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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748)화 (747/1,192)

제748화

“난 훗날 동월의 유일한 왕야가 될 거야.”

그가 지지 않고 맞섰다.

“두고 봐. 내 왕비를 원하는 여인이 부마 후보보다 적진 않을 테니까. 안타깝게도 넌 한 명에게 시집을 가야 하지만 난 왕비를 여럿 들일 수 있거든.”

그는 기세등등한 표정으로 고개를 치켜세웠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말실수를 한 것 같았다. 사봉봉이 이 말을 듣고 기분 나빠하며 어떡하지? 육황숙이 알려준 바로는, 여인들은 질투심이 많아서 많은 여인을 거느릴 거라는 소리를 해선 안 된다고 했다. 이게 다 묵용청양 때문이다. 공연히 이런 말까지 꺼내게 하다니. 청양 공주가 킥킥 웃으며 말했다.

“네가 동월의 유일한 왕야라고 확신할 수 있어? 어머니와 아버지가 아우를 또 낳아 주지 않으실 것 같아?”

백천범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즐거워하던 참이었다. 한데 딸아이가 갑자기 화살을 그녀에게 돌릴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별안간 얼굴이 빨개진 그녀는 청양에게 눈을 부릅떴다.

“어서 밥이나 먹거라. 봉봉이는 얌전히 먹고 있잖니. 넌 어찌 그리 말이 많은 것이야.”

묵용성은 드디어 청양 공주에게 반박할 만한 말을 찾았다.

“어머니께서 아우를 낳으실지 아님 누이동생을 낳으실지 어떻게 알아? 만약 누이동생이 태어나면? 유일이 아니라 유이한 공주가 되겠군.”

청양 공주가 재깍 대꾸했다.

“그렇다고 해도 난 유일한 장공주야. 넌 태자도, 황장자도 아니지. 만약 네 밑으로 아우나 누이가 또 생긴다면 네 입지는 더 난처해지겠지. 어머니와 아버지의 관심도 더는 받지 못할 테고. 가엾어라!”

묵용성은 어머니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건 느낄 수 있었지만, 아버지는 편애가 심했다. 청양 공주의 말은 그의 아픈 곳을 힘껏 찔러댔다. 사봉봉의 앞이었지만, 순간 화가 치민 그는 그녀에게 쏘아붙이려던 참이었다. 그때, 백천범이 그릇을 힘껏 탁자에 내려놓는 소리가 들렸다.

“묵용청양, 한마디만 더 해 보거라. 가법대로 처벌할 것이니.”

청양 공주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모후가 엄격한 편은 아니었지만, 손을 댄다고 할 땐 정말 가차 없이 그녀를 때렸다. 부황과는 달랐다. 부황 또한 눈을 부릅뜨고 혼을 내긴 했지만, 호통만 요란할 뿐 결국에는 늘 흐지부지 끝나 버렸다. 백천범은 묵용성을 위로했다.

“청양의 말은 듣지 말거라. 말도 안 되는 괜한 소리를 하는 것이니까. 아버지와 어머니가 널 얼마나 아끼는데.”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모후는 너무 뻔한 거짓말을 했다. 입술을 꽉 다문 묵용성은 두 눈이 빨개진 채 짧게 대답했다.

묵용성의 섬세한 마음을 사봉봉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눈시울을 붉혀선 안 될 일이었다. 그녀가 젓가락으로 묵용성에게 음식을 덜어 주며 말했다.

“전하, 뱅어 요리를 좋아하지 않으십니까. 많이 드시어요.”

그릇에 담긴 뱅어를 본 묵용성은 억울했던 마음이 금세 사르르 녹았다. 그는 사봉봉에게 티 없이 맑은 미소로 화답했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하면 어떠한가. 이렇게 그를 아껴주는 누이가 있는데!

* * *

눈 깜짝할 사이에 한 해가 지나갔다. 지난 일 년 동안 사가史家의 상점은 계속해서 눈부신 발전을 이뤄냈다. 남쪽과 서쪽으로 지점을 확장했고 역참도 몇 곳이나 늘렸다. 조정에서 발급해 준 통관 문서 덕에 상대는 더 먼 곳까지 떠날 수 있었고, 더욱 진귀한 물건과 이야기를 가지고 돌아왔다.

한 해 동안 사봉봉은 태자의 시야를 벗어나는 데 성공했다. 태자의 얼굴은 그녀의 기억에서 나날이 흐릿해졌다. 이미 열네 살이 된 태자는 국정을 대신 관리하기 시작했다. 분명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테니 그 또한 이미 그녀를 잊은 지 오래일 터.

하루는 모녀가 마차를 타고 성을 나섰다. 성 밖의 산장은 올해 사기史記 상점의 비밀 무기였다. 이 년 동안 공사를 했지만 사봉봉은 이곳에 와 보지 못해 늘 궁금해했다. 산장은 어떤 모습으로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까?

산장은 그리 멀지 않았다. 성을 나선 뒤 도로를 따라 한동안 달리다 보면 길가에 우뚝 솟은 문방門坊이 나왔다. 평평하게 잘 닦인 바닥에는 푸른 벽돌이 깔려 있었다. 비가 와도 편히 오갈 수 있었고 폭도 넓어서 두 마차가 나란히 가기에도 충분했다.

사봉봉은 문방에 큼직하게 도금된 ‘오수산장烏水山莊’이란 글자를 볼 수 있었다. 어머니의 고향인 오수가 들어간 곳이었다. 아무래도 어머니가 마음속으로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 같았다.

어느새 초여름에 접어들어 잎이 우거진 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었다. 작은 다리 밑으로는 하천이 흘렀고 산에 피어난 야생화는 낭만을 더했다. 슬쩍 둘러만 봐도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사봉봉은 오수진에 아주 짧은 시간 머물렀지만, 그곳의 풍경만큼은 뇌리에 깊이 박혀 있었다. 산장으로 들어가는 길을 유심히 지켜보던 그녀는 자연스레 많은 것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어머니, 남쪽의 경치를 본떠서 산장을 지으신 거예요?”

사앵앵이 웃으며 말했다.

“알아보겠니? 맞아. 강남만큼 풍경이 빼어난 곳은 없지. 처음엔 강남의 가무와 음식을 도성으로 가져왔으니, 이번엔 강남의 풍경을 옮겨 놓으려는 거야. 이렇게 하면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강남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잖니. 우리 오수산장에 오면 되니까.”

평원에 위치한 북방은 산의 모습도 웅장했다. 그야말로 산은 높고 강은 긴, 광활하고 웅장한 모습이 주를 이루었다. 하지만 강남은 달랐다. 강남의 산수는 산골짜기 사이로 졸졸 흐르는 개천에 더 가까웠다. 개천에 놓인 자그마한 다리와 주변의 가옥들은 매우 수려하고 운치가 넘쳤다. 그래서 많은 문인이 오랜 시간 강남에 거주했다. 풍경이 너무 아름답기 때문이었다.

사실 산장을 짓는 데는 사정우의 도움이 컸다. 그녀가 사정우에게 붙잡혔을 때, 풍경이 아주 아름다운 산장에 갇혀 있었던 적이 있었다. 사정우가 그녀를 위해 산장을 지었다고 할 땐 그저 우습기만 했다. 하지만 그곳은 정말 아름다운 산장이었다. 산장 주변을 돌아다닐 때 그녀는 그곳의 풍경에 마음을 뺏겼었다. 자신 또한 이런 산장을 짓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사정우는 아마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가 매일 만족스러운 얼굴로 산장을 둘러본 건 딴마음을 품고 있기 때문이라는 걸. 사정우의 산장이 좋긴 했지만, 그녀에겐 그저 화려한 새장에 불과했다. 아무리 예쁜 풍경이라도 오랜 시간 보다 보면 질리는 법이 아니던가.

사정우보다 더 먼 앞날을 내다본 그녀는 산장을 조금 더 특별하게 만들었다. 오수산장은 풍경뿐만 아니라 손님들에게 각종 오락을 제공했다.

중정에 도착하자 사앵앵과 사봉봉은 마차에서 내려 발길 닿는 대로 꽃 사이 오솔길을 걸었다. 따스한 미풍을 맞으며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풍경 속을 거니는 두 모녀는 모처럼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그 어느 때보다 더한 만족감을 느꼈다.

오수산장을 짓는 데만 자그마치 두 해가 넘게 걸렸다. 그 모든 과정을 되짚어 보니 사앵앵은 정말 감개무량했다. 처음 산장을 짓겠다는 그녀의 말에 사장풍은 동의하지 않았다.

“지금 하는 장사만 하지, 어찌 그런 일까지 벌인단 말이오. 돈을 주고 경치를 구경하러 올 사람이 어디 있겠소?”

그의 걱정을 그녀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아낙네가 사흘이 멀다고 성 밖을 나가 인부들과 함께 지내니, 분명 그도 걱정이 될 터. 하지만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사가 상점의 명성이 이렇게나 자자하고, 그녀와 황후 마마의 관계가 남다르다는 걸 다 아는데 누가 감히 그녀를 넘볼까.

하지만 고된 일인 건 분명했다. 특히 비가 많이 오는 계절에는 더욱더 고되었다. 매번 현장에 찾아와 시찰할 때면 온몸이 진흙투성이인 채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마차를 타고 가서 다행이지, 만약 사람들에게 그 모습을 보였다면 그녀의 화려한 면모가 크게 깎일 뻔했다.

아름다운 풍경을 구경하던 사봉봉은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녀의 어머니는 실전에 강한 사람이 틀림없었다. 자신이 마음먹은 일이라면 아버지의 반대가 있다 하더라도 늘 끝까지 밀고 나갔다. 산장에 와 보니 어머니의 노력이 엄청난 성과로 돌아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예쁜 산장은 임안성뿐만 아니라 북방 전체에서 따져도 유일무이할 것이다.

산장을 여는 날, 분명 많은 이들이 깜짝 놀랄 테지. 어머니의 머릿속에는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기발한 생각이 많았다. 아마 남북을 두루 오가며 얻은 식견과 타고난 장사꾼 기질 덕분일 것이다. 한창 걷고 있는데 뒤따라오던 금천아는 별안간 깜짝 놀라 소리쳤다.

“물고기가 엄청나게 큽니다!”

사봉봉은 길옆에 있던 연못을 바라보았다. 물고기는 이미 깊숙이 헤엄쳐간 뒤라 수면에는 일렁임만 남아 있었다.

“어머니, 연못에 물고기도 풀어놓으셨어요?”

“물론이지.”

사앵앵이 기세등등한 얼굴로 말했다.

“물에는 물고기가 헤엄치고, 산에는 토끼가 뛰놀고, 숲에는 사슴이 노닌단다. 있어야 할 것들은 전부 있는 셈이지.”

“사슴도 있어요?”

사봉봉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사슴은 보통 쉽게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디요?”

“앞쪽 숲에 있단다.”

사앵앵이 말했다.

“서너 마리 정도 되지. 사슴들이 토끼풀을 유독 좋아하더구나.”

“산장에도 토끼풀이 있나요?”

“그럼. 대신 다른 곳에 따로 심어 두었지. 돈을 지불한 여행객들은 그곳에서 풀을 꺾어서 사슴에게 먹일 수 있어.”

사봉봉은 눈을 크게 떴다. 자신은 상상도 하지 못한 발상이었기 때문이다. 대체 어머니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해내는 걸까?

“어머니, 돈을 내고 풀을 뜯으려는 사람이 있을까요?”

“물론이지.”

사앵앵이 물었다.

“만약 청양 공주가 사슴에게 풀을 먹이고 싶어 한다면, 황상께서 돈을 내고 풀을 뜯으려 하실까?”

사봉봉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네, 그러실 거예요.”

“아이를 아끼는 모든 부모 마음이 다 그렇단다. 경제적인 능력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아이를 기쁘게 하는 일이면 뭐든 할 테지.”

돈을 벌 수 있는 생각이라면 사봉봉은 언제나 흥미를 느꼈다. 그녀가 사앵앵에게 물었다.

“어머니, 연못에 있는 물고기도 돈을 내고 살 수 있는 것이에요?”

사앵앵이 그녀의 말을 바로잡았다.

“돈을 내고 여기서 낚시하는 거야.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 과정을 즐기는 법이니까. 돈도 있고 여유도 있다면 서너 명의 벗과 함께 낚시하러 오는 것도 즐거운 일일 테지.”

“그리고요? 또 뭐가 있어요?”

“아주 많단다. 꽃을 좋아하는 사람은 꽃을 감상할 수도 있고,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산에 오를 수도 있지. 과일을 따고 싶은 사람은 과일을 따고, 물놀이를 하고 싶은 사람은 물놀이를 할 수도 있어.

숲에는 그네와 그물 침상도 있단다. 저쪽에 있는 가옥에는 아궁이를 놓았어. 낚시로 물고기를 잡은 사람이나 산에서 꿩과 산토끼를 잡아 온 사람들은 직접 요리도 해 먹을 수 있지. 산촌에서의 삶을 느껴 보는 거야.”

그녀의 말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던 사봉봉은 흥분한 얼굴로 물었다.

“어머니, 그래서 우리 오수산장은 언제 개업하는데요?”

사앵앵은 커다란 나무 아래 서서 푸른 산을 바라보며 득의양양하게 말했다.

“곧 문을 열 수 있을 거야.”

사봉봉이 말했다.

“매번 새 가게를 열 때마다 새로운 방법을 쓰셨잖아요. 이번에는 어떤 계획을 짜셨어요?”

사앵앵이 웃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천하에서 가장 존귀한 분이 누구시지?”

“당연히 황상과 마마이시죠.”

사앵앵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웃었다.

“그래서 황상과 마마께 우리 산장의 문을 열어 달라고 할 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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