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왕비초장성 (827)화 (826/1,192)

제827화

위지불이는 조심스레 물었다.

“폐하? 왜 그러세요?”

그제야 남제화는 정신을 차렸다.

“아무 일도 아니다.”

녀석은 남원 사람이 아니기에 직접 잡은 꿩의 깃털을 여인에게 선물하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모르는 게 당연했다. 그는 천천히 탁자 옆으로 다가가서 위지불이를 등지고 천천히 심호흡했다.

녀석이 모르고 한 것은 탓할 수 없지만, 아운소는 그것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그녀는 의미를 알고 있으면서도 불이가 주는 깃털을 받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건 그녀가 위지불이에게 마음이 있다는 뜻이었다. 퍽 재미있는 일이었다. 이제 곧 그의 비가 될 공주가 그의 남자를 빼앗으려 하다니…….

처음에 그는 자신만만했다. 남원의 처녀들은 모두 용맹한 사내를 좋아하기 때문에 위지불이와 비교하면 당연히 그가 더 매력적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아운소가 위지불이 같은 사내를 좋아할 줄이야.

아운소와 위지불이는 비슷한 또래이고 취미도 서로 맞아서 친해진 것이니 나무랄 데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방향이 달라졌다. 그가 분명히 아운소에게 경고했음에도 그녀는 위지불이가 선물한 깃털을 받았다.

“폐하?”

위지불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폐하, 또 저에게 숨기는 게 있는 건 아니죠?”

잠깐 사이, 남제화의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 책략들이 떠올랐다.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유비무환이라 했다. 그는 잠시 침음하고 미소를 지었다.

“너에게는 아무것도 숨기지 않을 것이다. 다만, 내일부터 짐은 목욕재계를 해야 하니 며칠 못 볼 것이다.”

“출궁하시는 거예요? 폐하?”

“아니, 궁중에서 한다. 사당에 들어가서 며칠 동안 있어야 한단다.”

그의 얼굴에 붉은 기운이 피어올랐다. 그가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불이, 내가 보고 싶지 않겠느냐?”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위지불이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대답했다.

“보고 싶을 거예요.”

“목욕재계는 차분한 마음으로 해야 한다. 정신을 분산해서는 안 된다.”

남제화는 그녀의 손을 감싸서 꼭 쥐었다.

“하지만 짐은 그렇게 할 수 없을 것 같구나. 짐도 네가 보고 싶을 것이다.”

위지불이는 자신이 자제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결국 남제화의 품에 뛰어들었다.

“목욕재계하실 때, 제 생각은 하지 마세요. 안 그럼 부처님께서 죄를 물으실 거예요. 대신 불이가 폐하를 생각하고 있을게요.”

남제화의 가벼운 입맞춤이 그녀의 정수리에 떨어졌다. 그의 입가에서 시작된 웃음이 점점 번지더니 어느새 눈가까지 펴져 나갔다.

* * *

위지불이는 황궁 안에 사찰이 있는 줄 몰랐다. 황궁의 사찰은 궁전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으리으리한 규모였다.

층층이 쌓아 올린 복층 첨탑이 곧게 하늘을 향했다. 굵은 첨탑은 점점 가늘어지며 길게 이어졌고, 꼭대기에는 물방울 모양의 푸른 보석이 햇빛에 비추어 눈부시게 빛났다.

사찰은 하나의 건물이 아니었다. 위아래로 네 개의 탑이 있었는데, 그 탑은 금빛으로 번쩍거렸다. 탑 안에는 네 개의 금빛 대불大佛이 모셔져 있었다. 불상은 앉거나 선 채로 자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위지불이는 천천히 시선을 위로 옮겼다. 고개를 계속 뒤로 젖히다가 하마터면 머리를 싸고 있던 천이 떨어질 뻔했다. 그녀는 한 손으로는 천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햇빛을 가린 채 금빛 장관을 끝까지 훑어봤다. 자기도 모르게 감탄이 터져 나왔다.

“진짜 예쁘다.”

남제화의 의장이 도착했다. 시종은 명황색의 큰 우산을 받쳐들었고, 남제화는 그 우산 아래서 걸었다. 옅은 황색의 장포를 입은 그는 맨발로 계단을 올랐다. 뒤를 힐끔 돌아본 그의 시선이 위지불이에게 닿았다. 그녀를 향해 싱긋 웃은 그는 발걸음을 옮겨 계단을 올라갔다.

남제화가 사찰 대문을 들어서자 육중한 문이 안에서 살며시 닫혔다. 무거운 북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려오다 곧이어 무언가를 읊조리는 소리도 들렸다. 뭐라고 하는지 들리지 않았지만, 끝 음이 길게 이어졌다. 그 목소리는 북소리와 어우러져 사람들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위지불이는 동월에 있을 때, 불교를 믿지 않았다. 다만 그녀의 어머니가 불교였고 종종 법당에 가서 불교 공부를 하곤 했다. 어머니는 한번 가면 반나절을 꼬박 법당에 있곤 했다. 한 번은 그녀도 따라갔었는데, 한참 동안 부들방석 위에 무릎을 꿇고 있다가 결국 잠들어 버린 바람에 어머니에게 쫓겨나고 말았다. 그 뒤로는 두 번 다시는 법당에 따라가지 않았다.

남제화도 그녀처럼 안에서 졸고 있는 건 아니겠지? 하지만 그가 말했다. 그녀가 보고 싶을 거라고. 그녀가 보고 싶으면 잠이 오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생각까지 떠올리니 그녀는 비집고 나오는 미소를 감출 수 없었다. 강암룡이 다가왔다.

“불이 공자, 돌아가는 게 좋겠소. 햇살이 너무 뜨겁소. 너무 오래 서 있으면 더위를 먹기 십상이오.”

위지불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섰다. 강암룡은 그녀가 정전으로 돌아가는 것 같지 않자 물었다.

“불이 공자, 어디로 가시오?”

“공작전으로 갑니다.”

강암룡이 말했다.

“가지 마시오. 재목일에는 공주들도 모두 폐관하고 예불을 드려야 하오.”

위지불이는 새로 알게 된 사실에 흠칫 놀랐다. 그때, 느닷없이 네 명의 승려들이 줄줄이 나타났다. 그들은 모두 두 손에 도자기 병을 들고 있었다. 그녀는 호기심에 강암룡에게 물었다.

“저게 다 뭐예요?”

“장명등에 넣을 기름이오.”

강암룡이 설명했다.

“사흘 동안 장명등은 꺼지면 안 되오. 장명등이 꺼지는 건 불길한 증조요.”

“장명등을 지키는 사람은 있나요?”

“없소, 사찰은 살기를 금기시하기 때문에 호위병을 배치하지 않소. 그러니 장명등을 돌보는 사람도 없고 그저 정해진 시간에 기름을 보충할 따름이오.”

위지불이는 조금 걱정이 되었다.

“그러다 만일 바람에 꺼지면요?”

“폐하께서 성심과 성의를 다한다면 장명등은 절대 꺼지지 않을 거요.”

위지불이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만약 남제화가 예불할 때 그녀를 생각하면 집중력이 떨어져서 성심을 다하지 못할 텐데…….

그녀는 가만히 네 명의 승려들이 계단을 오르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각각 네 개의 탑 안에 있는 장명등에 기름을 넣었고 질서정연하게 자리를 떠났다. 위지불이의 걱정을 알아차린 강암룡이 웃으며 말했다.

“등불은 꺼지지 않을 거요.”

그가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목욕재계하는 요 며칠 동안은 평소보다 햇볕이 훨씬 더 따갑소. 밖에 오래 서 있지 말고 안으로 들어가시오.”

위지불이는 알겠다고 말하며 그를 따라 몇 걸음 걷다가 다시 뒤돌아보았다. 장명등은 환하게 켜져 있었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제야 마음을 내려놓았다.

오후가 되자, 낮잠을 자고 일어난 그녀는 몰래 사찰로 향했다. 바람 한 점 없는 땡볕 아래, 네 개의 탑 안에 있는 장명등은 조용히 불타오르고 있었다. 모든 등불마다 심지도 그대로였다.

잠시 장명등을 바라보던 위지불이는 너무 더워서 더는 견디기 힘들었다. 과연 강암룡의 말대로 재목일의 햇살은 평소보다 더 따가웠다. 가장자리에 작은 숲을 발견한 그녀는 그쪽으로 걸어갔다.

숲은 나무가 빽빽하게 우거져 그늘져 있었고, 돌 탁자와 의자도 놓여 있었다. 아마 이곳에 앉아서 쉬라고 만든 것이리라. 위지불이는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차가운 돌의자가 더위를 식혀 주자 그녀는 흐뭇한 한숨을 내쉬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비록 강암룡이 장명등은 절대 꺼지지 않는다고 장담했지만, 그 전제 조건은 남제화가 성심을 다하는 것이다. 그가 성심을 다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알 수 없었다. 어쨌든 그녀는 지금 딱히 할 일도 없으니 등불이라도 지켜야 했다.

그는 안에서 예불을 드리고, 그녀는 밖에서 그를 지키고 있었다. 비록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마음은 흐뭇했다. 이래서 어머니가 딸은 나이가 차면 시집을 보내야 한다고 말씀하셨나 보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니, 마음을 다해 그 사람만 생각하고 있었다.

동월에 있었을 때, 약혼한 사촌 언니도 종종 약혼자를 만나러 몰래 집을 빠져나갔다. 또 어쩔 땐 가문에 있는 좋은 물건을 훔쳐다가 그에게 선물까지 했다. 그러다 결국 들켜서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그때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딸은 나이가 차면 시집보내야 한다고 말이다. 아직 혼인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마음은 저쪽 집안에 가 있다며.

지금 그녀의 마음도 전부 남제화에게 가 있었다. 그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중독되었기에 먼 미래를 꿈꿀 수 없었다. 오직 눈앞에 있는 현재와 어렵게 얻은 행복을 지키려 노력할 뿐이다.

숲에서 잠시 앉아 있던 그녀는 장명등이 잘 타고 있는 걸 확인하고 안심했다. 그렇게 왔다 갔다 하기를 해가 질 때까지 반복했다. 정전으로 돌아와 식사를 마친 그녀는 다시 나와서 멀리 탑 안에 불빛이 있는 걸 확인했다.

그녀는 폐관하고도 사찰에 남아 있을 남제화를 떠올렸다. 그녀는 참지 못하고 다시 숲속으로 들어갔다.

이틀 연속으로 그녀는 사찰 옆의 작은 숲을 찾았다. 정말 잠이 쏟아질 때는 돌아가서 잤지만, 아침에는 또 일찍 일어났다. 강암룡이 거뭇한 그녀의 두 눈가를 바라보며 물었다.

“불이 공자, 밤에 잠을 못 주무시오?”

잠을 잘 못 자는 게 아니라 잠이 부족한 건데. 위지불이는 대충 얼버무렸다.

“네, 요즘 너무 더워서요.”

“공자 방에 빙수 대야를 하나 더 추가하겠소. 날이 너무 더우니 밖으로 나가지 마시오. 재목일이 지나면 좀 나아질 거요.”

위지불이가 물었다.

“재목일에는 왜 평소보다 더 무더운 거죠?”

“재목일은 일 년 중 가장 험한 사흘이오. 사흘 동안은 온갖 잡귀들이 모두 나와 말썽을 일으킨다오. 그렇기 때문에 폐하께서 폐관하고 불경을 외워서 천하의 태평을 기원하는 거요.”

“그렇구나.”

귀신이 있는지 없는지 위지불이는 알 수 없지만, 남제화의 어깨에 짊어진 무거운 짐을 그녀는 느낄 수 있었다. 황제에게 천하의 백성들은 내려놓을 수 없는 책임이었다.

남제화가 저렇게 세상을 지켜 내는 동안, 그녀는 있는 힘을 다해 남제화를 지켜 냈다. 오늘로 사흘째, 마지막 날까지 장명등의 등불이 꺼지지 않는다면 그녀의 임무도 완성되는 셈이었다.

사찰 주변은 고요했다. 위지불이는 매번 이곳에 올 때마다 자기도 모르게 발걸음이 느려지며 숨소리조차 가뿐해졌다.

그녀의 시선이 네 개의 탑을 하나하나 훑어보았다. 장명등은 여전히 밝은 불빛을 내뿜고 있었다. 어떤 이상한 점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녀는 마음을 놓고 작은 숲으로 가서 휴식을 취했다.

돌 탁자에 엎드린 그녀는 잠시 졸았다. 밤에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해서 졸음이 몰려왔지만, 자신의 임무를 떠올리며 깊이 잠들진 못하고 눈을 반쯤 뜨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살짝 눈을 뜬 그녀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뜻밖에도 시퍼런 뱀 한 마리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엄지손가락 굵기만 한 크기의 뱀은 고개를 쳐들고 그녀를 향해 기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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