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왕비초장성 (801)화 (800/1,192)

제801화

“지금 어떻게 가려고?”

남제화가 말했다.

“죽으려고?”

위지불이는 분개하며 말했다.

“놀라 죽는 것보다 차라리 독살당하는 게 나아요!”

남제화는 다독거리듯 그녀의 손을 토닥였다.

“짐이 너에게 약속하마. 다시는 뱀이 네 방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위지불이가 코웃음을 쳤다.

“폐하는 황제이지 신선이 아니잖아요. 어찌 파충류까지 마음대로 할 수 있겠어요?”

“짐은 사람을 시켜서 황궁 안에 있는 뱀을 완전히 쫓아낼 수 있지. 또 강암룡에게 네 거처 안에 뱀을 피하는 부적을 붙이라고 명하마. 약속하마. 다시는 궁에서 뱀을 볼 수 없을 것이다.”

“뱀을 피하는 부적이 정말 효과있어요?”

“당연하지. 강암룡은 뱀을 잘 부리니까 당연히 쫓을 수도 있다. 그가 쓴 주문은 정말 영험하다.”

“지금 당장 붙이라고 해요.”

“흐흠… 지금은 너무 늦은 시간이니, 내일 하자꾸나. 내일 아침 일찍 부적을 붙이라고 하마.”

위지불이는 남제화 쪽을 보고 누워 잠을 청하는 듯했다. 하지만 끝끝내 그의 팔을 놓지 않았다.

남제화는 시선을 내려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상태였다. 아까보다 안색은 나아졌지만 여전히 연약한 모습이었다. 그는 또다시 심장이 아려와 손으로 위지불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불이, 어쩌면 난 정말…….”

그는 뒷말을 말하지 못했다. 팔을 꽉 잡았던 녀석의 손이 서서히 풀렸다. 밤은 고요했고, 침대 머리맡의 촛불은 계속 흔들거리며 휘장에 갖가지 일그러진 그림자가 새겼다. 그녀의 가볍고 고른 숨소리를 들으니 그제서야 깊은 잠에 빠진 듯했다.

오늘 그가 몇 번이고 천당과 지옥을 오갔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아운소를 계속 찾은 건 위지불이가 황후 자리에 아운소가 오르길 원했기 때문이다. 며칠 동안 지내보니 아운소와 조금은 정이 쌓인 것 같기도 했다.

그는 정상적인 남자였고, 좋아하는 대상은 당연히 여자였다. 이건 수십 년부터 확실했다. 그런데 그게 지금은 조금 모호해졌다. 이 모호한 마음이 그를 괴롭게 하기 전에 어떤 결단을 내려야 했다.

아운소는 절색의 미인은 아니지만, 꽤 예쁘게 생긴 편이었다. 그녀가 내뿜는 은은한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히고 예쁜 얼굴이 코앞에 놓여 있었다. 또한 충분히 입맞춤을 할 수 있었고 그녀의 옷을 벗기고 제가 탐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못했다. 왜 심장의 떨림이… 하나도 없었을까?

이런 깨달음은 그를 화나게 하고 초조하게 했다. 그는 자기가 남색가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예전에는 분명 아니었고 지금도 아니니까… 미래에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위지불이를 불러와 다시 한번 시도해 보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 위지불이는 그의 곁에 누워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의 팔을 붙잡고 있던 위지불이의 손은 힘이 풀리더니 천천히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는 그녀의 손을 다시 베개에 올려놓고 꼭 쥐더니 천천히 눈을 감았다.

* * *

그날 밤, 잠을 이룰 수 없는 사람은 한 명이 아니었다. 아운소도 잠이 오지 않았다. 눈만 감으면 천천히 다가오던 남제화의 모습이 떠올랐다. 분명 그는 그녀를 희롱하려 했다. 그런데 왜 그렇게 태도가 기이했을까? 마치 꼭두각시 같았다.

그는 그때 조금 다가왔다가 멈추기를 반복했다. 게다가 그렇게 가까이 다가왔는데, 결국 포기하다니.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란 말인가?

아운소는 절대로 남제화와 무슨 진전이 있기를 기대했던 건 아니었다. 물론 남제화는 용모도 빼어나고 당당한 기개를 지녔다. 게다가 황제이기도 했다. 장래에 그의 비가 될 그녀는 마땅히 그 상황을 받아들여야 했지만… 그럼에도 그를 사랑하지 않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녀는 남제화에게 아직 남녀 간의 감정을 품지 않았다. 그때 그녀는 조금 긴장은 했었지만 어떤 설렘을 느낀 것은 아니었다. 그건 남제화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끊임없이 저를 탐색했고 또 망설였다. 그리고 끝내 자리를 떠날 땐 그가 많이 당황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황제로서 느끼는 당혹스러움이 아니었다.

* * *

남제화는 꿈을 꾸었다. 꿈에서 그는 한 남자에게 깔려 있었다. 그 사람은 몸이 매우 유연하고 용모도 수려했다. 그리고 힘도 좋아서 숨을 쉴 수 없을 지경이었다.

갑자기 그들은 아래로 추락했다. 아래는 끝없는 심연처럼 어두컴컴했다. 그는 너무 놀라 식은땀을 흘렸고 그 남자를 떨쳐 버리려 했다. 하지만 그 남자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가만히 있어.”

그의 목소리는 거칠고 다급했다. 흐릿했던 상대방의 얼굴이 갑자기 또렷해졌다. 바로 위지불이였다.

잠에서 깨어난 남제화는 아직도 자신이 위지불이의 손을 잡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얼른 그 손을 놓았다.

옆에서 자던 위지불이는 가볍게 소리를 내며 몸을 뒤척이는가 싶더니 한쪽 발을 들어 그의 다리 위에 올렸다. 녀석의 다리가 올라오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남제화는 벌떡 일어나 앉아 베개를 넘어온 다리를 잡아 밀쳤다. 그리고는 휘장을 들추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덩달아 잠에서 깨어난 위지불이는 어리둥절해서 눈을 반쯤 감은 채 소리쳤다.

“폐하?”

남제화는 녀석의 부름에도 멈추지 않았고, 오히려 더 빨리 걸어갔다. 그가 황급히 침전을 나서자 강암룡이 얼른 마중 나왔다.

“폐하.”

남제화 가슴속에 억눌렀던 불길이 드디어 폭발할 곳을 찾았다. 그는 강암룡의 멱살을 잡고 서재로 질질 끌고 갔다. 강암룡은 자신이 무엇 때문에 미움을 샀는지 알 수 없어서 깜짝 놀랐다. 이제껏 남제화는 대놓고 성질을 부린 적이 없었다. 이른 아침부터 이게 무슨 일이지? 왜 일어나자마자 화를 내는 거지? 그는 두 번이나 연거푸 폐하를 불렀다.

“폐하, 폐하?”

남제화는 그의 부름에도 손에 힘을 주었다. 목이 졸린 강암룡은 눈이 뒤집어질 정도였다. 내전 총관리인 그가 황제에게 멱살을 잡히다니! 창피한 건 둘째 치고, 황제의 노여움을 알 수 없는 것이 무척 곤혹스러웠다. 서재에 들어서자 남제화가 그를 호되게 꾸짖었다.

“도대체 무슨 수작인 것이냐? 왜 영사를 불러왔지?”

강암룡은 목을 감싸고 두어 번 숨을 몰아쉬었다.

“…폐하께서 뱀을 부르라고 명하셨잖습니까?”

“짐은 영사를 부르라고 하진 않았다.”

“폐하, 밤이 그렇게 늦었는데 제가 뱀을 잡으러 어디로 가겠습니까?”

강암룡이 투덜거렸다.

“마침 영사가 궁에 들어왔길래… 소인도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꽉 쥔 손을 탁자 위에 올린 남제화는 심호흡을 통해 마음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내가 뱀을 부르라고 한 건 그 누구도 알아서 안 된다. 특히 위지불이가 알지 못하게 해야 한다. 알겠느냐?”

강암룡은 고개를 숙여 응수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남제화는 말했다.

“재목일齋沐日 전까지 모든 영사들을 가두어라. 절대로 위지불이가 뱀과 만나선 안 된다. 가서 명을 전하거라. 누구도 영사가 궁 안에 있다는 사실을 위지불이에게 알려선 안 된다. 만약 입을 조심하지 않는다면 짐이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소인이 반드시 입을 굳게 닫으라 명하겠습니다.”

강암룡은 잠시 머뭇거렸다.

“폐하, 그럼 세 공주께는…….”

“그들에게도 알리지 말아라. 괜히 일을 망칠 수 있다.”

“네, 알겠습니다.”

* * *

위지불이는 몽롱한 상태로 몸을 뒤척이다가 다시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깨어났을 때, 침대는 어둠 속에 잠겨 있었고 그 속엔 그녀뿐이었다. 베개를 여전히 껴안고 있었지만 가운데 놓여 있던 베개는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멍한 얼굴로 사방을 살폈다.

어젯밤 일이 떠오르자 그녀의 안색은 다시 하얗게 질렸다. 방 안이 너무 조용해서 더 불안했던 그녀는 조용히 휘장을 걷으며 침대에서 내려가려 했다. 순간 발바닥에 부드러운 게 닿자 그녀는 너무 놀라 소리를 지르며 침대로 올라갔다.

고개를 숙여 바닥을 살피자 그건 베개였다. 아마도 가운데 있던 베개가 침대 밑으로 떨어진 것 같았다. 그녀는 가슴을 누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궁녀가 안에서 인기척이 나자 물었다.

“불이 공자, 깨셨습니까?”

사람 소리가 나자 위지불이는 더 이상 겁나지 않았다. 마음을 다잡은 그녀가 아무렇지도 않은 척 말했다.

“일어났으니까 휘장을 걷어 주세요.”

궁녀는 조용히 응수한 뒤, 휘장을 걷어 기둥에 있는 채봉 고리에 걸었다. 방 안에 햇볕이 쨍쨍하게 내리쬐는 덕에 주변은 곧장 환해졌다. 궁녀가 위지불이를 힐끔 보더니 말했다.

“불이 공자, 어디 아파요? 안색이 좀 안 좋네요.”

위지불이는 얼굴을 쓸어내리며 생각했다. 어젯밤에 놀라 죽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그녀가 세수를 하고 방으로 돌아가려는데 짙은 꽃향기가 풍겨 왔다. 이제 보니 방 안에 있는 향로에서 푸른 연기가 계속 피어오르고 있었다.

궁전 안에서 매일 훈향을 맡을 수 있었지만, 지금까지 이렇게 진한 훈향은 맡아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뭔가 조금 이상하다고 느꼈다. 식사할 때, 그녀는 궁녀에게 물었다.

“내 방에서 훈향하는 건 무슨 향인가요? 왜 저렇게 진해요?”

궁녀가 대답했다.

“폐하께서 명하신 겁니다. 금계金桂를 좀 진하게 훈향하라 명하셨습니다.”

위지불이는 사방을 둘러봤지만, 남제화는 보이지 않았다.

“폐하는요?”

“폐하께서는 아운소 공주에게 가셨을 겁니다. 요즘 폐하께서는 아운소 공주와 함께 아침을 드십니다.”

위지불이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마침 밖에서 돌아온 강암룡이 그녀를 살폈다.

“불이 공자, 안색이 안 좋군. 어젯밤에 잠을 잘 못 잤는가?”

위지불이는 눈을 내리깔고 담담하게 말했다.

“어젯밤에 큰 뱀 한 마리가 내 처소에 들어왔어요. 폐하께서 제때 오지 않았더라면 뱀을 죽여 버렸을 거예요.”

강암룡이 다급하게 말했다.

“죽이면 안 되네. 그건 영사거든. 영사를 죽이면 부처님께 죄를 짓는 것이야.”

위지불이가 눈을 치켜떴다.

“그게 영사인지 어떻게 알았어요?”

“…그게, 폐하께서 아침에 내게 알려 주셨다네.”

“궁에서 뱀을 부릴 줄 아는 사람이 또 있나요? 누군가 내 방에 뱀을 보낸 것 같아요.”

“에이… 설마, 누가 불이 공자를 골탕 먹이겠나?”

“골탕 먹이는 수준이 아니에요.”

위지불이가 말했다.

“분명히 나와 원수지간일 거예요. 누구인지 알게 되면 그 가죽을 벗겨 호로사를 만들고 그걸로 매일 연주하며 놀 거라고요.”

강암룡은 멋쩍게 웃었다.

“가볍게 용서할 수는 없겠지만, 가죽을 벗기는 건 조금…….”

위지불이는 그를 힐끔 쳐다보았다.

“총관이 한 짓도 아닌데 뭘 그렇게 참견해요?”

강암룡은 손사래를 쳤다.

“아무렴, 나는 아니고말고. 난 어젯밤에 일찍 자서 아무것도 모르네.”

위지불이는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강암룡은 황급히 밖으로 향했다.

“갑자기 배가 아프네. 난 이만 측간 좀 가야겠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