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42화
그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그녀의 얼굴을 받쳐든 채 유심히 살폈다. 얼굴은 온통 상처투성이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그는 그녀의 입술에 가까이 다가갔다. 위지불이가 서둘러 말했다.
“안 돼요. 지금은 얼굴이 너무 더러워요. 피도 묻었다고요.”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남제화는 살짝 입을 맞추는 것으로 마음을 달랬다. 위지불이는 누군가에게 시중을 받는 일이 너무 어색했다.
“제가 할 수 있어요.”
“짐이 해 줄 것이다. 그래야 마음이 좀 편해질 것 같구나.”
위지불이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마음이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했다. 만약 남제화가 실종이 된다면 그녀도 초조해 미쳐 버릴 것이다. 그녀가 밖을 떠돌던 그 시간 동안 남제화는 아마 극도로 괴로웠을 터.
그녀는 거절하지 않고 그에게 모든 걸 맡겼다. 그가 그녀의 옷을 벗기고 상처에 약을 발라줄 때도 가만히 있었다. 그녀는 부끄러운 기색도 전혀 내지 않았다. 많은 일들을 겪고 나니 그의 손길이 유독 달콤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폐하, 아운소 일행을 돌려보내실 거예요?”
“그리할 것이다. 그들이 무사히 돌아갈 수 있도록 호위병과 의원을 붙여 줄 것이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거라. 아무 일 없을 것이다.”
“어젯밤에 습격을 받았어요. 아운소가 절 구해 주지 않았다면, 폐하를 다시 만나지 못했을 거예요.”
“짐이… 아운소에게 상을 내리겠다.”
“아운소는 화가 나 있어요. 기회가 되면 폐하께서 사과하시는 게 좋겠어요. 속이는 건… 좋지 않으니까요.”
“알았다. 네 말대로 하마.”
그녀가 무슨 말을 하든 그는 모두 그리하겠다고 답했다. 얼굴을 깨끗이 씻고 나니 눈앞에 드러난 상처가 더욱 심각해 보였다. 그는 심장이 쿵쿵 뛰었지만, 줄곧 침착한 표정을 유지한 채 세심히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 만약 위지불이가 그를 유심히 관찰했다면, 그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음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위지불이가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폐하, 절 죽이려는 이들은 대체 누구예요?”
“그들이 누구든, 짐이 처벌을 내릴 것이다.”
하얀 무명천을 한 겹 한 겹 말던 그는 두 눈을 내리깔고 서늘한 눈빛을 감췄다.
“네 부상이 헛되지 않도록, 그자들에게 반드시 갚아 줄 것이다.”
* * *
남제화는 위지불이를 남원 황궁으로 데리고 돌아왔다. 위지불이의 부상은 꽤 심각했기에 남제화는 남장을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불이 공자가 사실 여자였다는 걸 모두가 알게 되었다.
남제화는 위지불이를 간호해야 한다는 이유로 자기 침전에 두려고 했지만, 그녀가 동의하지 않았다. 이전에는 남장을 하고 있었기에 그럭저럭 지낼 수 있었지만, 지금은 여인의 신분을 되찾았다. 남녀가 유별하니 남들에게 빌미를 주고 싶진 않았다. 남제화는 그녀를 놀렸다.
“이곳에서 밤을 지새운 것이 한두 번이 아닌데 뭘 두려워하는 게냐?”
위지불이는 그를 흘겨봤다.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죠!”
그녀의 승낙이 없으니 남제화도 어쩔 수 없이 궁녀 두 명을 보내 그녀를 보살피게 했다. 그런데 위지불이는 곁에서 누군가가 시중드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며 싫다고 했다.
결국 남제화는 양자 선택을 요구했다. 그의 침전에 들어와 그의 시중을 받든지… 아니면 궁녀들의 시중을 받든지. 위지불이는 이리저리 생각하다가 결국 후자를 선택했다.
* * *
여제는 소식을 듣고 은빛 가면을 쓴 사람에게 다시 물었다.
“위지불이가 정말 여자라고?”
“네, 틀림없습니다. 현재 궁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 사실을 알았습니다.”
여제는 잠자코 있다가 자조적으로 웃었다.
“과인이 늙었나 보구나. 그것도 못 알아봤다니.”
은빛 가면을 쓴 사람이 말했다.
“전하, 어인 말씀이십니까? 전하께서는 춘추가 아직 한창이십니다.”
여제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듣기 좋은 말할 필요 없다.”
안온한 표정을 지은 그녀는 앞쪽을 바라보며 뜻밖에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과인이 괜한 걱정을 한 모양이야. 황제가 위지불이를 저렇게 좋아한다니 그의 곁에 그냥 놔두어라. 어린 계집 하나가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느냐. 앞으로 그녀든 나사 공주든 황제에게 자식을 안겨 줄 수 있다면 우리 남가에 대통을 이을 후사가 생기는 셈이지. 넌 그만 물러가거라.”
은빛 가면의 남자는 공손히 공수하고 물러났다.
* * *
위지불이가 돌아온 날, 나사는 직접 만든 동월 요리를 들고 그녀를 보러 왔다. 위지불이는 사실 며칠 동안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먹음직한 색깔과 향기가 가득한 쟁반들이 하나하나 상에 올라오자 그녀의 입안 가득 침이 가득 고였다. 남제화는 웃으며 말했다.
“불이 덕분에 짐도 공주가 손수 만든 요리를 맛볼 수 있겠군.”
나사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단정히 웃었다.
“폐하께서 드시고 싶으시면 언제라도 저를 찾으시면 됩니다. 어려운 일도 아닌데요. 뭐.”
남제화도 사양하지 않고 젓가락을 들었다. 반찬을 집어 천천히 씹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군.”
그는 모든 요리를 한 젓가락씩 먹어 본 후에 가장 맛있는 요리를 집어 위지불이의 입가에 가져다주었다.
“이것 한번 먹어 보아라. 짐이 느끼기에는 이게 가장 맛있구나.”
위지불이는 좀 민망했다. 어찌 황제에게 음식을 먹여 달라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남제화는 그녀를 보며 빙그레 웃을 뿐이었다. 남제화의 그윽한 눈빛에 그녀는 가만히 입을 벌려 음식을 받아먹었다.
남제화는 몇 번 더 먹여 주었다. 위지불이도 웬일인지 가만히 받아먹었다.
아랫사람들은 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을 자연스레 보았다. 사실 아는 사람은 황제가 위지불이를 위해 기미를 보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그는 하나하나 자신이 맛본 뒤에야 그녀에게 먹였다.
남제화와 위지불이가 아무리 서로 다정한 행위를 이어가도 나사는 시종일관 시선을 내리깐 채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옆에 서 있던 향미가 슬며시 입술을 삐죽거리며 불만을 표시했다.
위지불이가 식사를 마치자 나사는 향미를 데리고 물러났다. 대전을 나오자마자 향미는 참지 못하고 투덜거렸다.
“공주, 공주가 훗날 황후가 될 것을 알면서도 공주 앞에서 위지불이와 저리 다정한 모습을 보이다니. 폐하께서는 정말 너무한 거 아니에요! 위지불이도 정말 못됐어요. 이런 여우 같은 년인지 몰랐어요. 폐하께서 떠먹인다고 그걸 그렇게 받아먹다니요! 공주는 안중에도 없어요.”
나사가 말했다.
“위지 아가씨가 많이 다쳐서 그래. 그래서 폐하께서 떠먹이신 거야.”
“어깨를 다친 거지, 손이 안 움직이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게 떠먹일 필요까지는 없잖아요.”
“화낼 것 없어. 폐하께서 기뻐하시면 그만이야.”
“공주께서는 화 안 나세요?”
나사는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화 안 나. 앞으로 폐하께서는 수많은 후궁을 들이실 거야. 어차피 위지불이는 그중에 한 명일 뿐이야.”
향미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지금 폐하의 마음이 위지불이에게 쏠려 있어서 공주께 냉담하실까 봐 걱정이에요.”
“난 걱정할 필요 없어. 폐하께서 황후를 세운다는 명을 내리시면 그때 가서 보자.”
향미는 그녀의 말에서 숨은 뜻을 알아차리고 물었다.
“공주는 폐하께서 공주를 황후로 세우지 않으실까 봐 걱정이세요? 하지만 이제 남은 사람은 공주뿐이잖아요. 공주를 황후로 세우지 않는다면… 설마 위지불이를 황후로 삼으신다고요?”
나사는 웃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전 안에 있던 위지불이는 푹신한 방석에 기댄 채 탄식했다.
“나사 공주가 이번 일의 배후라는 건 믿고 싶지 않아요. 그녀는 현모양처의 모범이잖아요. 용모도 예쁘고, 요리도 잘하고, 솜씨도 좋고, 말도 많지 않고요. 위지 가문의 젊은 며느리들도 그녀처럼 온화하진 않아요. 알고 지낸 지도 꽤 오래되었는데, 그녀가 불평하거나 화내는 모습을 본 적도 없을 정도로 성격도 좋은 걸요.”
남제화는 웃으며 말했다.
“나사 같은 여인이 좋더냐?”
위지불이가 답했다.
“보통 남자들은 이런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요?”
“짐은 하필이면 너 같은 여인을 좋아한다.”
위지불이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저는 어떤 사람인데요?”
남제화는 진지하게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열었다.
“넌 예쁘지도 않고 성격도 좋지 않지. 화도 많이 내고, 걸핏하면 눈을 부릅뜨잖니. 잠도 많고 먹기도 많이 먹고…….”
그의 말에 위지불이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위지불이는 결국 그를 향해 눈을 희번덕였다.
“제가 그렇게 못났는데 왜 저를 좋아하세요?”
“그리고 눈을 희번덕이고, 성질을 부리는 건 거의 일상이지…….”
위지불이가 탁자 위에 있던 간식을 그에게 집어 던지자 남제화는 피식 웃으며 자리를 피했다.
“하지만.”
그는 갑자기 목소리를 진지하게 바꿨다.
“너는 진실하지. 속마음을 감추지 않아. 상대를 가리지 않고 늘 진실하게 말하지. 너와 함께 한다면 마음이 편안하단다. 불이, 짐은 평생 동안 즐거웠던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런데 너를 만났지. 짐은 네가 너무 소중하단다.”
위지불이는 그의 고백 같은 대답에 쑥스러워 얼굴이 붉어졌다.
“사실… 전 폐하께서 생각하시는 것처럼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 제가 폐하를 죽이려고 했을 때는 저도 많은 음모와 계략을 생각했어요.”
남제화는 실소를 터뜨렸다.
“네가 생각해 낸 그런 것은 음모와 계략이 아니지. 기껏해야 애들 장난에 불과해서 쉽게 사람들에게 들통이 났단다. 당시 짐은 도대체 왜 위지 가문에서 이런 자객을 보냈는지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았단다. 완전히 짐을 웃기려고 보낸 게 아니더냐.”
그 말에 위지불이는 다시 눈을 뒤집고 그를 노려봤다. 사실, 그의 말이 맞아서 반박할 말이 없었다. 그녀는 성공하지 못한 자객이었다.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했지만, 늘 제가 위험에 빠지고 심지어 적에게 구조되기까지 했다. 그녀가 성내는 모습을 보고 웃던 남제화는 그녀를 품속으로 끌어안았다.
“짐이 이제야 위지 가문이 왜 너를 짐에게 보냈는지 알겠구나. 짐이 너무 오래 외로웠다는 걸 알고 보물을 보내 주려 한 것이다.”
“그건 아니에요.”
위지불이가 콧방귀를 뀌었다.
“난 스스로 몰래 가문을 뛰쳐나온 거예요.”
남제화는 문득 깨달았다. 드디어 고심했던 수수께끼가 풀린 것이다. 이제야 알고 보니 그녀는 가출을 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