를 황후에 앉히겠다는 것 때문에 그런 거 아니에요?”

강암룡은 부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 궁녀가 차를 들고 서재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위지불이는 그녀를 막아서며 말했다.

“제가 할게요.”

서재 안. 남제화는 의자에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도 장로들이 그와 위지불이의 혼사를 반대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격렬하게 반대할 줄은 몰랐다. 반대하는 이유로 사직社稷을 들고 나오는 건 예상했지만, 조상과 가법을 이유로 그를 질책했다.

정말이지 한바탕 호되게 꾸짖고 싶은 마음을 누르느라 진이 쏙 빠져 있었다. 저들은 자신이 비난을 퍼붓는 상대가 자신들의 군주라는 생각을 완전히 잊어버린 듯했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누군가 따뜻한 차 한 잔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한데 어쩐 일인지 물러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울화가 치밀어 호통을 치려고 하던 순간, 곁눈으로 힐끔 보이는 그림자가 눈에 익었다. 그는 씩 하고 미소를 지었다.

“이런 일들은 아랫사람에게 시켜야지. 그러다 데이기라도 했으면 어찌할 뻔했느냐?”

“차 한 잔 올리는 건데 데이긴요? 그런 쉬운 일도 못 하는 사람을 어디에 써요?”

탁자에 엉거주춤하게 기댄 채 남제화를 바라보던 위지불이는 조용히 물었다.

“폐하, 걱정이라도 있으세요?”

“없다.”

“눈도 깜빡이지 않고 거짓말을 하네요? 제가 못 알아챌 줄 알아요?”

남제화는 장난하듯 물었다.

“네가 뭘 알아차렸는데?”

“황후를 세우는 일로 장로들과 말다툼을 하신 거, 맞죠?”

남제화는 그녀가 제 속을 빤히 보고 있는 것 같아 웃음을 터뜨렸다.

“이런 일은 네가 신경 쓸 필요 없다. 짐이 다 알아서 해결할 거다.”

“폐하께서 어떻게 해결하실 건데요?”

위지불이가 말을 이었다.

“장로들은 폐하께서 설득한다 해도, 제 의견은 왜 안 물어보세요?”

남제화는 어리둥절해하며 반문했다.

“이견이 있느냐? 넌 진작 승낙하지 않았느냐?”

“그때 저는 오직 폐하의 마음을 저버리지 않겠다는 생각뿐, 깊이 생각하지 못했어요.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아요.”

남제화는 다급해졌다. 장로들과 여제가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는 다른 방법을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위지불이가 혼인에 동의하지 않으면 그건 정말 문제가 심각했다.

“불이.”

그는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이제 와서 네가 이리 빼면 안 되지.”

“저 혼자라면 폐하를 모시고 칼산에 오르고 불바다에 뛰어들라고 해도 전혀 두렵지 않아요. 하지만… 저의 혼례가 동월에 전해지고 위지 가문에서 알게 된다면 저의 부모님은 삶이 괴로워지실 거예요.”

위지불이는 고개를 푹 숙였다.

“저는 몰래 뛰쳐나온 것으로 벌써 불효를 저질렀어요. 또다시 부모에게 의롭지 못하다는 멍에를 씌운다면 그건 너무 잔인한 짓이에요. 이렇게 불효하고 인정 없는 여인을 폐하께서 어찌 황후로 삼으실 수 있겠어요?”

남제화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여제와 장로들을 설득하는 것만 생각했지 두 집안의 피맺힌 원한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가 그녀의 작은 손을 두 손으로 감싸며 말했다.

“짐이 잘못했다. 짐이 세심하지 못했구나. 넌 걱정하지 말고 모두 짐에게 맡겨라. 짐이 전부 해결하마. 절대 너의 부모님을 곤란하게 하지 않을 것이다.”

위지불이의 눈이 반짝였다.

“폐하께 좋은 방도라도 있는 거예요?”

남제화는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그럼, 있고말고.”

* * *

남제화는 그와 위지불이가 사람들이 말하는 불운한 연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는 무척 사랑하지만 가문에서 허락하지 않으니 말이다. 황제가 황제 같지 않으니……. 정말 울화가 치밀었다. 이전엔 황제 노릇을 제대로 하지 않아 이런 일들에 마음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쟁취하고 싶은 게 생기니 그의 마음은 조급해지기만 했다.

다섯 명의 장로들이 한창 세금에 대해 의논하고 있었다. 한참 동안 논의를 이어가던 도중, 그들은 황제가 느긋하게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위 장로는 그가 듣지 않고 멍하니 있는 것 같자 헛기침을 했다.

“폐하.”

남제화는 천천히 그에게 시선을 옮겼다.

“왜 그러시오?”

“방금 청 장로의 의견이 어떠십니까? 폐하?”

남제화는 비꼬듯이 웃었다.

“장로들께서 다 합의해 놓고 뭐 하러 짐의 의견을 들으려고 하시오?”

몇몇 장로들이 난감함을 감추지 못했다. 어제는 황제와 말다툼이 너무 격렬했다. 냉정을 되찾은 뒤에 생각해 보니, 자신들이 너무 지나쳤던 게 사실이다. 어쨌든 군신의 예가 있는데 황제의 체면을 너무 무시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위 장로는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폐하께서는 한 나라의 군주이십니다. 이런 큰일은 당연히 폐하께서 결정하셔야 합니다.”

남제화는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큰일은 장로들이 결정하는 게 낫겠소. 짐은 자신의 일도 아직 제대로 결정하지 못했으니.”

그가 말하는 자신의 일은 당연히 성혼이었다. 장로들이 어찌 그걸 알아듣지 못하겠는가? 그들은 재빨리 눈빛을 교환했다. 보아하니, 성혼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황제의 마음이 풀리지 않을 것이다.

“폐하.”

 장로가 원만히 수습하려고 나섰다.

“입후는 국가의 큰일입니다. 기한을 넉넉히 두고 긴밀하게 의논하는 것이 좋습니다. 단시간에 조급하게 서두르면 안 됩니다.”

“짐의 나이가 적지 않은데, 장기간 심사숙고해야 한다니! 장로들께선 짐에게 백발이 되면 장가를 들라고 말하는 것이오?”

“소신들도 마음이 급한 건 마찬가지입니다. 드디어 폐하께서 혼인을 하시겠다니 소신들도 기쁘기 그지없는데, 어찌 폐하를 말리겠습니까? 하지만… 위지불이는 폐하의 반려자로 정말 마땅치 않습니다. 소신들이 며칠 동안 수소문하여 귀녀를 몇 명 뽑았으니 폐하께서 살펴보시옵소서.”

이렇게 말하며 화 장로는 초상화 몇 장을 남제화에게 올렸다. 창가에 숨어 있던 위지불이는 남제화가 초상화를 살펴보는 걸 지켜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남제화는 초상화를 한 장씩 넘기며 굳은 안색으로 시큰둥하게 말했다.

“장로들께서는 짐이 이따위 여자들과 어울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시오?”

장로들은 서로 시선을 마주쳤다. 그들이 보기에 이 여인들은 위지불이보다 백배는 나았다. 어떤 여인은 예쁘고 단아했고, 어떤 여인은 교양 있고 사리에 밝았다. 또 어떤 여인은 현명하고 지혜로웠다. 아무렴 동월에서 온 비쩍 마르고 아무런 배경이 없는 계집보다야 훨씬 낫지 않은가? 황제가 여우에게 홀려서 이제는 좋고 나쁨도 분간하지 못하는 듯했다…….

어제의 일 때문에 장로들도 저자세로 나가려 했다. 그러나 황제가 얼러도 안 듣고 때려도 안 들을 줄 어찌 알았겠는가? 장로들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장로는 성격이 가장 불같은 사람이었다. 어제도 그는 황제와 가장 심하게 말다툼을 했다. 그가 콧방귀를 크게 뀌더니 입을 열었다.

“폐하, 만일 소신들이 추천한 귀녀들이 모두 폐하와 어울리지 못할 수준이라면 위지불이는 더더욱 폐하의 곁에 둘 수 없습니다. 소신은 당시에 위지불이가 폐하를 암살하려고 온 자객이었다고 들었습니다. 게다가 그녀는 남자로 가장해서 폐하를 속였습니다. 이렇게 음흉하고 간사한 여자가 어찌 폐하의 옆자리에 앉을 수 있겠습니까?”

“그 입 다물라!”

남제화는 온화한 성격이지만, 어느 누구라도 위지불이의 험담을 하는 걸 용납하지 않았다. 그는 매서운 눈길로 도 장로를 주시했다.

“장로라는 자가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고 짐 앞에서 함부로 미래의 황후를 모욕하다니! 도 장로는 짐이 만만하다고 생각하는가?”

도 장로는 황제의 꾸중에도 수그러들지 않고 오히려 목청을 높였다.

“소신은 폐하께 사실을 깨우쳐드리는 겁니다. 폐하께서는 미혹되지 마시옵소서.”

“무엄하다!”

남제화가 탁상을 치고 일어나자 나머지 네 명의 장로는 얼른 몸을 숙였다. 도 장로도 허리를 약간 구부렸지만, 여전히 오만한 태도를 보였다.

위지불이는 가까운 이를 감싸는 사람이었다. 남제화가 화내는 걸 보자 그녀는 길게 생각하지 않고 모습을 드러냈다.

“장로님께서는 도대체 무엇을 하시는 거죠?”

남제화는 위지불이가 안으로 들어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막 그가 말을 하려는데, 도 장로는 벌써 냉랭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여기는 의사당이다. 어디 너 같은 여인네가 함부로 들어오는 것이야? 이런 궁중 법도도 지킬 줄 모른단 말인가?”

“여자가 어때서요?”

위지불이는 되받아쳤다.

“태황도 여자 아니에요? 내가 법도도 모른다고요? 흥! 황상은 국가의 군왕이고, 장로는 신하예요. 그런데 신하인 장로가 감히 대들어 황상을 진노하게 하시다니! 장로께서는 도대체 얼마나 궁중 법도를 모르시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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