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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753)화 (752/1,192)

제753화

“정말요?”

백천범은 크게 기뻐했다. 그녀가 사앵앵에게 물었다.

“정말 우리한테 팔았어?”

사앵앵은 피가 솟구치는 것 같았지만, 얼굴에는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하하, 마마께서 좋으시다면 그걸로 됐습니다.”

백천범은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조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렇게 힘겹게 만든 산장을 어째서 판 거야?”

사앵앵은 황제의 위협적인 시선을 느끼며 열심히 이야기를 꾸몄다.

“이곳은 원래 마마를 위해 만든 산장입니다. 그래서 이름도 오수산장이라고 지은 것이지요. 산장을 다 짓고 나면 바로 황상께 팔 생각이었습니다. 오늘 마마를 초청한 것도 마마께서 마음에 들어 하시는지 보려는 것이었지요. 마마께서 마음에 들어 하시면 황상께서 저와 거래를 하시려 할 테니까요.

방금도 황상과 이 얘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황상께서도 산장을 사는 데 동의하셨고요. 가격도… 네… 잘 이야기하였습니다. 저와 황상 모두에게 아주… 아주 만족스러운 거래이지요.”

백천범은 고개를 끄덕였다. 애당초 자신을 위해 만든 산장이었다니. 어쩐지 미꾸라지를 잡는 곳도 있고, 올라갈 수 있는 나무들도 많고! 그녀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채워진 곳이었다. 그녀는 교태를 부리며 황제의 어깨에 기댔다.

“고마워요, 서방님. 정말 마음에 들어요.”

황제는 그녀를 품에 끌어안고는 아무 거리낌 없이 입을 맞췄다.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오. 짐과 사 주인장의 마음이 헛되지 않았구려.”

사앵앵은 억울하기 짝이 없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누가 그녀의 애타는 속을 알까…….

* * *

집으로 돌아온 사앵앵은 분을 참을 수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황제의 파렴치함을 폭로하는 혈서를 남기고 대문에 목을 매고 죽고 싶었다. 하지만 잠시의 상상일 뿐 실제로 그리하진 못했다. 자신의 목숨을 아껴야 하는 것이 그 첫 번째 이유였고, 두 번째는 황제의 심기를 건드렸다간 집안 식구들의 목숨마저 위태로워지기 때문이었다.

그녀와 황제의 거래는 아무도 몰랐기에 다들 집으로 돌아오며 싱글벙글 웃어 댔다. 아하가 말했다.

“황상과 마마께서 우리 산장을 어찌나 좋아하시던지요. 황상과 마마께서 먼저 묵고 가셨으니 정식으로 개업만 하면 손님들이 물 밀듯 몰려들 것입니다. 부인께선 돈 받을 준비만 하십시오.”

주자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전 황후 마마께서 그렇게 예쁘실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차마 정면으로 바라볼 수도 없을 정도더군요. 그런데도 허세는 전혀 없으시고, 물에 들어가 물고기도 잡으시고 나무에 올라타기까지 하셨습니다. 우리랑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 정말 친근했습니다. 마마께서 던진 복숭아를 제가 받아내니 절 보고 활짝 웃어 주시기도 했습니다.”

“저도 황상께서 그렇게 멋지실 줄은 정말 몰랐…….”

금천아가 입을 열자마자 사앵앵이 거칠게 그녀의 말을 끊었다.

“멋지긴 개뿔!”

깜짝 놀란 사장풍이 서둘러 그녀의 입을 막고는 곧장 곁채로 데려갔다. 그는 빗장을 걸어 잠근 뒤에야 한숨을 내쉬곤 낮게 호통쳤다.

“어찌 감히 그런 말을 하는 것이오? 소문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목숨이 아깝지 않소?”

안 그래도 억울했던 사앵앵은 사장풍의 호통까지 듣자 분노와 슬픔이 솟구쳤다. 그녀는 침대에 엎어진 채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사장풍은 영문을 알 길이 없었다. 분명 줄곧 즐거워하던 사람이 어찌 돌아오자마자 운단 말인가? 즐거움 끝에 슬픔이 온다더니, 정말 그런 것이란 말인가?

“부인, 어찌 우는 것이오?”

사장풍이 조심스레 다가갔다.

“말해 보시오. 누가 당신의 심기를 건드렸소? 내가 가서 혼쭐을 내 주겠소.”

“가요!”

사앵앵은 침대에 얼굴을 묻고 소리쳤다.

“가서 황상을 한 대 때리고 와 줘요.”

사장풍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누구? 황상? 황상이 당신에게 어찌했길래?”

사앵앵은 한바탕 울고 나니 답답했던 가슴이 한결 나아졌다. 몸을 일으켜 자리에 앉은 그녀는 소매로 눈물을 닦고 흐느끼며 말했다.

“황상이, 강제로…….”

순간 사장풍의 눈매에 매섭게 힘이 들어갔다. 심지어 허리춤에 있던 검까지 뽑아 들었다.

“이런 젠장, 지금 바로 입궁해 그자와 결판을 내겠소!”

사앵앵이 그를 붙잡았다.

“아직 말 안 끝났어요. 죽으려고 환장했어요? 날 어떻게 했다는 게 아니라… 내 산장을 강제로 샀어요.”

사장풍은 그제야 긴 숨을 몰아쉬고는 검을 검집에 다시 집어넣었다.

“내 말이 그 말이오. 마마가 곁에 있는데 황상이 어찌 감히 당신에게 외심을 먹겠냐고.”

사앵앵이 성을 내며 소리쳤다.

“차라리 날 어떻게 하는 게 더 낫지, 난 산장이 아까워 죽겠다고요!”

“…앵앵, 말할 땐 부디 이 부군의 기분도 헤아려 주시오.”

사앵앵은 눈을 희번덕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해 보시오. 대체 무슨 일이오? 황상이 오수산장을 산다니?”

“벌써 샀어요. 오늘 사람을 보내서 계약 증서와 은표를 보내 주시겠대요.”

사앵앵은 몸을 구부리고 고개를 숙인 채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다.

사장풍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황제가 왜 산장을 사려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모든 걸 마마의 입맛에 맞게 꾸며 놓아 마마께서 신나게 즐기지 않으셨소. 황상께서 애처가라는 건 만천하가 다 아는 일이고. 마마께서 좋아하시는 거라면 황상께서 어떻게든 손에 넣으려 하실 테지.

당신이 오로지 마마만 신경 쓰느라 황상을 잊은 것이오. 당장 눈앞의 이익을 탐내느라 후환을 생각하지 못한 것이지. 그래도 이런 일을 겪었으니 그만큼 더 현명해질 것이오. 부인, 앞으로는 좀 더 주의하시오.”

사앵앵은 좀처럼 인정할 수 없었다.

“마마께 다 말씀드려야겠어요.”

“마마께선 마음씨가 착하시니, 이 일을 아신다면 분명 당신에게 산장을 돌려주실 것이오. 그러나 정말 그리한다면 황상의 미움을 사는 것이오. 황상의 미움을 사면 어찌 되는지 당신도 잘 알겠지.”

사장풍이 말하지 않아도 그녀 또한 잘 알고 있었다. 몰랐다면 산장에서 이미 백천범에게 사실대로 털어놓았을 터. 그녀는 침대 기둥을 손바닥으로 힘껏 내리쳤다.

“황상은 정말 소인배예요.”

사장풍이 코웃음을 쳤다.

“내가 당신보다 황상을 더 오래 알았소. 황상이 초왕이었을 때 어찌나 권모술수에 능했는지 모르오. 도저히 상대할 수가 없었소. 당신도 황상은 절대 이길 수 없으니, 조심하는 게 좋을 거요.”

장사꾼에게서 재물을 빼앗는 것은 호랑이 입에서 먹이를 빼앗아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원한은 두고두고 사앵앵의 가슴에 새겨질 것이다. 황제에게서 잃었으니, 그녀는 황후 마마에게서 되찾아 오기로 했다.

결국 사앵앵은 더욱더 자주 궁을 찾았다. 그것도 늘 황제가 있을 시간에 맞춰 가서 황후에게 물건을 보여 주었다.

사랑하는 여인 앞에서는 제아무리 천자라 할지라도 평민과 다를 바 없는 법. 값을 흥정하기 부끄러운 것은 황제도 마찬가지였다. 황제는 심지어 가격도 묻지 않고 곧장 그녀에게 돈을 주라고 분부했다. 가격은 그녀가 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얼마를 부르든 아무도 따져 묻지 않았다.

백천범은 돈을 헤프게 쓰는 성향이 아닌지라 자주 물건을 사는 것을 원치 않았다. 게다가 물건값이 싸지 않다는 건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사앵앵이 또 물건을 가져올 때면 백천범은 최대한 완곡하게 사양했다. 황제가 사라고 권유해도 그녀는 원치 않았다.

황제의 마음을 정확히 예측한 사앵앵은 아예 황제에게 곧장 물건을 들이밀었다. 황제가 황후에게 선물을 주면 되는 일이니 사앵앵은 그저 물건만 팔면 되었다.

그녀에게는 각종 신기한 물건뿐만 아니라 연지나 분첩, 향, 눈썹먹 등에 쓰는 물감, 진귀한 비단과 정교한 머리 장신구, 타국의 특색 있는 먹거리와 희귀한 화초까지 없는 게 없었다. 황후가 조금이라도 관심을 보인다면 그 뒤는 그녀에게 유리하게 흘러갔다. 황후에게 인심이 후한 황제는 가져오는 족족 후한 값으로 물건을 샀다.

매번 입궁할 때마다 그녀는 반짝이는 금원보나 새하얀 은전, 엄청난 액수의 은표를 받아 왔다. 황제에게 받아 온 돈 덕분에 사앵앵의 상처는 점점 치유되었고 황제에 대한 원망도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나중에는 오히려 그를 대범한 군자라고 여길 정도였다.

황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백천범은 그가 주는 선물이 대부분 사앵앵에게서 사 오는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 그녀가 걱정스러운 마음에 황제에게 물었다.

“앵앵이가 가져오는 물건이 좋긴 하지만, 너무 비싸요. 앞으로는 물건을 가져오지 말라고 하는 게 좋겠어요.”

황제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걱정 마시오. 당신 부군은 천자가 아니오. 이 정도 돈도 없을까 봐? 당신 마음에만 든다면 그 정도는 얼마든지 사 줄 수 있소.”

그와 함께 지내느라 깊은 궁에 틀어박혀 있는 여인에게 이 정도 즐거움도 주지 못한다면 황제를 안 하느니만 못했다. 백천범이 말했다.

“황상은 명군이시잖아요. 제게 이런 것들을 사 주시느라 돈을 펑펑 쓰는 걸 알면 남들이 뒤에서 흉을 볼 거라고요.”

황제는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녀의 걱정 대부분은 그를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백천범을 끌어안고는 이마를 맞댔다. 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그런 건 전혀 겁나지 않소. 이렇게 쓴 돈은 언젠간 다시 돌아올 테니까.”

백천범은 미간을 찌푸리며 그에게 물었다.

“돈이 제 발로 돌아온다고요? 어떻게요?”

황제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코끝에 자신의 코를 맞댔다.

“천기를 누설해서는 안 되는 법.”

* * *

작년 겨울은 조금 이상했다. 눈이 한 번도 내리지 않았다. 이를 두고 각종 추측이 난무했다. 좋은 징조라는 이도, 불길한 징조라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백성들은 열심히 일하는데 바빴기에 사는 데 지장만 없으면 눈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은 날씨가 춥지만 봄이 되면 좋아질 거라는 생각뿐이었다.

경칩驚蟄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춘분春分이 찾아왔다.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며 거리를 흠뻑 적시자, 도성 전체가 안개에 휩싸인 듯한 느낌을 주었다. 백성들은 겨울에 눈이 오지 않고 봄에 비가 내리니 좋은 일이라고 여겼다. 적어도 농부들의 걱정을 한시름 덜어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번 내리기 시작한 비가 보름이나 이어질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처음엔 안개처럼 이슬비가 내리더니, 뒤이어 추적추적 내리는 가랑비가 연신 창문을 두드렸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장대같이 굵은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빗줄기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바람에 몇 걸음 떨어져 있는 사람도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거리 곳곳에는 물이 빠지지 않아 외출하는 것도 몹시 불편했다. 그래도 사내들은 신발을 벗고 맨발로 밖을 걸어 다녔지만, 여인들은 혹여 병이 날까 봐 아예 외출을 삼갔다.

일상생활이 불편해진 건 그나마 사소한 일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국 각지에서 수해를 입었다는 상주서가 끊임없이 황제의 탁자에 쌓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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