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왕비초장성 (825)화 (824/1,192)

제825화

남제화는 위지불이를 속이지 않았다. 고여아가 위지불이에게 적개심을 품은 걸 그는 일찍 알아차렸다. 그러니 당연 고여아를 먼저 해결해야 했다. 위지불이는 말없이 그를 뚫어지라 쳐다보았다. 남제화는 다급히 말을 이었다.

“걱정하지 말아라. 짐이 잘 안배했었다. 절대로 너를 다치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금갑이 너를 안전하게 보호했고 짐이 배치한 궁수도 모두 믿을 수 있는 자들이었다. 그 화살은 절대 널 명중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짐이 사방에 배치한 자들이 진짜 너를 향해 쏜 화살들을 맞혀 떨어뜨렸다. 불이, 짐의 행동에 네 기분이 상할 거라는 거 잘 안다. 화가 나거든 짐을 한바탕 때리겠느냐? 불이?”

남제화는 긴장한 표정을 했으나 위지불이는 씩 웃었다.

“전 화나지 않았어요. 폐하께서 모두 저를 위해서 하신 일이라는 걸 잘 알아요.”

그의 말에 허점이 있긴 했어도 그녀는 따지지 않았다. 남제화는 녀석의 웃는 얼굴에 불안했던 마음도 서서히 녹았다.

“폐하, 그러면 고여아 공주를 어떻게 처리하실 거예요?”

“고여아가 한 말 중 하나는 맞는 말이란다. 그녀의 신분으로는 동월 평민 한 명을 죽인다고 사형에 처할 수는 없다. 그래서 그녀는 감히 그런 짓을 할 수 있었지. 짐은 그녀를 살려 줄 수밖에 없다.”

“황궁에서 내보낼 거예요?”

“그래, 그게 짐이 바라는 결말이다.”

남제화는 미간을 약간 찌푸렸다. 위지불이는 곧바로 그의 기분을 알아차렸다.

“폐하, 또 무슨 걱정을 하시는 거예요?”

“짐은 그녀가 황궁을 떠나지 않을까 봐 걱정이다.”

“왜요? 고여아 공주가 감히 폐하의 명을 거역할까요?”

“그녀가 아니다.”

남제화는 가볍게 탄식하며 입가에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예전에 짐은 쓸모없는 황제라고 한 말… 기억하느냐?”

위지불이는 영 이해가 가지 않는 표정을 했다. 남제화는 조용히 녀석의 어깨를 토닥였다.

“가자, 옷을 갈아입고 와서 밥을 먹지. 오늘은 짐과 술 한 잔 어떠냐?”

어쨌든 계획대로 한 명을 해결했으니 축하할 만한 일이었다.

* * *

공작전, 아운소는 탁자에 앉아 촛대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소상이 뜨거운 차를 내왔다.

“공주,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계세요?”

“오늘 일, 너무 이상하지 않아?”

“고여아 공주가 불이 공자를 싫어한 건 다들 알고 있던 사실이잖아요.”

소상이 말을 이었다.

“그래도 불이 공자를 죽이려고 한 건… 소인도 정말 뜻밖이었어요.”

“고여아가 어떤 사람인지는 부족에 있을 때도 몇 번 들어 봤어.”

아운소는 찻잔을 들고 한 모금 마셨다.

“그녀는 충동적인 사람이야. 뒤를 생각하지 않고 일단 일을 벌이는 편이지. 성질을 부리다가 사람을 죽인 적도 있어. 다만, 그녀가 정말 폐하가 하사하신 금 화살을 살인 도구로 쓸 정도로 오만방자했을까? 고여아가 행동이 거칠고 경솔하기는 하지만, 그렇게 미련하진 않을 텐데…….”

“그럼, 공주께서는 무엇을 의심하십니까?”

“고여아가 불이를 죽이려 한 건 전혀 이상하지 않아. 만약 그 금 화살이 없었다면 폐하께서 조사하시는데 시간이 좀 걸렸겠지. 시간이 길어지면 변수가 생기기도 쉬워. 하지만, 정해진 기간인 석 달은 변하지 않지. 네가 보기에 이번 일이 빨리 밝혀지기만 바라는 사람이 누구일까?”

소상은 잠시 생각하더니 깜짝 놀라 입을 가렸다.

“당연히 공주와 나사 공주죠. 공주께서 한 게 아니니까 그럼… 아니죠? 나사 공주는 아주 진중해 보였는데요. 그런 술책을 부리는 사람 같지 않아요.”

아운고는 그녀를 향해 웃었다.

“그럼 나는 그런 술책을 쓸 것 같니?”

소상은 그녀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정색하고 대답했다.

“오히려 공주가 책략에 뛰어난 사람 같아요.”

아운소는 소상의 머리에 꿀밤을 먹였다.

“너! 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

“공주, 오늘 일이 정말 나사 공주와 관련이 있다면, 우리도…….”

아운소가 한숨을 내쉬었다.

“세 부족의 공주들이 같이 왔어. 겉으로 보기에는 화목하지만,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무도 몰라. 나는 정정당당하게 경쟁하고 싶지만 다른 사람들이 그런 마음인지 알 수 없잖아. 가서 말을 전하고 와.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게 움직이라고. 난 무사안일을 추구하고 말썽을 일으키지 않는 사람이지만, 만약 누군가 날 건드린다면 나도 경계하지 않을 수 없지.”

소상은 고개를 끄덕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공주,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맞는 거예요. 소인이 곧바로 가서 말을 전하겠어요. 소인이 죽기 살기로 노력해서 공주께서 황후의 자리에 오르는 것을 돕겠어요.”

아운소는 그녀를 흘겨봤다.

“난 황후의 자리가 아니라 그냥 자신을 보호하려는 것뿐이야. 함부로 말하지 마.”

그녀가 은 가위를 들어 초 심지를 자르자 작은 불꽃이 튀었다.

* * *

백화전. 고여아와 전각 문을 지키는 병사가 실랑이하고 있었다.

“네가 감히 나를 막아서?”

장창을 든 병사는 거만하지도 그렇다고 비굴하지도 않게 말했다.

“폐하께서 명을 내리셨습니다. 전각 안에 있는 사람은 한 발짝도 나올 수 없습니다.”

“폐하께서 지금 나를 구금하셨단 말이냐? 그 동월놈을 위해서?”

“폐하의 뜻을 공주께서는 이해하실 겁니다.”

고여아는 싸늘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내가 그를 죽였다고 하더라도 이럴 수는 없어!”

옥합은 얼른 그녀를 끌고 들어가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랬다.

“공주, 폐하와 사이가 틀어지면 우리에게 득이 될 게 없어요. 일단 폐하께서 어떻게 처리하시는지 기다려 봐요.”

“폐하가 어떻게 할 수 있겠어. 어차피 날 죽일 수는 없잖아.”

고여아는 침대에 털썩 걸터앉더니 씩씩대며 말했다.

“분명히 다 제대로 일을 꾸몄는데, 왜 이렇게 된 거지? 위지불이를 제거하기는커녕 오히려 내가 궁지에 몰리다니.”

옥합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소인이 이번 일은 신중해야 한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비록 은밀하게 진행했지만, 바깥에는 우리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에요. 바람이 불어 풀잎이 조금만 움직여도 다른 사람들에게 들킬 수 있어요.

만약 누군가가 공주의 계획을 미리 알아서 사람들을 배치했다면 오늘의 이런 국면을 만드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아요. 숲속에 숨어 있던 궁수, 그리고 금 화살도요. 소인 생각에는 공주께서 더 깊이 생각하셔야 합니다.”

고여아는 눈을 가늘게 떴다.

“네 말은… 이번 일이 아운소나 나사가 중간에서 장난을 친 거란 말이야?”

“소인의 추측일 뿐이에요. 다만 이번 일로 저들만 유리해졌잖아요.”

고여아는 냉소를 지었다.

“나를 함정에 빠뜨려? 이렇게 쉽게 끝낼 수는 없지. 방법을 강구해 서신을 보내. 예전에 마온극 부족과 약조를 한 사람이 있어. 그 약조를 지킬 시간이 되었다고 전해.”

* * *

옥천전. 나사가 의자에 기댄 채 정신을 가다듬고 있었다. 향미가 살며시 다가와 말했다.

“공주, 백화전은 시위들이 겹겹이 둘러싸고 있습니다. 소인이 보기에 폐하께서 이번에는 정말 진노하신 것 같아요. 고여아 공주는 황후 후보에서 떨어진 것 같고요.”

나사는 눈을 뜨더니 한참 뒤에 담담하게 웃었다.

“내가 볼 때 꼭 그렇지는 않아. 고여아는 처음부터 꼭 황후가 되겠다는 태도였어. 뒤에서 누군가가 도와주고 있을 거야. 폐하께선… 난 폐하의 속마음을 모르겠어. 예부터 어느 왕조든 군주는 권모술수의 명수였지. 위지불이가 폐하의 연인인지 아니면 바둑알인지 아직 모르겠어. 우리는 조용히 상황을 주시해 보자.”

* * *

이튿날, 위지불이가 눈을 떴을 때 남제화는 보이지 않았다. 강암룡에게 물으니, 황제는 장로들과 일을 논의하기 위해 의사당에 갔다고 했다. 무료했던 그녀는 어제 사냥한 꿩의 꽁지깃을 들고 아운소를 찾아갔다. 지난번 황제가 아운소에게 경고한 이후로, 그녀는 위지불이를 찾아가지 않았다. 아운소는 저를 먼저 찾아온 위지불이를 보고 매우 놀랐다.

“불이, 저도 찾아가려던 참이었는데, 불이가 먼저 왔네요.”

위지불이가 물었다.

“저에게 무슨 볼일이라도 있나요?”

“지난번에 말했잖아요. 호로사를 새로 하나 만들었다고요. 불이가 연주해 봐요.”

아운소는 호로사를 꺼내 와서 보물을 바치듯 건넸다.

“빨리 연주해 봐요. 내가 음을 잘 맞춰서 쉽게 불 수 있을 거예요.”

위지불이가 불어 보니 역시 힘들이지 않고도 소리가 잘 났다.

“그렇네요, 저번 것보다 불기 편해서 좋아요.”

“마음에 들어요?”

아운소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위지불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특별히 불이를 위해 만든 거예요.”

“고마워요.”

위지불이는 꿩 깃털을 꺼내 보이며 웃었다.

“나도 공주께 드릴 게 있어요. 깃털이 아주 예쁜데 머리 장식으로 쓰면 어떨까요?”

위지불이는 한마디 더 덧붙였다.

“이건 내가 직접 사냥한 거예요.”

아운소는 깨끗하게 씻은 깃털을 보니 마음에 꽃망울이 터지는 듯했다. 깃털은 청록색의 빛을 띠고 있어 매우 아름다웠다. 냄새도 향기로웠다. 위지불이는 가볍게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

“막 뽑았을 때는 피비린내가 났는데 훈향하니까 없어졌어요.”

“응, 좋은 향기가 나네요.”

평소 시원시원하던 아운소는 고개를 숙인 채 수줍게 말했다. 위지불이는 의자에 앉으며 하하 소리 내서 웃었다.

“이왕 이렇게 왔으니 차나 한잔 얻어먹고 갈게요.”

“당연히 그래야죠.”

아운소는 깃털을 상자에 소중히 담으며 웃었다.

“항상 불이를 위해 찻잎을 남겨 두고 있어요.”

차를 가져온 소상은 눈살을 찌푸리며 한쪽에 서 있었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았다. 아운소가 째려보더니 손을 내저었다.

“불이와 대화해야 하니까 너는 물러가 있어.”

소상은 심통 난 얼굴로 한마디 지적했다.

“공주, 불이 공자는 폐하의 귀한 손님입니다. 어쩌면 폐하께서 지금 공자를 찾고 계실지도 모르니 너무 오래 있지 마시고…….”

“괜찮아요.”

위지불이가 말했다.

“폐하께서는 의사당에 가셨어요. 저도 공주와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었어요.”

소상는 한참을 망설였다. 어떤 말은 면전에서 하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아운소가 자꾸 그녀에게 눈치를 주니 어쩔 수 없이 물러나야 했다. 위지불이는 말했다.

“소상은 나를 그다지 반기지 않는 것 같아요.”

“아니에요.”

아운소는 부드러운 얼굴로 가볍게 웃었다.

“내가 공자를 방해하고 귀찮게 할까 봐 걱정하는 거예요.”

“그럴 리가 있나요?”

위지불이가 말했다.

“공주와 난 친구 사이인데, 친구끼리 귀찮다는 말이 어디 있어요?”

아운소는 매끈한 찻잔을 어루만졌다.

“불이, 내가 춤을 추는 걸 보여 줄게요.”

“좋아요. 그럼 내가 공주를 위해 연주를 할게요. 마침 새 호로사를 받았으니 시험을 해 봐야죠.”

위지불이는 호로사를 입에 대며 웃었다.

“아쉽지만, 난 공작령만 불 줄 알아요.”

아운소가 부드럽게 말했다.

“그럼, 공작령을 출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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