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26화
위지불이의 곡조는 아직 자연스럽지 못했다. 하지만 아운소가 춤추는 것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그녀는 마치 산속의 요정처럼 손과 발을 움직였다. 춤 선이 살아 있었으며 마치 몸에 뼈가 없는 것 같았다. 손가락으로 공작의 부리를 만들어 머리 위에서 살포시 쪼고, 하늘로 날아오르듯이 양팔을 활짝 펼쳤다.
위지불이는 좀처럼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호로사를 부는 것도 까먹었다가 급하게 따라가는 걸 반복했다. 하지만 아운소의 춤은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이 나풀나풀, 구름이 흐르듯이 이어졌다. 위지불이가 아운소의 절묘한 춤에 취해 있을 때, 강암룡이 황급히 들어와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공자, 폐하께서 찾으시오.”
위지불이는 연주를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아운소에게 미안한 듯 웃었다.
“공주, 난 일이 있어 가 봐야겠어요. 공주의 아름다운 춤사위를 감상하러 다음에 다시 올게요.”
아운소는 다소 실망스러웠지만, 얼굴에는 미소를 지었다.
“공자께서 아운소의 춤을 보고 싶다면 언제든 환영이에요.”
총총히 자리를 뜨는 위지불이를 보며 아운소는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상자를 열어 깃털을 꺼낸 그녀는 자세히 살피며 어루만졌다. 소상은 살금살금 다가와 말했다.
“공주, 지난번 폐하의 경고를 잊으셨어요? 불이 공자를 조금 멀리해야 합니다. 공주는 황후가 되실 분이에요.”
아운소는 담담하게 웃었다.
“잊지 않았지만, 아포 족장께서도 말하셨어. 자기 행복을 추구하는 건 잘못이 없다고.”
소상은 경악했다.
“공주, 정말… 정말로… 불이 공자에게…….”
아운소는 깃털을 흔들었다.
“어제 불이가 직접 사냥한 꿩 깃털이야. 나에게 직접 선물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 넌 알 거야.”
“하지만!”
소상은 더듬거리며 말했다.
“불이 공자는. 그는, 남원 사람이 아니에요! 아마도 남자가 직접 사냥한 꿩 깃털을 처녀에게 준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거예요.”
“그는 남원에서 지낸 지 이미 한참 됐어. 어찌 모를 수 있겠어?”
“그렇지만…….”
소상은 울 듯한 표정을 지었다.
“불이 공자는 폐하의 남총이라고 했어요. 게다가 불이 공자에 대한 폐하의 태도를 모두가 다 알고 있어요. 공주, 폐하의 남자를 빼앗을 생각이세요?”
아운소는 딱 잘라 말했다.
“그건 소문일 뿐이야. 믿을 수 없어. 난 불이의 말만 믿을 거야.”
“폐하께서는 불이 공자를 위해 고여아 공주를 구금했어요. 이게 소문일 뿐이라고요?”
“폐하께서 정말 불이를 좋아하신다 해도 상관없어. 불이가 좋아하는 건 바로 나야.”
깃털에 살짝 입맞춤을 한 아운소의 눈빛은 반짝반짝 빛났다.
“이건 그가 나에게 준 증표야.”
그 자리에 굳어 버린 소상은 어쩔 줄 몰라 손을 비볐다.
“공주, 고여아 공주 꼴이 되려고 그러세요?”
아운소는 냉정하게 말했다.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잘 준비하라고 해. 불이가 동의하면 그를 데리고 여길 나가야겠어.”
소상은 소리를 질렀다.
“공주, 정말 이러실 거예요?”
아운소는 그녀에게 눈짓하며 웃었다.
“부족의 공주들은 사고 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 고여아가 이미 모범을 보였잖아.”
소상은 머리가 아파 왔다.
“아포 족장께서 공주의 계획을 아시면 분명 노발대발하실 거예요.”
하지만 아운소는 태연자약했다.
“틀렸어. 아포 족장께서 내 계획을 들으시면 용감하다고 칭찬하실 거야.”
* * *
위지불이는 공작전을 나와서 강암룡에게 물었다.
“폐하께서는 무슨 일로 저를 찾으시나요?”
강암룡은 걱정스럽게 말했다.
“폐하께서는 공자를 찾지 않으셨소. 내가 임의로 공자를 데려왔소.”
위지불이는 발걸음을 멈추고 의심스러운 듯 그를 쳐다봤다.
“강 총관이 무슨 일로 저를 찾았죠?”
“폐하께서 의사당을 다녀와서 계속 성질을 부리고 계시오.”
강암룡이 말을 이었다.
“서재에 틀어박혀서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계시오. 너무 걱정되어서 공자를 불렀소. 들어가서 폐하를 좀 말려 주시오.”
위지불이가 말했다.
“아무도 못 들어간다고 하지 않았어요?”
강암룡이 하하 웃으며 말했다.
“공자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소. 폐하께서 공자에게는 화를 내지 않으실 거요.”
“폐하께서 뭐 때문에 화가 나셨는데요?”
강암룡은 한숨을 내쉬었다.
“폐하께서 직접 말씀하신 건 아니지만, 아마 고여아 공주와 관련이 있을 거요.”
위지불이가 살짝 문을 열어 보았다. 문틈으로 보니 남제화가 창가에 서서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때마침 햇볕이 좋았다. 쏟아지는 찬란함 속에 옥처럼 아름다운 남자가 서 있었다. 뒷짐을 진 채 턱을 약간 치켜든 그의 표정은 엄숙했지만, 미간은 약간 흐려져 누구도 그의 진정한 속내를 알아챌 수 없을 것 같았다.
위지불이는 왠지 모르게 심장이 찢어질 듯 아팠다. 그녀가 황궁에 들어온 이후, 그의 이런 표정을 본 것이 벌써 여러 번이었다. 그녀는 언제나 남제화의 메마름과 쓸쓸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건 구오지존이자 천하의 주인인 황제가 느껴야 할 감정이 아니었다. 황제라면 당연히 기세가 드높고 의기양양해야 옳았다.
그녀는 문을 닫고 천천히 다가갔다. 그녀는 쓸쓸한 이 남자에게 약간의 위안을 주고 싶었다. 그녀는 그의 등에 뺨을 대고 뒤에서 가볍게 껴안았다. 그녀가 여전히 남자로 가장하고 있다는 것을 완전히 잊어버린 채였다. 남제화의 몸이 가냘프게 떨렸다. 고개를 돌린 그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불이.”
위지불이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폐하, 뭐 때문에 기분이 안 좋으신가요?”
남제화는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허리를 껴안은 팔을 내려다봤다. 녀석의 팔은 가늘지만, 힘이 있었다. 덕분에 그는 따뜻하고 안정된 느낌을 받았다. 따뜻한 포옹에 감동한 그는 그녀를 앞으로 끌고 와서 세게 껴안았다. 두 사람의 자리가 바뀌었다.
키가 큰 남제화는 몸을 약간 숙여야만 그녀의 얼굴에 뺨을 붙일 수 있었다. 그는 그녀의 얼굴을 한참 매만지더니 입을 열었다.
“불이, 짐은 쓸모없는 황제다.”
위지불이는 눈을 크게 뜨며 얼굴을 돌렸다.
“폐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다섯 장로가 연합해서 고여아의 편을 들었다. 고여아는 황궁에 계속 남아 있게 되었다.”
위지불이는 오히려 안심했다. 몸을 돌린 그녀는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
“폐하, 그깟 일로 고민하실 필요 없어요.”
“너에게 해가 되는 사람이다. 짐은 그런 사람을 궁 안에 두고 싶지 않아. 짐이 그녀를 과소평가했구나.”
위지불이는 조금 이해가 되지 않았다.
“폐하, 장로는 어떤 사람이죠? 그들의 권력이 폐하보다 더 세나요?”
“짐은 한가한 황제다. 평소에는 장로들이 나랏일을 돌보지. 장로 다섯 명이 손을 잡으면 짐도 어쩔 도리가 없구나.”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위지불이는 더욱더 이해할 수 없었다.
“다들 황제의 말을 들어야 하지 않나요?”
남제화가 시선을 내리깔았다. 황제의 권력은 이미 땅에 떨어진 지 오래였다. 어떻게 이 지경까지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이미 십여 년 전부터 낙담하고 포기한 상태였다. 모든 욕망을 버렸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그저 힘겹게 균형만 잡을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에게는 보호하고 싶은 사람이 생겼으니…….
“불이, 짐은 황제가 아니었으면 좋겠구나.”
그의 얼굴을 보고 위지불이도 굳이 묻지 않았다.
“폐하, 황제 노릇을 안 하시면 뭘 하시고 싶으세요?”
“짐은 세상 끝까지 유랑하고 싶구나.”
그는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나와 함께 강호를 떠돌아다니며 세상을 구경하지 않겠느냐?”
위지불이는 그를 아래위로 훑어보며 입을 열었다.
“폐하 정도의 나이가 되면 다들 안정을 원하는 줄 알았어요.”
남제화의 안색이 붉으락푸르락했다.
“…불이, 설마 짐이 늙어서 싫다는 게냐?”
“아니요! 아니에요.”
위지불이는 얼른 손사래를 쳤다. 남자는 비관적인 생각에 빠지면 민감해지기 마련이다.
“폐하께서는 이십 대 초반으로 보이세요. 저랑 몇 살 차이 안 나 보여요.”
“짐은 너보다 훨씬 나이가 많다.”
그는 위지불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짐의 조카가 너하고 비슷할 것이다.”
그는 다시 한번 그녀를 쳐다봤다.
“그런데 짐의 조카가 너보다는 훨씬 클 것 같구나.”
위지불이는 화가 치밀었다.
“그래서 폐하께서는 제가 키 작은 게 싫으신가요?”
“이런 몸을 가진 남자는 아무래도 허약해 보이지.”
위지불이는 눈을 부릅뜨며 속으로 소리쳤다.
‘난 여자 중에서는 키가 큰 편이라고! 그러게 누가 남자를 좋아하래?’
그녀는 흥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폐하는 치사해요.”
남제화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어째서?”
“제가 방금 폐하께 나이가 많다고 하니까, 폐하께서는 제게 키가 작은 게 싫다고 하셨잖아요.”
남제화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넌 아직 어린아이로구나.”
문밖에서 강암룡은 남제화의 웃음소리를 듣고 나서야 가슴을 누르던 돌덩이가 내려간 것 같았다. 황제가 막 의사당에서 돌아왔을 때, 그의 표정은 마치 폭풍 전야의 먹구름처럼 어두웠다.
황제는 욱하고 폭발하는 성미가 아니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도 자신을 가두고 홀로 소화할 뿐이었다. 오랫동안 황제를 모신 강암룡은 그를 존경했지만 한편으론 안타깝기도 했다.
남제화가 위지불이에게 물었다.
“불이, 방금 어디에 갔었느냐? 짐이 돌아왔을 때 네가 없던데.”
“아운소 공주를 보러 공작전에 갔었어요.”
남제화의 시선이 그녀의 허리춤으로 떨어졌다. 그곳에는 정교한 호로사가 하나 매달려 있었다.
“이게 아운소 공주가 준 것이냐?”
“네, 공주가 새로 만든 거예요. 불기 편해요.”
남제화는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난 네가 무술에만 관심이 있는 줄 알았는데. 어쩌다 이런 것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냐?”
“할 일이 없고 심심해서요. 그냥 가지고 노는 거예요. 어차피 시간도 많은데 뭐든 할 일을 찾아야죠.”
“네가 원하는 건 짐이 찾아서 보내 주마. 괜히 남의 것을 가져오지 말아라.”
“제가 가져온 게 아니라 공주가 준 거예요.”
“남들이 너에게 물건을 선물했는데, 답례하지 않으면 그건 큰 실례란다.”
위지불이가 말했다.
“당연히 답례했죠. 어제 꿩을 사냥했잖아요. 그 꿩 깃털을 머리 장식에 쓰라고 아운수 공주에게 줬어요.”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남제화는 벼락이라도 맞은 듯 깜짝 놀랐다. 그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녀를 노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