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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786)화 (785/1,192)

제786화

“꾸물거리지 말고, 덤벼요.”

위지불이는 자신의 위력을 보여 주고 싶은 마음에 조금 조급해졌다. 강암룡은 몰래 이를 악물고 입가를 씰룩거리더니 이내 두 손을 휘저으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위지불이는 곧장 몸을 흔들거리며 한 손은 주먹을 쥐고 다른 한 손은 편 채 반격할 틈을 노렸다.

대결은 아주 빠르게 진행됐다. 위지불이의 발이 강암룡에게 닿자마자 그는 실이 끊어진 연처럼 휙 날아갔다. 위지불이는 기세등등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강암룡의 자세가 몹시 어색해 보였다.

위지불이에게 차인 그는 허공에서 잠시 뒤를 보다, 이내 공중회전을 하며 스스로 몸을 멀찍이 날렸다. 결국 그는 안정적으로 삼 장보다 더 멀리 떨어진 곳에 고꾸라졌다. 위지불이는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그에게 다가갔다.

“왜 도중에 공중회전을 한 거예요?”

강암룡은 잉어가 펄떡거리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오만한 코웃음을 치고는 말없이 자리를 떴다.

왜 도중에 공중회전을 했냐고? 그야 삼 장이 안 되는 곳에 떨어질 것 같았으니까! 세상에 이렇게 우스운 일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황제는 총애하는 사내를 달래 주려 그에게 이따위 어설픈 연극까지 시켰다.

위지불이가 젖 먹던 힘까지 다 써서 걷어찬다고 해도 절대 그를 삼 장 밖으로 밀어내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그가 스스로 삼 장 밖까지 날아가는 수밖에.

방으로 돌아온 위지불이는 의아한 듯 자신의 발을 바라보았다. 방금 이 발로 강암룡을 저 멀리 날려 보내다니. 그녀는 갑작스럽게 발휘된 자신의 폭발적인 힘에 적잖이 놀랐다. 다시 힘을 줬지만 역시 평소와 다를 건 없었다. 사실 그녀의 내력은 아직 그 정도 경지까지 오르지 못했다. 그러니까… 그녀의 내력과는 상관없이 남제화의 가르침이 엄청나다는 뜻이었다.

그녀는 입맛을 다셨다. 남제화를 숭배하는 마음이 그녀도 모르게 또 한 번 커졌다. 조금 이상한 점이 있긴 했지만, 어쨌든 그녀가 이긴 것 아닌가! 과정이 어떻든 결과가 중요한 법.

대전으로 돌아오니 남제화는 손에 손수건을 쥐고 있었다. 위지불이가 돌아오면 땀을 닦아 주려고 준비해 둔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그마한 얼굴이 빨개진 채 눈을 반짝거릴 뿐, 땀이 맺혀 있진 않았다. 그녀는 조용히 수건을 다시 넣어 두고는 웃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이겼겠지?”

“네, 이겼어요.”

위지불이는 허풍을 떨기 시작했다.

“폐하께서 같이 못 가신 게 정말 안타까워요. 지난번에 저는 바닥에 미끄러지면서 밀려났거든요? 근데 이번에 강암룡은 공중을 날더라니까요. 폐하가 알려준 초식은 정말 대단해요. 그렇게 걷어차니까 허공에서 공중회전까지 하지 뭐예요.”

남제화가 흠칫 놀랐다.

“공중회전을 했다고?”

“네. 거의 떨어지기 직전에 갑자기 몸을 틀어서 공중회전을 하더라고요. 저도 그게 정말 궁금해요.”

남제화는 단번에 눈치챘다. 그가 강암룡에게 내린 명 때문이었다. 한 치도 모자라선 안 되고 반드시 삼 장 밖으로 떨어져야 한다는 무시무시한 명령. 아마 삼 장 안으로 떨어질 것 같자 강암룡이 공중회전을 해 더 멀리 떨어졌을 것이다. 남제화가 웃으며 물었다.

“또 대결에 응할 것이냐?”

“그건 강 총관의 얘기를 들어 봐야죠. 또 겨루자고 하면 당연히 맞서 싸울 거예요. 그자가 이기게 놔둘 수는 없어요.”

위지불이는 자신의 손목을 움켜쥐며 잠시 고민에 잠겼다.

“폐하, 강 총관이 또 대결하자고 할까요?”

“그럼.”

남제화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남원의 사내들은 겁이 없다. 분명 다시 널 찾아올 것이다.”

위지불이가 원한다면 이 대결은 끝없이 이뤄질 것이다. 위지불이는 그의 말에 갑자기 무엇인가 생각이라도 난 듯 조용히 물었다.

“폐하, 강 총관도 그…거예요?”

남제화가 물었다.

“어떤 거?”

“우리 동월에서는 궁에 있는 사내들을 공공이라고 부르거든요. 그건 아시죠?”

“그래, 안다. 내관들을 그리 부르지 않느냐.”

“그럼 강 총관도 혹시…….”

남제화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오해했구나. 우리 남원에서는 거세하지 않는다. 강암룡을 비롯한 모든 시종은 다 정상적인 사내들이지.”

“아, 그렇군요.”

위지불이는 그제야 모든 걸 깨달았다. 어쩐지… 동월의 태감 이야기를 꺼내면 버럭 성을 내더라니. 그녀는 문득 궁금증이 생겨 남제화에게 물었다.

“그러다가 궁 안이 혼란스러워질 수도 있는데… 걱정되지 않으세요?”

남제화가 그녀의 머리에 가볍게 꿀밤을 주었다.

“아는 게 아주 많구나. 남원과 동월은 다르다. 동월에는 규율이 너무 많지만, 남원은 개방적인 풍조에 자유를 존중하는 나라지. 만약 시종과 궁녀가 서로 마음이 통했다면 혼인을 맺어도 좋다.”

“시종이 폐하의 비빈을 마음에 들어 하면요?”

“난 비빈이 없다.”

“하지만 나중에 생길 테지요.”

남제화가 담담히 미소를 지었다.

“나중 일을 누가 알겠느냐?”

* * *

그 후로 위지불이는 남제화에게 무술을 배우고 강암룡과 대결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원래도 무술 연습을 좋아했는데 훌륭한 선생을 만나 배우니 하루하루 발전하는 듯하여 더할 나위 없이 기뻤다.

남제화는 위지불이에게 전체적인 도법과 권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 가르침으로 강암룡이 어떤 공격을 하든 그와 몇 수 정도는 겨룰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더는 처음처럼 공격 한 방에 맥없이 쓰러지지 않았다.

물론 여전히 강암룡에게 대부분 패배했지만, 그녀는 절망하지 않았다. 대결을 거듭할수록 강암룡과 맞서 싸우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녀에게는 이 또한 승리나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이제 숨어서 연습하지 않았다. 남제화가 위지불이에게 무술을 가르치는 건 궁 안 사람들 모두가 아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언제 어느 곳에서든 생각날 때마다 남제화에게 자신의 실력을 보여 주었다.

남제화는 어린 도제의 이해력과 성실함이 제법 만족스러웠다. 그 또한 기꺼이 가르쳐 주고 싶었기에 녀석의 어깨를 치거나, 손을 들어 올리거나, 허리를 비틀어 주었다.

“그래, 이렇게.”

그가 이번엔 엉덩이를 한 대 치며 말했다.

“기마 자세를 할 땐 더 힘주어 앉으래도.”

무술을 연마할 때 그녀는 제 성별을 완전히 잊었기에 남제화가 어딜 만지든 아무렇지 않았다. 하지만 무술이 끝난 뒤, 가르침을 곱씹다 보면 그녀는 금세 얼굴이 붉어졌고 저도 모르게 그의 시선을 피했다. 그녀가 이런 반응을 보일 때마다 남제화는 늘 영문을 알지 못했다.

어느 날, 그녀가 남제화에게 물었다.

“폐하, 제게 폐하의 비법을 다 알려 주시면 걱정되지 않으세요? 나중에 제가 폐하를 죽이면 어떡해요?”

남제화가 빙긋 미소를 짓더니 위지불이의 단도를 뽑아 그녀의 손에 직접 쥐어 주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제 목에 칼을 겨눴다.

“한번 해 보거라.”

위지불이는 남제화의 목을 겨누는 서늘한 칼날을 바라보고 있자니 심장이 쿵쿵 뛰었다. 그녀는 조용히 칼을 두 치 정도 떨어뜨렸다. 혹여 그의 목에 상처가 날까 봐 걱정된 탓이었다.

그의 몸에 상처라도 났다간 시위들이 벌떼처럼 달려와 그녀를 조각낼 것이다. 그녀는 고깃덩이가 되고 싶진 않았다. 그 얼마나 흉한 죽음이란 말인가.

남제화는 겁먹은 위지불이의 움직임을 바라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불이, 짐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예전만큼 강하지 않은가 보구나?”

“누가 그래요?”

위지불이가 고집스럽게 말했다.

“아직 무술을 다 못 배웠으니까… 감히 모험하지 않으려는 것뿐이에요.”

“하면 어느 수준까지 배웠는지 어디 한번 볼까?”

“그렇게 보고 싶으시다면야.”

위지불이가 그에게 경고했다.

“그럼 나 진짜 공격해요!”

남제화는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위지불이는 혹여 자신이 힘을 제어하지 못할까 봐 빨리 움직이지도 못했다. 그녀가 슬쩍 손을 내밀자 별안간 손목이 시큰거리기 시작했다. 위지불이의 칼이 밑으로 떨어지자 남제화가 곧장 받아 들었다. 그가 다시 그녀에게 칼을 건넸다.

“다시 해 보거라. 동작이 느리구나.”

위지불이는 이를 악물며 자신의 진짜 실력을 보여 주기로 했다. 손을 잽싸게 휘두르며 그의 목을 공격하던 찰나 진짜 그의 목이 다칠까 봐 순간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이미 손을 멈출 수 없었다. 위기일발의 아찔한 순간, 그녀의 손목이 또다시 시큰거리더니 칼이 아래로 떨어졌다. 남제화는 눈이 휘어질 정도로 웃으며 다시 그녀에게 칼을 돌려 주었다.

“좀 더 빠르게 할 수 있겠느냐?”

위지불이는 어금니를 바드득 갈았다. 갑자기 절망이 밀려온 탓이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수련했는데 어찌 예전과 똑같단 말인가……. 남제화가 웃으며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

“낙담할 것 없다. 천천히 연습하다 보면 언젠간 내 목을 벨 수 있을 것이다.”

위지불이는 칼을 받아든 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남제화가 그녀를 위로했다.

“적어도 지금은 강암룡과 맞서 싸울 수 있게 되지 않았느냐.”

위지불이가 물었다.

“대체 폐하의 실력은 어느 정도인 거죠?”

남제화가 턱을 쓸며 진지하게 고민했다.

“내 실력이 천 냥의 값어치라면 지금 네게 가르쳐준 것은 한 냥 정도 되는 셈이지. 이렇게 얘기하면 이해가 되겠느냐?”

“…….”

그녀는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너무 부끄러웠다. 남제화가 코끼리라면 그녀는 개미였다. 코끼리는 한 번에 개미 떼를 밟아 죽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자그마한 개미 한 마리가 겁도 없이 코끼리를 죽이겠다며 먼 길을 달려오지 않았는가……. 아무래도 그녀의 머리가 잘못된 게 틀림없었다.

설령 그녀가 죽을 때까지 무술을 연마한다고 한들… 남제화의 상대가 되겠는가? 이렇게 평생 남원에서 지내야 하는 건 아니겠지?

그녀는 문득 집이 그리워졌다. 어머니 아버지도 그립고, 번화한 임안성도 그리웠다. 구여재九如齋의 간식도, 어머니가 해 주시던 고기 완자도, 창가 옆의 복숭아나무도…….

고향이 생각나니 금세 눈물이 고였다. 탁자에 턱을 괴고 앉아 있던 그녀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렇게 시간은 하루하루 흘렀고, 위지불이는 여전히 매일 무술 연습에 힘썼다. 하지만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했던 예전의 모습과 달리, 그녀는 말없이 석양을 가만히 보고 있는 시간이 늘었다.

어느 날, 그녀가 문득 남제화에게 물었다.

“동월은 남원의 어느 쪽에 있어요?”

남제화가 말했다.

“당연히 동쪽이지.”

그녀는 ‘아’하고 짧게 대꾸할 뿐,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남제화도 그녀가 집을 그리워한다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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