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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791)화 (790/1,192)

제791화

위지불이는 시위를 밀치고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다른 시위들이 앞을 가로막자 위지불이는 곧장 검을 뽑았다.

“감히 내 앞을 막는 자가 있거든 목을 벨 것이다!”

그녀는 단도를 들고 시위를 바라보았다. 두 궁녀는 겁에 질린 모습으로 그녀 뒤를 쫓아왔다. 시위들은 위지불이를 함부로 할 수 없었다. 위지불이의 명성이 워낙 자자했던 탓이었다. 황제가 위지불이를 그렇게 아낀다는데 어찌하겠는가.

그가 지하 감옥에 한 번 다녀온 일로 황제는 궁녀의 혀를 잘랐다. 만약 자신들이 위지불이의 털끝 하나라도 건드리면 더 참혹한 형벌을 받을 것이다.

세 사람은 천천히 나무 계단을 올랐다. 옥엽은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윽고 그녀의 비명이 들렸다.

“옥향아!!”

위지불이도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 크지 않은 방 안에 두 궁녀가 의자에 포박되어 있었다. 고개를 축 늘어뜨린 게 혼절한 것 같았다. 입안에서는 새빨간 피가 흘러나와 옷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방에는 사내 두 명이 더 있었다. 한쪽 어깨를 드러낸 이상한 옷을 입은 두 사내는 각각 칼과 쟁반을 들고 있었다. 청백색 쟁반 안에는 새빨간 덩어리가 담겨 있었다. 위지불이는 그게 혀라는 걸 알아차렸다. 이미 늦은 것이다. 두 사내가 불쾌한 기색으로 물었다.

“뭐 하는 짓이냐, 죄당에 난입하다니!”

위지불이가 물었다.

“어째서 저들의 혀를 자른 것이냐?”

“이자들이 폐하의 귀인을 놀라게 했다. 폐하께서 지시하신 일이지.”

피로 물든 작은 칼을 내려놓은 사내는 곧이어 굵은 바늘을 집어 들었다. 옥엽은 위지불이의 팔을 꽉 붙잡았다.

“공자, 제 여동생 좀 구해 주시어요. 죄인이 찍히면 정말 끝입니다. 죽는 것보다 더 참혹한 삶을 살아야 해요!”

죄인이 무엇인진 잘 몰랐지만 죽는 것보다 참혹하다는 말에 곧장 남자를 가로막았다.

“멈추거라. 혀도 이미 잘랐는데, 무얼 더 하려고?”

“저들은 죄인이다. 죄인을 찍어서 궁을 쫓아내야 하지.”

“안 돼요, 공자.”

울음을 터뜨린 옥엽이 무릎을 꿇었다.

“공자 제발 부탁입니다. 제 동생 좀 구해 주시어요.”

위지불이가 사내에게 말했다.

“우선 멈추거라. 내가 직접 폐하께 청을 드리겠다. 내가 돌아오기 전까지 절대 이들에게 손을 대지 말거라.”

공자라는 소리에 사내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공자라면 혹……?”

“난 위지불이다.”

“불이 공자셨군요.”

두 사내가 허리를 살짝 굽히며 예를 갖췄다.

“내가 황상과 어떤 사이인지는 다들 알겠지.”

위지불이가 스스럼없이 말했다.

“폐하를 찾아갈 테니 경거망동하지 말고 기다리게. 안 그럼 폐하께 자네들의 혀도 자르라고 할 테니.”

위지불이가 막 걸음을 돌리자 문 앞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의 혀를 자르겠단 말이냐?”

위지불이는 남제화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곧장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폐하, 마침 잘 오셨어요. 언제 다녀오나 했는데 말이에요.”

남제화는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문 앞에 서서 말했다.

“안에는 냄새가 심하니 할 말이 있거든 나와서 얘기하거라.”

실제로 방 안은 피비린내가 심해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위지불이는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아직 마음이 놓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옥엽에게 듣기론 두꺼운 바늘로 얼굴에 글씨를 적은 다음 색을 입히는 것이 죄인이라고 했다. 동월에도 묵형墨刑이라고 비슷한 형벌이 있었는데, 이 형벌을 받으면 평생 치욕스러운 삶을 살아야 했다. 혀까지 잘렸는데 얼굴에 글씨까지 남는다면 얼마나 고통스럽겠는가!

“폐하께서 들어오세요.”

위지불이가 꿈쩍도 하지 않자 남제화가 문턱을 넘어 안으로 들어왔다. 그가 매서운 눈으로 노려보자 방 안에 있던 이들은 곧장 밖으로 나갔다. 감히 황제의 말을 엿들을 이는 아무도 없었다. 위지불이도 남제화의 심기가 불편하다는 것을 눈치챘지만 꿋꿋이 말했다.

“폐하께서 이들의 혀를 자르라고 하신 거예요?”

남제화가 날이 선 목소리로 대꾸했다.

“저들은 잘못을 저질렀다. 한데도 처벌을 받지 말아야 한단 말이냐?”

위지불이의 기억 속 남제화의 모습은 늘 어진 황제였다. 아랫사람들에 항상 상냥하게 대했고 혼을 낸 적도 없었다. 특히 위지불이에겐 더더욱 잘 대해 주었고 그녀가 원하는 것이면 뭐든 다 들어주었다. 그런 그가 이렇게 잔인한 명령을 내리다니.

함께 지내 온 이 사내가 마치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위지불이의 마음은 한없이 밑으로 가라앉았다. 이런 기분에 말이 좋게 나올 리도 없었다.

“저들이 저한테 태황이 여제라는 사실을 알려 줘서요?”

“너를 중독되게 했으니까.”

“…….”

“내려가자. 불이, 이건 네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

“폐하.”

위지불이가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남제화의 큰 키 때문에 위지불이가 고개를 높이 쳐들어야 겨우 그의 눈을 볼 수 있었다.

“폐하는 항상 인자하셨잖아요. 제가 폐하를 여러 번 암살하려 했어도 제겐 한 번도 벌을 주시지 않으셨죠. 저들의 혀를 자른 것만으로도 이미 너무 잔인한 형벌이에요. 제발 죄인까지 새기진 말아 주세요. 네?”

남제화가 쓴웃음을 지었다.

“위지 가문은 대체 자객 훈련을 어찌 시키는지 모르겠구나. 자객의 마음이 이리 약해서 어찌하겠느냐?”

그간 죽여 버린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해왔지만… 사실 위지불이는 누군가를 죽여 본 적도, 타인에게 심한 상처를 입혀 본 적도 없었다. 끽해야 자질구레한 상처를 입혀 본 게 전부였기에 오늘 같은 상황을 목격한 것만으로 큰 충격이었다.

“폐하, 제가 이렇게 부탁드릴게요. 제발 저들을 용서해 주세요.”

“하지만 저자들 때문에 네가 중독되었다.”

“제가 폐하 곁에 가만히 있으면 괜찮다면서요.”

남제화는 잠시 침묵에 잠겼다. 그의 시선이 쟁반에 담긴 혀를 가볍게 훑었다.

“불이, 만약 네가 중독되지 않았다면 집에 돌아갔을까?”

위지불이가 흠칫 놀랐다. 남제화가 이런 질문을 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중독되지 않았다면 그녀는 집에 돌아갔을까? 그건 알 수 없다. 애당초 확답을 내리지 못했으니까.

그녀가 진지하게 남제화를 바라보았다.

“폐하, 저는 현실적인 사람이라 가설에 답해 본 적 없어요.”

남제화가 웃으며 그녀의 어깨를 툭툭 쳤다.

“얌체 같구나.”

그의 웃음에 위지불이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가 그녀의 부탁을 어느 정도 승낙한 것이기 때문이다.

“가자.”

그가 위지불이의 팔을 잡아끌었다.

“네가 이리 사정하니, 이 일은 여기서 끝내도록 하마.”

“감사합니다, 폐하.”

위지불이는 무릎을 꿇고 절하려 했지만 남제화가 그녀를 붙잡았다.

“고마워할 것 없다. 죄당에 난입했으니 너도 벌을 받아야지.”

“…네?”

위지불이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폐하, 제 혀를 자르실 건 아니시죠?”

“혀는 말을 함부로 했을 때 자르는 것이지. 넌 죄당에 함부로 난입했으니…….”

그의 시선이 위지불이의 다리로 향했다. 안색이 급변한 위지불이는 그의 손을 뿌리치고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남제화는 박장대소를 터뜨리며 뒷짐을 진 채 태연히 계단을 내려갔다.

시위와 궁녀들은 깜짝 놀란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한 사람은 질겁한 얼굴로 달려 나오고 다른 한 사람은 여유롭게 발걸음을 옮겼다. 남제화는 그들 곁을 지나치며 한마디 했다.

“두 죄인에게 죄인罪印을 새기지 말고 궁에서 쫓아내거라.”

옥엽이 곧장 무릎을 꿇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남제화가 고개를 돌려 옥엽을 바라보았다.

“부탁할 사람을 제대로 고르다니, 똑똑하구나. 이번엔 그냥 넘어가지만,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기거든 오늘 일까지 합쳐 벌을 내릴 것이다.”

옥엽이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었다.

“소인이 어찌 감히 그런 짓을 하겠나이까.”

* * *

궁녀들의 혀를 자른 일로 위지불이는 남제화를 다시 보게 되었다. 겉으로 보기엔 뜨뜻미지근한 황제였는데, 성을 내니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제왕들이 그러하듯, 그에게 또한 포악한 면이 있던 것이다. 그녀는 남제화에게 경외심이 생겼고 차마 예전처럼 오만방자하게 행동하지 못했다.

막 남원에 왔을 때, 위지불이는 생사에 그리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공자의 복수만 할 수 있다면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사악한 독에 중독되어 목숨을 잃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죽음이 두려워졌다.

그래서 더더욱 남제화에게 의존했고 그에게 미움을 사고 싶지 않았다. 혹여 그가 자신을 지켜 주지 않을까 봐. 중독된 뒤로 위지불이는 행동을 조심스럽게 했다. 그의 기분을 살피는 것은 물론 남제화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려 노력했다.

남제화는 위지불이의 변화를 금세 눈치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도 요즘 바빴던 탓에 두 사람은 만날 기회도 그리 많지 않았다. 반면 강암룡은 늘 위지불이의 눈앞을 얼쩡거렸다. 위지불이가 중독된 후부터 강암룡의 태도는 완전히 바뀌었다. 그녀를 살뜰하게 챙기기 시작한 것이다. 늘 매섭기만 하던 눈빛엔 한 줄기 연민이 담겨 있었다.

승부욕이 강한 위지불이는 그가 그런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는 게 싫었다. 결국 위지불이가 단도를 뽑아 들며 말했다.

“강 총관, 우리 한 판 겨뤄요.”

강암룡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더는 안 겨룰 걸세. 난 공자에게 이미 졌으니까.”

“…….”

그간 강암룡은 절대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녀가 칼을 뽑자마자 패배를 인정했다. 그런데 그녀는 기쁘기는커녕 오히려 욕을 퍼붓고 싶었다. 대체 이게 뭐 하자는 거야? 날 무시하는 거잖아! 강암룡이 말했다.

“공자, 어서 칼을 거두게. 그러다 다쳐.”

위지불이가 칼로 그를 겨누었다.

“대결할 거예요, 말 거예요?”

“안 한다니까. 어서 칼을 넣으래도. 황상께서 보시면 어찌하려고.”

위지불이가 그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재미없어.”

그녀는 칼집에 다시 칼을 넣고 밖으로 나갔다.

커다란 황궁엔 그녀가 가 보지 못한 곳들이 많았다. 낯선 풍경을 찾아가는 건 요즘 그녀의 유일한 낙이었다. 위지불이는 햇빛을 피해 나무 그늘 밑을 걸어 다녔다. 나뭇잎 사이로 새어 들어온 햇살은 반점을 그리며 그녀의 옷 위에서 춤을 추었다. 햇살이 새긴 반점들을 보는 게 퍽 재미있자 그녀는 속도를 조절하며 즐겁게 산책을 했다.

고개를 들었을 때, 오른편에 커다란 공문拱門이 보였다. 예전엔 꾹 잠겨 있던 곳이 오늘은 무슨 일인지 활짝 열려 있었다. 고개를 빼꼼 내밀어 안을 들여다보니 많은 이들이 분주히 오가며 꽤 떠들썩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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