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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818)화 (817/1,192)

제818화

위지경용도 술을 많이 마셔서 얼굴과 눈이 붉어졌다. 그는 작은 술잔을 손가락으로 돌리며 말했다.

“폐하, 수하의 권고를 따라 이제 그만 하시지요.”

강암룡이 얼른 덧붙였다.

“맞습니다. 폐하, 그만 드십시오. 소인이 폐하께 차를 올리겠습니다.”

남제화는 언짢은 듯 손을 내저었다.

“뭐라 조잘거리는 게냐! 물러가라. 네 시중은 필요 없으니.”

강암룡이 머뭇거리자 남제화는 탁자를 내리치며 화를 냈다.

“짐의 말도 안 듣는 게냐!”

남제화의 호통에 모두들 깜짝 놀랐다. 강암룡 또한 어쩔 수 없이 물러났다. 위지경용은 술병을 들어 남제화에게 술을 따라 주었다.

“폐하, 고정하십시오. 경용이 오늘 폐하께서 흡족하실 때까지 목숨을 걸고 모시겠습니다.”

그제야 흡족한 표정으로 바뀐 남제화는 술잔을 들고 다시 웃기 시작했다. 위지불이는 옆에 앉아서 의심스러운 눈으로 남제화를 바라봤다. 황제의 태도가 뭔가 이상했다.

“셋째 형님, 이만하면 충분하잖아요. 그만 마셔요.”

위지불이가 위지경용에게 불평했다. 남제화는 그 모습이 마치 잔소리하는 새색시처럼 보였다.

‘그래, 녀석을 여자라고 여기자.’

그가 눈을 가늘게 뜨고 녀석을 보았다. 많이 취한 탓일까? 보면 볼수록 위지불이는 여자 같았다. 위지불이의 불평에 위지경용은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러다 순간 위지경용이 탁자를 넘어 남제화에게 몸을 날랐다. 순식간에 남제화의 목에 칼이 닿았다.

위지불이는 제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황제의 목에 가로로 놓인 건 칼날이 분명했다. 날카로운 칼끝이 불빛에 반사되어 싸늘한 빛을 내뿜었다. 목구멍에 뭐가 걸린 것처럼 그녀는 온 힘을 다해 겨우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셋째 형님, 도대체 왜…….”

강암룡은 적을 만난 듯 목청을 높여 외쳤다.

“이리 오너라! 폐하를 구해야…….”

남제화가 그를 제지했다.

“입 다물고 나가! 가서 전각 문을 닫아라.”

강암룡은 황망하게 그를 바라봤다.

“폐하, 절대 안 됩니다. 소인은 절대로…….”

남제화는 목소리를 낮춰서 그를 다독였다.

“나가라. 짐은 아무 일도 없을 테니… 이곳에 그 누구도 들이지 말거라.”

강암룡이 어떻게 자리를 피할 수 있겠는가? 그는 황제였고, 자신은 황제의 시종이다. 황제를 보호하는 것은 바로 자신의 책무였다. 강암룡은 위지경용에게 고함을 질렀다.

“당장 폐하 곁에서 물러나거라!”

위지경용은 차갑게 쏘아보며 말했다.

“너희 폐하가 시킨 대로 하거라. 그렇지 않으면…….”

그는 칼로 황제의 목을 살짝 그었다. 금세 옅은 붉은 핏자국이 번졌다. 강암룡은 이를 악물었다.

“감히 폐하의 옥체에 상처를 내다니…….”

“방금은 경고였을 뿐, 지금 바로 나가지 않으면 정말 피를 보게 될 것이다.”

강암룡이 다시 입을 열려고 하자 남제화가 호통을 쳤다.

“짐을 정말 죽일 작정이냐! 어서 나가라!”

강암룡은 위지경용을 한 번 노려보고는 전각 안에 있던 시위들과 금군들을 밖으로 쫓아냈다. 그리고 결국 자신도 밖으로 나가야 했다. 강암룡은 나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위지불이를 돌아봤다. 음산하고 날카로운 그의 눈초리에 위지불이의 가슴이 섬뜩했다.

그녀가 침묵을 지키는 이유는 셋째 오라버니에게 뭔가 생각이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그녀는 셋째 오라버니가 남제화를 죽일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 위지경용에겐 어여쁜 아내와 귀여운 아이가 있었고, 소박하지만 단란하게 생활하고 있었다. 그가 그 모든 것들을 포기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게다가 위지 가문의 원수는 여제이지, 남제화가 아니었다. 셋째 오라버니는 틀림없이 다른 속셈이 있을 것이다.

그녀는 감히 남제화를 볼 면목이 없었지만, 곁눈질로 힐끔 본 황제의 표정은 매우 담담했다.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 중에 남제화가 가장 침착했다. 마치 칼이 위협하고 있는 게 그의 목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목인 것처럼.

무거운 전각 문이 닫히는 소리가 울려 퍼지자 세 사람이 동시에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위지경용은 그제야 남제화의 목을 겨눴던 칼을 조금 떼어 놓았다. 남제화가 말했다.

“다 나갔으니 이제 말해 보거라. 어떻게 하고 싶은 건가?”

“셋째 형님, 어서 칼을 거두세요. 잘못하면 폐하께서 다치겠어요.”

“불이, 셋째 형이 뭘 하든 너는 막지 말고 상관하지 마라. 이 형은 네가 잘되라고 이러는 거야.”

위지경용은 남제화에게 말했다.

“전 여제를 만나야겠습니다.”

남제화가 미간을 찌푸렸다.

“아직도 복수를 포기하지 않았느냐?”

“이건 복수와 상관없습니다.”

“그럼… 여제를 만나서 뭘 하려고 하는 거지?”

“그자가 불이에게 고충을 심었다고 들었습니다. 예전에 듣자 하니, 여제는 피를 이용해서 고충을 만들기 때문에 그자가 심은 고충은 오직 그자만이 다룰 수 있다더군요. 전 여제한테 불이 몸속에 있는 고충을 없애 달라고 해야겠습니다.”

“만약 여제가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하면?”

“제 생각에 여제는 동의할 겁니다. 여제에게는 폐하의 목숨이 불이의 목숨보다 훨씬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위지불이는 셋째 오라버니가 그녀를 위해 황제를 협박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마음이 너무 복잡했다. 그녀는 슬픈 눈빛으로 남제화를 바라보았다. 한 명은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이고, 다른 한 명은 그녀의 가족이었다. 그녀는 중간에 끼인 채 진퇴양난에 빠졌다. 남제화는 말없이 그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만약 불이에게 있는 고충을 없앤다면… 그 후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당연히 동월로 돌아가게 할 겁니다.”

“셋째 형님.”

위지불이가 끼어들었다.

“전 안 돌아가요.”

이제 겨우 남제화와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는데… 그녀가 어찌 동월로 돌아갈 수 있겠는가?

“불이, 내 말 잘 들어라! 이 형은 다 네가 잘되라고 이렇게 하는 거야.”

그는 다시 남제화의 목에 칼을 겨누었다.

“폐하는 불이의 좋은 친구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불이의 고충은 없애기 싫으신 겁니까?”

남제화는 쓴웃음을 지었다.

“짐도 불이의 고충을 없애고 싶네. 다만, 너희는 여제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지. 여제는 짐 때문에 불이의 고충을 없애 주지 않을 것이야.”

위지경용은 믿을 수 없었다.

“여제를 데리고 오십시오. 어미에게 아들의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게 있겠습니까? 폐하, 전 당신을 해칠 뜻은 없습니다. 여제가 불이의 고충만 없애 준다면 소인이 즉시 데리고 떠나서 다시는 타곤성에 나타나지 않겠습니다.”

남제화는 그의 말에 심장이 찌르는 듯 아팠다. 그는 무엇이든 감내할 수 있었다. 불이가 그의 곁을 떠나는 것만 아니라면. 남제화는 냉랭하게 말했다.

“그럼, 짐을 죽여라. 짐이 죽지 않는 한… 불이를 보낼 수 없으니.”

위지경용은 황제가 협조하지 않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가서 사람을 불러오십시오. 폐하의 뜻이라 말하고 여제를 불러오라고 하십시오.”

“충고하건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잘못하면 불이의 고충을 없애지도 못하고 자네만 중독될 수도 있음이야.”

위지불이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래, 여제는 쥐도 새도 모르게 독을 썼다. 셋째 오라버니까지 중독된다면 그건 정말 큰일이었다. 하지만 자신은 달랐다. 이미 중독은 되었지만 남제화의 곁에 있으면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게다가 위지불이는 계속 그의 곁에 머물고 싶었다. 솔직히 말해서 몸속의 고충을 없앨 방법이 있어도 그녀는 없애고 싶지 않았다. 설령 평생 남장을 해야 한다고 하더라도… 그녀는 남제화를 떠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결심을 내린 뒤, 입을 열었다.

“셋째 형님, 여제를 만나서는 안 돼요. 폐하의 말이 맞아요. 만일 형님도 독에 당하면 형수님은 어떻게 해요? 우리 어린 조카는요? 형님은 여제를 본 적이 없어서 여제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모르잖아요. 여제는 상대가 눈치채기도 전에 고충을 심어요.

셋째 형님, 저는 폐하 곁에만 있으면 별일 없을 거예요. 지금처럼 이렇게 지내면 좋잖아요. 궁에서 지내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형님을 보러 갈게요. 형님도 시간이 되면 궁으로 절 보러 오세요.”

“셋째 형이 어떻게 너를 궁에 두고 안심할 수 있겠느냐? 넌 어쨌든 위지 가문의 사람이다. 십여 년의 원한이 버린다고 쉽게 버려지는 것이더냐?”

“위지경용.”

그들을 바라보던 남제화의 눈빛이 명찰明察로 번뜩였다.

“자네는 도대체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 건가?”

“그래요. 셋째 형님, 도대체 뭘 걱정하는 거예요? 폐하께서 군주이시고, 천자의 말씀은 천금과도 같아요. 폐하께서 괜찮다고 하시면 괜찮은 거예요.”

“불이, 넌 아직 어려서 모르는 게 있어.”

“셋째 형님, 전 예전의 열넷째 아우가 아니에요. 이제는 사리 분별을 할 줄 알아요.”

“위지경용, 짐이 어떻게 말해야 믿겠나? 불이는 짐의 곁에 있으면 아무 일도 없을 거네.”

“전 폐하를 믿지 않습니다.”

“전 폐하를 믿어요.”

“불이!”

“셋째 형님.”

위지불이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사실… 형님께 말씀드리지 않은 게 있어요. 부모님은 어릴 적부터 은혜를 입으면 갚아야 한다고 가르치셨죠. 폐하께서는 저의 원수가 아니라 은인이세요. 셋째 형님은 모르시겠지만… 만약 폐하가 절 지켜 주지 않았더라면 전 지금 이 세상에 없었을 거예요. 제가 독을 먹고 생사의 갈림길에 놓였을 때도 폐하께서 절…….”

위지경용이 대뜸 반문했다.

“도대체 왜 독을 먹었느냐? 황제가 너를 몰아붙인 것이냐?”

“아니에요. 폐하를 독살하려고 하다가 제가 스스로 먹은 거예요. 그리고 또 한 번은 제 암기인 배꽃 침에 찔렸어요. 침에는 독이 묻어 있었는데, 그때도 폐하께서 구해 주셨어요. 그리고 제가 폐하를 따라 산속 절에 올라갔을 때도 발바닥이 찢어져서 폐하께서 업고 내려오셨어요. 그리고 또…….”

위지경용은 들으면 들을수록 안색이 나빠졌다.

“그만해라.”

칼을 쥔 그의 손이 덜덜 떨려왔다.

“폐하, 이게 바로 소인이 이해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폐하께서 왜 이렇게 불이에게 잘해 주셨는지요. 이 녀석이 위지 가문의 사람인 것을 알면서도 잘해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남제화는 조용히 불이를 바라보았다. 불이는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셋째 형님, 칼을 내려놓아요.”

“말씀해 보십시오. 폐하, 불이에게 왜 잘해 주셨습니까?”

남제화는 머뭇거렸다.

“짐은…….”

“폐하!”

위지불이가 다급하게 끼어들었다.

“제가 설명할게요.”

그녀는 위지경용 곁으로 다가갔다.

“셋째 형님, 칼을 내려놓아요. 제가 알려 드릴게요. 폐하께서 저한테 왜 이렇게 잘 대해 주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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