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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733)화 (732/1,192)

제733화

이번에는 옷을 담아 놓는 궤를 열었다. 화려한 옷가지를 하나하나 꺼내 보니 거의 다 공물로 바치는 옷감으로 만든 것이었다.

사앵앵은 상인으로서 천성적으로 부를 추구하고 선망했다. 하지만 군자도 재물을 선호하나 정당한 방법으로 취하는 법. 아무리 장사치라지만 눈앞의 화려함에 마음의 굳건함을 잃을 일은 없었다.

그녀는 사치품들에 흥미를 느끼고 있다기보단 여기가 어딘지 알고 싶었다. 대체 자신을 어떻게 여기까지 데려온 거지? 저를 여기까지 데려온 사람이 누구며, 왜 여기 혼자 두는 건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인기척을 들었는지 여종 두 명이 세면도구를 가져와 예를 갖췄다.

“부인, 안녕하십니까.”

사앵앵이 그들을 힐끗 쳐다보며 물었다.

“여기가 어디예요?”

두 여종은 대답하지 않고 양칫물을 건넸다. 사앵앵은 건네받은 양칫물에서 짙은 향기를 느꼈다.

“이게 뭐죠?”

“부인께 아룁니다. 이건 장미수입니다. 한 모금 머금었다가 뱉으면 온종일 산뜻함이 유지됩니다.”

아무래도 그녀를 독살하기 위해 이곳에 데려오진 않은 듯했다. 그녀는 하라는 대로 양치질을 하고 세수도 했다. 두 여종은 궤 속에서 분홍색 비단 치마를 꺼내 그녀에게 입혀 주려 했고, 사앵앵은 흔쾌히 그녀들의 시중을 받아들였다.

옷에서도 기분 좋은 만라연향이 은은하게 퍼졌다. 이어서 여종들은 그녀의 머리를 빗겨 주고, 영사계靈蛇髻(뱀처럼 말아 올리는 머리모양)로 머리를 높이 틀어 올려 비취를 꽂았다.

이어서 여종들은 그녀의 얼굴에 얇게 분을 바르고, 입술에 연지를 찍어 주었다. 그 다음에는 눈썹을 그리고 미간에 화전花鈿(이마에 붙이는 꽃모양 장식)을 붙였다. 귀엔 길게 늘어진 취옥 귀걸이와 목에는 팔보 목걸이를 걸어 주었다.

치장을 마치고 거울을 본 사앵앵은 하마터면 자기 자신도 몰라볼 뻔했다. 그녀는 구리거울을 좌우로 돌려 보다가 손가락으로 화승華勝(머리에 꼽는 장식)을 가리켰다.

“좀 비뚤어졌으니 왼쪽으로 조금 옮겨 줘요. 그래, 그렇게 하면 돼요.”

여종이 그녀의 분부대로 화승을 살짝 옮기며 감탄했다.

“부인, 정말 아름답습니다.”

사앵앵은 웃으며 말했다.

“평소에는 이런 능라 비단을 못 입어요. 이렇게 예쁜 비취 장신구도 없고. 이렇게 치장하니 확실히 예쁘긴 하네.”

뒤에 서 있던 한 여종이 말했다.

“부인, 배가 고프시죠? 소인이 가서 부인의 아침을 가져오겠습니다.”

사앵앵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죽도 있나요? 전 아침마다 죽을 먹거든요.”

“적미赤米죽이 있습니다. 달콤하고 보양에도 좋지요.”

사앵앵은 속으로 생각했다. 세상에, 가격이 금값인 적미로 죽을 쒔다고? 적미죽 한 그릇이면 밖에서 도대체 얼마에 팔아야지?

곧 다시 들어온 두 여종은 탁자 위에 아침밥을 차려 놓았다. 과연 선홍빛의 적미죽 한 그릇과 서너 가지의 찐빵, 참외, 아삭한 장아찌와 양젖 그리고 마지막에 두 벌의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하나는 촉감이 따뜻한 청옥 젓가락이고, 다른 하나는 은젓가락이었다. 아마도 그녀가 독을 의심할까 봐 은젓가락을 준비한 것 같았다.

사앵앵은 확실히 배가 고프긴 했다. 아침 일찍부터 화려한 것들을 감상하니 눈이 피곤했지만 마음은 더 피곤한 것 같았다. 그녀는 절로 한숨이 나왔다. 이런 것들이 다 자신의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아침 식사를 한 사앵앵은 창가에 가만히 서서 상황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사람이라곤 그릇을 치우고 간 두 여종 외에는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녀는 문발을 걷고 밖으로 나갔다. 두 여종은 방 밖으로 나가는 그녀를 그냥 쳐다보기만 했다. 아무래도 이곳의 주인은 그녀를 가둘 생각은 없는 듯했다.

사앵앵은 그네가 있는 곳으로 가 부드러운 방석에 앉았다. 아주 편안했다. 손잡이의 촉감도 아주 부드럽고 좋았다. 게다가 날씨도 딱 좋았다. 산들바람이 불어와 그녀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스치고 지나갔다. 시간이 멈춘 듯한 고요한 평안함… 그녀는 속으로 탄식했다. 이곳은 정말 좋은 곳이구나!

그네에 앉아 있던 그녀는 두 여종이 복도 끝으로 사라지는 걸 바라보며 또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또 그녀만 남은 것이다. 이곳은 다 좋은데 인적이 없고 너무 고요해서 좀 무서울 정도였다. 그녀는 그네를 멈추고 정자 안으로 들어갔다.

정자는 작은 연못 위에 세워져 있었다. 연못 안에는 비단잉어가 가득했는데 모두 희귀종으로 모양이 독특하고 색깔이 화려했다. 한참 연못을 들여다봤지만 정확히 몇 종류의 잉어가 있는지 다 세지 못할 정도였다.

정자 뒷면에는 작은 물레방아가 있었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물레방아는 구리색으로 칠이 되어 있었다. 아마 영원히 퇴색되지 않는다는 정강精鋼으로 만든 것처럼 보였다. 물레방아에서 물이 떨어질 때마다 영롱한 색깔의 물보라가 퍼졌다. 그렇게 물레방아는 끝없이 순환하며 제자리로 돌아왔다. 하루하루가 반복되듯이… 한 해 또 한 해가 반복되듯이.

나무가 우거지고 오색찬란한 꽃들이 만발한 이곳……. 보기만 해도 감탄이 터지는 풍경이지만 어쩐 일인지 더 즐기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지금쯤 그녀를 이곳에 붙잡아 온 사람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분명 어디선가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겠지. 이리 상황이 명명백백한데, 그녀가 즐길 수 있겠는가?

방으로 돌아온 그녀는 궤 안에 있는 옷을 전부 다 꺼내서 하나씩 몸에 대 보았고, 장식을 세심히 살폈다. 그렇게 이것저것 구경하기만 했는데 오전 시간이 다 가 버렸다.

정오가 되자 또 그 두 여종이 식사를 가져왔다. 사앵앵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차려 준 음식을 먹었다. 일부러 엎어진 김에 쉬어 간다는 듯이.

식사가 끝난 후에는 달콤한 낮잠을 잤고, 일어나서도 침상 위에서 빈둥거렸다. 그녀는 장신구 상자를 열고 오후 내내 보석을 감상하며 시간을 보냈다.

어느새 어둠이 깔리고 저녁이 되었다. 모든 식사는 정성껏 차린 티가 났다. 사앵앵은 주루를 운영하기 때문에 입맛이 까다로웠다. 그런 그녀의 입에서 칭찬이 나올 정도이니, 음식에 신경을 많이 썼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가지 요리 하나만 봐도 일고여덟 가지의 산해진미를 맛볼 수 있었다. 그녀는 음식을 하나하나 즐기며 매우 만족스러운 식사 시간을 보냈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여종들은 다과상을 차렸다. 그런데 이번엔 찻잔 하나가 아니라 두 잔을 준비했다. 다른 한 잔은 그녀의 맞은편에 놓였다.

사앵앵은 드디어 그 사람이 모습을 드러낸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찻잔을 들고 바라보았다. 하지만 귀는 쫑긋 세우고 바깥의 동정을 예민하게 살폈다.

잠시 후 문발을 들치고 누군가가 안으로 들어왔다. 허리춤에 달린 옥패가 찰랑거리며 맑은 소리를 냈다. 사앵앵은 고개를 들고 그를 향해 빙긋 웃었다.

“왔어요?”

사정우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기왕에 왔으니 편안하게 지내고 있는 것이오? 혹여 울고 있을까 봐 걱정했소.”

“울어도 날 돌려보내지 않을 거잖아요?”

사앵앵이 의자를 가리켰다.

“앉아서 차나 마셔요. 차가 식겠어요.”

그녀는 주인장 같은 태도를 보였다. 오히려 사정우가 의아할 지경이었다.

“나라는 걸 미리 알고 있었소?”

사앵앵은 방 안의 물건들을 살피면서 말했다.

“이렇게 돈이 많은 사람이 사 주인장 말고 또 있겠어요?”

“맞소. 난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돈이 훨씬 더 많지.”

“네, 저도 알고 있어요.”

사앵앵이 말했다.

“이곳을 보니 진정한 부자가 어떤 것인지 알겠군요.”

사정우는 자리에 앉아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이게 뭔지 알아맞힐 수 있겠소?”

사앵앵은 입술을 오물거렸다.

“여의루의 우전운무雨前雲霧랑 비슷한데요?”

“우전운무가 맞소.”

사정우가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이건 특별 진상품이오.”

사앵앵은 조금도 놀랍지 않았다.

“당신 손에 진상용 우전운무가 있을 줄 알았어요. 그렇지 않으면 지난번에 여의루에서 나온 진상용 찻잎이 갑자기 어디서 나왔겠어요. 사 주인장, 정말 대담하시네요.”

“당신이 알게 된 것에 겁이 나진 않소.”

사정우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오히려… 앵앵, 당신에겐 내 모든 것을 다 알려 줄 수 있지.”

순간 안색이 어두워진 사앵앵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굳이 저에게 다 알려 줄 필요 없어요.”

사정우는 사앵앵이 제 말의 의미를 간파한 걸 알아차렸다. 이게 바로 똑똑한 사람과 대화할 때의 장점이었다. 굳이 꼭 집어서 설명하지 않아도 얼른 알아차리니 대화가 빠를 수밖에.

반면 사정우의 숨은 속내를 꿰뚫은 사앵앵은 기분이 유쾌할 리 없었다. 그는 이곳에서 그녀가 절대 도망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평생 갇혀 살거나, 아니면 죽거나!

그녀는 천천히 차를 음미하면서 어지러운 마음을 다스렸다. 그녀가 사라진 사실이 분명 사장풍의 귀에도 들어갔을 것이다. 사장풍이 그녀를 구하러 올 거라는 건 조금도 의심치 않았지만, 이번엔 염춘원에 잡혀갔을 때와 상황이 달랐다. 사정우가 아주 철저히 준비했을 텐데… 과연 사장풍이 그녀를 찾을 수 있을까?

사앵앵이 오랫동안 대답이 없자 사정우가 미소를 흘렸다.

“나한테 뭐 물어볼 것 없소?”

“제가 물으면 사실대로 대답할 거예요?”

“물론.”

사정우가 두 팔을 벌리며 대답했다.

“이미 내 옆에 있는데… 내가 당신을 속일 필요가 있겠소?”

“왜 날 잡아 왔죠?”

“그건 말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지 않소?”

“…….”

그는 그녀를 좋아한다고 했었다. 정말 그 이유에서일까? 만약 정말 그 이유라면… 그녀는 머리를 콱 박고 죽어 버리고 싶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 상황이 꼬인 걸까?

“날 어떻게 처리할 거예요?”

“왜 당신을 처리해야 한단 말이오?”

사정우는 그녀의 물음에 놀란 것 같았다.

“설마 아직도 내 속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겠지?”

참다못한 사앵앵이 한마디 쏘아붙였다.

“남의 아내를 억지로 빼앗으려는 심사 말이에요?”

사정우는 뻔뻔스럽게 흰소리를 했다.

“이 세상은 강자가 왕이오. 그리고 누구나 다 그런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오.”

“사 주인장, 왜 남의 마음을 강요하나요?”

사앵앵은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내 마음은 변하지 않아요.”

그녀는 화가 나서 소매를 휘둘렀다.

“예쁜 옷이나 값비싼 장신구들… 이런 걸 주면 제가 당신을 좋아할 것 같아요? 그럴 리가 없죠. 금으로 만든 새장에 가둬 내게 자유를 빼앗았잖아요. 아무리 예쁜 옷을 많이 준다고 한들… 내가 이걸 입고 누구에게 보여 주겠어요?”

“나에게 보여 주면 되오.”

사정우가 말했다.

“앵앵, 난 세상에서 당신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이오. 당신이 뭘 원하는지 다 알고 있소. 당신이 갖고 싶은 건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다 구해 주겠소. 내 곁에 가만히 있어만 주시오. 시간이 지나면 당신도 날 받아들일 수 있을 거요.”

화가 난 사앵앵이 사납게 물었다.

“억지로 나를 취할 거예요?”

사정우는 침묵한 채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차마 거기까지 생각해 보지 않았다. 사앵앵은 속으로 잔뜩 긴장하며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가 강제로 한다고 하면 그녀로서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한참 고민하던 그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지 않을 거요. 난 당신이 기쁜 마음으로 내게 오기를 원하오. 당신에게는 충분히 인내심을 발휘할 수 있소.”

“그럼 마지막 질문.”

사앵앵이 망설이다 물었다.

“여기가 어디예요?”

사정우는 기묘한 웃음을 지었다.

“당신만을 위해 만든 곳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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