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09화
남원 사람들은 영사를 신처럼 모셨다. 심지어 영사의 배를 불리기 위해 자신의 몸을 내놓는 독실한 교도도 있었다. 하지만 영사는 부처님의 세례를 받은 뱀이라 극악무도한 죄를 저지른 사람만 먹는다고 알려져 있었다.
구경꾼은 점점 더 많이 몰려들었지만, 영사가 나아가는 속도에 영향을 주진 않았다. 영사는 아주 빠르게 미끄러져 나가다 황궁 앞에 도착했다. 위지경용은 영사가 황궁 안으로 들어가려는 모습에 안색이 급변했다. 함께 따라온 채자리 형제들도 의아하긴 마찬가지였다.
“영사가 왜 열넷째를 궁에 데려가는 거지?”
“안 돼, 열넷째를 데려와야 해.”
위지경용은 황급히 궁문으로 향했지만, 형제들이 그를 말렸다.
“경용 형님, 못 가요. 저긴 황궁이라고요. 어찌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겠어요.”
“하지만 우리 열넷째가 안에 있잖느냐.”
“걱정하지 마세요. 별일 없을 거예요. 우린 열넷째가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려요.”
영사가 궁 안으로 들어가자 구경꾼들은 하나둘 흩어졌다. 위지경용 부부와 채자리의 몇몇 형제들만 위지불이를 기다릴 뿐이었다.
마침 소식을 전해 들은 남제화는 대전 밖으로 달려 나왔다. 그는 저 멀리 영사의 꼬리에 말려 있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먼 거리였지만, 그가 위지불이라는 건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날 고여아의 제안에 그는 단번에 영사를 떠올렸다. 아직 재목일齋沐日이 오지 않아 영사는 줄곧 궁에 있었다. 위지불이를 겁먹게 했던 그날 밤, 영사는 그녀의 냄새를 맡지 않았던가. 영사를 보내 위지불이를 찾는 것이 그로서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물론 그 또한 위지불이가 뱀을 무서워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방법 말곤 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는 위지불이가 다른 이에게 붙잡혀 자신을 대적하는 수단이 되게 할 수는 없었다.
위지불이가 돌아오자 남제화는 속으로 무척이나 기뻤다. 하지만 계속 담담한 표정을 유지했다. 그는 강암룡을 바라보며 턱을 슬쩍 올렸다 내렸다. 강암룡은 위지불이를 눕힐 두꺼운 융단을 가져오라고 시켰다.
소식을 들은 세 공주도 다들 구경을 나왔다. 위지불이가 돌아왔다는 말에 기쁨을 감추지 못한 아운소는 치맛단을 들고 신이 나서 뛰어왔다. 나사는 여느 때처럼 침착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시녀 향미香彌와 함께 걸어왔다.
고여아는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자신이 사냥개 얘기를 꺼내자마자 황제가 영사를 보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게다가 이렇게 빨리 찾아오다니! 하지만 또 나름대로 황제가 그녀의 말을 새겨들었다는 점에서 조금 뿌듯하기도 했다.
영사가 가까이 다가오자 다들 합장을 하며 예를 갖췄다. 남제화만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그 자리를 지켰다. 그가 손을 들자 영사는 고개를 숙였다. 남제화가 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고생했다.”
영사가 머리를 흔들거리며 말려 있던 꼬리를 풀려고 하자 남제화가 소리쳤다.
“천천히 내려놓거라.”
영사는 다시 꼬리에 힘을 주며 위지불이를 휘감은 뒤, 꼬리부터 바닥에 내려놓은 뒤에야 위지불이를 풀어 주었다.
위지불이는 바닥에 닿자마자 정신을 차렸다. 눈을 떠보니 두꺼운 융단에 엎드려 있었다. 주위엔 사람들로 가득했고… 또 그녀의 옆에선 커다란 뱀의 꼬리가 흔들리고 있었다.
잠긴 목소리로 비명을 내지른 그녀는 당황해서 허둥댔다. 그러다 원숭이처럼 잽싸게 남제화의 등 뒤로 달려가 그의 옷자락을 꽉 붙잡았다.
“폐하, 살려 주세요.”
비록 서로의 마음에 벽이 생기긴 했지만 위지불이는 여전히 남제화를 찾았다.
남제화는 심장이 급격히 수축하는 기분에 늘어뜨린 두 손을 꽉 움켜쥐었다. 당장이라도 겁에 질린 위지불이를 안아 주고 싶었지만, 저를 지켜보고 있는 수많은 눈이 있어 차마 움직이지 못했다. 그가 영사를 향해 팔을 휘저었다.
“물러가라.”
영사는 고개를 흔들거리며 다시 미끄러져 돌아갔다. 벌벌 떠는 위지불이를 바라보던 아운소가 위로를 건넸다.
“불이, 뱀이 갔으니 겁먹지 말아요.”
나사가 다가왔다.
“폐하, 불이 공자가 매우 놀란 것 같으니 어서 좀 쉬게 해주시지요.”
강암룡이 곧장 시종을 불렀다.
“불이 공자를 부축하거라.”
시종들이 움직이자 남제화가 매서운 눈초리를 보냈다. 그가 위지불이의 손을 살짝 떼며 물었다.
“걸을 수 있겠느냐?”
머릿속이 새하얘진 위지불이는 남제화 뒤에 숨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더 이상 영사가 보이지 않자 그제야 위지불이가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뱀이 완전히 사라진 걸 확인한 위지불이는 온몸에 힘이 다 빠진 사람처럼 그대로 고꾸라졌다. 남제화가 재빨리 그녀를 끌어올리며 소리쳤다.
“불이!”
위지불이는 꼭 죽었다 살아난 사람처럼 연신 심호흡을 내쉬었다. 한참 뒤에야 천천히 숨을 고른 그녀는 고개를 들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폐하.”
“그래.”
남제화가 허리를 숙여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다.
“돌아왔으니 되었다.”
그가 그녀를 부축해 일으켰다.
“걸어갈 수 있겠느냐?”
위지불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바닥을 짚고 천천히 일어났다. 남제화는 그의 팔을 붙잡고 몸을 돌려 계단을 올라갔다.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은 황제와 위지불이가 멀어지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봤다.
어떤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꼭 황제와 위지불이가 한 나라, 다른 이들은 다른 나라인 것처럼 무형의 무언가가 그들을 분리하는 것 같았다. 다른 이들이 뭐라 하든 황제와 위지불이는 서로를 붙잡은 채 사라졌다.
아운소는 조금 실망했다. 그간 매일 위지불이와 함께 있으면서 제법 두터운 우정을 쌓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녀의 걱정 어린 말이 위지불이의 귀에 전혀 들리지 않을 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위지불이는 그저 황제만 바라볼 뿐이었다.
나사는 황제와 위지불이가 대전 입구로 사라질 때까지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시선을 거둔 그녀는 깊은 고민에 빠진 듯한 모습이었다. 고여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속이 정말 말이 아니었다. 황제와 위지불이의 관계는 그녀가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가까워서 조금… 질투가 날 정도였다.
한참을 걷다 보니 위지불이의 머리도 조금씩 맑아졌다. 그녀는 자신의 팔을 붙잡은 남제화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그녀가 도망가기라도 할 것처럼 그녀를 꽉 붙잡고 있었다.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가자 꽤 아팠다.
“폐하.”
그녀가 조용히 그를 불렀다.
“팔이 아파요.”
남제화는 무슨 생각인지 멍하니 앞만 바라보았다. 그녀가 한 말도 듣지 못하는 듯했다. 그는 위지불이가 멈춰 서자 그제야 그녀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냐?”
그가 물었다. 위지불이가 불만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폐하, 손 놔주세요.”
남제화의 반응은 아주 느렸다. 그는 그제야 자신이 위지불이의 팔을 꽉 움켜쥐고 있다는 걸 깨닫고 서둘러 손을 놓았다. 위지불이는 소매를 걷어 붉게 남은 자국을 확인하더니 남제화를 노려보며 말했다.
“폐하, 제가 말도 없이 떠났다고 벌을 내리시는 거예요?”
남제화도 얼굴을 굳혔다.
“짐의 벌이 이렇게 가벼울 리가.”
방금까진 분위기가 꽤 괜찮았는데, 두 사람은 순식간에 서로를 공격했다. 위지불이도 복도에 서서 그와 입씨름을 벌였다.
“폐하가 뭔데 절 벌해요? 폐하가 뭔데 절 다시 붙잡아 왔어요?”
남제화가 날 선 목소리로 받아쳤다.
“떠난다 한들 떳떳하게 떠나야지! 몰래 도망치는 건 무슨 경우냐?”
“전 떳떳하게 나갔어요. 그저 작별 인사를 하지 않은 것뿐이지.”
위지불이가 고개를 꼿꼿이 세운 채 말했다.
“폐하께서 그날 저한테 떠나라고 하셨잖아요. 저도 그렇게 눈치 없는 사람은 아니거든요. 폐하를 불쾌하게 했으니 당연히 떠나야죠.”
“이렇게 비쩍 말라서 그런지 눈치가 손톱만큼도 없구나.”
남제화가 코웃음을 쳤다.
“네가 짐의 말을 그렇게 잘 듣는다면 애당초 왜 짐을 불쾌하게 하는 것이냐?”
“폐하는 제대로 말씀도 안 해 주면서 변덕까지 부리잖아요. 군주를 모시는 건 호랑이를 옆에 두는 거랑 같다더니… 머리도 나쁘고 눈치도 없는 저는 출궁하는 게 낫겠어요.”
남제화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대체 언제까지 이리 소란을 피울 것이냐?”
위지불이는 그저 코웃음만 쳤다.
“폐하, 정말 웃기시네요. 전 그저 사실을 말한 것인데, 소란이라니요? 전 동월에서 온 자객이지만, 폐하의 은혜 덕분에 궁에서 호의호식하며 지낼 수 있었죠. 그건 저도 정말 감사하게 생각해요. 하지만 궁은 제가 오래 머물 수 있는 곳은 아니잖아요. 이미 궁 밖에 거처를 마련해 두었으니 부디 제 출궁을 허락해 주세요.”
남제화가 어두워진 낯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짐이 말하지 않았느냐. 짐 곁에 있어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고.”
“전 운명을 받아들일 거예요. 어차피 세상에 태어난 이상 죽음을 피할 수는 없잖아요. 제 목숨이 어떻게 되든 폐하랑은 상관없는 일이에요.”
남제화는 이번엔 정말 화가 났다. 그는 온기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 목숨이 짐과는 상관없다? 위지불이, 네가 궁에 자객으로 잠입했을 때, 짐이 널 살려 주었지. 그때부터 네 목숨은 짐의 것이다. 예전에도 짐이 널 죽이지 않았듯, 지금도 널 죽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짐 옆에서 살아 있거라.”
“폐하, 이건 너무 강압적이에요.”
“네가 사리 분별을 못하는 것이다.”
“폐하, 절 억지로 궁에 붙잡아 두시려는 거예요?”
“그래, 그게 뭐 어떻다고?”
“저한테 꺼지라고 하실 땐 언제고… 지금은 강제로 붙잡아 두시다니요. 폐하 스스로 뺨을 때리는 짓 아닌가요?”
“짐은……! 무엄하다!”
위지불이는 고개를 치켜든 채 힘껏 콧방귀를 꼈다. 꼭 성질을 부리는 아이 같았다. 그 얼굴을 보니 까닭 없이 화가 가라앉았다. 그가 사납던 목소리를 누그러뜨리며 말했다.
“오늘은 많이 놀랐을 테니 우선 돌아가 쉬거라. 마음을 진정할 수 있는 탕을 내어 오라고 분부하마.”
그가 이 말을 꺼내자 위지불이는 또다시 화가 치밀었다. 그녀는 남제화에게 삿대질을 하며 말했다.
“폐하, 저번에 약속하셨잖아요, 다시는 뱀 때문에 놀라는 일 없을 거라고요. 한데, 한데 폐하가……!”
그녀는 손가락을 부들부들 떨며 억울하고 속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커다란 뱀을 보내 절 붙잡아 오시다니…….”
어떻게든 눈물을 참아 보려고 했건만. 결국엔 두 뺨을 타고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위지불이는 소매로 얼굴을 쓱쓱 닦은 뒤에 코를 훌쩍거렸다.
“…….”
남제화는 할 말이 없어 한숨만 내쉬었다. 위지불이 말처럼 제 뺨을 때리는 짓이었다. 하지만 어찌하겠는가. 위지불이의 안위와 비교하면 그의 뺨은… 없어도 그만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