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32화
임안성에 사기라는 상호商號의 명성은 점점 높아졌지만, 사정우는 침묵만을 고수했다. 사 주인장이 대책을 세우지 않자 주잠은 종달거리며 그에게 물었다.
“주인어른, 요즘 우리 가게 매출이 많이 저조해졌습니다. 사기 상점에 가서 물건을 사고 여의루에서 식사하는 사람은 많이 늘었지요. 계속 가만히 있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닐 듯합니다. 아니면 우리도 사 여주인장을 따라 연계 장사를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우리가 하는 장사 종류가 훨씬 더 많으니 다 같이 뭉치면 어떨까요?”
사정우는 매섭게 그를 째려봤다.
“멍청한 놈! 우리가 하는 장사가 서로 연계할 수 있는 것이냐?”
잠시 어리둥절하던 주잠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주인어른의 말이 맞았다. 그의 가게가 연계 장사를 한다면 오히려 귀찮은 일이 생길 수도 있었다. 사정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사장풍이 떠난 지 며칠이나 되었느냐?”
주잠이 손가락을 꼽더니 대답했다.
“나리, 오늘로 이레째입니다.”
사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레만 더 있으면 다시 돌아오는구나.”
“나리.”
주잠이 한마디 덧붙였다.
“이렇게 좋은 기회에 손을 쓰지 않으면 늦습니다.”
“류명풍 쪽에서 뭐라고 하던가?”
“류 총령께서는 나리께서 명만 내리시면 공춘홍이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들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사정우는 방 안을 서성이다가 이내 발걸음을 멈추고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류명풍에게 시작하라고 전해라.”
줄곧 기다렸던 명이 떨어지자 주잠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네, 소인이 즉시 가서 류 총령에게 알리겠습니다.”
* * *
요즘 공춘홍은 정신없이 바빴다. 강호에 대도大盜라도 나타난 것인지 사람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물건을 도둑맞았다고 신고했다. 범인은 어찌나 교활한 놈인지 어떤 흔적조차 남기지 않았다. 며칠째 조사해도 아무런 진척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도난을 당한 사람들은 시도 때도 없이 늘어만 가니 성가셔 죽을 것만 같았다.
도난 사건이 채 해결되지 않았는데 또 다른 사건이 터졌다. 냇가에서 무명의 여자 시체가 발견된 것이다. 인명 사건이 발생한 것은 정말 큰 문제였다. 공춘홍은 아침 일찍 나가 조사를 한 뒤에 늦게 돌아왔다. 많은 수하들을 데리고 조사를 했지만, 사건의 실마리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막중한 책임감에 시달리던 그는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하다 아침이 되어 겨우 눈을 감았다. 막 잠들려고 하는데 누군가 방문을 두드리며 그를 깨웠다. 그는 벌떡 일어나 불같이 화를 냈다. 연일 개처럼 일하고 있는데 어찌 잠도 못 자게 하는 건가! 그때 밖에서 누군가 조급하게 소리쳤다.
“주인어른, 사 장군가의 하인이 와서 신고했습니다. 그 댁 부인께서 종적이 묘연하다고 합니다.”
순간 소름이 돋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종적이 묘연하다고? 멀쩡하던 사람이 왜 종적이 묘연해? 그는 서둘러 옷을 걸치고 방문을 열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 빨리 말해 보거라.”
보고하러 온 순포 오영의 병사가 말했다.
“사 장군가의 하인이 대청에서 대기하고 있으니 나리께서 직접 물어보는 게 좋겠습니다.”
공춘홍이 총총걸음으로 대청에 나가자 그곳에 서 있던 아하가 서둘러 다가왔다.
“대인, 부인께서 오늘 아침에 갑자기 없어지셨습니다. 이를 어쩌면 좋습니까?”
공춘홍이 말했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말해 봐라.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어젯밤까진 분명히 침실에 계셨습니다. 그런데 아침이 되어도 부인께서 기척이 없자 금천아가 깨우러 들어갔는데… 침상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부인의 겉옷과 머리 장식도 다 그대로 있었습니다. 류 어멈이 사람들을 풀어서 저택 안팎을 이 잡듯 뒤졌고 상점, 여의루 그리고 금수 포목에도 사람을 보내 확인했으나 어디에도 부인의 종적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부인께서 겉옷도 입지 않고 새벽부터 어디를 가셨겠습니까?”
그의 말을 들은 공춘홍은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과연 이것도 또 하나의 기이한 사건이었다.
“대인.”
아하는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어서 방법을 강구하셔야 합니다. 지금은 저희 장군께서 안 계시니 믿을 분은 나리밖에 없습니다.”
“부인께서 평소 어디에 가야겠다고 말한 적은 없느냐?”
“부인께서는 매일 저택에 있거나 아니면 가게에만 계십니다. 이외에 다른 곳에 갈 때는 꼭 저와 금천아, 주자를 데리고 다니십니다. 한 번도 홀로 아침 일찍 사라진 적은 없으십니다.”
“그럼… 부인께서 최근에 누구한테 원한을 산 적은 없느냐?”
“그건 물어볼 것도 없습니다.”
아하가 단숨에 대답했다.
“사정우 말고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자가 부인을 잡아간 게 틀림없습니다. 나리, 어서 사람을 보내 그자의 저택을 수색해야 합니다.”
“사정우가 부인을 잡아갔다면 과연 자기 저택에 숨겼을까?”
공춘홍은 허리띠를 매고 장식을 가지런히 정리한 뒤 입을 열었다.
“게다가 지금은 증거가 하나도 없다. 무슨 핑계로 저택을 수색한단 말이냐? 만약 정말 범인이 그라면 이번에는 분명 손을 썼을 것이다. 사 장군이 도성을 비운 지금을 일부러 노렸어. 우리가 섣불리 움직이는 건 오히려 좋지 않아.”
“그래도 뭐라도 해야죠.”
아하는 초조하게 말했다.
“우리 부인께서 그놈 손아귀에 있습니다. 만일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주인 나리께 뭐라고 설명하란 말입니까?”
그건 그랬다. 공춘홍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사앵앵을 찾지 못한다면 평생 사장풍을 볼 면목이 없으리라. 사장풍은 도성을 떠나기 전에 특별히 그를 찾아와 부탁했었다. 그땐 자신만만한 말로 사장풍을 안심시켰는데, 정말로 사달이 날 거라곤 꿈에도 예상치 못했다.
“사 장군에게 사람을 보내 알렸나?”
“벌써 보냈습니다.”
아하가 말했다.
“하지만… 거리가 멀어 아무리 빨리 돌아오셔도 모레는 되어야 도착하실 겁니다.”
공춘홍은 잠시 고민하다 아하에게 말했다.
“먼저 저택으로 돌아가거라. 반드시 봉봉과 금언을 잘 돌봐야 한다. 아이들에게 사고가 나선 안 돼. 너희 집 부인은 지혜롭고 담력도 크니까 당분간은 괜찮을 것이다. 나는 사람을 시켜서 사정우를 주시하며 단서를 찾아보마. 사건은 은밀히 조사하자. 그를 너무 몰아세워선 안 돼. 만에 하나라도 궁지에 빠진 쥐가 고양이를 물면 안 되니까.”
* * *
정신을 차린 사앵앵은 목 뒤쪽에 욱신거리는 통증을 느꼈다. 그녀는 한 손으로 목을 문지르며 천천히 눈을 떴다. 시야에 들어온 건 비단으로 꾸며진 천장이었다. 새하얀 비단에 수놓아진 금실이 어둠 속에서도 가느다란 빛을 반사했다.
사앵앵은 깜짝 놀라 얼른 일어나 앉았다. 여긴 그녀의 집이 아니었다. 고개를 숙여 제 몸을 바라보니 새하얀 잠옷 위에 머리카락이 흐트러져 있었다. 분명 어제 잠자리에 들던 모습 그대로였다. 대체 여기에 어떻게 온 것이지? 여기는 또 어디고?
이불을 걷고 침상에서 내려오니 발판 위에 부드러운 비단 수혜繡鞋가 한 켤레 놓여 있었다. 부드러운 재질로 만들어진 신발 앞코에는 커다란 야광주가 달려 있었다. 사앵앵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고 신발을 들어 올렸다. 그녀의 코끝에 은은한 한란 향이 맴돌았다. 향기가 아주 편안하게 느껴졌다.
예전에 훈향과 향유 장사를 했던 그녀는 한참이나 향을 맡아 본 뒤에야 향을 구분할 수 있었다. 이건 굉장히 비싼 향으로 만라연향이라고 하는데, 남원의 궁중 귀족들이 쓰는 향이었다.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한들 정말 구하기 힘든 향인데… 왜 이 향이 풍기는 것일까?
그녀는 맨발로 침상에서 내려왔다. 두꺼운 융단이 깔려 있어서 방바닥이 그리 차갑지 않았다. 발을 디디자마자 푹신한 융털에 발등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파묻혔다. 그녀가 멍하니 고개를 들고 벽에 걸려 있는 미인도를 살펴봤다. 그림 속 여인은 매우 아름다웠다. 짙은 눈썹과 큰 눈을 가진 자태가 아주 우아한 여인이었다.
이어서 방 안을 천천히 살피니 여러 가구가 눈에 들어왔다. 작은 원탁, 둥근 의자, 긴 탁자, 화장대, 침상… 모두가 상등 자단나무로 만들어진 값비싼 것들이었다. 방 안에 있는 가구만 계산해도 은전 만 냥은 족히 넘을 것 같았다. 탁자 위엔 주전자와 찻잔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사앵앵은 찻잔을 들어 자세히 살펴보았다. 촉감은 차가운 게 유리 같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보통 유리는 아닌 듯했다. 장사를 하는 그녀는 박학다식한 편이어서 이게 취유리脆玻璃라고 부르는 자기라는 걸 알아차렸다. 취유리 역시 굽기 어려운 탓에 아무리 돈이 있어도 살 수 없는 진귀한 물건이다.
‘호화로운 물건들로 채워진 방이라니… 여긴 도대체 누구의 집인가?’
사앵앵은 미인도 앞에 서 여인을 빤히 바라보았다. 어쩐지 보면 볼수록 용모가 자신과 비슷한 것 같기도 했다. 물론 그녀를 그린 건 아니었다. 그림 속의 여인은 화려한 의상과 머리 장식으로 치장한 채 미소를 머금고 교태를 부리고 있었다. 이런 건 그녀에게선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방 안을 샅샅이 훑어본 그녀는 이곳에 향락에 빠진 사람이 살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렇게 호화로운 삶은 황제나 궁중 마마님들이 누릴 법한 정도였다.
창문 틈새로 가느다란 햇빛이 들어왔다. 그녀가 얼른 다가가 손으로 밀자 창문이 쉽게 열렸다. 향기로운 꽃향기가 바람을 타고 들어왔다. 창밖에는 수많은 꽃이 만개해 있었다. 오색찬란한 꽃들이 생기를 가득 머금고 펼쳐져 있는 장면에 사앵앵은 감탄을 터트렸다.
꽃밭에 있는 나무 두 그루 사이엔 예쁘게 채색된 그네가 걸려 있었다. 그네엔 금사로 수놓은 방석이 깔려 있었고, 잘 다듬어진 대나무 손잡이가 달려 있었다. 위쪽에는 분홍색 비단 끈이 달려 있어서 바람이 불 때마다 끈이 나부끼며 화려한 곡선을 그렸다.
반대편에는 화분대가 있었다. 푸른 등나무 덩굴 위엔 백색, 보라색, 그리고 붉은색의 작은 꽃들이 피어나 있어 마치 오색 폭포 같았다.
그리고 조금 더 떨어진 곳엔 정자가 놓여 있었다. 멀리 떨어져 있는 탓에 금으로 그림이 그려진 기둥과 처마만 보일 뿐이었다.
집 안팎을 둘러보니 이곳은 여자가 사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앵앵은 화장대 쪽으로 다가가 장신구 상자를 열어 보고는 또다시 넋을 놓아 버렸다. 그녀 또한 부귀하게 자라 견식이 넓었지만 이건 좀 터무니없을 정도였다.
우선 상자 안에 있는 장신구는 차치하고 장신구 상자만 해도 그 값을 매기기 어려웠다. 옻칠 된 검은색 함에는 부귀의 상징인 모란 무늬가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고, 커다란 보석과 옥 조각이 박혀 있었다. 게다가 그 사이사이는 금과 은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정말 화려함의 극치였다.
장신구 상자 안에 들어 있는 것들은 더욱더 정교했다. 가장 작은 주화珠花(머리 장신구) 하나의 가격도 일반 백성이 몇 년을 살 수 있는 생활비와 맞먹었다. 그러니 청보석, 녹보석, 묘안석, 엄지손톱만 한 동주와 희귀한 보랏빛 채금 등은 말할 것도 없었다. 하나씩 살펴보는 그녀의 눈빛에는 경탄이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