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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843)화 (842/1,192)

제843화

남제화는 그녀의 곁에서 한 발자국도 떨어지지 않았다.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갈아 주는 것까지 전부 직접 했다. 그는 잠시도 마음을 놓지 않았다. 첫 번째는 안전을 위해서, 두 번째는 궁녀가 혹여 상처를 건드려서 위지불이를 아프게 할까 봐 겁이 났기 때문이었다.

그의 정성스러운 보살핌으로 위지불이의 상처는 빠르게 아물었다. 오랫동안 걷지 못해 그녀는 서둘러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그런데 걸음을 내딛자마자, 지지직 하며 무언가 찢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숙이고 소리 난 곳을 본 그녀는 멍해졌다. 화려한 통치마 한 군데가 쭉 찢어진 상태였다.

남장을 할 땐 바지를 입고 있어서 큰 걸음으로 빠르게 걸어도 상관없었지만, 이젠 치마 차림이 아니던가. 성큼성큼 걸음을 내딛자마자 치맛자락이 찢어지고 만 것이다.

곁눈으로 남제화가 기둥을 돌아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얼른 찢어진 치마를 가린 채 멋쩍은 듯 웃었다.

“옷감이 영 부실해요. 궁중에 물건을 대는 사람이 중간에서 너무 많이 빼먹는 거 아니에요?”

남제화는 웃음을 터뜨렸다.

“자기가 조심해서 걷지 못한 것 가지고 옷감을 탓하다니……. 이 옷감은 진상품으로 궁중에서만 쓰는 최상품이니라.”

위지불이는 그에게 슬며시 제안했다.

“폐하, 저는 그냥 남장을 해야겠어요. 치마는 걷기가 너무 힘들어요.”

남제화는 턱으로 옆에 서 있는 궁녀를 가리켰다.

“다른 사람들은 잘 걷는데 어찌 너만 못 걷겠다고 하느냐?”

“전 아직 익숙하지 않잖아요.”

남제화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달랬다.

“천천히 적응하도록 하거라. 앞으로 남원에서 오래 살아야 하니 익숙해져야 한다.”

그녀는 장차 그의 아내가 될 것이다. 남원 의복조차 제대로 입지 못하면 어찌하여 천하의 어머니가 될 수 있겠는가?

위지불이는 강압적인 명령에는 반항하지만, 부드럽게 달래는 말은 잘 들었다. 남제화의 온화한 설득에 그녀도 조심스레 움직였다. 남제화가 옆에 따라붙어서 물었다.

“어디에 가려고?”

“바람 좀 쐬려고요.”

남제화는 뒤뚱거리며 걷는 그녀를 한팔로 부축했다.

“이제 네가 황제보다 더 대단하구나. 짐마저 너를 이렇게 부축해야 한다니.”

위지불이가 얼른 팔을 빼고 그를 흘겨봤다.

“어찌 감히 폐하께 폐를 끼치겠습니까?”

“되었다.”

남제화가 다시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신세를 지고도 위세를 떠는 게냐? 짐이 기꺼이 네 시중을 든다고 하마. 되었느냐?”

위지불이는 눈썹을 치켜세우고 득의양양하게 웃었다. 군왕의 시중을 받는 사람이 천하에 얼마나 될까?

제대로 걷지 못하니 위지불이는 굳이 멀리 가고 싶진 않았다. 복도에 선 위지불이는 옥수수 알을 집어서 공작에게 먹였다. 공작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먹이를 빼앗는 것을 보며 그녀는 낄낄거리며 웃었다.

“청아, 네가 제일 못됐어. 네 걸 먹고도 또 달려오다니.”

위지불이가 까르륵 웃으며 옥수수 알을 던졌다.

“백아, 잘 봐. 왼쪽으로 던질게. 동작이 빨라야 해. 그렇지 않으면 청이한테 또 빼앗길 거야.”

하지만 다시 백이 먹이를 빼앗자 그녀가 혀를 찼다.

“아이고. 백아, 넌 너무 멍청해.”

그녀는 큰 목소리로 다시 한번 잔소리를 했다.

“어이! 청이, 넌 그렇게 많이 먹었으니, 다른 친구도 먹게 해 줘야지.”

남제화가 옆에서 듣고 있다가 실소를 금치 못했다.

“언제 이렇게 이름을 지어 줬느냐?”

“폐하께서 매일 공주들을 만나고 다닐 때요.”

무심코 말한 그녀의 대답에 남제화는 순간 가슴이 아려 왔다.

“짐도 그동안 힘들었단다. 앞으로 짐이 너 혼자 내버려 두는 일은 없을 것이다.”

위지불이는 손에 들고 있던 옥수수 알맹이를 다 던져 버리고 손바닥을 툭툭 털었다.

“폐하께서는 무슨 생각을 하셨는데요?”

남제화는 그녀를 흘끗 쳐다보며 물었다.

“정말 몰라서 묻는 게냐?”

“제가 폐하 배 속에 있는 벌레도 아닌데 어떻게 폐하의 생각을 알겠어요?”

그녀는 정말 알지 못했다. 남제화는 그녀를 바라본 채 말을 잇지 못했다.

“폐하, 왜 그러세요?”

위지불이는 남제화의 팔을 찌르며 다시 물었다.

“저와 관련된 거예요?”

“짐은…….”

남제화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짐이 정말 남색가가 되었다고 착각했단다.”

“…….”

* * *

시간이 흐르자 여제부터 장로들까지 황후를 세울 것을 재촉했다. 남제화는 아직 석 달이 되지 않았다며 그들의 입을 막았다. 그러나 장로들의 압박이 점점 심해졌다. 그는 저들이 정전까지 찾아와서 위지불이의 요양을 방해할까 봐 걱정했다. 결국 매일 의사당에서 그들을 상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위지불이에게 이런 상황을 알리지 않고 평안한 일상을 지켜 주고 싶었다. 하지만 비바람이 몰아치는 걸 어찌 숨길 수 있겠는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위지불이는 궁녀들의 대화를 통해 이런 상황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사실 확인을 위해 강암룡을 찾아가 물었다.

“강 총관, 장로들이 폐하에게 황후를 책립하라고 몰아세운다는 게 사실이에요?”

강암룡은 그녀가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볼 줄 몰랐다. 잠시 머뭇거린 그는 사실대로 고했다.

“사실 그런 일이 있었소.”

“폐하께서는요? 어떻게 하신대요?”

강암룡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폐하께서 어떤 생각이신지 아가씨가 더 잘 아시지 않소? 아가씨가 있는데 폐하께서 어찌 다른 사람을 황후로 세울 수 있겠소?’

그러나 직접적으로 말할 순 없어 그저 애매한 대답만 내놓았다.

“소인이 어찌 감히 폐하의 성심을 함부로 짐작하겠소?”

위지불이는 마음이 불편했다. 남제화가 비록 그녀에게 마음을 고백했지만, 그녀는 황후를 세우는 일은 다른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있다고 한들 황후를 세우는 일에 어찌 영향이 끼치겠는가? 현재 궁에는 나사 공주만 남아 있었지만, 남제화는 분명한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혹시 그녀가 슬퍼할까 봐 입후를 주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녀는 이 문제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곰곰이 생각해 보니, 마음이 좀 복잡해졌다. 정녕 다른 이가 그의 황후 자리에 올라도 괜찮은 걸까? 사실 조금 신경이 쓰였다. 만약 남제화가 황후를 책립하면 그 여자는 그의 배우자가 된다. 반면에 그녀는 어떠한 명분도 갖지 못한 채 그저 황제 곁에 있는 여인일 뿐이다.

남제화가 부군에 관해 언급했을 때, 그녀는 농담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동월에 살던 평범한 백성일 뿐, 황후가 될 자격은 없었다. 혹시 남제화가 원한다고 하더라도 온 나라가 들고 일어나 반대할 것이다. 그녀는 남제화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사랑하는 남자를 다른 여자와 공유해야 한다니… 그녀는 그럴 자신이 없었다. 하, 정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일이었다…….

그녀가 복도로 걸어가고 있는데, 멀리서 어떤 그림자가 천천히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그 사람의 모습은 너무 익숙했다. 그녀는 활짝 웃으며 치마를 들고 뛰어갔다.

멀리서 위지불이가 뛰어오자 남제화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걸음을 재촉하던 그는 아예 걸음을 멈추고 두 팔을 벌렸다. 그런데 위지불이는 그의 품속으로 뛰어들지 않고 조금 떨어진 곳에 멈춰 서서 조심스럽게 웃었다.

“폐하, 돌아오셨어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가간 남제화는 허리를 굽히고 그녀가 겉에 입은 면사 치마를 걷어 올렸다. 과연, 안쪽에 있는 통치마가 네 줄로 길게 잘려 있었다. 마치 바지를 다 뜯어 놓은 것 같았다. 위지불이는 자신의 꼼수가 들통나자 부끄러워 오히려 버럭 화를 냈다.

“아무리 폐하라도 함부로 여인의 치마를 들추면 안 되죠!”

남제화가 눈썹을 치켜세우며 피식 웃었다.

“너에게 치마를 덮는 면사 치마를 보낸 건 네가 걷기 불편하다고 했기 때문이지, 이렇게 치마를 잘라 못 쓰게 만들라는 말이 아니었다.”

위지불이는 투덜거렸다.

“빨리 못 걷잖아요.”

“그래. 그만 되었다.”

남제화는 하늘을 쳐다보며 탄식했다.

“네가 만일 영 불편하다면 앞으로 바지를 입도록 하거라. 짐도 네가 천하의 어머니가 되는 걸 바라지는 않으마.”

잠시 후, 그는 그녀의 어깨를 움켜잡으며 단호한 말투로 말했다.

“모범이 되는 천하의 어머니는 아니더라도 넌 짐의 아내다.”

위지불이는 남제화의 말에 경악했다.

“폐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모르겠느냐?”

남제화가 웃으며 말했다.

“짐이 다시 한번 말해야겠느냐?”

“폐하, 농담하지 마세요.”

“짐은 농담하는 것이 아니다.”

남제화는 그녀를 진지하게 바라보며 반문했다.

“설마 너는 짐과 혼인할 생각이 없는 거냐?”

위지불이는 심장이 땅바닥에 곤두박질치는 것 같았다. 그는 정말 진지했다…….

“폐하께서는 저를 황후로 세우려는 거예요?”

“안 될 이유라도 있나?”

“그럼… 나사 공주는요?”

남제화는 기분이 상했다.

“네가 황후가 되는 게 남과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그는 그녀를 응시하며 물었다.

“너는 원하느냐?”

위지불이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싫으냐?”

남제화는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는 듯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네가 원하지 않으면 짐도 강요하지 않으마. 네가 정말 싫다면 짐은 나사를 황후로 세울 수밖에 없다.”

“원해요.”

위지불이는 저도 모르게 그 말이 튀어나왔다. 그러자 남제화가 교활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녀는 주먹으로 그를 때렸다.

“못됐어!”

그녀의 목소리는 아직도 걸걸한 남자의 목소리였지만, 애교가 섞여 있다는 것을 아는 남제화는 마음이 흐뭇해졌다.

* * *

이틀도 지나지 않아 궁중에는 황제가 위지불이를 황후로 세우려 한다는 소문이 퍼졌다. 이런 소식이 전해지자 황궁은 위아래 할 것 없이 모두 의견이 분분했다. 어떤 이들은 믿을 수 없는 소문이라고 말했다. 황후의 자리에 출신이나 인품이 훌륭한 여인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위지불이는 동월에서 온 평민일 뿐인데 어떻게 남원의 황후가 된단 말인가?

또 어떤 이는 황제의 결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황제의 마음을 얻은 여인이 황후가 될 수 있다는 말이었다. 두 가지 논점 모두 일리가 있지만, 결국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석 달의 기한이 겨우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참다못한 여제는 사람을 보내 남제화를 청했다. 남제화는 차가운 태도로 거절했지만, 청하러 온 자가 공손하게 허리를 굽혔다.

“폐하, 태황 전하께서 말씀하시기를 위지 아가씨를 위해서라도 한번 다녀가시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적나라한 협박에 남제화는 속으로 분개했지만,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었다. 지금은 모두가 그의 약점이 위지불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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