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40화
시선을 아래로 떨군 사앵앵은 속으로 잠시 계산한 후에 다시 고개를 들었다.
“황상, 사정우의 재산은 국고로 몰수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그의 가게들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황제의 눈빛에 통찰력이 번뜩였다. 그는 밝게 웃으며 물었다.
“사정우가 소유했던 점포들을 원하는가?”
“그 가게들은 원래 장사가 잘됐습니다. 이대로 문을 닫아 버리기엔 너무 아깝습니다. 황상께서 다른 용도가 없으시다면 차라리 저에게 상으로 내려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물론… 공짜로 달라는 건 아닙니다. 당연히 황상께 정당한 값을 드리겠습니다.”
황제가 물었다.
“어떻게 그 값을 주겠다는 건가? 한번 말해 보거라.”
“돌아오는 길에 사장풍이 알려줬습니다. 사정우의 명의로 된 가게가 알려진 것과 알려지지 않은 것을 다 합쳐 삼십여 개나 있다고 합니다. 그걸 하나씩 사기엔 제 능력으론 불가능합니다. 차라리 서북 역참처럼 가게는 황상께서 소유하시고, 저는 관리만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운영에 필요한 약간의 비용만 받고 나머지 수익은 전액 황상께 넘기겠습니다. 그리고 이 년 후에 가게 소유권을 저에게 넘겨주시는 겁니다.”
황제는 눈을 가늘게 뜨고 웃었다.
“역시 장사꾼답군. 주판을 정말 잘 놓는 걸? 이 년 동안 무료로 일하고 삼십여 개의 가게를 거저 얻겠다니. 이건 정말이지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이지 않은가?”
“황상께서는 장사해 본 적이 없으셔서 그 고초를 잘 모르실 겁니다. 장사하는데 중요한 건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 자는 겁니다. 또한 작은 이익을 모으고 모아서 크게 만드는 것이지요.
게다가 장사를 한다고 다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장사할 줄 아는 인재가 장사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그 가게는 망할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운수가 나빠서 천재지변이나 인재를 만날 수도 있습니다. 그땐 저도 당할 수밖에 없지요.
황상께서는 언제나 궁에 계시니 백성들의 고충을 잘 모르실 테지만, 장사는 목숨을 걸고 해야 하는 겁니다! 지난번에는 창고가 반이나 타 버려서 손실이 막심했지만, 저는 울 시간도 없이 일을 해야 했습니다. 황상, 그 가게들이 제 손에 들어온다고 해서 제가 누워서 돈을 버는 건 아닙니다. 모든 일에 심혈을 기울여야 합니다.”
사앵앵은 두 손을 붙잡고 열변을 토했다. 황제는 그런 그녀의 말을 흥미롭게 들었다.
“또한, 저 말고 그 가게들을 맡길 사람이 있습니까? 저보다 사업을 더 잘하는 사람 있습니까? 좋은 말에는 좋은 안장을 올리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황상께서도 제게 경영을 잘한다고 말씀해 주셨지요. 제게 맡겨 주시면 그 가게들을 더더욱 번창하게 만들겠습니다. 사정우가 운영할 때보다 수익이 더 높을 겁니다.”
그녀의 말이 허황되게 들릴 수 있겠지만 황제는 사앵앵이 하는 말이니 믿음이 갔다. 다른 건 몰라도 그녀의 장사 수완은 황제 역시 인정하는 바 아니던가. 그런 황제의 마음을 아는지 사앵앵은 더욱 자신감 있게 이야기했다.
“물론 한 점포의 이 년 치 수익이 가게 원금에 못 미칠 수도 있지만, 황상께서도 방금 말씀하셨잖습니까? 공로가 있으니 상을 청해도 된다고요.
제가 아니었다면 사정우라는 악인이 황상이 계신 황궁 코앞에서 위세를 떨며 백성들을 괴롭혔을 겁니다. 그러니 황상께서 반만 팔고 나머지 반은 하사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은자도 얻으시고 인정도 베풀 수 있으니, 이 어찌 기쁘지 아니하겠습니까?”
타고난 장사꾼인 그녀는 긴 이야기를 숨도 쉬지 않고 늘어놓았다. 황제는 생각을 정리하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방안을 서성거렸다. 사앵앵은 돌아오는 길에 이미 사정우의 가게들을 손에 넣을 계획을 세웠다. 황제가 망설이는 것을 보자 그녀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애써 누르고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황상께서 저를 믿을 수 없으시면 일단 절반만 맡겨 보십시오. 후에 제가 운영을 하는 것을 보시고 나머지도 맡기시면 되지 않습니까?”
드디어 황제가 발걸음을 멈추고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사정우의 재산은 국고에 귀속하지만, 그의 가게들은 사실 짐이 가져도 아무 소용이 없네. 기왕 사 주인장이 입을 열었으니 짐이 은혜를 베푸는 셈 치겠네. 그런데 이 년 치 수익으로는…….”
그러자 사앵앵이 즉시 입을 열었다.
“반년 더, 어떻습니까? 총 이 년 육 개월의 수익입니다. 끝자리가 육이라니, 이 얼마나 길한 숫자입니까?”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린 황제는 끝내 고개를 끄덕였다.
“사 주인장이 굳이 그렇게 하겠다니, 그럼 그리 하겠네.”
두 사람은 구두 계약을 했다. 비록 상대가 황제였지만, 사앵앵은 문서로 계약 내용을 남기길 원했다. 신중한 그녀는 계약서를 작성하는 걸 꼭 지켜 왔다.
황제는 즉시 내무부 관리들을 들라고 명하여 모든 일을 그들이 처리하게 했다. 사앵앵이 가게 목록을 하나하나 점검한 뒤, 관리들이 문서를 작성하자 황제가 국새를 찍었다. 그렇게 두 사람의 거래는 즉시 효력이 발생했다.
저택으로 돌아가는 길. 사장풍은 사앵앵과 황제가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궁금해했다. 사앵앵은 신이나 모든 걸 이야기했다.
“두고 보세요. 내가 한바탕 크게 일을 벌일 거니까. 차라리 당신도 장군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와서 내 경호나 할래요?”
그녀는 엄지손가락으로 자기 코끝을 가리켰다.
“당신 아내는 곧 수십 개의 가게를 거느린 거상이 될 거예요!”
사장풍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황상께서 정말 사정우의 가게를 몽땅 당신에게 주었소?”
사앵앵은 의아해했다.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당신을 찾으러 도성을 나갈 때, 황상께서 내게 말씀하셨소. 당신의 공로가 크니 장차 사정우의 가게를 모두 상으로 주겠다고. 황상께서는 당신의 능력을 매우 높이 평가하시오. 그 가게들이 당신 손에 들어가야 빛을 발할 거라고 하셨소.”
“…….”
“황상께서 그 가게들을 저에게 공짜로 하사해 주겠다고 말씀하셨다고요?”
“그렇소.”
사장풍이 반문했다.
“그렇지 않으면?”
연신 헤벌쭉 웃고 있던 사앵앵의 표정이 금세 굳었다. 사앵앵은 화를 내며 자기 허벅지를 내려쳤다. 황제는 역시 황제였다. 장사하는 건 그녀에게 못 미치겠지만, 계략을 꾸미는 건 누구도 황제의 적수가 되지 않았다. 황제는 정말 여우같이 교활하고 늑대처럼 간사했다. 사장풍은 그녀의 안색이 심상치 않자 다시 반문했다.
“무슨 일이오? 그 가게들을 공짜로 받은 게 아니오?”
“아니에요. 내가 황상을 대신해서 관리해 주고 이 년 반 동안의 수익을 황상에게 드리기로 했어요.”
사장풍은 어이가 없었다.
“그럼 이 년 반 동안이나 헛고생을 해야 한단 말이오? 아니! 황상께서 어찌 그러실 수 있단 말이오? 안 되겠소. 내가 황상을 찾아가서 좀 따져야겠소.”
“뭘 따져요?”
사앵앵이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먼저 그렇게 하겠다고 했어요.”
게다가 거기에 반년을 더한 건 그녀였다.
이제 와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황제가 했던 말이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사 주인장이 굳이 그렇게 하겠다니, 그럼 그리 하겠네.”
계략을 꾸민 건 황제건만… 오히려 황제가 마지못해 사앵앵의 거래에 응한 꼴이 된 것 아닌가! 아마도 백천범이 그들의 거래 사실을 알게 되면 그를 탓할까 봐 사앵앵의 제안으로 돌린 것이겠지. 사앵앵이 먼저 제시한 제안이니 아무리 백천범이라도 황제를 탓할 수 없을 거다. 사앵앵은 잠시 낙담했지만, 다시 기운을 차렸다.
“됐어요. 나도 공짜는 싫어요. 내가 힘들게 얻어야 마음도 더 편해요. 계약서가 오갔으니 아무리 황제라도 나중에 번복하지 못할 것이고요.”
사장풍은 그녀의 손을 잡고 부드럽게 매만졌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옳소. 우리는 공짜는 바라지 않소. 정직하게 장사하는 것이 제일 좋소. 황제는 무척 교활하니 당신은 좀 더 조심하는 게 좋겠소.”
사앵앵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황제가 저를 괴롭히면 황후께 고하면 돼요. 황제가 아무리 대단해도 꼼짝 못 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사장풍은 하하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맞소.”
사앵앵은 눈을 흘겼다.
“그럼 당신은요? 제가 무섭지 않으세요?”
사장풍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못 말린다는 듯 답했다.
“당연히 무섭지. 당신이 눈을 부릅뜨면 난 가슴이 두근거린다오.”
* * *
사정우 사건에 연루된 사람이 임안성에 너무 많았지만, 황제는 전광석화처럼 빠르게 사건을 처리했다. 황명으로 조정의 봉인이 도처에 가득 붙었다. 그에 백성들의 의견이 분분했고 이는 매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렇게 큰 사건을 해결하는데 어찌 비밀을 유지하겠는가. 소문이 무성한 일은 하나가 열이 되기도 하고, 열이 다시 백이 되기도 한다. 그러다 결국 한두 명의 영웅이 탄생하곤 했다.
당연히 그 소문의 중심은 사가 상점의 사 주인장이었다. 사람들은 그녀가 지략과 용기를 겸비하고 있어서 일찍부터 사정우가 질 나쁜 사람이라는 걸 알아보았고, 몰래 그를 조사하다가 조정에 비밀 보고를 했다고 얘기했다. 심지어 사정우가 도망쳤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즉시 미행하여, 위험을 무릅쓰고 소식을 전했기에 병사들이 그를 즉시 체포해 죽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백성들은 이번 사건을 입으로 전할 뿐만 아니라 글로도 썼고, 설서 선생의 공연 소재까지 되었다. 기지가 넘치고 용맹한 그녀의 모습은 아버지를 대신해 종군한 화목란花木蘭이나 원수元帥의 지위까지 오른 목계영穆桂英에 비견될 정도였다.
사앵앵이 저택 대문을 나설 때면 백성들은 그녀를 둘러싸고 각종 찬사를 쏟았다.
“와우, 사 주인장이다. 용모가 예쁜 건 물론이거니와 도적까지 붙잡으실 정도로 용맹하다네!”
“사 주인장의 안목이 그렇게 뛰어나다며? 사람 됨됨이의 좋고 나쁨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대!”
“사 주인장은 담력과 지혜를 모두 겸비한 사람이야. 남자보다 훨씬 나아!”
“사 주인장이 남자였다면 벌써 장군으로 임명되었을 것이네.”
사앵앵은 그 칭찬을 들으면 왠지 좀 찔렸다. 사실 그녀는 단지 사정우를 경쟁자로 경계했을 뿐, 그의 악행을 알아차리고 세상에 폭로하려 한 게 아니었다. 사정우의 뒤가 구린 걸 알아차린 건 사장풍이었다. 그는 은밀히 증거를 수집하더니 결국 사정우의 죄상을 낱낱이 밝혀냈다. 그 공로가 그녀의 것이 되다니.
하지만 이 일의 진상을 다 설명하고 다닐 수는 없었다. 이 때문에 사앵앵은 한동안 거리를 돌아다니지 못 했다. 외출할 땐 무조건 가마를 탔는데 그마저도 사람들이 금천아와 아하를 알아보곤 발 너머로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사 주인장, 안녕하세요!”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발을 걷고 손을 흔들며 화답했다.
“안녕하세요!”
그녀의 명성은 날이 갈수록 높아졌다. 심지어 극단의 명배우인 진향옥秦香玉보다 더 유명해졌다. 어떤 사람은 그녀의 진면목을 보기 위해서 그녀의 가게를 찾았고, 사정우에게 피해를 본 사람들은 그녀에게 가게 현판을 선물하며 감사의 인사를 했다. 비록 빼앗긴 재산은 돌아오지 않겠지만 최소한 노심초사하며 지낼 필요는 없어진 것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