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76화
“뱀이라고?”
남제화가 미간을 찌푸리고 옷소매를 휘두르자 벽에 달린 촛대의 불꽃이 밝아졌다.
“내가 한번 가서 살펴보마.”
“날, 날 두고 가지 마세요.”
창백한 그녀의 얼굴을 보니 적잖이 놀란 것 같았다. 남제화는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짐이 업어 주랴?”
위지불이는 고개를 가로저었고 이빨을 딱딱 부딪치며 말했다.
“아니, 아니요. 그냥 따라갈게요.”
남제화는 그녀를 끌고 방 안으로 다시 돌아가 등불을 밝혔다. 역시 침대 위에 뱀 한 마리가 있었다. 엄지손가락 굵기의 뱀은 온몸이 노랗고 무늬가 있었다. 그는 사방을 살펴보며 그녀를 안심시켰다.
“무서워하지 마라. 한 마리밖에 없다.”
그는 뱀을 붙잡아 자세히 살펴보았다.
“독사구나.”
위지불이가 비명을 지르려 하기 전에 그가 한 마디 덧붙였다.
“그런데 독니는 이미 뽑혔다.”
남제화가 뱀을 창문 너머로 던지며 말했다.
“이제 괜찮으니, 계속 자거라.”
위지불이는 베개를 품에 안고 뾰로통하게 말했다.
“밖으로 던지면 혹시 다시 들어올지도 모르잖아요!”
“그럼 도대체 어쩌라는 거냐?”
“아니면 오, 오늘 밤엔.”
얼굴이 빨개진 그녀는 눈을 떨구고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폐하 방에 가서… 잘래요.”
그녀의 말에 남제화는 순간 심장이 뛰었다. 얼굴을 붉힌 녀석은 고개를 숙이고 장포로 몸을 가린 채였다. 장포 사이로 가느다란 팔이 드러났다. 분위기를 깨는 저음의 목소리만 아니라면 완전 처녀처럼 보였다.
“짐이 너에게 거짓말을 한 건 아닌지 걱정도 되지 않느냐? 짐이 남색을 탐한다면 어찌하려고?”
“그럼…….”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애처롭게 쳐다봤다.
“도대체 그렇다는 거예요? 아니라는 거예요?”
남제화는 그 불쌍한 모습에 순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다.”
“저도 아니라고 믿어요.”
그녀는 베개를 꼭 껴안았다.
“어서 가요.”
그는 여러 사내들과 한 방에서 잔 경험은 많았지만, 남자 둘이서 한 침상을 사용한 건 사장풍이 유일했다. 그때 그들은 함께 서북 지역으로 가는 중이었다. 여중旅中에 객잔에서 사앵앵이 방 하나를 쓰고 그와 사장풍이 한 방에서 묵었다.
사장풍이 밤새 코를 시끄럽게 골아서 그는 잠을 이루지 못했고, 한밤중에 옥상에 올라가 꼬박 밤을 지새웠다. 역참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사장풍의 방에서 제일 먼 방을 골랐다. 나중에 사앵앵이 이 일을 알고 오랫동안 사장풍을 놀렸다.
위지불이는 그가 갑자기 멍하니 서 있자 의아했다.
“왜 그래요? 싫어요? 싫으면 말고요. 오늘은 밤을 샐래요.”
남제화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미소를 지었다.
“가자. 그다지 싫을 이유가 없구나.”
위지불이는 도저히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녀는 뱀이 너무 무서웠다. 그 공포는 조금도 극복할 방법이 없었다. 그렇지 않다면 외간 남자와 함께 자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차피 그녀는 살아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게다가 남제화가 그녀의 머리를 만졌고 그녀의 발도 쓰다듬었다. 게다가 팔뚝도 입으로 빨았으니 이미 선을 넘은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녀는 그를 죽여야 했지만, 이곳에서 가장 가깝고 믿음직스러운 사람은 남제화뿐이었다. 굉장히 모순인 것 같지만, 사실이었다. 남제화의 침대는 그녀의 것보다 훨씬 컸다. 그녀는 자신과 남제화 사이에 베개를 놓았다.
“이쪽 절반은 제 것이고 저쪽 절반은 황상 거예요. 각자 자기 위치에서만 자고 넘어오지 말아요.”
남제화는 피식 웃었다.
“잠든 뒤에는 어떻게 베개에 신경을 쓴단 말이냐? 넌 정말 사내가 맞느냐? 하룻밤 자는데 뭐 이런 것까지 신경 쓴단 말이냐?”
위지불이는 작은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폐하가 남색을 밝히지 않는다는 게 아직 확실치 않으니 경계하지 않을 수 없잖아요.”
그녀의 말은 이치에 맞았지만 남제화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는 옆으로 돌아누우며 말했다.
“그래, 넘어가지 않으마. 설령 네가 넘어온다 한들 짐은 상관하지 않으마.”
“저도 안 넘어가요.”
등을 돌리고 누운 위지불이는 도무지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래도 남제화와 함께 자는 것이 뱀과 같이 자는 것보단 나았다.
이튿날 아침, 남제화는 천천히 눈을 떠 지척에 있는 위지불이를 바라보았다. 녀석은 천장을 보고 똑바로 누운 채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그들 사이엔 여전히 베개가 끼어 있었다. 그는 순간 웃음을 참지 못했다. 이놈, 잠버릇은 꽤 반듯하군.
남제화는 자신이 여자를 좋아하는 정상적인 남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위지불이는 그에게 매우 미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이 녀석은 그에게 그저 놀이 상대였다. 심심할 때 놀리면 파르르 화를 내는 모습이 좋았다. 뭐든 들어 주고 싶고 좋은 거는 뭐든 가져다 주고 싶었다.
오랫동안 녀석의 얼굴을 보던 남제화는 손가락으로 위지불이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여리고 매끈한 피부는 여자처럼 아주 부드러웠다. 완만한 눈썹, 오뚝한 콧날, 작은 입술까지. 눈을 뜨지 않으면 정말 여자로 여길 만했다. 한가로운 생각에 빠져 있을 때, 갑자기 굵은 목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아름다운 환상을 깨뜨렸다. 훈훈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격이었다.
“왜 나를 만지는 거죠?”
잠에서 억지로 깬 위지불이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에 눈살을 찌푸리며 그에게 물었다. 좋았던 기분을 망치자 남제화도 화가 나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눈 감아라.”
위지불이는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설마… 진짜 그런 거야? 그녀가 어떻게 얌전히 눈을 감고 있겠는가?
“왜 함부로 만지고 그래요?”
“묻지 말고 눈 감으래도.”
남제화의 말투가 무거워졌다. 늘 싱글벙글 웃던 그가 굳은 얼굴을 하니 좀 무섭기도 했다. 위지불이는 그의 손을 붙잡았다.
“정말 그런 거예요? 하지만, 나는…….”
“괜한 생각 말아라. 단지 네 몸이 너무 허약해 보여서 뼈를 좀 만져 보는 중이다.”
남제화는 그녀를 바라봤다.
“함부로 만지는 것도 아니고 같은 남자들인데 뭘 그렇게 겁을 내느냐? 혹시 몸에 무슨 문제라도 있느냐?”
위지불이는 그가 무언가를 알아차릴까 봐 겁이 나서 그를 노려봤다.
“뼈를 만지려면 뼈만 만지고 다른 데는 함부로 만지지 마세요.”
위지불이가 다시 조용히 눈을 감자 따뜻한 손가락이 다시 그녀의 얼굴을 스쳤다. 미간을 지나 콧등, 입술을 쓸어내렸고 볼에서 잠시 머물다가 턱까지 미끄러졌다. 다시 오른쪽으로 움직여 그녀의 귓불을 움켜쥐었다. 귓가를 한 번 더 가볍게 문지른 손가락은 아래로 방향을 꺾어 그녀의 상의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 어깨 근처를 헤엄쳤다. 어깨는 여자처럼 매끄럽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남자답게 두툼하지도 않았다.
남제화는 마음속에서 연민이 솟아올랐다. 그의 손이 등 뒤로 넘어갔다. 견갑골이 만져지긴 했지만 너무 얇고 앙상한 것이, 살갗에서 직접 꺼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남제화의 마음속 연민은 더욱더 깊어졌다. 낮은 한숨을 내쉬며 그는 손을 거두었다.
“넌 선천적으로 약하구나.”
그가 손을 떼자 마침내 위지불이의 마음이 안정되었다. 몸을 한참 만진 뒤에 나온 결론이 겨우 그건가? 그녀는 침착한 척 말했다.
“아마도 그럴 거예요. 우리 부모님께서 왜 이런 이름을 지어 주셨겠어요. 사는 게 쉽지 않다. 아마도 선천적으로 약했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저는 딱히 불편함을 못 느끼는걸요.”
“오늘부터 보양식을 많이 만들라고 해야겠다. 잘 보양해라. 네 몸은 여자보다 더 약해.”
위지불이는 말없이 그에게서 멀어지며 미소를 지었다.
“황상, 감사합니다.”
베개를 품에 껴안은 그녀는 꾸물거리며 침대에서 내려왔다.
“좀 더 쉬세요. 전 돌아가 볼게요.”
남제화는 놀리며 말했다.
“이젠 뱀이 무섭지 않느냐?”
“날이 밝았으니 나오지 않겠지요.”
그녀는 슬그머니 휘장 사이로 빠져나와 거처로 돌아갔다. 위지불이는 긴장이 풀려 심장이 더 빨리 뛰었다. 다시 생각해 보니 덜컥 겁이 났다.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함께 잠을 잤을 뿐만 아니라… 그가 몸까지 만졌다. 아직도 그의 손가락이 제 몸을 만지던 기분을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손길을 따라 무수한 전율이 짜릿하게 흘렀다.
황제의 침상에서 그녀가 밤을 보낸 건 궁 안 모두가 아는 듯했다. 궁녀가 전보다 더 공손하고 친절하게 대했다.
위지불이는 어차피 이렇게 된 바에야 아예 황제의 총애에 기대 응석을 부리기로 했다. 그녀는 궁녀에게 침대의 이부자리를 모두 바꿔 달라고 했다. 뱀이 기어 다녔다는 걸 떠올리기만 해도 역겨웠다.
매일 밤 남제화와 잘 수는 없었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뱀이 다시는 그녀의 방에 오지 못하게 할 방법이 없을까? 그러다 매년 정양절에 아버지가 대문 입구에 뿌렸던 웅황雄黃(안료의 일종, 비소화합물)가루를 떠올렸다. 아버지는 그 가루로 뱀을 쫓을 수 있다고 했다.
그녀는 사람을 시켜 웅황 가루를 구해와 거처 안팎에 뿌렸다. 냄새가 좀 심했지만, 그래도 참을 수 있었다. 두고 보라지… 뱀을 푼 사람을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사실 뱀을 누가 풀어놨는지 위지불이는 발가락으로도 짐작할 수 있었다. 강암룡 말고 그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녀를 위헙하기 위해 손을 쓴 것이다.
그래, 그러라지! 누가 무서워한다고? 그녀도 만만한 사람이 아니다. 남제화는 죽일 수 없었지만 그의 시중을 드는 수행원조차 상대할 수 없다면 그녀는 정말 쓸모없는 사람일 것이다.
* * *
며칠 동안, 그녀는 몰래 강암룡의 행적을 살피며 그의 동선을 파악했다. 이날 그녀는 꽃이 조각된 나무 난간에 기대어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 손은 난간에 올려놓았고, 난간 아래로 늘어뜨린 다른 한 손에는 단단한 도자기병을 들고 있었다.
석양 속에서 강암룡이 다가왔다. 그녀는 손에 든 도자기병을 들어 올려 그를 향해 던졌다. 강암룡의 반응은 매우 민첩했다. 공기를 가르는 바람 소리에 즉시 몸을 피했다. 도자기병은 그의 발아래에 떨어져 와장창, 하는 소리와 함께 산산조각이 났다.
위지불이는 아쉬워하며 은근슬쩍 대전으로 들어갔다. 마침 남제화는 그곳에서 나무를 조각하고 있었다. 그는 그녀를 발견하고 손짓했다.
“이리 오너라. 내가 조각한 인형이 어떠하냐?”
위지불이는 얼른 달려가 자리를 잡고 앉아서 작은 나무 인형을 자세히 살폈다.
“황상께서 이런 솜씨도 있으셨군요. 잘하셨네요. 내일 저도 하나 깎아 주세요.”
남제화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 시간이 되면 너도 하나 조각해 주마. 아, 아까 그 소리는 어찌된 것이냐?”
위지불이는 모르는 척했다.
“무슨 소리요? 저는 못 들었어요. 계속 방 안에 있다가 방금 나왔어요.”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강암룡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