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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761)화 (760/1,192)

제761화

그는 위지불이의 눈앞에서 손을 흔들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이냐? 밥이 다 식겠구나.”

위지불이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혹여 그가 무언가를 알아차릴까 봐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아무것도요. 밥이 아주 맛있네요.”

“남원엔 좋은 게 참 많다. 쌀도 그중 하나지. 앞으로 오래 지내다 보면 너도 자연스레 알게 될 것이다.”

누가 오래 있겠다고?! 위지불이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임무만 완성하면 그녀는 동월로 곧장 돌아갈 것이다.

밥을 우물우물 씹은 위지불이는 저만치에 차려져 있는 반찬들을 흘겼다. 보기만 해도 새콤달콤하고 끈적끈적한 게 속이 메스꺼울 정도였다. 위지불이는 그 반찬들을 한입 맛본 뒤로 다시는 젓가락에 손을 대지 않았다. 밥그릇에 있는 밥을 숟가락으로 다 긁어모은 그녀가 대수롭지 않은 척 물었다.

“…폐하, 점심에도… 같이 밥을 먹을 거요?”

“물론이지.”

남제화가 웃으며 말했다.

“그저 한 사람 몫의 그릇과 수저만 더 차리면 되는 것을. 안 그래도 누군가 짐과 함께 밥을 먹어 주길 바라던 참이었다.”

그의 대답에 위지불이는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이제 한나절이면 넌 곧 숨을 거둘 것이다. 저승에 가면 우리 공자를 모시고 밥을 먹을 수 있을 터.

자객에게 독약과 마취약 등은 필수품이었다. 위지불이는 자신이 응당 남원의 개에게 고마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몸수색도 하지 않고 감시도 심하게 하지 않아 이 모든 계략이 가능한 것 아니겠는가! 약도 있고 이동도 자유롭겠다… 독을 타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그녀는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일부러 어선방을 찾아가지 않았다. 물론 어디가 어선방인지도 몰랐다. 여기저기 물어보다 괜히 경계심만 키울 수도 있으니 당연히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했다. 지금 그녀는 그의 시종인 셈이었다. 식사 전에 음식을 옮기면서 쥐도 새도 모르게 독을 타면 될 일!

점심은 야외의 보리수나무 밑에 차려졌다. 위지불이는 남제화를 따라 부드러운 융단 위를 맨발로 거닐며 부들방석에 앉았다. 식탁에는 맑은 물 두 잔이 놓여 있었다. 황제가 잔을 집어 들자 그녀도 서둘러 잔을 들고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물을 다 마시고 고개를 내리니 다들 그녀를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위지불이는 괜스레 뒤가 켕겼다. 설마 그녀의 계획이 벌써 들통이라도 난 것이란 말인가? 말도 안 되지… 아직 독도 타지 않았는데.

그때 남제화가 잔에 담긴 물로 입을 헹구더니 금색 대야에 물을 뱉었다. 그가 물었다.

“양칫물이 그리 먹고 싶더냐?”

위지불이가 태연하게 말했다.

“여긴 참 이상하네요. 입을 두 번이나 헹궈야 하나요? 우리 동월에서는 아침에 일어나서 한 번만 헹구면 되는데.”

“우리는 밥을 먹기 전에 항상 입을 헹궈야 한다. 양칫물이 마시고 싶거든 저녁에도 있으니 그때 마시거라.”

“…….”

누가 남원의 개 아니랄까 봐. 기고만장하지 말거라. 곧 큰코다치게 해 줄 테니.

쟁반을 든 궁녀들이 줄지어 다가왔다. 쟁반에는 모락모락 김이 나는 음식이 담겨 있었다. 위지불이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뻗었다.

“고생이 많군요. 내가 할 테니 이리 주세요.”

위지불이는 음식을 받아 조심스레 식탁에 올려 두었다. 얼핏 보기에는 제법 열심히 일하는 노비 같았다. 남제화가 그녀를 힐끔 바라보며 빙긋 미소를 지었다.

“궁녀들에게 시키면 되니 넌 그냥 앉아 있거라.”

“제가 시종 아닙니까.”

위지불이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폐하와 함께 식사하는 것도 이미 영광스러운 일인데, 이런 일도 하지 않는다면 분수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이지요.”

그 말을 들은 강암룡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분수라는 걸 알고 있긴 하단 말인가? 성격 좋은 황상을 만났으니 다행이지, 여제였다면 이미 목이 댕강 잘려 나갔을 것이다.

위지불이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독을 탔다. 그녀는 흥분된 마음을 좀처럼 가라앉히기 어려웠다.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그녀는 자신이 만진 모든 그릇에 독을 탔다. 남원의 개가 제아무리 신중하다 한들 이번에는 피해 갈 수 없을 것이다. 그가 곧 눈앞에서 피를 토하고 쓰러질 걸 생각하니 그녀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왜 그러느냐?”

남제화가 그녀에게 물었다.

“네? 뭐요?”

그가 유쾌하게 웃었다.

“벌레가 달려들기라도 한 것이냐?”

“잉?”

위지불이는 그제야 깨달았다. 너무 흥분한 나머지 몸을 계속 흔들고 있던 것이다. 그녀는 곧장 정자세로 서서 얼굴을 굳혔다.

“아닙니다. 배가 너무 고파서요. 폐하, 어서 드십시오.”

“그래, 먹자.”

남제화는 한 손에 밥그릇을, 다른 한 손에 젓가락을 들었다. 위지불이는 젓가락을 든 그의 손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녀가 독을 탄 그릇에 그의 젓가락이 닿고 그대로 입에 넣을 때까지 빤히……. 이윽고 그는 검붉은 입술을 오물거리며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황제가 죽다니… 별안간 조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겉가죽은 제법 반반한 자거늘…….

의심을 피하고자 위지불이도 황제가 먹은 음식을 집어 입에 넣었다. 이미 해독제를 먹었기 때문에 그녀는 겁낼 것 없었다. 그녀는 음식을 씹으며 황제를 유심히 관찰했다.

그런데 무언가 조금 이상했다. 황제가 먹는 음식은 전부 그녀가 독을 탄 음식뿐이었다. 꼭 그녀가 독을 탄 걸 아는 것처럼 독을 타지 않은 음식에는 전혀 손을 대지 않았다.

위지불이는 조용히 긴 한숨을 내쉬었다. 제 스스로 저리 죽으려 하다니… 저자의 죽음에 그녀를 책망해선 안 될 일이었다. 남제화가 음식을 먹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점심에 차린 음식이 입맛에 더 잘 맞나 보구나? 아침보다 더 많이 먹는 듯한데.”

위지불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괜찮네요. 폐하는 음식이 입에 잘 맞으세요?”

남제화가 웃으며 말했다.

“매일 똑같으니 특별할 것도 없다.”

위지불이가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오늘은 아주 특별할 텐데? 이제 곧 복통을 호소하겠지. 낄낄…….

하지만 복통은 찾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식사가 끝나가는 데도 황제는 아무런 발작도 일으키지 않았다. 위지불이는 정말 의아했다. 설마 약을 너무 적게 탄 것이란 말인가? 하지만 저리 많은 그릇들을 비워내지 않았는가. 다 합치면 결코 작은 양이 아니었다.

남제화는 마침내 식사를 마치곤 궁녀에게 차를 받아 찻잎을 건져냈다. 그때, 그가 갑자기 미간을 찌푸리더니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위지불이를 바라보았다. 위지불이는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드디어 왔구나. 그녀는 매우 침착하게 그의 눈빛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폐하, 왜 그러세요?”

남제화가 찻잔을 놓더니 입술을 할짝댔다.

“맛이 조금 이상하구나. 네가 독을 탄 것이 아니냐?”

위지불이의 눈이 동그래졌다. 너무 직설적인 그의 질문에 당황한 것이다.

“이건 무색무취의 용계수龍癸手가 아니더냐?”

인정해야 할까… 아님 아니라고 딱 잡아떼야 할까. 위지불이는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런데 독을 분명 먹었음에도 남원의 개는 왜 아직도 멀쩡한 것일까. 그녀가 말했다.

“무색무취라면 폐하는 어찌 알아냈습니까?”

“짐의 미각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기 때문이지. 보통 사람은 맛을 느끼지 못하지만 짐은 느낄 수 있다.”

위지불이는 흠칫 놀라더니 또다시 그에게 물었다.

“정말 독이라면 폐하에게 어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입니까?”

남제화가 한껏 거만하게 웃었다.

“그건, 말해 줄 수 없다.”

성공을 목전에 두고 일을 그르친 것도 억울한데, 원인도 알려 주지 않는다니! 위지불이는 가슴이 다 타들어 가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무색무취의 용계수를 탄 게 맞았다. 용계수는 먹자마자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는 맹독성 독극물인데, 남원의 개는 어찌 아무렇지도 않단 말인가? 대체 왜? 하지만 그녀의 대처도 제법 빨랐다. 그녀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폐하, 농담하시는 거요? 독이 어디 있다는 거예요? 함께 음식을 먹었지만 전 멀쩡하잖아요!”

“넌 미리 해독제를 먹었기 때문이지. 짐이 무탈할 수 있었던 것은…….”

남제화가 웃으며 말했다.

“짐은…….”

위지불이는 귀를 쫑긋 세우며 몸을 앞으로 가져갔다.

“…되었다. 안 알려줄 것이다.”

남제화는 여유롭게 차를 마셨다. 위지불이는 얼굴이 새빨개진 채 입술을 힘껏 깨물었다. 이런 개자식, 어디 두고 보라지!

남제화는 빨개지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결국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그녀도 존엄한 인간이거늘, 남원의 개에게 이렇게까지 희롱을 당하다니. 정말…….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를 매섭게 노려본 뒤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잠이나 한숨 자고 일어날 생각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큰 황궁에 그녀가 지낼 곳이라도 있으니 참 다행이었다. 게다가 방에 있으면 남원의 개 말고는 그녀를 방해하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위지불이는 싸움에서 진 수탉처럼 풀이 축 처진 채 침대에 앉았다. 암살도 실패해… 독살도 실패해… 그다음엔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남원의 개는 요괴라도 되는 건가? 어째서 독극물을 먹고도 죽지 않는단 말인가!

그때, 창밖에서 음악 소리가 들렸다. 무슨 악기가 저리 특이한 선율을 내는 것일까. 듣기만 해도 기분이 다 좋아질 정도였다.

위지불이가 창가로 다가가니, 조금 전 점심을 먹던 보리수나무가 보였다. 식탁에 있던 음식은 이미 치워진 뒤였고, 대신 차와 과일이 놓여 있었다. 하얀 접시 위에 놓인 오색찬란한 과일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

위지불이는 한 번도 먹어 본 적 없는 과일이었다. 모양은 조금 이상하긴 한데, 과연 맛있을까? 그녀는 남원의 개가 푹신한 등받이에 나른하게 기대 누운 모습을 지켜보았다. 심지어 두 다리를 식탁 끝에 걸쳐 놓고 까딱거리기까지 했다. 이게 어딜 봐서 황제의 모습이란 말인가? 건달이 따로 없었다.

그의 주위에 있던 궁녀들 중 누군가는 황제에게 과일을 먹여 주었고, 또 누군가는 수가 놓인 융단 위에서 춤을 추었다. 무희들은 몸에 딱 달라붙는 치마를 입고 가녀린 허리를 드러냈다. 치마에 수놓은 금실 수가 햇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그 옆으로 몇몇 악공들이 앉거나 일어서서 악기를 불고 있었다.

위지불이는 악공들이 연주하는 악기를 바라보았다. 꼭 할아버지들이 쓰는 수연통水煙筒(담배 연기가 물을 거쳐서 나오는 담뱃대의 통) 같았지만, 수연통보다 몇 배는 더 컸다.

기다란 대나무 통 위에 있는 구멍을 악공들이 수시로 눌렀다 뗐다. 볼을 빵빵하게 부풀려 숨을 불어넣으면 아름다운 소리가 구멍을 통해 흘러나왔다. 위지불이는 난생처음 듣는 남원의 노래에 눈을 크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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