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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833)화 (832/1,192)

제833화

그는 그녀의 허리를 어루만지다 자신도 모르게 옷 안으로 손을 찔러 넣었다. 위지불이가 정신을 차렸을 땐 그의 손이 이미 옷 안으로 들어온 상태였다. 화들짝 놀란 그녀는 그를 힘껏 밀치고는 더듬더듬 물었다.

“폐하… 어째서… 대체 이게 무슨 짓이에요?”

남제화는 별안간 품 안이 텅 비자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그가 손을 뻗어 위지불이를 다시 끌어안으려 했지만, 그녀는 재빨리 그의 손길을 피했다. 그녀의 뇌리에 경종이 요란하게 울리고 있었다. 그녀가 뒷걸음질하며 말했다.

“폐하, 안 돼요…….”

“뭐가 안 된단 말이냐?”

남제화가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짐이 입을 맞추는 게 싫은 것이냐?”

싫은 게 아니라… 이러면 제 성별이 쉽게 들통날 것 아닌가. 위지불이가 웅얼거리며 대꾸했다.

“셋째 형님 말이… 저는 아직 어려서…….”

“어리다니. 불이, 이미 열일곱이 아니더냐.”

남제화가 그녀를 일깨웠다. 동월이든 남월이든 열일곱인 여인 대다수는 혼인했거나 이미 아이를 낳았다.

“이리 오너라.”

그가 그녀에게 손짓했다.

“짐에게 안기거라.”

위지불이는 입술을 깨물었다. 어찌 거절해야 할지 몰라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성을 내며 매섭게 말했다.

“폐하, 말끝마다 절 좋아한다고 하시더니… 다 이런 거 때문이었어요?”

그녀는 얼굴을 굳히고 화가 난 척 밖으로 향했다. 그때, 등 뒤에서 남제화가 느긋하게 말했다.

“무엇이 그리 겁난단 말인가, 위지 아가씨?”

위지불이는 급소를 찔린 듯 그 자리에 서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귀가 이상해진 것 같았다.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폐하, 방금 절 뭐라고 부르셨어요?”

남제화는 좀 더 나중에 털어놓을 생각이었지만 그녀가 자신을 밀어내니 기분이 영 달갑지 않았다. 그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위지 아가씨라고 불렀네만.”

“폐하.”

위지불이는 초조한 마음에 괜스레 성을 냈다.

“폐하, 어떻게 그런 농을 하실 수 있어요! 제가 아무리 키가 작아도 그렇지… 이런 식으로 절 모욕하실 수는 없어요.”

남제화가 몸을 굽히고 진지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여인이 아니란 말이냐?”

“아니에요.”

위지불이는 딱딱한 어조로 대꾸했다.

“정말 아니라고?”

위지불이는 초조한 마음을 억누르며 끝까지 우겼다.

“폐하, 여인의 목소리가 이렇게 걸걸한 거 본 적 있으세요?”

“아니.”

“여인이 귀를 뚫지 않은 건요?”

“그것도 본 적 없는 듯하군.”

“한데 왜 저더러 아가씨라고 하는 거예요. 전 번듯한 사내대장부라고요.”

그녀는 그에게 팔을 들어 꽉 쥔 주먹을 보여 주었다. 남제화는 열심히 사내인 척하려는 그녀를 바라보며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하지만 황제를 속인 이 어린 여인을 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다시 몸을 세우고 담담히 말했다.

“여인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란 아주 간단하지. 옷을 벗으면 될 것 아니더냐.”

“…….”

폐하는 아무래도 미친 게 틀림없었다…….

“안 됩니다.”

“어째서?”

남제화가 말했다.

“그게 가장 간단한 방법이거늘.”

위지불이는 초조한 마음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자신이 대체 어디에서 허점을 드러내 남제화의 의심을 산 것인지 도통 알 길이 없었다. 그렇다고 옷을 벗으면 모든 게 다 끝장이었다. 절대 옷을 벗을 수 없었다!

“저는 다른 사람 앞에서… 홀딱 벗는 게 익숙지 않아서요.”

“사내가 맞다면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어차피 다 똑같은 몸 아니더냐? 만약 여인이라면…….”

남제화가 그녀를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어차피 조만간 짐에게 보여 줄 텐데, 그게 무슨 상관이라고?”

“대체 폐하는 황제예요, 호색한이에요?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요?”

위지불이가 성을 내며 눈을 부릅떴다.

“상스럽게!”

“말 돌리지 말고, 불이.”

남제화가 그윽한 눈빛으로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오늘… 짐은 사실을 분명히 가려야겠다.”

위지불이는 침묵에 잠겼다. 이제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사실을 폭로하면 그는 이제 그녀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대체 어찌한담, 어찌한담, 어찌한담……. 그녀가 허리춤에 있던 단도를 꺼내 가슴 앞에 들어 올렸다.

“폐하께서 더 몰아세우시면, 저는…….”

남제화는 오히려 웃음을 터뜨렸다.

“어찌하려고? 고작 옷을 벗는 것인데 그게 죽음보다 더 어렵단 말인가?”

초조해 죽겠는 그녀 앞에서 저리 웃음을 터뜨리다니! 위지불이는 마음을 독하게 먹고 자기 목에 칼을 가져갔다.

“전 제 존엄을 지키려는 거예요. 설령 폐하가 황제래도 제 옷을 벗길 수는 없어요.”

남제화가 가볍게 탄식을 내뱉었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한단 말이냐.”

갑자기 위지불이의 손목이 뻐근해지면서 손에 있던 칼이 남제화의 손 안에 떨어졌다.

“분명 알고 있을 텐데. 내 앞에서 날 죽이는 것이든, 자신을 죽이는 것이든 다 쉽지 않다는 것을. 불이, 어찌 그새 잊은 것이냐?”

“…….”

그녀는 초조해 미칠 것 같았다. 아, 아, 정말 절망적이었다. 이제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남제화는 그녀를 위아래로 훑었다.

“이제, 더 할 말이 남았느냐?”

위지불이는 머리를 묶고 있던 천을 풀러 바닥에 힘껏 집어 던졌다. 고개를 푹 숙인 게 자포자기한 모습이었다. 한참을 기다렸지만 그녀는 입을 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가 그녀의 등을 가볍게 토닥였다.

“불이?”

위지불이는 등을 보인 채 침묵에 잠겨 있었다. 하지만 가녀린 어깨는 아주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남제화는 제 장난이 너무 심했던 것 같아 서둘러 그녀의 얼굴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어린 여인은 끝내 고개를 들려 하지 않았다. 남제화는 더는 안 되겠다 싶어 나긋한 목소리로 그녀를 달랬다.

“벗기 싫으면 관두거라. 자, 고개 들고 날 좀 보려무나.”

위지불이는 성을 내며 팔을 힘껏 휘두르더니 그를 밀쳐 냈다. 풀어헤친 머리는 그녀의 얼굴을 전부 가려 버렸다. 남제화는 속을 태웠다. 그가 그녀를 놀린 건 잘못이지만, 이게 이렇게까지 화를 낼 일이란 말인가?

그는 그녀를 품에 안았다. 위지불이는 곧장 날을 세우며 발버둥 쳤다. 하지만 위지불이는 그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남제화는 그녀를 꼭 껴안고 한 손으로 그녀의 턱을 들어 올렸다. 이윽고 헝클어진 머리 사이로 눈물로 범벅된 여인의 얼굴이 드러났다.

놀란 것도 잠시, 남제화의 가슴이 저려왔다. 아리따운 얼굴에 서린 원망을 보고 있으려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울지 말거라.”

그가 고개를 숙여 그녀의 얼굴에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불이, 울지 말거라. 짐의 마음이 산산이 부서지는 것 같구나.”

억지로 울음을 참고 있던 위지불이는 더는 참지 못하고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통곡하는 그녀의 모습에 남제화는 더욱 어쩔 줄 몰라 했다. 우는 여인을 어떻게 달래야 하는지 모르는 그는 다짜고짜 그녀의 입을 막았다.

화가 나 있던 위지불이는 마구 몸부림을 치다 결국 이를 부딪혀 입술이 찢어졌다. 남제화는 입안에서 비릿한 피비린내와 짭짤한 눈물 맛이 느껴졌다. 그는 애타게 잘못을 인정하고 있었다.

“불이, 짐이 잘못했다. 짐이 널 몰아세워선 안 되었는데. 울지 말거라. 네가 우니 짐이 산란한 마음을 가라앉힐 길이 없구나. 착하지, 아가, 울지 말고, 뚝 그치거라…….”

나중에는 그 또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계속 ‘착하지, 착하지’ 하며 달래 줄 뿐이었다. 목놓아 우는 바람에 위지불이는 그가 하는 말을 거의 듣지 못했다. 울음소리가 잦아들 때쯤 그가 ‘착하지’라고 말하는 걸 들었다. 그 말에 그녀는 기이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그녀의 심장을 조이는 듯 심장 박동이 요동쳤다. 괴로웠다가도 금세 편안해지는 그런 기분이었다.

어릴 때, 그녀의 부모님도 이런 말을 해 준 적 없었다. 그런데 남제화가 그녀를 아기처럼 아껴 주니 울적한 마음이 솟구쳤다. 결국 그녀는 슬픔을 참지 못하고 또다시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남제화는 안절부절못했다.

“어째서 또 우는 것이란 말이냐? 불이, 착하지. 무슨 일이 있거든 짐에게 말하거라. 울지 말고, 뚝…….”

위지불이가 눈물을 글썽거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폐하, 무서워요…….”

“무엇이 겁난단 말이냐? 짐에게 말해 보거라. 짐이 있으니 그 누구도 감히 널 괴롭히지 못할 것이다.”

“폐하가 절 좋아하지 않으실까 봐 무서워요. 흑…….”

“그럴 리가?”

남제화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무서운 게 이거였다니.

“짐은 널 좋아한다. 평생 널 좋아할 것이다. 오직 너만 좋아할 것이야.”

“제가 여인이라면요?”

남제화는 그제야 모든 게 이해되었다. 위지불이는 그가 사내를 좋아한다고 생각해서 여인인 걸 밝히지 못한 것이다. 설마 이런 이유일 줄이야. 어쩐지 죽어도 옷을 벗지 않겠다더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는 그녀가 그만큼 그를 좋아한다는 뜻이었다. 그는 마치 큰 비가 지나간 습지에 크고 작은 거품이 일듯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다. 그가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불이, 짐 얘기 잘 듣거라. 짐은 사내를 좋아하지 않는다. 짐은 여인을 좋아해.”

위지불이가 손을 들고 눈물을 훔쳤다.

“여인을 좋아하신다고요?”

“널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짐 자신도 사내를 좋아하게 된 줄 알았다. 하지만 넌 여인이 아니더냐. 그러니 짐은 사내를 좋아하지 않아. 불이, 짐은 극히 정상적인 사내다. 짐은 그저 널 좋아한다.”

오해가 풀리자 위지불이는 소매로 얼굴을 깨끗이 닦았다. 그녀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남제화를 바라보았다.

“폐하, 제가 여인인 건 언제 아셨어요?”

“영사가 널 구한 그날, 네가 쓰러졌을 때 알았다.”

“어떻게 아셨는데요?”

남제화는 얼굴을 붉히며 솔직히 털어놓았다.

“짐이… 네 옷을 벗겼다.”

“에?”

화가 난 위지불이는 발길질을 하며 주먹을 휘둘렀다. 남제화는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고통을 참는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무술을 연마해서지 다른 여인들과는 비교도 안 될 만한 힘이었다. 자그마한 주먹이 몸에 닿을 땐 정말 아팠다. 한바탕 분풀이한 위지불이가 입술을 삐죽 내밀고 그의 어깨를 문질렀다.

“아파요?”

“그래, 아프다.”

남제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폐하께선 왜 옷을 맘대로 벗기고 그러세요. 그건 호색한이나 하는 짓이라고요.”

“그날 넌 더위를 먹었다. 약을 썼는데도 깨어나질 않았지. 태의가 옷을 벗겨야 한다고 해서 짐이…….”

자신이 오해했다는 걸 깨달은 위지불이는 조금 멋쩍었다.

“진작 말씀하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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