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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784)화 (783/1,192)

제784화

“사실 저도 공자가 떠나던 날, 그때 한 번 본 거예요. 하지만 그 한 번이 잊혀지지 않을 만큼 우리 황후 마마께선 정말 아름다우세요.”

위지불이는 말을 하다 말고 팔로 몸을 지탱하며 남제화를 빤히 바라보았다.

“잠깐, 폐하가 마마랑 조금 닮은 것 같아요.”

남제화는 몸을 틀더니 웃으며 물었다.

“그 말인즉슨, 내가 제법 잘생겼단 말이로구나?”

위지불이는 잠시 고민하다 대꾸했다.

“그렇다고 볼 순 없죠. 여인이 우리 마마를 닮았다면 예쁜 게 맞지만, 남자가 황후 마마를 닮았다면… 남성성이 조금 부족한 거죠.”

“…….”

위지불이는 제가 말해 놓고 남제화의 눈치를 살폈다. 아무리 그래도 그는 군왕이 아닌가. 말 한 번 잘못했다간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몰랐다. 하지만 아무리 무서워도 겁먹은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아 꿋꿋이 자신의 견해를 밀고 나갔다.

“사실을 말하는 거니까 화내지 마세요.”

남제화는 잠시 침묵한 끝에 그녀에게 물었다.

“네가 보기엔 사내가 어떤 모습이어야 남성성이 느껴진단 말이냐?”

“위풍당당하고, 목소리도 우렁차고, 키도 크고, 몸도 탄탄해야죠.”

“갑옷을 입으면 내가 얼마나 위풍당당한데. 훈화할 땐 목소리도 우렁차고. 큰 키와 탄탄한 몸은… 보고도 모른단 말이냐?”

위지불이가 말했다.

“키가 큰 건 맞지만, 탄탄한 건…….”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제화가 별안간 옷자락을 풀었다. 깜짝 놀란 위지불이도 서둘러 자리에 앉았다.

“뭐 하시는 거예요?”

“내 몸이 얼마나 탄탄한지 보여 주려고 그러지.”

위지불이는 베개를 껴안은 채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했다.

“폐하, 폐하는 황상이라고요!”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황제가 어찌 그리 쉽게 옷자락을 풀고 몸을 보여 준단 말인가. 게다가 그녀는 사내가 아니라 여인인데! 사실 남제화도 그저 위지불이를 놀리기 위함이었다. 그는 그녀가 놀라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았다. 너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다시 매듭을 묶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사내들끼리 겁낼 게 무엇이냐.”

위지불이가 헛기침을 하다 대답했다.

“방금 그러시는 걸 보고 또 폐하가 사내를 좋아한다고 착각할 뻔했습니다.”

남제화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네가 여인이라면 좋았겠구나.”

“왜요?”

위지불이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가 눈썹을 치켜세우며 방정맞게 웃었다.

“네가 여인이라면 내가 사내를 좋아하는지 아닌지 바로 알 수 있었을 텐데. 또 내 남성성에 대해서도 말이다.”

위지불이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아 베개를 더 꼭 껴안았다. 차마 대답을 할 수 없었던 그녀는 무미건조한 웃음만 보였다.

위지불이는 황후나 사앵앵에 대해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걸 남제화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졸음이 밀려와 그녀가 말을 멈출 때마다 그는 곧장 물었다.

“그래서?”

그래서는 망할! 졸린 탓에 눈도 못 뜰 지경이었고 말할 힘도 없었다.

“그만할래요. 피곤해요. 내일 다시 얘기해 줄게요.”

말을 마친 그녀는 그가 무슨 반응을 보이든 눈을 감고 잠들었다. 아직 깊게 잠들지 않아 정신이 혼미할 때, 옆에서 남제화가 끊임없이 몸을 엎치락뒤치락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바스락거리며 자꾸만 뒤척이니 꼭 커다란 쥐가 왔다 갔다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녀가 결국 화를 내며 쏘아붙였다.

“잘 거예요, 말 거예요?”

“잠이 오지 않는구나.”

남제화가 말했다.

“불이야, 네 손 좀 이리 주거라.”

위지불이가 불분명한 발음으로 물었다.

“제 손은 뭐 하려고요?”

“네 손을 잡으면 잠들 수 있을 것 같구나.”

그가 잠들기만 한다면 뭐든 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는 재빨리 가운데에 있는 베개 위에 손을 올렸다. 남제화는 곱상한 녀석의 손을 바라보며 빙긋 미소를 지었다.

그 또한 이게 이상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저번에 위지불이의 손을 잡았을 때 이상하리만치 잠이 잘 왔다. 어두운 장막 속에서, 두 사람은 손을 포갠 채 가만히 베게 위에 올려 두었다.

위지불이의 손엔 기묘한 마력이 있는 것 같았다. 어수선하던 마음이 천천히 안정을 되찾았다.

위지불이의 이야기에 떠오른 수많은 장면들도 하나하나 꺼지고, 그는 이내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

* * *

아침이 되어 눈을 뜨니 위지불이는 여전히 단잠에 빠져 있었다. 위지불이의 팔은 베개를 꼭 끌어안고 두 다리는 대자로 뻗어 있었다. 심지어 오른쪽 다리는 베개를 넘어 그의 자리까지 침범해 있었다. 무슨 생각인지 남제화는 몸을 천천히 옆으로 옮겨 위지불이의 발에 그의 다리를 바짝 붙였다.

두 사람은 여전히 손을 맞잡고 있었다. 느슨하게 풀린 위지불이의 손과 달리 그는 그 손을 꽉 붙잡고 있었다.

남제화는 점점 더 위지불이의 몸에 제 몸을 붙였다. 이내 다른 쪽 손을 뻗어 위지불이의 호흡을 확인했다. 호흡이 너무 희미해 조금 걱정됐다. 손길에 닿는 녀석의 숨은 아주 희미해서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는 잠시 고개를 내밀어 녀석의 상태를 천천히 살폈다. 그는 아주 조심스레 위지불이에게 다가갔다. 한쪽 손은 여전히 녀석을 붙잡고 있었고, 발에 제 다리를 맞대고 있는 상태였다. 그는 녀석을 놀라게 하지 않으려고 이상한 자세로 다가가고 있었다.

그의 얼굴이 위지불이의 얼굴과 가까워졌다. 그의 얼굴 위로 위지불이의 호흡이 그대로 느껴졌다. 여전히 가벼운 호흡이었지만 퍽 따뜻했다. 녀석의 숨결에서는 달콤한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아침에 숲을 거닐 때 공기 중에 섞여 있는 꽃향기와 비슷했다.

그의 시선은 점점 녀석의 입술로 향했다. 위지불이의 입술은 그의 입술보다 조금 더 두꺼웠다. 하지만 크기는 작아서 꽃잎처럼 아주 예뻤다. 사내의 입술이 이렇게 작고 예쁜 건 처음 봤다. 자그마한 입술은 위지불이의 이목구비와 어우러져서 참 예뻤다.

그는 한참 녀석의 입술을 바라보며 숨결을 들이마셨다. 그러다 문득 이 녀석의 입술에 입을 맞추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자신이 음흉하다고 생각했다. 스스로도 놀랄 만한 생각이었다.

그는 서둘러 위지불이와 거리를 벌리고 손을 놓았다. 다리도 다시 멀찍이 떨어뜨렸다. 사내를 좋아하는 남자가 되고 싶진 않았다.

그 무렵 위지불이는 곰에게 쫓기는 꿈을 꾸고 있었다. 필사적으로 도망치던 중 발이 붕 뜨더니 까마득한 절벽으로 떨어졌다. 벌떡 잠에서 깬 그녀는 발로 무언가를 걷어차고 손은 허공에서 허우적거렸다. 잠에서 깼으나 여전히 넋이 나간 상태였다.

이미 남제화는 위지불이의 발에 걷어차인 뒤였다. 그가 조용히 거리를 벌렸다.

“왜, 꿈을 꾼 것이냐?”

위지불이는 나른한 목소리로 그렇다고 대꾸했다. 짤막한 그녀의 목소리는 고양이가 우는 듯 나긋했다. 남제화는 또다시 고양이가 자신의 가슴을 긁는 것 같았다.

“무슨 꿈을 꾸었기에?”

“커다란 곰한테 쫓기다가 절벽으로 떨어졌어요.”

“저런.”

남제화가 물었다.

“곰을 본 적 있느냐?”

곰을 본 적 없었지만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까만 털에 둥근 머리, 동글한 몸통, 짧은 털까지. 대략 이런 생김새가 아니던가.

“남원에는 곰이 많으니 나중에 한번 보러 가자꾸나.”

“안 가요.”

위지불이가 딱 잘라 말했다. 지난번 호랑이 때문에 놀란 게 아직 다 가시지도 않았는데 곰은 무슨 곰! 그녀가 베개를 껴안고 몸을 일으켜 앉았다.

“날이 밝았으니 그만 가 볼게요. 연습도 해야 하고요.”

남제화도 더는 붙잡지 않았다.

“그래. 가 보거라. 나도 그만 일어나야겠다.”

그는 다짐했다. 이제 위지불이와 너무 가까이하지 않기로 말이다. 이 녀석의 곱상한 생김새에 남제화는 자꾸만 착각에 빠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위지불이가 방을 떠나자마자 그는 허전함을 느꼈다. 아직 이른 시간이니 좀 더 누워 이야기를 나누면 얼마나 좋을까…….

* * *

그날 이후, 남제화는 위지불이를 찾아가는 대신 자그마한 나무 인형을 조각하며 시간을 보냈다. 밥을 먹을 때만 위지불이를 만나 몇 마디 농담을 주고받곤 했다. 남제화는 이런 관계도 썩 괜찮은 것 같았다. 위지불이는 그의 지루함을 해소하기 위한 존재였다. 그저 매일 이렇게 그를 웃겨 주면 그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위지불이가 그를 찾아왔다. 자신의 동작이 더 나아졌는지 봐 달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누가 볼까 봐 대전에서 보여 주는 대신, 그를 자신의 방으로 데려왔다. 고작 동작 하나였지만, 남제화는 그녀의 노력과 성실함에 고개를 끄덕이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훌륭하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잘하는구나.”

칭찬을 받은 위지불이는 기분이 좋았다. 지금껏 저를 무시하던 황제의 칭찬이지 않은가. 이 말을 듣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원. 그녀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이 동작은 다 익혔으니까, 다음 걸 가르쳐 주세요.”

남제화는 뒷짐을 진 채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강암룡을 이기기 위해선 이 동작 하나면 충분하다.”

“이걸로 충분하다고요?”

위지불이는 그의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눈치였다.

“그자도 실력이 만만치 않던데요.”

“해서 그가 먼저 손을 쓸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자의 초식도 알려 주었고, 어떻게 반격하는지도 알려 주었지. 네 실력이 부족하니 아마 이 동작의 위력이 삼 할 정도만 발휘될 테지. 하지만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강암룡을 바닥에 넘어뜨리기 충분해. 그가 바닥에 쓰러지면 네가 대결에서 이긴 셈이지.”

“이 동작만으로 그자를 쓰러뜨릴 수 있다고요?”

“해 보면 알 것이다.”

“속일 생각 말아요. 지면 정말 화날 것 같으니까요. 제가 화나면 정말 무시무시한 후환이 뒤따를 거예요.”

“무시무시한 후환이 무엇인데?”

“다시는 폐하한테 이야기 안 해 줄 거예요.”

남제화가 속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 그만 해 주는 것도 나쁘지 않지. 매번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백천범과 사앵앵 때문에 좀처럼 잠을 잘 수 없었으니까.

“그래, 그러자꾸나.”

남제화가 말했다.

“강암룡과 다시 한번 겨뤄 보아라. 반드시 동작을 빠르게 연결해야 한다. 동작이 빨라야 적을 이길 수 있다.”

* * *

강암룡은 위지불이가 이렇게 빨리 찾아와 재대결을 요구할 줄 몰랐다. 그는 그저 가소로웠다. 남원에서 그 또한 제법 이름난 고수인데, 햇병아리가 자꾸만 그에게 도전장을 내밀다니. 하지만 그렇다고 도전을 거부할 수도 없었다. 햇병아리의 뒷배가 너무 탄탄해서 차마 미움을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위지불이가 남제화 곁에 있는 게 너무 걱정스러웠다. 혹시라도 위지불이가 황제를 암살할까 봐. 하지만 지난번 대결 이후 그는 걱정을 말끔히 털어 낼 수 있었다. 설령 남제화가 한쪽 눈이 멀고 한쪽 다리가 잘렸다고 한들 위지불이는 절대 황제를 죽일 수 없었다.

위지 일가에서 이렇게 형편없는 자객을 보내다니. 세상이 비웃을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비웃음거리가 그의 앞에 찾아와 도전장을 내밀었다. 제법 심오한 표정으로 그를 매섭게 노려보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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