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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739)화 (738/1,192)

제739화

사장풍은 머뭇거렸다.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일이었다. 혹여 실수라도 한다면 사람의 목숨이 날아갈지도 몰랐다. 그의 걱정을 눈치챈 사앵앵는 스스로 표적이 되겠다고 나섰다.

“사장풍, 반드시 마음에 잡념이 하나도 없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아내가 당신의 손에 죽음을 맞이할 거예요.”

그녀가 담이 큰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마음속으로는 그도 알고 있었다. 그녀는 그가 이길 수 있게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그녀는 자신의 남자가 하늘을 떠받치고 땅에 우뚝 서는 대장부이기를, 누구에게도 지지 않기를 바랐다.

시합의 결과는 당연히 사장풍의 승리였다. 왜냐하면 감자를 머리에 올린 사람이 다름 아닌 그의 아내였기 때문이다. 그가 감히 자기 아내를 다치게 할 수 있겠는가.

그때 이후로 사앵앵은 늘 감자를 머리 위에 놓고 그에게 활을 쏘게 시켰다. 그의 배짱을 키운다는 명목이었다. 그는 울며 겨자 먹기로 그녀의 요구를 들어주었고, 이건 부부간의 작은 놀이가 되었다. 매번 그는 백발백중이었고 한 번도 실수한 적이 없었다. 사앵앵는 이런 그의 화살을 준성전이라고 불렀다. 그 무모한 놀이가 이렇게 쓰일 줄이야.

마차가 관도를 통과하는 동안 부부는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로에 대한 믿음과 굳건함을 느끼자 감회가 새로웠다. 한참 뒤, 사앵앵이 아쉽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 초원에 가 보려고 했는데… 기회를 놓쳤네요.”

사장풍의 안색이 굳어졌다.

“사정우랑 같이 말이요?”

사앵앵은 헤헤거리며 웃었다.

“어차피 당신을 기다려야 하니까요. 초원에서 기다려도 되잖아요. 참, 사정우가 국경 밖에도 사업이 있다고 했어요. 그곳에 도착하면 안전하다고요.”

“알고 있소. 이미 다 조사했지. 그는 그곳의 말을 중원에 팔아넘기는 사업을 운영하고 있었소. 몽달 왕족과 관계가 좋았는데, 그곳으로 도망가면 몽달국의 비호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오.”

사앵앵은 깜짝 놀랐다.

“적과 내통하고 있었다고요?”

사장풍은 콧방귀를 뀌었다.

“그가 감히 뭘 못 했겠소? 사정우가 한 나쁜 짓거리는 셀 수 없을 지경이오. 아마 언젠간 자신의 죄악이 발각될 것을 알고 일찍이 퇴로를 준비했을 것이오. 약삭빠르게 굴다가 제 꾀에 넘어간 격이지. 그래도 아마 자기가 여자 때문에 목숨까지 잃을 거라는 건 예측하지 못했을 거요.”

사앵앵이 탄식했다.

“사람이 하는 일을 하늘은 모두 보고 있어요. 마음 씀씀이가 바르지 못하면 바로 이런 결과를 초래하죠.”

* * *

마차가 도성에 들어왔을 때, 성문 위아래는 사람들로 빽빽했다. 성문 아래에는 무장한 호위 병력이 도열해 있었고, 성벽 위에는 백천범이 아이들을 데리고 있었다.

은색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종대로 걸어왔다. 그리고 그 사이로 마차 한 대가 느릿느릿 다가오고 있었다. 사금언은 참지 못하고 목청을 높였다.

“어머니가 돌아오셨어요. 우리 어머니가 돌아오셨어요!”

눈시울이 붉어진 사봉봉은 조용히 마차를 바라보았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찾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녀는 너무 기뻐서 한바탕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드디어 어머니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또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강인한 사람이었다. 이미 여러 번 눈물을 보였던 게 좀 쑥스러웠다. 만약 어머니께서 이 사실을 아시면 그것도 이겨내지 못한다고 꾸중을 하실지도 모른다. 백천범이 가만히 그녀의 손을 잡았다.

“봉봉아, 가자. 내려가서 어머니를 맞이해야지.”

이미 몇몇 아이들은 묵용청양을 필두로 우르르 달려 내려가고 있었다. 백천범은 기홍, 녹하와 함께 사봉봉을 데리고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

사앵앵, 사장풍만이 아니라 황제의 복심인 두 대장 영구와 가동도 함께 돌아왔다. 그들이 있었기 때문에 사장풍은 사정우와 사앵앵의 행방을 빠르게 추적할 수 있었다. 사앵앵이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사금언이 품에 폭 안겼다. 그는 아이처럼 울며 말했다.

“어머니, 너무 보고 싶었어요.”

사장풍을 볼 땐 눈물이 나지 않았지만 서럽게 울고 있는 아이를 보니 그녀 역시 코끝이 찡해졌다. 막 울음이 터지려던 찰나, 커다란 손이 그녀의 등을 쓰다듬었다.

“괜찮소. 울지 마시오. 봉봉이 보고 울겠소.”

고개를 든 사앵앵은 눈물이 가득한 눈으로 딸 봉봉을 바라봤다. 백천범의 손을 잡고 오는 봉봉도 이미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그녀는 아이에게 손짓했다.

“봉봉아.”

사봉봉이 다가와 그녀를 껴안았다.

“어머니, 울지 마세요. 울면 눈이 아파요. 돌아오셨으니 되었어요. 어머니께서 별일 없으실 줄 알았어요.”

사앵앵은 눈물을 훔쳤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우는 게 머쓱했던 그녀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네 말이 맞는구나. 어미도 울지 않으마. 돌아왔으니 기뻐하고 울지 말아야지. 금언도 이제 그만 울거라.”

단란한 가족을 보고 있노라니 사장풍의 가슴에 쌓여 있던 분노와 아픔이 말끔히 가셨다. 곧 그의 눈가 역시 촉촉해졌다.

그들은 한 가족이었다. 핏줄의 정이 끊어지는 건 정말 피부에 와 닿는 고통이었다. 이런 아픔은 평생 단 한 번이면 족했다. 사앵앵은 치맛자락을 들고 백천범에게 예를 취했다.

“어찌 귀하신 황후 마마께서 나오셨습니까.”

백천범은 서둘러 그녀를 일으켰다.

“밖에서 무슨 예의를 이렇게 차려. 가자. 궁으로 들어가. 황상께서 궁에 연회를 마련하셨어. 다들 같이 식사하자.”

그들은 병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당당하게 궁으로 향했다.

사장풍 부부가 궁에서 열리는 연회에 참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보통 연회가 열리는 곳은 벽복전이었지만 오늘은 특별히 승덕전에서 열렸다.

큰 원탁에 모두가 둘러앉았다. 황제와 황후가 나란히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사장풍과 사앵앵은 몹시 어색해했지만 다른 이들은 편하게 보였다.

아이들은 여기저기 뛰어다녔고 가소타는 방긋방긋 웃으며 황제의 허리춤에 달린 오색 장식을 잡아당기며 놀았다. 가동이 아이를 꾸중하기는 했지만 엄하게 꾸짖진 않았다. 황제 역시 노여운 기색 없이 방긋 미소를 띠며 소타를 무릎 위에 앉혔다. 백천범은 웃으며 그들에게 말했다.

“집안에서 식구들끼리 함께 여는 연회라고 생각해요.”

서로의 눈을 마주친 사장풍과 사앵앵은 그제야 편안한 얼굴을 했다. 황후가 집안 연회라고 하면 그건 분명 집안 연회인 것이다. 백천범이 어떤 사람인지 그들은 다 알고 있었다. 그저 황제가 조금 걱정될 뿐.

새해를 맞이할 때도 황제, 황후와 함께 모여 식사를 했었다. 그때도 황제는 친근하긴 했지만 남녀 자리를 따로 만들며 여전히 마음속 응어리를 내비쳤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다 같이 커다란 원탁에 둘러앉아 있는 것이다. 게다가 사장풍은 실제로 황제에 대한 충성심을 증명하지 않았는가. 그 모습을 본 황제는 마음속에 있던 가시를 뽑은 듯했다. 마음에 쌓아 왔던 앙금을 버리고 오늘에 집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친한 사람들끼리 모인 연회는 더없이 시끌벅적했다. 가동과 사장풍은 서로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며 장난을 쳤고, 백천범과 사앵앵은 음식의 맛에 대해 논했다. 거기에 기홍도 합세했다. 이들은 다들 요리에 관심이 많았다. 산해진미를 논하고 간식 만드는 것부터 과일주를 빚는 일까지,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

녹하는 사앵앵에게 장사에 대해 물었다. 사앵앵이 장사를 하며 있었던 재미있는 일에 대해 풀어놓자,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녀를 부러워했다. 백천범은 아쉬운 듯이 말했다.

“나도 오수진에서 장사했었잖아. 지금까지 계속 했으면 나도 상당한 성과를 냈을 텐데!”

황제가 듣더니 허허 웃었다.

“천하의 황후가 장사꾼보다 못할까 봐?”

그 말에 사앵앵은 황제에게 미움을 살지 모른다는 걱정도 없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도 황후가 될 팔자였지만 황후보단 장사가 더 재미있어 이 삶을 택한 것이에요.”

황후가 될 팔자라니. 흥미로운 말에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무슨 황후? 어느 나라의 황후를 말하는 거죠?”

사앵앵은 순간 흥이 돋아서 남제화가 보석을 가지고 청혼했던 이야기를 했다. 황제는 사장풍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사실이 뜻밖이었다. 그는 그제야 마음속 앙금이 흔적조차 사라지는 걸 느꼈다. 남을 힘들게 하면 다 돌아온다고… 인과응보의 법칙이 그를 기쁘게 만든 것이다.

반면 사장풍은 황제가 저를 두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고 아내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듣는 척도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앵앵의 목소리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것이다. 그러다 문득 자랑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어쨌든 그는 황후의 자리도 마다한 아내를 맞이한 것이니.

백천범은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 남제화는 그녀의 혈육이자 그녀에게 친절하게 대해 준 사람이었다. 비록 그는 모황께 반항하지 못했지만 뒤에선 그녀를 도와주었다. 만일 그가 아니었다면, 그녀는 아마 남원을 무사히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헤어진 지 벌써 수년이 지났고 그녀는 아이도 둘이나 더 낳았지만, 더는 오라버니를 만날 수 없었다. 오라버니는 남원에서 잘 지내고 있을까? 모황은 줄곧 그를 후계자로 여겼지만, 오라버니는 황제가 되는 걸 원하지 않았다. 오라버니는 황제보다 떠돌이 검객이 되기를 더 원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연회가 끝나고 모두 앉아서 차를 한잔 마셨다. 사장풍은 그간 고생했던 사앵앵을 데리고 얼른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황제는 그 틈을 주지 않았다. 무슨 일인지 황제가 그녀를 따로 부르더니 두 사람이 함께 사라져 버렸다.

멍하니 그 모습을 보던 사장풍은 무의식중에 백천범을 돌아봤다. 자신의 부군이 다른 이의 아내를 데리고 사라졌는데, 어째서 그녀는 아무 일도 없는 사람처럼 구는 걸까.

황제와 그의 아내가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한 명은 나라의 지배자요, 다른 한 명은 장사꾼일 뿐이었다. 두 사람 사이엔 팔 척 장대도 닿지 못할 정도로 아무 접점이 없지 않은가. 사장풍은 불안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지만, 그저 참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남서방에서 황제는 점잖게 사앵앵에게 자리를 권했다. 이곳은 백천범과 그의 시중을 드는 궁녀를 제외한 다른 여인들은 들어올 수 없는 곳이었다. 사앵앵은 이곳에 들어온 첫 번째 외간 여자였다. 황제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이번 사건을 해결할 수 있었던 건 모두 사 주인장 덕분이지. 만약 사 주인장이 아니었다면 사정우의 죄악을 발견할 수 없었을 걸세. 사 주인장의 공로가 크니 말해 보라. 무슨 상을 받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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