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75화
남제화는 수건에 물을 묻혀서 위지불이의 발바닥을 조심스럽게 닦아 주었다. 그리곤 까진 피부 껍질을 잘라내고 연고를 발랐다. 옅은 향이 나는 연고는 바르면 상처의 열감을 내려 통증을 줄일 수 있었다. 약을 다 바르자 위지불이는 한결 편안해졌다.
남제화는 처치를 마치자 그녀의 다리를 낮은 걸상에 올려 주었다. 약이 마르도록 신경 써 준 것이다. 이내 아랫사람들을 모두 물리고 방에는 두 사람만 남았다. 위지불이는 조금 언짢았다.
“황상, 남자는 싫다면서 왜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다들 오해했잖아요.”
남제화는 웃음을 터뜨렸다.
“짐이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면 강암룡은 오늘 밤 너의 목숨을 노렸을 것이다. 지금은 네가 내 사람이라는 걸 알았으니 함부로 손대지 않을 것이다.”
위지불이는 쉽게 수긍할 수 없었다.
“제가 황상을 못 죽인다고 그자도 못 당해 낼 줄 알아요?”
“강암룡을 쉽게 보지 말거라. 남원 사람들은 독을 잘 다루지. 그는 독을 잘 쓰기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인물이다.”
“정말요?”
위지불이는 믿기지 않았다.
“그는 그냥 시종일 뿐이잖아요.”
“하지만 짐의 시종이 아니더냐. 궁중에서는 능력 없는 사람을 쓰지 않는다. 짐의 곁에 있는 사람이 재주가 없으면 되겠느냐?”
위지불이는 생각에 잠겼다. 그의 말이 옳았다. 우리 동월의 황제 곁에도 대단한 대장이 두 명이나 있었다. 바로 영 대인과 가 대인이었다. 듣기로는 그들의 무공이 그 경지를 짐작할 수 없다고 했다. 그녀는 호기심에 물었다.
“그럼 최고로 독을 잘 다루는 사람은 누구예요?”
남제화는 대답 없이 씁쓸한 웃음만 지었다. 독을 가장 잘 다루는 이는 위지불이가 암살하려는 여제였다. 독을 다루는 데 있어서 그녀를 따라잡을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그 당시에 위지문우가 당했던 것이다.
“당신 아니에요?”
위지불이가 물었다.
“아니지.”
“그럼 또 누가 있는데요?”
“나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
“그럼… 당신은 몇 위예요?”
“난 독을 쓰는 걸 싫어한다. 그저 어렸을 때부터 이런 환경에서 자라다 보니 독에 대해 잘 아는 것뿐이지. 크고 나선 독에 관심이 없었다. 아마 잘하면 다섯 손가락 안에는 들 테지.”
위지불이는 와, 하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관심도 없는데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고요? 그건 대단한 거잖아요. 어쩐지 어떤 독도 효과가 없더라니.”
남제화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독이 두렵지 않은 것은 어릴 때부터 독약에 몸을 담갔기 때문이다. 독을 잘 다루는 것과는 무관하지.”
위지불이는 갑자기 조용해졌다. 잠시 눈살을 찌푸리더니 중얼거렸다.
“설마, 우리 공자님을 무공으로 못 이기니까 독을 먹인 거 아니에요?”
남제화는 화제가 이렇게 돌아갈 줄 몰랐다. 그는 잠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
사건이 있었던 그날 밤, 그는 여제를 찾아가겠다는 위지문우를 좋은 말로 타일렀지만, 위지문우는 끝내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가 감지한 나쁜 예감은 항상 빗가나지 않았다. 그날 그렇게 사단이 난 것이다.
위지문우는 똑똑한 사람이었다. 그가 위험을 무릅쓰고 여제를 만나기로 결심한 까닭은 이미 마음의 준비를 다 끝냈기 때문이다. 자신의 목숨을 희생해 백천범에게는 자유를 주고, 위지 가문에게는 혁혁한 권세를 보장하기로. 위지불이는 추궁했다.
“왜 대답을 안 해요? 입에 담기 어려워요?”
남제화는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다 지난 일이다. 그 일은 더 이상 언급하고 싶지 않구나.”
* * *
그 연고는 정말 효험이 뛰어났다. 하룻밤이 지나자 위지불이는 까치발을 한 채 천천히 걸을 수 있었다. 남제화는 그녀가 오리처럼 뒤뚱거리며 걷는 모습이 너무 우스웠다. 그가 그녀를 불렀다.
“와서 밥 먹어라.”
그의 앞에 위지불이가 책상다리를 하고 앉았다. 강암룡은 남제화의 뒤에 서서 그녀를 음산하게 노려보았다. 그의 눈빛은 전에 만난 뱀과 같았다. 아니, 그 뱀보다 더 매섭고 음산했다.
그녀는 심장이 쿵쾅거렸다.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저놈은 이미 공격할 준비를 마친 것 같으니, 나도 서둘러 대응할 방법을 찾아야겠다.’
궁녀들이 음식을 차렸고, 강암룡이 허리를 굽혀 술을 따르자 남제화가 물었다.
“술 한잔하겠느냐?”
“감사한 말씀이지만, 전 안 마시겠습니다.”
강암룡의 손을 거친 술이다. 설사 독이 들어 있어도 남제화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겠지만, 그녀에게는 어떨지 알 수 없었다.
“너 사내가 맞느냐? 술 안 마시는 사내가 어디 있단 말이냐?”
위지불이는 헤아릴 수 없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술을 안 마셔요. 술을 마시면 일을 그르치기 때문이지요.”
그건 임무를 수행할 때였다. 칼끝에 맺힌 피를 핥는 일을 하는 자객들이 어찌 술을 마시지 않겠는가? 그녀는 마시지 않겠다고 하니 남제화도 강요하지 않았다. 그는 그날의 일을 가지고 그녀를 놀렸다.
“너는 뱀을 아주 무서워하더구나.”
위지불이는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무서워요.”
“남원에서는 여자들도 뱀을 무서워하지 않지.”
남제화는 활짝 웃으며 물었다.
“또 무엇을 무서워하느냐?”
“다른 건 없어요.”
“진짜 없느냐? 호랑이나 표범은 무섭지 않고?”
위지불이는 망설이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섭지 않아요.”
남제화는 또 웃음을 터뜨렸다.
“궁 안에 호랑이와 표범이 있으니 내일 놀러 가 보지.”
“호랑이랑 표범이 어디 있어요?”
“동쪽으로 가면 숲이 나오는데, 그 안에 있단다. 가끔은 밖으로 나와 있기도 하지.”
위지불이는 경악했다.
“가두지 않고 그냥 풀어서 키운다고요?”
“그래, 내가 키우는 것들이지.”
남제화가 말을 이었다.
“내가 오랫동안 보러 가지 않으면 나를 찾으러 나오곤 하단다.”
“그럼 얼마 동안 안 가셨어요?”
“네가 온 이후로 가지 않았구나.”
“그것들이 이리 온다고요?”
“그럼, 가끔 여기서 자기도 하지.”
위지불이는 머리털이 쭈뼛 서는 기분이었다.
“황상, 식사 다 하셨으면 얼른 가서 보고 오세요.”
남제화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위지불이를 보고 통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하나도 안 무섭다고 하더니 사실은 무서웠던 게로구나.”
위지불이는 변명을 늘어놨다.
“우리 동월에선 맹수를 도성 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해요. 이곳과는 달라서 낯선 것뿐이에요.”
“괜찮다. 그 녀석들과 몇 번 놀고 나면 괜찮아질 거다.”
위지불이는 완곡히 거절했다.
“안 그래도 괜찮아요. 사실 동물 냄새를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무서우면 무섭다고 하면 될 것을… 굳이 핑계를 대다니. 그녀에게 음식을 집어 준 남제화는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예전에는 맹수를 기르지 않았지만 천범이 표범을 잘 길들이는 걸 보고 따라서 키우기 시작했다. 호랑이 한 마리와 표범 한 마리를 동쪽의 숲에 풀어놓고 매일 사람을 시켜서 먹이를 챙겨 주었다. 그들은 웬만해서는 사람을 해치지 않았다.
밥을 다 먹고 난 후, 위지불이의 독촉에 남제화는 할 수 없이 호랑이와 표범을 보러 갔다. 위지불이는 그가 없는 사이 무료한 기분을 달래려 복도를 서성거렸다. 두 바퀴쯤 돌고 나니, 누군가 그녀의 길을 막고 서 있었다. 고개를 들어 보니 강암룡이었다. 그녀는 즉각 경각심을 세웠다.
“무슨 일이죠?”
그녀보다 훨씬 키가 큰 강암룡이 그녀를 내려다보며 경멸이 짙은 얼굴을 했다.
“너희 동월의 자객들은 원래 다 기생오라비인가?”
“허튼소리!”
위지불이가 화를 내며 소리쳤다.
“네가 기생오라비지! 너희는 전부 다 기생오라비잖아!”
“실력은 뭣도 없으면서 입만 번지르르하긴.”
강암룡이 냉랭하게 말했다.
“우리 폐하께선 네놈의 그 감언이설에 현혹되신 것이다. 경고하건대, 폐하의 총애를 받았으니 폐하를 성심성의껏 모셔라. 혹시라도 불온한 마음을 품는다면 내가 반드시 너를 없애버릴 것이다.”
위지불이는 콧방귀를 뀌었다.
“협박하지 마시지? 독극물을 잘 다룬다고? 내가 중독되면 누가 손을 썼든 당신 짓이라고 이를 테니까!”
강암룡은 그녀가 이렇게 음흉할 줄은 몰랐다. 그의 표정이 더욱더 어두워졌다.
“비겁한 놈!”
“황제가 자리를 뜨자마자 협박하는 당신이야말로 비겁한 놈이지.”
“너는 비열한 놈이다.”
“너는… 너는… 너야말로 네 가문 모두가 비열한 놈이야!”
그를 무공으로는 이길 수 없지만, 말싸움으로는 절대 지지 않았다. 그녀와 말다툼하기 귀찮아진 강암룡은 화를 내며 소매를 뿌리쳤다.
“내가 한 말은 잘 기억하는 게 좋을 거다. 만약 듣지 않으면 그 결과는 네가 감당해야 할 것이다.”
“두고 보자는 사람 하나도 안 무섭다.”
위지불이는 허리에 양손을 올렸다.
“내가 당신을 무서워할 줄 알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강암룡은 자리를 떠나면서 한마디 했다.
“계집애 같은 놈!”
위지불이는 문득 깨달았다. 말다툼하다가 하마터면 정체가 탄로 날 뻔했다는 것을. 그녀가 굵고 쉰 목소리를 가진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가슴까지 꽁꽁 싸매고 있으니 아직 아무도 그녀가 여자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위지불이는 강암룡이 자신을 위협한 일을 남제화에게 알리지 않았다. 남제화를 죽이러 왔는데 어떻게 그의 비호를 바랄 수 있겠는가? 게다가 이미 그에게 진 빚이 너무 많았다. 조금이라도 빚을 덜 수 있을 때 덜어야 했다. 나중에 한꺼번에 갚으려면 너무 힘들 테니까.
하루가 금방 지나갔다. 늦은 밤은 위지불이에게 가장 편안한 시간이었다. 꽁꽁 싸맨 가슴을 풀고 통풍을 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더운 남원 날씨에 매일 가슴을 싸매고 있으니 혹여 땀띠라도 날까 봐 걱정이었다.
얼음처럼 차가운 돗자리가 깔려 있는 침대 위에서 그녀는 팔다리를 쭉 펴고 몸을 뒤척였다. 그때, 돗자리보다 더 차가운 물건이 그녀의 몸에 부딪혔다. 그건 꼭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그녀의 다리를 어루만졌다.
위지불이는 깜짝 놀라 두 눈을 크게 떴다. 이번에는 그녀의 감각이 더 또렷해졌다. 그 물체는 그녀의 다리 위를 기어오르고 있었다. 혼비백산한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침대에서 뛰어내렸고 그대로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때, 누군가 앞을 막아서며 초조한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이냐?”
위지불이는 곧바로 그의 등 뒤에 숨었다. 입술이 바들바들 떨려서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뱀, 뱀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