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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832)화 (831/1,192)

제832화

남제화는 황궁을 떠나는 고여아를 직접 확인한 뒤, 기분 좋은 발걸음으로 돌아왔다. 정전에 들어선 그가 강암룡에게 물었다.

“불이는?”

강암룡이 대꾸했다.

“불이 공자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어디에 갔길래?”

“그것은… 소인도 모르옵니다.”

남제화가 코웃음을 쳤다.

“공작전에 갔을 테지?”

그가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짐이 찾아보겠다.”

예전엔 위지불이가 아운소과 함께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껄끄러웠지만 지금은 상관없었다. 위지불이가 여인이라는데 뭐가 문제가 되겠는가?

* * *

공작전. 아운소는 위지불이와 고여아가 떠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위지불이가 물었다.

“고여아가 정말 떠났어요?”

“떠났어요. 영사를 다치게 한 건 천인공노할 일인데 어찌 더 남아 있을 수 있겠어요. 다만.”

아운소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전 아무래도 이 일이 심상치 않은 듯해요.”

“어째서요?”

아운소가 소상을 한 번 바라보자 모든 시종들이 밖으로 나가 문 앞을 지켰다. 아운소가 그제야 말문을 열었다.

“남원에서는 누구든 영사를 귀하게 여기죠. 고여아가 아무리 제멋대로라고 해도 공공연히 영사를 해할 수는 없어요. 고여아도 그리하는 게 자신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러니까 그 말은… 누군가 고여아를 함정에 빠뜨렸다고요?”

“반반이에요.”

아운소는 제가 분석한 내용을 차분히 이야기해 주었다.

“지난번 사냥 사건을 인정했으니 고여아가 공자를 해하려 했던 건 사실일 거예요. 하지만 영사가 나타난 이후의 일은 고여아가 한 짓이 아닐 것 같아요.”

위지불이가 곰곰이 기억을 되짚었다.

“그 시퍼런 뱀들이 절 쫓느라 숲에서 쏟아져 나왔을 때, 영사를 보더니 다들 멈춰 섰어요. 마치 두려워하는 것 같았죠. 하지만 그도 잠시. 영사에게 공격을 퍼붓더라고요.”

“영사는 모든 뱀 중 으뜸이에요. 그 어떤 뱀도 영사를 보면 곧장 신복하죠. 누군가 뒤에서 조종한 게 아니라면 벽사들도 감히 영사를 공격하진 못해요.”

“하면 배후의 조종자로 누구를 의심하는 거예요?”

아운소는 위지불이를 자신의 사람이라고 생각했기에 굳이 견해를 숨기지 않았다.

“전 폐하를 의심하고 있어요.”

“…네? 폐하를? 왜요?”

“폐하만이 그런 능력을 갖고 계시니까요.”

아운소가 차분히 제 생각을 들려주었다.

“지난번 사냥 사건도 의심스러웠어요. 고여아가 공자를 화살로 쏴 죽일 생각이었다면 무엇 하러 폐하께서 하사하신 금 화살을 쏘겠어요? 이는 모든 이들에게 자신이 공자를 죽이려 했다고 광고하는 꼴이잖아요. 고여아가 그렇게 바보일까요?

이번 일도 마찬가지예요. 뱀을 부리는 사람을 시켜 공자를 다치게 했어도 다들 유야무야 넘어갔을 거예요. 하지만 영사를 다치게 한 건 엄청난 일이지요. 지난번엔 장로들이 지켜 주는 바람에 화를 피했지만, 이번에는 절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폐하께서 주도면밀히 준비하신 거예요.”

위지불이는 그녀를 한참 동안 바라보더니 꾸물대며 입을 열었다.

“폐하께서 얼마나 온화한 성격이신데, 그런 짓을 하진 않으셨을 거예요…….”

아운소가 입술을 삐죽거렸다.

“폐하께서 하신 모든 일이 전부 공자를 위한 일이니, 공자는 물론 폐하 편을 들겠지요. 불이 공자는 폐하를 친구라고 생각해도… 폐하께선 공자를 친구로 여기는 게 아닐지도 몰라요.”

“그게 무슨… 뜻이에요?”

“궁 안에 공자가 폐하의 남총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어요. 물론 저는 그게 사실이 아니란 걸 알지만요. 공자는 사내니까 폐하를 친구로 여기지만, 폐하께서는 공자를…….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죠? 폐하께서 공자를 대하는 모습을 다들 주시하고 있어요. 불이, 불쾌하지 않아요?”

“저는…….”

위지불이는 이렇게 어렵고 난감한 대화는 난생처음이었다.

“난 공자를 알아요. 폐하께서 그런 마음을 품었다 해도, 공자는 분명 원치 않겠지요. 하지만 폐하는 황제이시니까요. 불이, 일찌감치 계획을 세워 둬야 해요. 사실…….”

아운소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황제가 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아요. 불이, 폐하의 다정함에 속지 말아요. 그건 그저 위장일 뿐이니까요.”

위지불이가 바싹 타들어 가는 입술을 할짝댔다.

“…뒤에서 폐하에 대한 험담을 하는 건 별로 좋지 않아요.”

그때, 문밖에서 소상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폐하께서 납시셨습니다!”

아운소는 흠칫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일어났을 때, 남제화는 이미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온 뒤였다. 아운소가 무릎을 굽히며 예를 갖췄다.

“폐하.”

남제화는 그녀의 말에 짧게 대꾸하면서도 시선은 위지불이에게 고정한 상태였다. 그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짐은 네가 여기 있을 줄 알았다.”

위지불이가 어색하게 웃었다.

“폐하, 절 찾아오신 거예요?”

평소엔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편이었지만 그는 오늘 대놓고 위지불이에게 싱긋 웃어 보였다.

“널 데려가려고 왔다.”

너무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안 그래도 방금 아운소가 그런 얘기까지 했는데. 위지불이는 퍽 민망했다.

“제가 아이도 아니고, 잃어버릴까 봐 걱정이라도 됩니까?”

“그래.”

남제화가 웃을 듯 말 듯한 얼굴로 아운소를 바라보았다.

“짐은 널 잃어버릴까 봐 정말 겁이 난단다. 두 사람이 즐겁게 담소를 나누는 것 같던데, 무슨 얘기 중이었느냐?”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운소가 재빨리 끼어들었다.

“그저 수다를 떨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위지불이에게 서둘러 눈짓을 보냈다.

남제화가 말했다.

“별 얘기 아니었다니… 그럼 어서 가자꾸나.”

위지불이도 서둘러 자리를 뜨고 싶었다. 그를 따라 문턱을 넘는 순간 남제화가 조용히 그녀의 손을 잡았다. 위지불이는 그의 손길을 슬쩍 피하고는 혼자 앞으로 걸어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운소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황제는 역시 불이에게 마음이 있는 것이다. 어떻게든 빨리 방법을 찾아 불이를 황제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해 주어야 한다. 멀어지는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던 아운소의 마음은 무거웠다. 그녀가 소상에게 물었다.

“내가 준비하라고 한 것은 바깥에 있겠지?”

소상이 조금 불쾌한 기색으로 대꾸했다.

“공주, 고여아 공주도 쫓겨났으니 이제 강적이 하나 줄어든 셈 아닙니까. 황후 자리를 눈앞에 둔 중요한 시기이니 신중히 움직여야 합니다.”

“내 일에 관여치 말거라.”

아운소는 화장대에서 깃털을 꺼냈다. 위지불이가 그녀를 위해 준 깃으로 장신구를 만들었다. 아직 미완성인 장신구였다. 이게 완성되는 그날… 그녀는 위지불이를 데리고 떠날 생각이었다. 황후의 자리는 나사 공주나 가지라지.

“공주!”

소상은 초조했다.

“소인이 드린 말씀 들으셨습니까?”

아운소가 코웃음을 쳤다.

“폐하께서 사내를 좋아하시지 않느냐. 폐하께 시집가는 건 생과부로 사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도 나더러 폐하께 시집을 가란 말이냐?”

소상은 입을 달싹거릴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 *

남제화는 몇 걸음 만에 위지불이를 따라잡았다.

“기다리거라. 어찌 그리 빨리 걷는 것이냐?”

위지불이가 뒤를 돌아보았다. 공작전은 이미 보이지 않은 지 오래였다. 그녀는 긴 한숨을 내쉬고는 조용히 남제화를 원망했다.

“폐하, 아운소 공주 앞에서 왜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오해하겠어요.”

남제화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오해할 게 뭐 있다고. 눈치가 있는 사람이라면 짐이 널 좋아하는 것도 이미 다 알고 있을 텐데.”

“하지만 전 사내잖아요.”

위지불이가 말했다.

“폐하께서 제 체면은 살피지 않으시더라도, 본인의 체면은 살피셔야지요. 폐하는 황제라고요.”

남제화는 자신을 속이는 그녀의 모습에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그가 그녀의 귓불을 만지작거리며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동월에서 여인들은 다들 귀를 뚫느냐?”

“그럼요.”

위지불이는 고개를 틀어 그의 손길을 피했다.

“모두들 귀걸이를 좋아하니까요.”

손가락 사이로 잡힌 작고 말캉한 귓불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부드러웠다. 남제화는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부드럽고 말랑한 감촉은 그의 손가락에 각인된 듯했다. 그는 가볍게 손가락을 문질렸다. 분명 너 또한 여인인데, 어째서 귀를 뚫지 않는 건지 묻고 싶었다.

정전에 돌아오니 강암룡이 남제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위지불이는 바로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의자에 앉아 잔에 물을 따르며 아운소의 말을 떠올렸다.

영사를 공격한 사건이 정말 남제화와 관련된 일일까? 지난번 사냥 사건 땐 그가 자신도 얽혀 있다고 인정했다. 그 사건으로 고여아가 장로들의 보호를 받자 그의 심기가 불편해졌다. 그래서 이번에는 물 샐 틈 없을 만큼 치밀한 방법을 쓴 걸까? 신령을 범한 죄는 용서 받을 수 없으니, 끝내 고여아를 내쫓으려고?

그녀는 남원 사람들만큼 부처를 경외하지 않지만, 그래도 경건한 마음은 가지고 있었다. 남원은 불교로 나라를 다스리는 국가이기에 남제화가 자신 때문에 법도에 어긋난 일을 하지 않길 바랐다. 그때 누군가 조용히 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 끼익하는 소리에 위지불이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폐하, 문은 왜 닫으시는 거예요?”

남제화는 아무 말 없이 그녀를 향해 곧장 다가왔다. 이내 허리를 숙이고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더니 짙게 입을 맞췄다. 위지불이는 깜짝 놀랐지만, 몸부림치진 않았다. 그녀도 그를 좋아하는 만큼 그와 이렇게 감정을 나누는 게 좋았다. 그녀는 가느다란 팔을 뻗어 그의 목을 감쌌다. 남제화는 그녀의 허리를 감싸 그녀를 끌어올려 품에 안았다.

그녀가 여인인 걸 알고 난 후, 그는 부담을 느끼지 않고 위지불이를 더욱 세게 안았다. 부드러운 그녀의 입술을 유심히 음미하던 그는 슬쩍 눈을 뜨고 심취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가 애정을 나누는 데 있어 고수는 아니었지만 방탕하게 지내던 젊은 시절이 있었기에 서툴진 않았다. 그에 비하면 위지불이는 웃음이 절로 날 정도로 풋풋했다. 그가 입을 맞추면 그녀는 얌전히 그의 숨결을 받아들였다. 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입술만 달싹거렸다.

눈을 감고 있던 위지불이는 오늘따라 남제화가 평소와는 다르다는 걸 눈치챘다. 그녀에게 입을 맞출 때마다 그는 늘 당황해서 이를 부딪히곤 했는데, 오늘은 어찌나 능숙한지 정신이 다 혼미해질 정도였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그를 더 꽉 끌어안았고, 그의 손은 그녀의 허리를 힘껏 감쌌다. 마치 그녀를 자기 몸속으로 집어넣으려는 것처럼.

위지불이가 사내인 줄 알았을 땐 남제화도 항상 망설여졌다. 남자와 애정 행각을 벌이는 건 그도 처음이었기에 어찌해야 하는지 몰랐다. 하지만 여인과 나누는 사랑은 망설여지지 않았다. 그의 몸이 본능적으로 반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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