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28화
“엄마야!”
위지불이는 비명을 지르며 허둥지둥 돌 의자를 밟고 돌 탁자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단도를 뽑아 가슴 앞에 세웠다.
몸이 시퍼런 뱀을 보자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 남원에 오고 나서 그녀는 평생 볼 뱀을 다 본 것 같았지만 여전히 무서웠다. 뼈가 없는 것처럼 부드럽게 휘어지는 이놈의 생물은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선홍색의 혀를 날름거렸다. 자그마한 두 눈으로 그녀를 응시하면 그녀의 마음속에는 까닭 없는 한기가 돌았다.
곧 그녀는 뱀이 한 마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풀밭에서 연달아 여러 마리가 기어 나와 그녀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그것들은 온통 똑같이 시퍼렇게 생겼다. 딱 보기에도 요사스러운 기운이 흘렀다.
위지불이는 차가운 연못에 빠진 것처럼 온몸을 덜덜 떨었다. 이가 서로 부딪치는 소리까지 들렸다. 요 며칠 동안은 온갖 잡귀가 나와 난동을 부린다는 강암룡의 말이 뇌리를 스쳤다. 저 뱀들이 혹시 온갖 잡귀는 아닐까……?
뱀이 그녀를 향해 기어 오기 시작했다. 위지불이는 돌 탁자 위에 올라서서 긴장한 채 그 뱀을 바라보았다. 뱀이 돌 의자를 타고 기어 올라오려 하자, 위지불이는 피비린내가 날 정도로 자신의 입술을 힘껏 깨물었다. 그녀의 뇌리는 거대한 공포로 가득 찼다.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남제화가 사찰에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만약 그녀의 비명을 듣고 그가 달려 나온다면, 예불이 중단될 것이다. 그러면 아마도 부처님의 벌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그녀는 도움을 청해야겠다는 생각을 버렸다.
뱀은 이미 아주 가까이 와 있었다. 고개를 높이 쳐든 채 돌의자에서 돌 탁자 위로 올라오려고 했다. 순간 위지불이가 과감히 손을 썼다. 새하얀 광선을 번쩍이며 칼을 휘둘러 뱀의 머리를 잘라 낸 것이다.
하지만, 뱀은 죽지 않았다. 피가 뿜어져 나왔지만, 몸은 여전히 꿈틀거리고 있었다. 뱀의 머리는 멀지 않은 곳에 떨어졌는데 여전히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위지불이는 정말 토할 것 같았다.
한 마리를 해치웠는데도 더 많은 뱀이 그녀를 향해 몰려왔다. 돌의자는 곧 뱀으로 가득 찼다. 무수한 뱀들은 머리를 높이 들고, 선홍색 혀를 날름거렸다. 몇 마리는 이미 돌 탁자 가장자리에 올라온 뒤였다. 놀란 위지불이가 한 걸음 물러서자 그녀의 다리 바로 앞에 뱀의 머리가 있었다. 그녀는 깜짝 놀라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순식간에 공중으로 뛰어오른 그녀는 탁자에서 뛰어내렸다. 바로 도망가려 하는데 등 뒤에서 뱀 떼가 밀물처럼 그녀를 쫓아왔다. 위지불이는 깜짝 놀라 혼비백산이 되었다.
도망가면서도 위지불이는 사찰 쪽을 힐끔거렸다. 탐 안의 장명등은 여전히 밝게 빛나고 있었다. 등에 정신이 팔려 도망가는 속도가 조금 느려졌는데, 풀밭에서는 계속 쉭쉭거리는 소리가 났다. 뱀이 쫓아오는 속도는 놀랄 만큼 빨랐다. 꼭 화살처럼 휙 날아오는 것 같았다.
아래를 보니, 뱀 한 마리가 그녀의 발목을 감기 직전이었다. 위지불이는 곧장 비명을 내질렀다. 그때, 하늘에서 웬 흰색 그림자가 내려오더니 그녀를 공중으로 말아 올렸다. 겁에 질린 채 시선을 올리니, 흰색 그림자의 정체는 그녀를 더욱더 공포에 떨게 하는 영사였다.
그녀에게는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그 거대한 뱀은 그녀에게 악몽이나 마찬가지였으므로. 순간 멍해진 그녀는 손발을 힘없이 늘어뜨린 채 힘없이 허우적거렸고, 누군가 목을 조르듯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했다. 마치 다른 이의 처분을 가만히 기다리는 모양새였다.
밑에 있던 녹사綠蛇들이 영사를 보고 모두 멈춰 섰다. 뱀들은 고개를 들고 우왕좌왕하며 공포에 질린 듯 이리저리 움직였다. 영사는 꼬리를 천천히 내리고 위지불이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땅에 몸이 닿자마자 위지불이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뒤에 있던 녹사가 다시 쫓아오려 하자 영사가 그녀를 공중으로 말아 올렸다. 그런데 이번엔 녹사들이 멈추지 않고 맹공격을 퍼부었다. 이번엔 위지불이도 넋을 놓지 않고 똑똑히 보았다. 녹사와 부딪친 영사의 몸통에는 붉은색 구멍이 여러 개 생겼다.
새하얀 몸체에 붉은 상흔이 선명하게 남았다. 화가 난 영사는 거대한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영사는 입에서 나지막한 신음을 내며 긴 혓바닥을 토해 냈다. 녹사 몇 마리를 혀로 휘감아 멀리 던져 버리니, 몇 마리는 겁을 먹은 듯 더 이상 덤비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녹사들이 달려들고 있었다.
영사의 희생에 가슴이 뭉클해진 위지불이는 넋 놓고 지켜볼 수 없었다. 예전에 남제화가 영사의 무기는 꼬리라고 말해 준 적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꼬리에 그녀가 매달려 있으니 무기를 쓰지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녀는 영사의 꼬리를 치며 말했다.
“나를 내려줘, 나도 너와 함께 싸우겠어.”
영사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위지불이는 칼을 뽑아 몇 차례 휘두르며 말했다.
“날 내려줘. 내가 도와줄 수 있어.”
영사는 걱정이 되는지 고개를 흔들었다. 위지불이는 영사가 자신의 말을 알아듣는다는 걸 알고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내려가게 해 줘. 난 두렵지 않아. 너와 함께 싸울게.”
영사는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본 뒤, 녹사와 멀찍이 떨어진 곳에 위지불이를 내려놓았다. 그러곤 즉시 거대한 꼬리를 휘둘렀다. 단단한 비늘이 풀밭을 가로지르더니 순식간에 녹사들을 땅에 패대기쳤다. 뒤이어 꼬리를 휘두르자 녹사들은 허공을 날아 땅에 떨어졌다. 많은 녹사들이 두 동강이 나 즉사했다. 몸이 잘려도 여전히 꿈틀거리는 모습은 괴기스러웠다.
위지불이는 칼을 움켜쥐고 물끄러미 그 광경을 바라봤다. 뱀 몇 마리가 그녀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는 주저하지 않고 칼을 휘둘렀다. 막 한 마리를 베었는데, 영사의 꼬리가 나머지 것들을 쓸어 버렸다.
쨍쨍한 태양 아래. 위지불이의 몸은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젖은 옷은 몸에 달라붙었고 머리는 무거워 극도로 몸이 불편했다. 눈앞이 어질어질해서 마치 영사가 여러 마리인 것처럼 겹쳐 보였다. 그녀는 희미해지려는 정신을 붙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이를 악물었다.
소리 없는 싸움의 현장을 장명등에 기름을 보충하러 가던 승려들이 발견했다. 그들은 고함을 지르며 다가오더니 탑 앞에 있는 큰 종을 쳤다.
희미한 빛 그림자 속. 위지불이는 사방에서 사람들이 몰려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휘청거리며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남제화는 종소리를 듣고 시종에게 물었다.
“밖에 무슨 일이 있느냐?”
그의 말이 전해지자 곧 누군가 들어와 고했다.
“폐하, 영사가 습격당했사오나 다행히 큰 지장은 없사옵니다.”
남제화가 눈살을 찌푸렸다.
“누가 감히 영사를 습격했단 말이냐?”
“누군가가 벽사碧蛇를 통제해 영사를 공격했습니다. 실제로 벽사가 공격하려 한 것이 영사인지 아니면 불이 공자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깜짝 놀란 남제화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불이를 공격했다고?”
남제화는 벌떡 일어나더니, 쏜살같이 법당을 뛰쳐나갔다. 시위대가 상황을 통제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소란스러웠다. 벽사는 사방으로 도망쳤고, 풀밭에는 처참하게 잘린 뱀의 잔해들만 남아 있었다. 위지불이는 땅바닥에 쓰러진 상태였다. 영사는 꼬리로 그녀를 감싸고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남제화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심장이 쿵쾅거렸다. 그는 서둘러 위지불이 곁에 다가가 녀석을 껴안고 애타게 불렀다.
“불이, 불이야. 왜 그러느냐? 어서 일어나거라. 어서!”
위지불이의 이마는 땀으로 축축했다. 그는 녀석의 얼굴을 닦아 주었다. 얼마나 겁에 질린 모양인지 땀조차 손이 시리도록 차가웠다.
“폐하.”
한 시종이 그에게 귀띔했다.
“불이 공자를 빨리 응달로 데려가십시오. 아마도 더위를 먹은 것 같습니다.”
위지불이는 남제화의 품에 안겨 정전으로 옮겨졌다. 태의는 침대에 눕힌 위지불이를 진맥했다. 더위를 먹었으나 큰 이상은 없다는 진찰을 내놓았다. 태의는 처방한 약을 먹인 후 잠시 그늘진 곳에 누워 있으면 정신이 들 거라고 말했다.
남제화는 방 안에서 계속 서성거렸다. 별문제 없다고 했지만 그는 여전히 초조했다. 그는 벽 모퉁이에 놓인 모래시계를 바라보았다. 이미 반 시진이 흘렀는데 위지불이는 깨어나지 못했다. 녀석은 무예를 익히는 사람이라, 기절하더라도 보통 사람보다 빨리 깨어나야 정상이었다. 남제화는 두 바퀴를 서성거리다가 답답한 마음에 태의에게 물었다.
“이미 반 시진이 지났는데 왜 아직도 깨어나지 못하느냐?”
“그게…….”
태의는 허리를 숙인 채 조심스럽게 말했다.
“불이 공자는 재목일에 더위를 먹었으니 평소보다 더 늦게 깨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폐하, 제가 좀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남제화가 손을 흔들었다.
“봐라. 좀 더 자세히 살펴보아라.”
태의는 침대 옆으로 와서 위지불이의 호흡을 살폈다. 호흡은 평온했다. 그는 다시 맥박을 확인했다. 맥박 역시 평온했다. 아무런 이상이 없는데 왜 이렇게 오랫동안 깨어나지 못하지? 태의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는 위지불이가 입은 옷의 매듭단추를 하나 풀며 말했다.
“폐하, 소신이 공자의 옷을 느슨하게 풀 테니, 창문을 열라고 분부하십시오. 바람이 통하면 혹시 빨리 깨어나실 수도… 아니, 이것이 무슨…… ?”
즉시 침대 곁으로 다가온 남제화는 위지불이의 옷깃 사이에서 하얀 천을 발견했다. 태의가 당혹스러워하며 말했다.
“이렇게 무더운 날, 이렇게 천을 감고 있으니 더위를 먹지 않을 수가 없지요. 어쩐지 오랫동안 깨어나지 않는다 싶었습니다. 빨리 풀어 줘야겠습니다.”
태의는 위지불이의 매듭단추를 풀려고 옷깃에 손을 올렸다. 그 순간, 무언가를 눈치챈 남제화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는 고함을 지르며 말했다.
“그를 건드리지 마라.”
태의는 의아했다.
“폐하?”
“밖으로 나가라.”
“하지만… 폐하. 불이 공자가 오래도록 깨어나지 못하는 건 아마도…….”
“나가라면 나가지 웬 말이 이리 많은 것이냐!”
남제화는 버럭 화를 냈다. 모두를 쫓아낸 그는 문과 창문을 모두 닫은 후에야 비로소 침대 곁으로 다가갔다.
마음을 다잡은 그는 위지불이의 상의 단추를 하나씩 풀었다. 녀석의 가슴은 과연 흰 천으로 겹겹이 감싸여 있었다. 다시 아래로 시선을 내리니 폭신폭신해 보이는 아랫배가 보였다. 다른 남자들과 달리 탄탄한 배가 아니었다. 동그랗고 깊이 파인 배꼽을 보았을 때, 그의 동공이 수축되었다.
그는 이 일에 관해 오랫동안 고심했다. 이제야 해답에 가까워졌는데 오히려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혹여 착각은 아닐까? 공연히 한바탕 기뻐한 것은 아닐까? 결국… 그는 한참을 머뭇거리며 움직이지 못했다.
정말 그가 생각한 대로일까? 믿기지 않는 듯 내민 그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가슴을 덮고 있는 천은 얇지만, 질감은 매우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했다. 한 겹 또 한 겹, 반쯤 풀었을 때 그는 이미 봉긋한 윤곽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지만 재빠르게 헝겊을 풀어헤쳤다.
남제화는 머리 위로 벼락이 내리친 것 같았다. 그는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짐작은 했지만… 직접 확인하니 넋이 나갈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위지불이는 여자였구나. 알고 보니 녀석은 여인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