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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766)화 (765/1,192)

제766화

가게에는 그녀 말고 다른 손님이 없었기 때문에 부인도 자리에 앉아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봉미초鳳尾草라는 풀이 있는데, 색은 자주색이고 크기는 이만해요.”

부인이 손짓하며 설명했다.

“아주 치명적인 독이 있어서 봉미초가 눈에 보이거든 절대 만져선 안 돼요. 또 전갈자錢蝎子라고 불리는 나무 열매가 있는데 파란색에 동글동글한 모양이랍니다. 겉에는 노란색으로 잔가시가 달려 있지요. 이것도 맹독을 가졌어요. 햇빛에 말리면 약으로 쓸 수 있지만, 파란색일 때 먹으면 곧바로 죽습니다. 이 나무는 타곤성에 아주 많으니 조심해야 해요. 그리고 또 밀랍화蜜臘花라고…….”

위지불이가 그녀의 말을 끊었다.

“전갈자가 타곤성 안에 많다고요? 만약 어린아이들이 따서 잘못 먹기라도 하면 어떡해요?”

“전갈자를 잘못 먹고 죽은 아기들도 있긴 하지요. 하지만 그 나무는 신령이 돌봐 주는 나무라 함부로 베어서도 안 되고 옮길 수도 없어요. 부모들이 잘 돌보면 그리 큰 문제는 없답니다.”

위지불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생긴 나무인지 모르겠네요. 며칠 동안 성을 돌아다녀야 하는데 전갈자처럼 보이면 바로 피해야겠어요.”

부인이 대꾸하기 전에 남편이 먼저 말을 가로챘다.

“우리 집 뒷문에 한 그루 있으니 가서 한번 봐요.”

위지불이는 크게 기뻐했다. 어쩐지 오늘은 뭐든 잘 풀리는 기분이었다. 밥을 먹는 동안 독약까지 찾아내다니. 그녀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뒷문이 어디예요? 가서 좀 볼게요.”

남편은 그녀를 직접 뒷문으로 안내했다. 어두운 장랑을 가로지르자 뒷문이 보였다. 뒷문에서 나와 나무 계단으로 내려가니 커다란 나무가 있었다. 그가 나무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저게 바로 전갈자 나무요. 마침 열매가 나는 계절입니다. 가까이 가서 어떤 모양인지 살펴보시고 저렇게 생긴 건 절대 먹지 마세요. 예전에 타지에서 왔던 손님이 이걸 먹고 죽는 일도 있었으니까.”

위지불이가 말했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먼저 들어가세요. 전 잠시 둘러보다 들어갈게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무 계단을 올랐다. 위지불이는 커다란 나무 앞에 섰다. 역시 파란색 열매가 달려 있었다. 작고 동글동글한 모양에 노란색 가시가 돋아 있는 게 부인이 설명한 것과 똑같았다. 그녀는 주변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는 서둘러 두 알 따서 주머니에 넣은 뒤, 휘파람을 불며 돌아갔다.

독을 찾은 위지불이는 여유롭게 타곤성을 관광했다. 커다란 나무다리를 지나는데 드넓은 광장이 나왔다. 마치 임안성 천교天橋 아래의 모습 같기도 했다. 광장엔 많은 이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이따금 손뼉을 치며 떠들썩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엄격한 부모님을 둔 위지불이는 바깥을 구경할 기회가 없었다. 늘 바깥세상에 목말라 하던 그녀는 소란스러운 광장을 발견하자마자 곧장 사람들 틈에 섞여 들어갔다. 그곳에서는 누군가 칼로 묘기를 부리고 있었다.

그녀는 임안성에서도 칼 묘기를 본 적 있었다. 임안성에선 육중한 사내들이 광이 나는 칼을 휘둘러 댔다. 하지만 남원의 칼 묘기에선 작은 칼을 사용했다. 묘기를 부리는 자는 거뭇한 피부에 마르고 작은 체구를 가진 이였다. 처음엔 날카로운 칼 두 자루를 공중으로 던지더니 뒤이어 세 자루, 네 자루, 다섯 자루…….

칼이 한 자루씩 늘어날 때마다 관중들의 환호는 더 커졌다. 위지불이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묘기를 지켜보았다. 예전에 계란을 던져 묘기를 부리는 건 본 적 있었다. 계란을 던지는 것도 대단한데 칼을 던지다니! 대체 눈이 몇 개나 달려야 한단 말인가? 제대로 보지 못했다간 바로 칼에 찔릴 텐데. 그녀는 진심으로 감탄이 절로 나왔다. 재능 있는 사람은 담도 정말 크구나!

재주꾼은 칼 여덟 자루를 동시에 던졌다. 한 자루 한 자루 서늘한 빛을 뿜어내지 않는 게 없었다. 그녀는 공중에서 예리한 호선을 그리는 칼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여덟 자루의 칼을 모두 받아 낸 재주꾼은 묘기를 멈추고 관중들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그리곤 모자를 벗어 돈을 요구했다. 군중들은 간격이 조금 느슨해졌다. 일부는 자리를 떴고, 새로운 이들이 자리를 잡았다. 또 어떤 이들은 동전을 던져 주기도 했다. 그녀도 재주꾼의 모자 안에 동전을 던져 주었다. 그자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은 동그랗게 뜨더니, 그녀에게 허리를 깊숙이 숙여 인사를 하고는 작은 비수를 선물로 주었다.

안 그래도 단도를 빼앗겨 난감하던 차인데… 적절한 때에 비수를 선물 받은 셈이었다! 그녀는 사양하지 않고 비수를 받았고, 웃으며 군중들 사이를 빠져나왔다.

오른쪽에서도 무슨 공연을 하는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군중 바깥에 있는 아이들은 까치발을 들고 안을 바라볼 정도였다.

위지불이는 사람들을 헤집고 안으로 들어갔다. 중앙엔 뱀을 목에 칭칭 감은 남자가 서 있었다. 목뿐만 아니라 머리에도 한 마리, 팔뚝에도 한 마리씩 감겨 있었다. 커다란 뱀들은 고개를 빳빳이 치켜세우고 혀를 날름거리며 관중들을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위지불이는 순간 털이 쭈뼛쭈뼛 서는 기분에 서둘러 밖으로 빠져나왔다. 위지불이가 유일하게 무서워하는 게 있는데 바로 뱀이었다. 뱀의 미끌미끌하고 음산한 모습만 떠올려도 절로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

무리 밖으로 빠져나와도 여전히 무서움이 가시지 않았던 그녀는 뱀이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져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결국 그녀는 길가에 심어진 나무 아래에 다다라서야 발걸음을 멈추었다.

타곤성에는 어딜 가든 오래된 보리수나무가 많았다. 얼기설기 뒤엉켜 있는 수염뿌리는 지면 위로 툭툭 튀어나와 있었다. 덕분에 많은 이들이 꼬불꼬불 얽힌 뿌리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위지불이도 적당한 곳을 찾아 앉았다. 멀지 않은 곳에 누군가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고 있었고 그 옆에선 악기가 연주됐다. 꼭 조롱박처럼 생긴 것을 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호로사葫蘆絲라 불리는 악기였다.

고운 치마를 입은 여인은 하늘하늘한 자태로 춤을 췄다. 처음엔 세 사람이 춤을 췄는데, 점점 더 많은 이들이 합류하더니 어느새 남자 여자 가리지 않고 어울려 함께 춤을 췄다.

위지불이는 남원 사람들은 정말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누군가 악기만 연주해 주면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다들 신나게 춤을 추는 것 같았다. 오늘만 해도 저렇게 춤을 추는 사람들을 수도 없이 봤다. 동월이었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미친 사람이라며 손가락질당하기 십상이었다.

하지만 남원에선 이게 정상인 듯 다들 춤 실력을 뽐냈다. 그녀는 나무 기둥에 기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들을 지켜보았다. 나뭇잎 사이로 따스한 햇볕이 내리쬐어 아주 포근했다. 너무 편안하면 쉽게 졸음이 오는 법. 위지불이는 느리게 눈을 깜빡이더니 결국 고개를 푹 숙인 채 잠에 빠져 버렸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주변에는 한 사람도 없었다. 흠칫 놀란 그녀는 서둘러 짐을 확인했다. 자루는 전부 그대로 놓여 있었고 안에 있는 물건도 그대로였다. 허리춤에 달려 있던 돈주머니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남원 사람들이 순박한 편이라 다행이지 안 그랬다면 전부 다 도둑맞았을 것이다.

그녀는 기지개를 한 번 켜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쩐지 주변에 아무도 없다 했더니, 해가 서쪽으로 기울 때까지 잠이 든 것이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바지에 묻은 먼지를 털었다. 그리곤 자루를 하나씩 짊어지고 앞으로 걸어 나와 텅 빈 광장을 바라보았다. 어쩐지 조금 아득한 기분이었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한담?

광장은 정말 넓었다. 장을 서는 용도로 만들어진 공간인 듯했다. 민가나 가게가 하나도 없었기에 길을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광활한 광장과 피처럼 새빨간 노을을 멍하니 바라보니 별안간 고향이 너무 그리웠다.

사실 아버지는 딸을 낳은 걸 싫어하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원하는 건 어떻게든 구해 주려고 하셨다. 어머니는 성질이 괴팍해서 그녀에게 화를 자주 내셨지만 대부분 그녀가 잘못을 저질러서 화를 낸 것이었고, 혼을 낸 뒤에는 늘 고기반찬을 해 주셨다…….

그녀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사라졌으니 부모님은 분명 그녀를 찾으려고 여기저기 뛰어다니셨겠지. 그녀는 생각에 잠겼다. 그녀가 집에 돌아가면 어머니는 분명 그녀에게 삿대질을 하며 욕을 퍼붓겠지? 어쩌면 목숨이 날아갈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때, 어딘가에서 또다시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 들리는 곡조는 낮에 들었던 것과는 달리 슬프고, 처량했다. 말로 설명할 수 없이 몰려오는 그리움에 위지불이는 이역만리에 있는 부모님이 생각나 우울하기 짝이 없었다.

차라리… 이대로 집에 돌아갈까. 남제화가 그녀에게 준 돈이 제법 되니 임안으로 돌아가기에는 문제가 없었다. 남원의 개를 죽이지 못한 건 아쉽지만, 이렇게 많은 것들을 샀으니 그래도 헛수고는 아니었다.

* * *

해가 서쪽으로 조금씩 기울 때쯤, 남제화는 복도에 서서 먼 곳을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에 잠긴 것인지 도통 알 수 없었다. 강암룡은 허리를 숙인 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폐하, 이 시간이 되도록 오지 않는 걸 보니, 아무래도 도망친 것 같습니다. 길을 잃었다면 금패가 있으니 아무에게나 물어보면 돌아오는 길을 알 수 있을 텐데요. 붙잡아 올 사람을 보내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남제화가 담담히 말했다.

“만약 정말 도망을 간 것이라면, 잡아 와서 무엇 하겠느냐? 짐은 억지로 붙잡아 놓는 건 싫다. 떠나겠다면 그리하게 내버려 둬야지. 안 그래도 버티기 힘든 궁에 무엇 하러 그 애를 끌어들이겠는가.”

“…….”

늘 시시덕거리며 장난을 일삼던 황제가 탄식을 내뱉자 그는 조금 낯설었다. 남제화가 황자였을 땐 얼마나 위풍당당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황제가 된 지금은 동월에 신복하길 원했다. 그리고 여제는 비록 감금되긴 했지만, 여전히 빠져나올 틈을 노렸고 여러 방면에서 견제를 일삼았다.

결국 황제는 뜻을 이루지 못해 우울해했고, 그 기간이 길어지니 성격까지 변했다. 그저 현 국면을 유지하기 위해 황제 자리를 유지하고 있을 뿐, 그는 궁에서 조용히 시들어가고 있었다.

* * *

달빛도 자취를 감춘 밤이 찾아왔다. 남원의 황궁은 적막에 휩싸였다. 순시를 도는 보초병들은 질서정연한 발동작으로 채석이 깔린 노면을 걸어갔다. 이따금 허리춤에 찬 패도가 갑옷에 닿아 금속이 마찰하는 소리가 났다.

위지불이는 요 며칠 동안 거의 밖으로 나가지 않았지만, 남제화의 침궁 주변 상황은 제법 잘 파악하고 있었다. 덕분에 그녀는 호위병을 피해 고양이처럼 재빨리 나무 계단에 올랐다. 문을 들어서기 전에 신발을 벗어 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조용히 안으로 들어간 그녀는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자 주변을 둘러보았다. 모든 게 다 완벽했다. 방 안에는 지난번처럼 우뚝 서 있던 그림자, 그러니까 보초병도 없었다. 아마 그날 밤에는 그녀가 입궁한 걸 미리 알아차리고 남제화가 일부러 병사들을 방 안에 배치한 것 같았다.

하지만 오늘은 그녀가 도망쳤을 거라 생각했는지 아무도 세워 두지 않은 듯 보였다. 아마 남제화도 그녀가 다시 돌아와서 자신을 암살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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