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왕비초장성 (824)화 (823/1,192)

제824화

“이게 사실이더냐?”

남제화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옥합에게 물었다. 옥합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입술을 달싹거렸지만, 감히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어서 말하지 못할까! 정말 그런 일이 있었느냐?”

평소 상냥했던 남제화가 화를 내자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위험이 느껴졌다.

“제대로 대답하라! 조금이라도 거짓이 있으면 너를 능지처참에 처할 것이다.”

옥합은 깜짝 놀라 땅바닥에 엎드렸다.

“폐하, 공주께서는 말만 그렇게 하셨을 뿐, 절대로…….”

“그렇다면 정말 그런 말을 했다는 거군.”

남제화는 냉소적으로 말했다.

“내가 보기에 고여아 공주는 결코 입으로만 용맹한 척하는 사람이 아니오. 공주는 항상 불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했지. 지난번 화전 시합에서도 공주는 딴마음을 먹지 않았소? 만약 짐이 제때 손을 쓰지 않았다면, 그날 불이는 공주의 화살에 맞아 죽었을 거요.

짐은 그날 공주가 초범자이고 우마 족장의 체면을 생각해 관용을 베풀었소. 그런데 공주는 뉘우치기는커녕 오히려 한술 더 떠서 사냥터에서 불이를 쏴 죽이려 했소.

금 화살은 잃어버린 게 아니라 유용하게 활용한 것이겠지. 공주는 교만한 사람이라 설사 불이를 사살한 사실이 드러나더라도 본인의 고귀한 신분 덕에 괜찮을 거라 여겼을 것이오. 동월의 평민 하나 죽인 건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 여겼겠지. 짐의 말이 맞지 않소?”

고개를 든 고여아는 군왕의 눈빛에 증오와 냉담함이 가득한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심장이 찔린 듯 아파서 피를 토할 지경이었다.

“폐하께서 하신 말씀이 맞아요. 저는 위지불이가 싫습니다. 마온극 부족의 공주인 제가 설사 동월의 평민 하나를 사살했다 한들 그게 죽을죄는 아니지요.”

옥합이 놀라 소리쳤다.

“공주!”

남제화는 고여아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공주, 마침내 인정했군.”

고여아는 남제화의 차가운 눈빛을 본 순간 충동적으로 죄를 인정했다. 그녀는 이번 일로 자신이 황후의 자리에 앉을 가능성이 없어졌다는 걸 알았다.

고여아는 본래 화를 참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그를 알고 있는 족장은 진중한 옥합을 그녀와 함께 보냈다. 족장은 고여아에게 옥합의 말을 잘 들으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그녀는 족장인 아버지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옥합은 위지불이를 회유하려고 했지만 그녀는 오히려 더 삐뚤어졌다. 옥합이 말릴수록 위지불이에 대한 증오가 점점 더 커진 것이다.

하지만, 위지불이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싫은 건 아니었다. 그날 밤, 남제화가 위지불이의 이름을 부르는 걸 듣기 전까지는……. 그녀의 경국지색이 동월에서 온 사내놈에게 밀렸다는 건 말할 수 없는 치욕이었다. 그때부터 그녀는 위지불이를 없앨 기회를 찾기 시작했다.

사냥은 좋은 기회였다. 그녀는 수하에 일을 도울 이들이 있었기에 수풀 속에서 동월놈 하나 사살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만약 착오 없이 일이 진행됐더라면 그녀가 의심을 받더라도 절대 모르는 일이라 잡아떼면 그만이었다. 감히 황제가 부족의 공주를 어찌하겠는가?

그런데 난데없이 금 화살이 나타날 줄이야. 게다가 황제는 그날 밤의 일까지 밝혀 그녀의 화를 돋우었다. 되었다, 되었어! 인정하면 인정하는 거지! 그녀가 한 일이니 감당 못 할 건 또 무엇인가?

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정전에는 남제화와 위지불이만 남았다. 궁에 돌아오자마자 사건을 심리하느라 두 사람은 아직 옷도 갈아입지 못했다. 금빛으로 찬란한 두 사람이 전당에 있으니 크고 작은 두 명의 천신이 내려온 것처럼 느껴졌다.

위지불이는 자리에 앉은 채 무언가 골똘히 생각했다. 그는 녀석의 눈앞에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무슨 생각을 그리하느냐?”

위지불이가 그를 바라봤다.

“저를 사살하려 한 게 정말 고여아 공주였어요?”

“본인이 이미 인정하지 않았느냐?”

“진짜 나를 죽이려 했다면 왜 금 화살을 썼을까요?”

“워낙 오만방자한 사람이다.”

“아무리 오만방자한 사람이라도 폐하 앞에서는 가능한 몸을 사리기 마련이에요. 그녀가 정말 저를 죽이려 했다면 금 화살을 사용하지 않았을 거예요.”

남제화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고 웃음을 터뜨렸다.

“불이, 뭐가 의심스러운 게냐?”

“폐하께서 혹 좋은 사람에게 누명을 씌운 건 아닐까 걱정이 되어서요.”

“그런 마음을 먹었는데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느냐?”

남제화가 말했다.

“넌 부족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모르지. 그들은 산림 속의 들짐승과 함께 살아가는데, 생명에 무게를 두지 않는단다. 그들은 화근이 생기면 무조건 제거를 한다. 사람을 죽이는 일은 그들에게 대수롭지 않은 일이지.”

위지불이는 입을 벌린 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공주도 사람을 죽일 줄 알아요?”

남제화 냉소를 지었다.

“부족의 공주는 황실에서 자란 공주와 달라. 그곳에서는 사내든 여인이든 관계없이 사냥하고 사람을 죽인다. 절대로 좋은 것만 먹고 자란 응석받이 아가씨가 아니지. 부족이 전투를 벌일 때, 공주들은 칼을 들고일어나 적의 수급首級을 베어야 한다.”

위지불이는 그런 장면을 상상조차 할 수 없어 진저리를 쳤다. 잠시 넋을 놓던 그녀는 조금 전 얘기로 돌아갔다.

“어쨌든 금 화살은 뭔가 이상해요.”

“금 화살을 그녀가 쐈든 안 쐈든… 오늘 너를 제거하려 한 사람들 중 그녀가 보낸 사람이 있다. 짐이 억울한 사람을 만든 건 아니란다.”

위지불이는 그의 말속에 담긴 뜻을 이해하고 깜짝 놀랐다.

“혹시 고여아 말고 또 다른 사람이 저를 노렸나요?”

남제화는 코끝을 만지작거리며 말을 얼버무렸다.

“폐하, 왜 그자는 추궁하지 않으신 거예요?”

남제화는 동문서답하며 그녀가 입고 있는 금갑金甲을 툭툭 쳤다.

“불이, 이 금갑은 검과 창을 막는다. 당연히 화살도 막을 수 있지. 너를 안전하게 보호하기에 충분하다.”

위지불이는 곧장 고개를 숙여 자신의 금갑을 쳐다보며 말했다.

“진짜 검과 창을 막을 수 있어요? 어디 그럼, 폐하께서 칼로 저를 한번 찔러 보세요.”

“…….”

위지불이는 자신의 검을 뽑아 남제화의 손에 건네주며 소리쳤다.

“자, 어서요!”

남제화는 칼을 다시 그녀에게 건넸다.

“내 금갑도 검과 창을 막으니 네가 한번 해 보거라.”

위지불이는 조금도 사양하지 않고 칼로 남제화의 등을 내리쳤다.

“…….”

남제화는 녀석을 내리치는 상상조차 못하겠건만. 위지불이는 조금도 망설임 없이 남제화를 내리쳤다. 금갑은 위지불이의 칼을 세게 튕겨냈다. 하마터면 칼을 떨어뜨릴 뻔할 정도였다. 그녀는 매끈매끈한 금갑을 만져 보더니 혀를 내둘렀다.

“재미있네요.”

남제화가 입을 열기도 전에 그녀는 다시 칼을 들어 그를 옆으로 베었다. 이번엔 반동은 없었지만 칼이 지나간 곳엔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그녀는 칼을 들고 남제화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그의 등에 칼을 두 번 긋고 허리에도 두 번 그었다. 두 다리와 두 팔도 그녀의 칼을 피할 수 없었다. 그녀는 머리만 빼고 그의 몸에 수십 차례 칼을 휘둘러댔다.

“이건 보물이에요!”

남제화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빙글빙글 웃고 있었다.

강암룡은 붉으락푸르락한 표정을 한 채 멀리 서 있었다. 감히 폐하께 저렇게 무례를 범하다니! 정말 위지불이는 법도 하늘도 업신여기는 무뢰한이었다. 폐하는 왜 저리 웃고만 계실까? 그는 도저히 더는 볼 수 없어서 슬그머니 물러났다. 위지불이는 한참 신나게 놀다가 넉살 좋게 웃었다.

“폐하, 이 금갑 저에게 주시면 안 되나요?”

남제화는 주변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녀석의 허리를 껴안았다.

“나에게 입을 맞추면 금갑을 너에게 주마.”

“그게 뭐 어렵겠어요?”

위지불이는 까치발을 들고 그의 얼굴에 입을 쪽 하고 맞추더니 얼른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이제 금갑은 제거예요.”

남제화는 그녀를 다시 안으려 했으나 이미 한 박자 늦은 뒤였다. 위지불이는 허탕 친 채 뻗어 있는 그의 손을 보면서 득의양양한 웃음을 터뜨렸다. 남제화는 웃으며 말했다.

“너를 위해 특별히 주문해 만든 것이다. 너한테 주지 않으면 누구한테 주겠느냐?”

제가 입고 있는 금갑을 어루만지던 위지불이는 갑자기 고개를 쳐들었다.

“폐하, 아직 대답 안 해 주셨어요. 제게 화살을 쏜 다른 사람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왜 그자를 조사하지 않는 거예요?”

방금까지 금갑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왜 또 화제를 거기로 돌린단 말인가? 녀석의 사고는 어디로 튈지 알 수 없어서 따라가기 힘들었다. 남제화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왜 대답을 못 하세요? 폐하?”

“불이, 어떤 일은 결과만 알면 된단다. 고여아는 너한테 해를 가하려 했고 내가 붙잡았고 그녀는 죄를 인정했지. 다른 건 중요하지 않아.”

위지불이는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폐하, 어찌 이리 아리송한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오늘은 피곤하구나. 너도 배가 고플 거다. 방에 가서 갑옷을 갈아입어라. 짐이 밥상을 차리라고 분부하마.”

위지불이는 가만히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폐하, 무엇을 숨기시는 거예요?”

남제화는 머리가 아팠다. 녀석! 고집이 장난이 아니군.

“불이, 짐을 믿느냐?”

“당연히 믿죠. 폐하께서 금갑은 창칼이 뚫을 수 없다고 하셨잖아요. 폐하를 믿었으니 제가 감히 폐하께 칼을 휘둘렀지요.”

“그럼, 더 이상 묻지 말거라. 짐은 너에게 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는다.”

남제화는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다.

“어서 말 들어라. 갑옷을 벗고 짐과 함께 식사를 하자꾸나.”

위지불이는 몇 걸음 걸어가다가 다시 뒤돌아 천천히 걸어왔다.

“폐하, 믿음은 서로에게 보여 주는 거예요. 이건 저와 관련된 일이에요. 저는 누가 저를 향해 활을 쏘았는지 알고 싶어요.”

녀석의 새까만 눈동자를 바라보며 남제화는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믿음은 서로에게 보여주는 것’이라는 말에 그는 반박할 수 없었다. 한숨을 내쉰 그는 입을 열었다.

“나였다.”

위지불이는 한참 만에 말을 꺼냈다.

“…정말 폐하셨어요?”

“그래, 내가 했다.”

경악하는 녀석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남제화는 자신이 흉악무도한 악당이 된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여제의 조건을 받아들인 순간부터 이미 이런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왜 그랬어요?”

녀석은 작은 얼굴을 치켜들고 그를 바라봤다. 당황한 남제화는 시험 삼아 그녀의 어깨에 손을 걸치려 했다. 그녀는 몸을 뒤로 빼지 않았지만 여전히 고개를 들고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목청을 가다듬었다.

“고여아가 너를 위협했기 때문이다. 짐은 그녀를 황궁에서 내보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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