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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752)화 (751/1,192)

제752화

영안은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가 모닥불 옆에 놓인 탁자와 의자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기 앉을 자리가 저렇게나 많은데… 왜 하필 여기 앉으려는 겁니까?”

“의자에 앉으면 재미가 없잖아.”

묵용청양도 사발에 곡주를 조금 담아 왔다. 오늘은 황후가 특별히 그녀도 맛볼 수 있게 해 준 것이다. 그녀는 한입에 다 마시기 아까워서 아주 조금씩 할짝거렸다. 꼭 새끼 고양이가 물을 마시는 것 같았다. 드높은 산자락은 달빛 아래에서 보니 또 조금 색달랐다. 묵용청양이 갑자기 고개를 돌려 영안에게 물었다.

“우리 합환주 한잔할까?”

곡주를 한 모금 들이켜던 영안은 그녀의 말에 입에 있던 술을 다 뿜어냈다. 늘 차분하기만 하던 영 공자는 날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펄쩍 뛰었다.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 그게 무, 무슨…….”

묵용청양과 소꿉놀이를 한 적이 있긴 하지만, 이미 오래전 이야기였다. 다 커서 별안간 저런 말을 들으니 좀처럼 충격이 가시지 않았다.

“안 돼?”

청양 공주는 까만 눈을 반짝이며 그를 바라보더니 당당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늘이 우리 혼삿날이라고 치자.”

영안은 그녀가 소꿉놀이를 하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래도 견딜 수 없었다. 그는 완곡히 공주의 제안을 거절했다.

“공주 전하의 깊은 보살핌은 감사하지만, 안타깝게도 전 공주께 부족한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을 찾으시지요. 아, 제가 보기에는 금언이가 아주 괜찮더군요. 분명 공주의 좋은 짝이 될 겁니다.”

청양 공주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는가 싶더니 입술을 꽉 다물었다. 그녀가 곧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영안, 또 날 버리려는 거야? 우리가 서로 안 지가 몇 년인데, 우린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란 사이잖아. 청매죽마란 말이야…….”

모르는 이가 본다면 그녀가 지금 진심으로 얘기하는 줄 알 것이다. 영안은 정말 머리가 아팠다. ‘조정여채이랑趙貞女蔡二郎’이란 책을 본 뒤로 그녀는 틈만 나면 이 대사를 입에 달고 살았다.

어찌할 방법이 없으니 그냥 피하는 수밖에. 영안은 자신의 곡주를 챙기고 바위에서 내려와 다른 쪽으로 향했다. 다행히 묵용청양은 그를 뒤따라오지 않았다. 사금언과 가소타가 그녀에게 달라붙었기 때문이다.

한편, 모닥불에서 가장 먼 탁자에는 황제가 사앵앵을 불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사 주인장이 마음을 써 준 덕에 황후가 저리 즐거워하니, 짐이 참 고맙네.”

“황상, 과한 말씀이십니다.”

고맙다는 황제의 말에 사앵앵은 몸 둘 바를 몰랐다.

“응당 황상과 마마를 기쁘게 해 드려야지요.”

“산장을 아주 잘 꾸몄네.”

황제가 주변 경치를 둘러보며 말했다.

“이름도 황후가 마음에 쏙 들어 할 만한 것으로 지었고… 자네는 황후의 오랜 벗이 아닌가. 황후가 어떤 성격인지는 자네도 잘 알고 있을 터. 황후는 궁을 싫어하지. 예전 오수진에서 지냈을 때처럼 자유로운 삶을 원하네. 사실 짐이 황후에게 참 미안하다네. 짐이 궁을 떠날 수 없으니 황후 또한 궁에 갇혀서…….”

황제가 그녀에게 근심을 털어놓는 건 이번이 처음인지라 사앵앵은 조금 당황스러웠다.

“짐도 황후를 위해 성 밖에 강남 경치를 본뜬 별장을 만들어 주고 싶었네. 그러던 중 오늘 이곳에 오니 정말 기뻤다네. 사 주인장이 이렇게 잘 꾸며 놓았을 줄이야. 짐이 직접 했다 해도 아마 사 주인장이 한 것처럼 세심하지 못했을 테지. 정말 전부 다 황후의 마음에 쏙 드는…….”

여기까지 들은 사앵앵은 별안간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역시나, 황제가 불길한 말을 뱉었다.

“사 주인장, 짐이 이 산장을 사고 싶네. 가격을 제시해 보게.”

황제의 말에 사앵앵의 가슴은 곧장 쿵쿵 뛰었다. 아직 정식으로 손님도 맞지 않은 그녀의 산장을… 어찌 팔 수 있겠는가? 두 해가 넘도록 힘겹게 산장을 지은 것은 황후 마마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장기적인 계획은 아직 실행도 하지 못했는데, 갑자기 이리 팔라니?

하지만 그렇다고 거절을 할 수 있겠는가? 천하는 황제의 것이었다. 그가 원하는 것이라면 팔기는커녕 활짝 웃으며 두 손으로 바쳐야 했다. 황제가 이곳을 원한다는 것 자체로도 이미 그녀에게 엄청난 체면을 세워 준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녀는 이곳을 팔 마음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황제가 웃는 낯으로 물었다.

“왜, 고민되는가? 짐이 떼먹기라도 할까 봐?”

“아닙니다, 황상.”

사앵앵은 해명을 하고 싶었다.

“그것이…….”

황제가 그녀의 말을 잘랐다.

“걱정 말게. 짐은 남의 돈을 떼먹진 않으니. 가격을 말해 보게.”

사앵앵은 한숨을 내쉬고는 하고 싶은 말을 내질렀다.

“황상, 오수산장은 팔지 않을 계획입니다.”

“아?”

황제가 눈썹을 치켜세웠다.

“짐이 사는 것도 안 된단 말인가?”

그는 담담한 어조로 말했지만, 끝 음을 늘리며 무시할 수 없는 냉기를 흘려보냈다. 사앵앵은 흠칫 놀라 고개를 숙였다. 자신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은 황제였다. 천자가 성을 내는 것은 곧 피를 봐야 한다는 걸 뜻했다.

하지만 그녀에겐 목숨만큼이나 재물도 소중했다. 그녀는 이 산장을 짓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자신이 정한 목표를 달성한 뒤에 얻는 성취감과 만족감을 얻기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했던가. 어쩌면 그것은… 재물보다도 더 귀한 것이었다. 그건 금전으로도 바꿀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렵사리 산장을 완공했는데, 황제가 강제로 사 간다면 그녀의 목표가 허사가 되는 꼴일 테다. 그 기분은 정말이지… 가슴에 천불이 나는 것 같았다.

“황상과 마마께서 이곳을 좋아하신다니, 정말 크나큰 영광입니다. 하면 이렇게 하시지요. 황상과 마마께서는 언제든 오셔도 좋습니다. 미리 사람을 보내 알려만 주시면…….”

황제의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

“미리 알려주면 산장을 깨끗이 정리해 두겠다? 이렇게 넓은 곳을 그 짧은 시간에 정리할 수 있단 말인가? 누군가 산에 숨어 나와 황후에게 해가 될 짓을 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는 있고? 만약 정말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사 주인장이 책임을 질 수 있단 말인가?”

사앵앵은 얼굴이 창백해졌다. 물론 그녀가 책임을 질 수는 없을 터. 심지어 그녀의 모든 가족까지 함께 죄에 연루될 것이다. 잠시 침묵하던 그녀는 최후의 발악을 했다.

“황상, 만약 제가 그래도 팔 수 없다면 어찌하실 것입니까?”

황제가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짐도 더는 강요하지 않을 걸세. 다만.”

그가 말머리를 돌렸다.

“요즘 변방이 조금 혼란스러워서 조정에서 통관 서류를 더 엄격히 통제할 것이네. 앞으로 사가의 상대가 국경을 넘는 것도 어려워질 수 있지.”

사앵앵은 질겁한 얼굴이 되었다. 황제가 어찌 이리 뻔뻔할 수 있단 말인가……. 이건 그녀를 협박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상대를 통한 수익은 전체 사기 상점 수익의 절반에 해당했다. 통관 문서를 받지 못한다는 건 그녀의 돈길이 막힌다는 의미였다.

이렇게 음험하고 비열한 수법을 생각해 내다니. 다들 장사치는 전부 교활하다고 말하지만, 그녀는 이제야 알았다. 황제야말로 진짜 교활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녀의 잔꾀는 황제 앞에서 그야말로 새 발의 피나 다름없었다. 그녀는 소매 안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황제만 아니었다면 잔뜩 욕을 퍼붓고 싶었다.

정말 후회막심했다. 이게 다 황후의 환심을 사려고 애쓴 그녀 자신 탓이었다. 욕심이 지나쳐 황제의 소유욕까지 자극했으니.

그녀는 속으로 열심히 주판을 굴렸다. 산장 하나와 수십 개의 상대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물론 상대였다. 그녀가 장사 규모를 키울 수 있었던 것은 각지로 돌아다니며 물건을 가져오는 상대의 힘이 컸다.

게다가 제안을 거절한다면 황제는 통관 문서 외에도 그녀에게 아무 죄명을 씌워 더 큰 보복을 할 것 같았다. 황제의 미움을 산다면 장사는 둘째 치고 목숨을 부지하는 것도 힘들었다.

“알겠습니다.”

그녀는 어렵사리 입을 열고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황상께서 마음에 드신다니 기쁘게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러나 가격은… 산장을 짓는데 투입된 금액과 인건비까지 다 합쳐 최소 이 정도는 주셔야 합니다.”

그녀는 손바닥을 뒤집으며 장사꾼들이 쓰는 손짓을 했다.

황제는 그녀의 손동작을 알아듣고는 웃을 듯 말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큰 금액은 아니군. 그렇게 하지.”

사앵앵이 안도의 숨을 내쉬자마자 그가 또다시 입을 열었다.

“다만 지금은 짐의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으니, 우선 절반만 주겠네. 남은 절반은 외상을 걸어 놨다가 짐에게 여유가 생기거든 그때 주도록 하지. 사 주인장 생각은 어떠한가?”

사앵앵은 이를 너무 꽉 깨물어 하마터면 이가 깨질 뻔했다. 여유가 생기면 준다니, 언제 여유가 생길지 누가 안단 말인가. 나중에 잡아뗄 게 뻔했다. 하지만, 그녀가 또 어찌할 수 있겠는가. 상대는 무려 황제인 것을. 땡전 한 푼 주지 않아도 산장을 가져갈 수 있는 사람이 바로 황제였다. 그런 황제가 절반은 주겠다고 하지 않는가.

지난번 사정우의 가게를 인수한 일로 그녀는 황제가 얼마나 음험한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황제의 뻔뻔함을 과소평가한 자신의 경솔함을 탓할 수밖에. 그가 어딜 봐서 황제란 말인가, 정말 도적이 따로 없었다!

“걱정 말게, 사 주인장. 내일 성으로 돌아가면 인편으로 저택에 은표銀票를 보낼 테니.”

그녀가 수락하기도 전에 황제는 이미 별장을 사 버렸다. 그녀가 여기서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까…….

“무슨 얘기 중이에요?”

백천범이 다가와 황제 옆에 앉더니 웃으며 사앵앵에게 물었다.

“장사 얘기 중이었어?”

사앵앵은 순간 지금껏 황제와 나눈 얘기를 전부 다 말하고 싶었다. 백천범의 성품이라면 절대 그녀의 산장을 탐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차마 황제의 면전에서 말을 꺼낼 수 없었다…….

황제가 그녀의 손을 만지작거렸다.

“춥소? 월규에게 피풍을 가져오라 하겠소.”

백천범이 말했다.

“안 추워요. 오히려 더운걸요. 만져 보세요.”

그녀가 황제의 손을 자신의 얼굴에 가져다 대며 조금 바보같이 웃었다.

“열이 나죠?”

황제는 손등으로 그녀의 얼굴을 문질러 주었다.

“조금 뜨겁긴 하오. 술을 많이 마신 것이오?”

“네.”

백천범이 아리따운 미소를 흘렸다.

“곡주가 너무 맛있어서요. 조금 마셨더니 몸이 따뜻해지네요.”

그녀는 힘껏 숨을 내쉬더니 사앵앵에게 말했다.

“이곳 오수산장의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다 마음에 들어. 고마워, 앵앵아. 오늘 정말 즐거웠어.”

사앵앵이 건조하게 웃었다.

“마마께서 즐거우시다니 다행입니다.”

“당신이 즐겁다니 더 기쁜 소식을 알려 줘야겠군.”

황제가 웃으며 말했다.

“사 주인장이 이 오수산장을 내게 팔았소. 앞으로 이곳은 우리 산장이오. 언제든 오고 싶을 때마다 와도 좋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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