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22화
사냥은 남원에서 가장 흔한 활동 중 하나였다. 황족들과 백성들 모두 활을 잘 쏘았고 사냥을 즐겼다. 남제화는 위지불이가 답답할까 봐 함께 사냥을 나가기로 했다. 위지불이는 그 말을 듣고 크게 기뻐했다. 어렸을 때부터 승마를 배웠고 활도 잘 쏘는 편은 아니었지만 꽤 즐길 줄 알았다.
사냥꾼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재밌는 법. 세 공주도 황제의 초청을 받았다. 부족의 공주로서 밀림에서 살아온 그녀들은 각 부족에서 용맹하고 궁술이 뛰어나기로 소문난 인물이었다.
공주들은 사냥을 위한 준비를 끝마쳤다. 짧은 상의는 몸에 밀착되어 아름다운 몸매를 드러냈고, 하의는 발목을 조이는 형태의 바지를 입었다. 허리에는 손바닥 너비의 요대를 둘렀다. 유연하면서도 견고한 이 요대는 희귀한 나무껍질을 벗겨 만드는 것으로 몇 번의 공정을 거쳐야 만들 수 있었다.
요대는 몸에 항상 지니고 다니는 칼이나 공구, 화살통 그리고 활 등을 걸 수도 있고, 또 허리를 보호하기도 한다. 공주들은 모두 자기 부족의 표식이 그려진 요대를 허리에 둘렀다. 요대에 새겨진 알록달록한 문양이 절로 눈길을 끌었다.
위지불이의 사냥 도구는 모두 새것이어서 금빛으로 반짝거렸다. 꼭 온몸에 갑옷을 두른 것 같았다. 하지만 보이는 것과 달리 그녀의 복장은 그리 무겁지 않았고, 걸어도 소리가 나지 않았다. 그녀는 연못가에 서서 장군처럼 위풍당당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손을 뻗어 투구 끝을 더듬으면서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아운소가 부러워하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불이, 폐하께서 참 잘해 주십니다. 황실의 사냥복까지 하사하셨네요.”
그녀의 시선은 위지불이의 요대로 향했다.
“이 금빛 요대는 황족만 착용할 수 있는 거예요.”
위지불이는 마음이 흐뭇했다. 남제화는 그녀에게 당연히 최고의 것을 주었을 것이다. 다만 그녀의 기쁨은 마음속에만 간직할 뿐, 다른 사람에게는 비밀이었다. 그녀가 웃으며 대꾸했다.
“폐하께서는 마음이 넓은 군주이시니까요. 폐하의 큰 은혜에 보답하고자 반드시 큰 놈을 사냥해서 폐하께 바칠 거예요.”
멀지 않은 곳에 있던 고여아는 그 말을 듣고 경멸 가득한 얼굴을 하고선 자신의 말을 끌고 가 버렸다.
위지불이는 말을 탈 줄은 알았지만, 키가 작아서 즐겨 타진 않았다. 남제화는 그녀에게 등이 둥글며 팔다리가 굵고 단단한 조랑말을 타게 했다. 조랑말은 온몸이 붉은색 털로 뒤덮여 있었는데, 갈기는 은색이었다. 말이 달릴 때마다 은색 갈기가 바람에 펄럭이며 휘황찬란한 빛을 발했다.
위지불이가 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말이 은빛 갈기가 난 머리를 그녀의 손에 비비적거리며 다정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아운소가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말을 쳐다보았다.
“정말 예쁜 말이네요.”
그녀는 또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지만 남제화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재빨리 자리를 피했다. 아운소가 갑자기 자리를 떠서 의아해하던 찰나, 남제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말이 마음에 드느냐?”
“네, 너무 좋아요.”
위지불이는 방긋 웃었다.
“예쁘고 말도 잘 들어요.”
남제화는 은빛 갈기 말을 한 번 훑어보더니 다시 위지불이를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한 말을 영웅에게 선사하니, 아주 잘 어울리는구나.”
위지불이는 하하 웃었다.
“폐하께서 그리 좋은 덕담을 해 주시니, 꼭 큰 사냥감을 잡아서 폐하께 바칠게요.”
남제화가 그녀를 놀렸다.
“무엇을 사냥하고 싶으냐? 호랑이? 아니면 표범?”
위지불이는 안색이 얼어붙었다. 그녀가 말한 큰 사냥감은 기껏해야 사슴 정도인데……. 남제화는 굳어 버린 그녀의 안색을 살피다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가 그녀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됐다. 짐도 네가 큰 사냥감을 잡을 거라 기대하지 않는다. 사냥감에게 끌려가지만 않으면 된단다.”
위지불이는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
“폐하, 숲속에 호랑이와 표범이 많아요?”
남제화는 고개를 들어 멀리 내다보더니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숲에는 호랑이와 표범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다 있지.”
그는 시선을 거두어 위지불이를 바라봤다.
“무서우냐?”
위지불이는 뱀이 무서울 뿐 다른 건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그녀는 당당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하나도 무섭지 않아요.”
남제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짐의 말을 기억하여라. 어떤 일이 있어도 두려워하지 마라. 짐이 너를 지켜 줄 것이다.”
“폐하께선 저와 함께 다니실 거예요?”
남제화는 잠시 침묵했다.
“아니, 숲에는 너 혼자 들어갈 것이다.”
위지불이는 어리둥절했다. 함께 있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자신을 지켜 주겠다는 거지? 호각이 울려 퍼졌다. 그녀는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말에 올라 흥분한 기색으로 고삐를 거머쥐었다. 호각이 다시 한번 울리면 곧장 숲속으로 달려갈 것이다.
남제화도 말에 올랐다. 그가 탄 말은 키가 크고 온몸이 눈처럼 하얀 말이었다. 사지도 튼튼하고 발굽도 크고 둥글었다. 형형한 빛을 내뿜는 두 눈에서는 생기가 넘쳐흘렀다. 남제화는 멀지 않은 곳에서 위지불이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번뜩였고 미간에는 살짝 주름이 졌다.
호각이 다시 울려 퍼지자 모두 환호성을 지르며 숲속으로 뛰어들었다. 깊고 울창한 숲엔 햇빛이 들어오지 않았다. 키 큰 나무들은 머리 위로 그늘막을 쳐 놓았다. 실오라기 같은 햇빛이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서 어두컴컴한 숲에 약간의 빛을 더하고 있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숲에 들어가자마자 곧장 사방으로 흩어졌다. 하늘을 날던 새가 숲에 들어가 버린 것처럼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위지불이는 한참 동안 말을 달린 뒤에야 주변에 사람들이 모두 사라진 것을 깨달았다. 사방을 둘러봐도 머리 위로 펼쳐진 빽빽한 나뭇잎과 그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햇빛뿐이었다. 숲속은 아늑했고 이따금 맑은 새 울음소리만 들려왔다.
위지불이는 무섭지 않았다. 그녀는 동월에서도 오라버니들과 사냥을 나간 적이 있었다. 비록 아무런 소득 없이 돌아가기 일쑤였지만 그녀는 사냥이 좋았다.
그녀는 숲속으로 좀 더 깊숙이 들어간 뒤 말을 멈춰 세웠다. 그곳은 넓은 지대가 펼쳐지는 곳이었다. 기복 없는 평평한 지세에 빽빽한 나무들만 가득했다. 그녀는 직감적으로 이런 곳에는 호랑이나 표범이 없으리라 생각했다.
딱히 그런 짐승들이 겁나진 않았지만… 굳이 위험을 무릅쓰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자신을 스스로 돌보고 다른 사람에게 누를 끼치지 않는 것이 자객이 갖추어야 했던 가장 기본적인 규범이었음을 위지불이는 기억하고 있었다. 말에서 내린 그녀는 나무에 말을 묶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여기서 얌전히 있어. 좀 둘러보고 올게.”
은빛 갈기를 가진 말은 큰 눈을 깜박이며 그녀의 손바닥에 머리를 비볐다. 도리어 그녀를 안심시키는 듯했다.
위지불이는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무기를 점검했다. 단도 두 자루와 화살통을 허리춤에 꽂았고 어깨에는 활과 여분의 화살통을 멨다. 그녀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하고서 앞으로 걸어갔다.
얼마 가지 않아 풀숲에 꿩 한 마리가 있었다. 꿩은 햇빛 아래 가만히 서 있었다. 알록달록한 긴 꼬리가 빛을 반사하고 있어서 단번에 눈에 띄었다. 몸을 낮추고 살금살금 다가간 위지불이는 큰 나무 뒤에 숨어서 활시위에 화살을 걸었다. 위지불이는 숨을 죽이고 꿩을 조준했다.
꿩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한가롭게 풀씨를 쪼고 있었다. 위지불이는 천천히 활시위를 뒤로 당겼다. 활시위를 완전히 당기기엔 힘이 부족했지만 그래도 꿩 한 마리를 잡는 건 충분했다.
휙! 소리와 함께 화살이 활시위를 떠나 재빠르게 날아갔다. 꿩은 그제야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화살이 몸에 박히자 꿩은 날개를 퍼덕이더니 곧장 바닥에 쓰러졌다.
위지불이는 신이 나서 달려가 꿩을 주웠다. 그녀가 처음 사냥한 먹잇감이라 의미가 매우 컸다. 그녀는 걸으면서 꿩의 예쁜 깃털을 훑어봤다. 아운소에게 머리 장식을 만들 때 쓰라고 전달하면 분명 좋아할 것이다.
은빛 갈기 말이 있는 곳에 채 이르기도 전. 갑자기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들어보니 기다란 화살이 그녀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무공을 익힌 위지불이의 반응은 빨랐다.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꿩을 화살을 향해 던졌다. 그러나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또다시 이어졌다. 위지불이는 뒤로 몸을 젖히며 덤불에 쓰러졌다. 위지불이가 사라지자 적은 나무 아래 묶여 있는 말을 목표로 삼았다. 말을 향해 기어간 위지불이는 칼을 뽑아 말고삐를 자르고 소리를 질렀다.
“빨리 도망가!”
은빛 갈기 말은 주저하지 않고 몸을 돌려 숲 밖으로 달아났다. 화살이 그 뒤를 쫓았지만 말은 더욱 빨리 사라져 버렸다. 나무 뒤에 숨은 위지불이는 불안에 떨며 귀를 기울였다. 말의 신음이 들리지 않자 그녀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도 은빛 갈기를 가진 말은 다치지 않고 도망간 것 같았다.
그녀는 왜 자신이 사냥감이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도대체 어떤 놈들이 화살을 쏘려는 거지? 위지불이는 눈을 가늘게 뜨고 숲을 살펴보고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저쪽에 있는 사람은 누굴까? 대체 몇 명이나 있는 거지? 계속 숨어 있다간 궁지에 몰릴 것이다. 이제 그녀가 역공할 차례였다.
상대방은 매우 침착한 고수였다. 한참 동안 관찰해도 적이 은신한 곳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그녀는 숲을 향해 화살을 난사할 수밖에 없었다. 맞히지 못할 확률이 크지만, 운 좋게 눈먼 화살에 맞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한바탕 화살을 쏘고 땅을 기어서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몸을 피하며 보니 방금 몸을 숨겼던 나무는 고슴도치가 되어 있었다.
그때 그녀는 전방에 있는 풀숲에 인기척을 느꼈다. 상대방이 이동하는 것을 본 위지불이는 이를 악물고 화살을 쏘았다. 하지만 적을 맞히기는커녕 제 위치만 들통나고 말았다.
이번엔 화살이 앞이 아닌 왼쪽에서 날아왔다. 번쩍이는 금빛 화살이 그림자 사이를 꿰뚫고 그녀에게 날아왔다. 위지불이는 모든 정신을 바로 앞에 있는 상대에게 집중한 상태였다. 금빛으로 번쩍이는 화살을 발견했을 때는 대응할 겨를이 없어 옴짝달싹 못하고 있었다.
금빛 화살이 그녀 앞에 이르기도 전. 어디선가 날아온 또 한 대의 화살이 사나운 기세로 금빛 화살을 명중시켰다. 화살 깃이 파르르 떨릴 정도로 대단한 실력이었다.
위지불이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사방에서 쏟아서 나온 한 무리의 사람 중에는 금색 갑옷을 입은 사람도 있었다. 그는 손에 활을 든 채 끝없이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위지불이는 그를 발견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그에게 가까이 걸어갔다.
“폐하.”
남제화는 품에 꽉 끌어안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위지불이를 위아래로 살폈다.
“괜찮으냐?”
“전 괜찮아요.”
위지불이는 양팔을 뻗고 빙글빙글 돌더니 제자리에서 팔짝팔짝 뛰며 웃었다.
“이것 보세요. 전 아무렇지도 않아요.”
남제화의 목소리에는 자신만이 알 수 있는 잔잔한 떨림이 있었다.
“방금… 무섭진 않았느냐?”
“안 무서웠어요.”
위지불이는 목을 곧게 뻗으며 그를 보고 방긋 웃었다.
“폐하께서 저를 지켜 주시겠다고 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