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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781)화 (780/1,192)

제781화

강암룡은 황제의 말투 속에서 유쾌함을 알아차리고는 속으로 분개했다. 흥! 폐하의 마음은 이미 위지불이에게 치우쳐져 있을 것이다. 그가 손을 내리자 위지불이가 소리쳤다.

“어라, 강 총관, 코에서 피가 나요.”

그렇게 세게 부딪혔는데 그럼 코피가 안 나겠는가? 그녀를 매섭게 노려본 강암룡은 소매를 잡아당겨 코피를 훔친 뒤 황제 앞에 무릎을 꿇었다.

“소인이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폐하의 눈을 더럽혔으니 죄를 달게 받겠습니다.”

“일어나거라.”

남제화가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죄를 사하노라. 다쳤으니 얼른 가서 쉬거라. 밤에는 안 와도 괜찮다.”

강암룡은 황제가 위지불이를 두둔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이 뭐라고 말하든 황제는 이 일로 위지불이를 처벌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성은에 감사하다고 예를 취했고, 물러나기 전에 잠시 위지불이를 노려봤다. 황제 곁에 남은 자는 고개를 쳐들고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위지불이는 목을 꼿꼿이 세우고 싸움닭처럼 읊조렸다.

“뭐, 어쩌라고.”

남제화의 면전에서 강암룡이 그녀를 어찌하겠는가. 강암룡은 과연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미소를 보니 섬뜩함이 느껴졌다. 그가 밖으로 나가자 남제화가 말했다.

“또 피를 흘리게 했구나.”

“폐하께서 말씀하신 대로잖아요. 찔끔찔끔 흘리는 피는 괜찮지만, 많으면 안 된다고. 그 말씀만 안 하셨다면 온몸에 피를 다 뺐을 거예요.”

“그럴 자신은 있고?”

위지불이는 허리춤에 찬 단도를 빼 들었다.

“제 오양조봉도를 맛보면 저자도 저의 대단함을 알게 될 겁니다.”

자신도 모르게 실소를 터뜨린 남제화는 고개를 흔들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위지불이는 그가 자신을 깔보자 버럭 화가 났다.

“못 믿겠어요?”

남제화가 웃으며 말했다.

“참말을 듣고 싶으냐, 아니면 거짓말을 듣고 싶으냐?”

“당연히 진실을 듣고 싶죠.”

“넌 강암룡의 적수가 못 된다.”

“그걸 어떻게 알아요? 직접 겨뤄 봐야 알죠.”

위지불이는 자신의 무공 실력에 자신이 있었다. 자신이 남제화의 적수가 아님을 알면서도 언젠가 기회만 잡으면 앞설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강암룡이 독을 쓰지 않는다면 그녀에게도 승률이 있었다.

바로 그때, 갑자기 배 속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그녀는 배를 움켜쥐고 쪼그려 앉았다. 남제화는 앞으로 몸을 숙이고 물었다.

“왜 그러느냐?”

“배가 너무 아파요.”

“또 독을 시험 삼아 먹었느냐?”

“아니에요.”

위지불이는 아예 바닥에 앉아서 힘껏 배를 눌렀다.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그녀는 바보가 아니었다. 통증이 갑자기 생긴 게 수상했다. 강암룡이 아니면 누구란 말인가?

“폐하, 아무래도 중독되었나 봐요. 빨리 강암룡에게 해독약을 가져오라고 하세요.”

남제화는 사람을 불렀다.

“여봐라! 불이를 공방恭房(변소)에 데려가라.”

위지불이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폐하, 저는 그게 아니라… 공방에 갈 생각이…….”

남제화는 확신하며 말했다.

“가 보거라. 가면 그럴 생각이 들 테니.”

두 명의 환관이 들어와 위지불이를 가까스로 일으켜 세워 부축했다. 위지불이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남제화는 녀석의 몸이 너무 허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들 사이에 있으니 저건 부축이 아니라 거의 끌려가는 것 같았다.

공방에 도착한 위지불이는 허둥지둥 허리띠를 풀고 변기에 걸터앉았다. 그러자 배 속에서부터 무언가 쏟아졌다. 한바탕 쏟아내고 나니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녀는 다시 옷가지를 정리하고 변기 안에 단향목을 태운 재를 반 통 부어 오물을 가렸다. 손까지 씻은 뒤에야 비로소 그녀는 당당해졌다. 중독된 게 아니라 배탈이 난 거였구나. 하마터면 강암룡을 오해할 뻔했군. 그녀가 궁전으로 돌아오자 남제화는 빙그레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괜찮으냐?”

위지불이는 어쩐지 겸연쩍어 얼굴을 붉혔다.

“폐하께서는 역시 대단하세요.”

남제화는 연신 싱글벙글했다.

“내 추측으로는 넌 또다시 배가 아플 것이다.”

위지불이는 의아했다.

“왜요? 이젠 아프지 않은… 아, 아이고 또 왔어!”

이번 통증은 아까보다 훨씬 더 심했다. 그녀의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다시 갔다 오너라. 일을 마치고 돌아오지 말고 거기서 잠시 기다려라. 또 한 번 이럴 것이다.”

이번에는 부축을 받지 않고 쏜살같이 달려갔다. 아까와 같이 공방에 들어가자 또 배가 더부룩한 느낌이 들었고, 쏟아내고 나니 또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녀는 남제화의 말을 기억하고 감히 공방을 나가지 못했다. 과연 얼마 되지 않아 세 번째 복통이 시작되었다. 복부가 팽창한 느낌이 들자 또 다시 설사가 쏟아졌다.

궁전으로 돌아온 그녀는 새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남제화를 노려봤다.

“폐하,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이에요? 왜 설사를 하는 거죠? 폐하는 아무렇지 않잖아요?”

“강암룡이 방금 너에게 독을 사용했기 때문이란다.”

“그자는 저를 전혀 건드리지 않았어요.”

“고수가 독을 쓸 땐 알 수도 느낄 수도 없단다. 네가 알아차리면 고수라고 부를 수 있겠느냐?”

“폐하께서는 그가 저에게 독을 쓴 걸 알았으니, 그를 벌해 주세요.”

남제화는 좀 난처했다.

“사실 이건 독이라고 할 수도 없다. 원래 남원에서 이런 건 잔재주에 불과하지. 이런 사소한 일로 그를 처벌하는 건 말이 안 돼. 게다가 너도 그의 코를 상하게 하지 않았느냐? 나는 공정한 황제이니라. 네가 그에게 피를 보게 하고, 그가 너에게 배탈이 나게 했으니… 누구도 이겼다고 할 수 없구나. 오늘 일은 서로 비겼다고 치는 게 어떠냐?”

위지불이는 이빨을 지그시 물었다. 흥! 군자의 복수는 십 년을 기다려도 늦지 않다고 했다. 강암룡, 기다려라!

* * *

위지불이가 뒤늦게 수소문해 보니 강암룡이 그녀에게 쓴 수법은 기껏해야 장난이라고 여겨지는 것이었다. 묘삼납貓三拉이라고 이름도 우스꽝스러웠다. 고양이처럼 세 번 싸면 끝이라는 뜻이었다.

남원에서 이 수법은 주로 바람피우는 상대를 벌줄 때 쓰는 방법이었다. 유부남이 다른 여자를 찾으면 이런 수법에 당한다고 했다. 어떤 남자든 하루아침에 설사가 멎지 않으면 그는 바람을 핀 남자라는 신호였다.

위지불이는 이걸 듣고 꽤 흥미로웠지만 그녀에겐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바람피운 것도 아닌데 강암룡은 왜 굳이 그녀에게 이런 수작을 부린 걸까?

어쨌든 간에 그녀는 복수할 것이다. 어떤 복수를 할지는 신중하게 생각해야지.

남제화와 위지불이는 서로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황제의 옆엔 강암룡이 꿇어앉아 차 시중을 들고 있었다. 위지불이는 강암룡의 거무스름한 손가락 위에서 작은 찻잔 두 개가 춤추는 것처럼 날렵하게 뒤집히는 걸 바라봤다. 현란한 그 솜씨에 그녀의 눈이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강암룡은 독을 잘 쓸 뿐만 아니라 차도 잘 우렸다. 남제화를 위해 차를 끓이는 건 그가 반드시 매일 해야 하는 일이었다.

위지불이는 잠시 동안 강암룡을 바라봤다. 그녀의 시선은 그의 손에서 시작해 천천히 그의 팔을 타고 어깨까지 미끄러져 내려와 그의 다리에 내려앉았다. 청색 바지는 그의 튼튼한 다리를 감싸고 있었는데, 무릎을 꿇고 앉아 있어 대퇴부가 불룩 튀어나와 보였다.

그 부분의 근육이 저렇게 튀어나왔으니 틀림없이 매우 단단할 것이다. 도대체 얼마나 단단할까? 그녀는 이런 생각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자기도 모르게 허리춤에 있는 단도를 뽑은 그녀는 탁자 밑에서 천천히 움직였다. 그리고 단도 끝을 딱딱한 살점 속으로 푹 찔러 넣었다.

물론, 칼날이 깊이 들어가지 않았다. 아마 손톱 반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피가 흐르는 건 피할 수 없었다. 강암룡은 본능적으로 반격하려 했지만 남제화가 함께 있다는 걸 떠올렸다. 그는 황제에게 고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상처를 막은 채 황망하게 황제를 불렀다.

“폐하.”

남제화는 완전히 넋을 놓고 있어 그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듯했다. 위지불이는 멍청한 자신을 탓했다. 아무 생각 없이 행동에 옮길 줄은 몰랐다. 아마도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강했기 때문이리라.

강암룡의 코를 들이받았을 땐 실수라고 할 수 있었지만, 칼로 그를 찌른 걸 어떻게 변명할까. 강암룡의 근육이 얼마나 단단한지 궁금했다고 한단 말인가?

강암룡은 아직도 피가 흐르는 상처를 가린 채, 서글픈 모습으로 남제화를 바라봤다. 하지만 황제는 여전히 넋을 놓은 채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한 위지불이는 급히 칼을 회수해 허리춤에 꽂고는 인사도 없이 허겁지겁 가 버렸다. 강암룡이 다시 그를 불렀다.

“폐하.”

이번에는 남제화가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공허한 시선이 먼발치에서 돌아왔다. 그의 다리를 한 번 훑어본 황제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뭘 부르고 있는 것이냐? 약을 뿌리면 될 것을.”

옆에 있던 환관이 얼른 상처에 뿌리는 약을 가져왔다. 강암룡은 약병을 빼앗아 가루를 조금 뿌리고 상처를 동여맸다. 그처럼 무예가 뛰어난 사내에게 이런 상처는 사실 별것 아니었다. 하지만… 속에 열불이 나서 견딜 수 없었다.

황제를 충심으로 모신 게 몇 년인데. 아무리 공로가 없다 해도 황제를 제 몸처럼 위했거늘. 황제가 이렇게 그자만 편드는 건 정말 서운한 일이었다.

하지만 황제는 오히려 그를 꾸짖었다.

“쓸모없는 놈! 어린 동월 놈에게 찔려서 피를 흘리다니. 창피하지도 않느냐?”

“…….”

황제의 말에 서운함 마음이 싹 사라졌다. 그가 얼른 황제 앞에 무릎을 꿇었다.

“노여움을 푸십시오. 소인이 무능하여 폐하의 체면을 상하게 만들었습니다. 벌하여 주시옵소서.”

남제화는 그를 힐끗 쳐다보았다.

“일어나라. 매번 어린 놈에게 당하니 짐이 부끄러워 견딜 수 없을 지경이다.”

“죄송합니다.”

강암룡은 고개를 떨구었다.

“소인이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남제화는 태연자약하게 말했다.

“짐은 너도 벌하지 않을 것이니 알아서 하거라.”

“…….”

알아서 하라는 게 무슨 뜻인지……. 성심聖心은 짐작하기 어려웠다.

“폐하.”

강암룡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소인이 비록 위지불이를 싫어하지만, 불이 공자는 폐하… 곁에 있는 사람이니 당연히 시시비비를 따지지 않을 겁니다. 안심하십시오.”

남제화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 그를 바라봤다.

“남원의 사내는 다들 기개가 있는 대장부이지만, 너처럼 업신여김을 당하고도 시비를 따지지 않는 이는 별로 없지.”

강암룡이 그의 곁을 지킨 게 몇 년인데, 어찌 그의 뜻을 알아듣지 못하겠는가? 하지만, 그래도 조금 불안했다.

“소인, 어찌해야 할지 잘 알겠습니다. 다만…….”

남제화는 그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고 있었다.

“다만은 필요 없다. 불이는 짐 곁에 있는 사람이고, 너도 마찬가지다. 짐은 결코 누군가를 편애하지 않을 것이다.”

황제의 확답에 강암룡은 마음을 다잡았다. 그는 곧장 위지불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궁리했다.

황제는 그와 위지불이가 싸우는 걸 보고 싶어 했다. 황제는 그들의 난리를 구경하려는 것 같았다. 그들이 격렬하게 싸울수록 황제는 더욱 기뻐했다. 예전에는 위지불이가 혼자 맞서 싸웠지만, 지금은 그까지 끌어들인 셈이었다. 적수가 많아질수록 싸움은 더욱 떠들썩해지는 법이다.

황제의 말을 듣고 강암룡은 마음속으로 자신이 할 바를 정했다. 이번에는 반드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갚아야 했다. 위지불이가 그렇게 피를 보게 했으니, 그도 위지불이에게 피를 보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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