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31화
사앵앵은 눈빛을 반짝였다.
“어서 말해 봐요. 뭔데요?”
“며칠 전에 한 친구를 만났습니다. 한담을 나누다 알게 되었는데 도 주인장이 다른 취미는 없지만, 도박을 즐겼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묘수 도방의 단골손님이었지만, 쌀집을 판 뒤로는 도박장에 나타난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때 그들의 말을 유심히 듣고 있던 사장풍이 불쑥 끼어들었다.
“묘수 도방? 그건 어디에 있는 것이죠?”
“성 서쪽에 있습니다. 삼 년 전에 개장했다고 합니다.”
또 성 서쪽… 그리고 삼 년. 묘수 도방도 염춘원과 관련이 있는 것이란 말인가?
* * *
시일이 걸리긴 했지만 사앵앵은 마침내 잡화점을 개업했다. 이번 개업식은 다른 가게 개업식보다 훨씬 더 화려하게 꾸몄다.
용춤과 사자춤이 펼쳐지며 분위기가 고조되었고, 나무에 주렁주렁 걸린 폭죽이 터져 흥겨움이 더해졌다. 바닥에는 상서로운 붉은색 종이 부스러기가 두껍게 깔렸다. 어느새 빼곡하게 모인 사람들은 기대감에 부푼 눈으로 주변에 서 있었다. 개업식 때마다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해 주던 사 주인장이 이번엔 또 무엇을 보여 줄지 다들 기대하고 있었다.
그때 아하와 주자가 나와 붉은색 게시문을 내걸었다. 게시문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개업 기념으로 모든 물건을 반값에 팝니다! 오늘 가게에서 물건을 구입한 손님은 돌림판 뽑기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돌림판에는 꽝이 없으니 모두 경품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들 게시문 옆에 놓인 원형 돌림판을 바라보았다. 돌림판엔 칸마다 각종 상품이 적혀 있었다. 쌀과 밀가루, 옷감, 도자기, 바느질 도구 등 전부 일상생활에 필요한 용품들이었다.
사람들이 질서 없이 가게 안으로 밀려들어 오려고 하자 건장한 하녀가 길을 막으며 큰 목소리로 외쳤다.
“질서를 지켜 들어오십시오! 가게 안엔 한 번에 스무 명만 입장할 수 있으니 다들 질서를 지켜 줄을 서세요! 번호표를 나눠 줄 겁니다. 자기 번호가 호명되면 순서대로 들어가세요.”
번호표를 받아 입장하다니, 정말이지 새로운 방식이었다. 돈을 쓰고 싶어 난리가 난 사람들을 전부 입장시켜도 모자를 텐데.
하지만 그 방법은 오히려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그들은 더욱더 빨리 들어가고 싶어 했다. 혹여 늦게 들어갔다가 좋은 물건이 다 팔렸을까 봐 걱정한 탓이었다.
금천아와 주자는 점원들을 데리고 가게 앞에서 질서 유지에 힘썼다. 아하는 사람들에게 작은 나무패를 하나씩 나눠 주었다. 무늬까지 새긴 번호표는 정교하고 아름다웠다. 많은 사람들이 번호표를 보고 감탄했고, 어떤 이들은 주머니에 따로 챙겨 가려고 했다. 번호표만으로도 사람들의 기대감이 한층 높아진 것이다.
첫 번째 무리의 사람들은 가게 안에 들어서자마자 감탄을 쏟아 냈다. 그렇게 높은 진열대는 다들 처음이었다. 들보까지 뻗어 올라간 진열대에는 나무패가 걸려 있었는데, 그곳에는 상품 종류가 쓰여 있었다. 어떤 선반에는 도자기와 각종 그릇, 찻잔, 화병, 술 주전자 등이 가득 놓여 있었고, 다른 쪽 선반 위에는 문방사우가 진열되어 있었다. 다양한 재질의 붓, 먹, 종이, 벼루, 서진 그리고 붓꽂이도 있었다.
또 다른 선반에는 연지와 분첩이 있었다. 그곳에는 예쁘게 옻칠한 분갑이 가득했다. 동그란 것, 네모난 것, 마름모꼴인 분갑도 있었다. 분갑 위에는 꽃과 가지 무늬가 그려져 있거나 멋스러운 미인도가 그려져 있어서 아가씨나 부인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맨 아래칸에는 커다란 물독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손님들은 진열된 물건들에 홀린 듯 눈길을 떼지 못했다. 물건들이 하나같이 아름다워서 보는 것마다 사고 싶어 했다.
가게의 삼면은 모두 진열대가 세워져 있었다. 앞쪽에 놓인 상판에선 점원들이 물건을 가져와 손님들에게 물건을 자세히 보여 주었다.
또 입구 바로 옆엔 기다란 의자가 여러 개 놓여 있었다. 색색의 푹신한 방석을 깔아 놓은 의자들 사이사이에는 나지막한 다과상을 배치해서 찻잔을 놓기에 좋았다. 이곳은 손님들의 휴식 공간이었다. 가게에 물건이 많아 구경하는데 지친 손님들을 위해 휴식 공간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손님들은 잠시 차를 마시며 물건을 구매할지 말지 천천히 생각하기도 했다.
사앵앵이 이런 방식으로 잡화점을 꾸민 까닭은 서북에서 역참을 운영할 때 남북을 오가던 상대 사람들에게 재미난 이야기 때문이었다. 그때 들었던 이국적 매매 방식은 그녀의 흥미를 끌었다.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녀 역시 자신의 잡화점을 운영하고 싶었다.
또한, 그녀는 손님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가게를 운영하려 노력했다.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써 손님들이 그녀의 정성을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다. 그녀의 꿈과 정성이 결합하여 오늘의 사기 상점이 탄생한 것이다.
물건을 산 손님들은 바로 떠나지 않고 돌림판 앞에 길게 줄을 섰다. 돌림판을 돌려 좋은 경품이 나올 때마다 손님들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저렴한 경품을 받게 된 이들도 크게 기뻐했다. 반값에 물건을 샀는데 선물도 공짜로 받다니! 이처럼 기분 좋은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사기 상점에 대한 소문은 임안성에 빠르게 퍼져 나갔다. 그리고 그 소문은 많은 이들을 사기 상점으로 끌어모았다.
사앵앵이 새로운 가게를 개점할 때마다 사정우는 멀리서 그녀를 지켜보았다. 이번엔 건너편 다루 창가에 선 그는 붉은 치마를 입은 여인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그녀는 돌림판 뽑기를 주관하고 있었다. 손님이 어떤 상품을 뽑든 그녀는 세심하고도 열정적으로 손님에게 직접 전달했다.
사정우는 복잡한 심정으로 묵묵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저렇게 예쁘고 능력 있는 여자가 왜 그의 것이 아니란 말인가. 만약 그녀가 자신을 따른다면 그는 그녀가 혼인한 적이 있든 아이가 있든 전혀 개의치 않을 것이다. 오히려 자신의 모든 재산뿐 아니라, 가게까지 전부 그녀에게 바칠 터였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바로 장사 아니던가.
그의 재산은 그녀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많았다. 그녀가 그의 재산을 가진다면 이런 고생은 할 필요가 없을 텐데…….
“나리, 제가 사람을 몇 명 보내 소란을 피우게 할까요?”
주잠은 상전의 안색이 어두운 걸 보고 비위를 맞추려 했다. 하지만 사정우는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소란을 피워 뭐 하겠느냐? 소란을 피울수록 저 여인은 더 투지를 불태우는데.”
주잠은 어리둥절했다. 사 여주인장은 줄곧 주인어른의 눈엣가시였다. 지난번에 그녀의 곳간을 불태웠을 때 주인어른은 크게 그를 칭찬했다. 그런데 어째서 지금은 태도가 변하셨단 말인가?
사앵앵에게 있어서 새로운 가게를 여는 건 큰 경사였다. 그녀는 이날을 맞이해 화려하게 치장하고 다른 날보다 더 활기차게 움직였다. 손님들이 그녀의 그런 모습을 보고 상점에 믿음을 가질 테니 말이다.
뽑기 상품을 손님에게 건넨 사앵앵은 갑자기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고개를 들었다. 맞은편 건물 창가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낯익은 체형과 용모. 그녀가 죽어서 재가 되어도 잊지 못할 모습이었다. 그녀는 경멸하듯 그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이를 드러내며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
사정우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저 여자는 참… 재미있다. 그는 분부했다.
“사람을 보내 사기 상점에서 물건을 좀 사 오거라. 오늘 우리도 사 여주인장의 좋은 기운을 좀 얻어 보지.”
주잠은 입을 쩍 벌렸다.
“…네?, 아, 네!”
주인어른께서 왜 이러시지? 저들의 물건을 팔아 주신다니! 사기 상점을 망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던가?
계단을 내려와 가마 앞까지 걸어간 사정우는 다시 한번 고개를 들어 사기 상점을 바라봤다. 높은 문루에 꽂힌 오색 깃발이 바람에 펄럭였다. 그 깃발에는 「사史」라는 글자가 커다랗게 수놓아져 있었다. 우아하고 강렬한 필체로 수놓아진 글자는 햇빛을 받아 금색으로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글자를 빤히 바라보던 그는 뒤늦게 가마 안으로 들어갔다.
사정우가 저택으로 돌아오니 류명풍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사정우에게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올해 봄 사냥 대회가 취소될 줄 알았는데 평소보다 조금 늦어질 뿐 원래대로 진행한다는 소식입니다! 그때 사장풍은 군대를 인솔해 사람들을 호송하느라 최소 보름 정도는 도성을 비울 겁니다. 사 주인장, 우리에게 기회가 왔습니다.”
“소식은 믿을 만하오?”
“물론입니다. 제후 행차는 아주 큰 행사입니다. 금군禁軍, 금군錦軍, 순포 오영 그리고 성밖에 주둔해 있는 병력도 모두 동원한다는 공문이 내려왔습니다.”
사정우는 앉아서 정신을 가다듬었다.
“사장풍은 없지만, 공춘홍, 그자는 있을 것 아니오…….”
“사 주인장, 안심하십시오. 제가 이끄는 금군은 그의 순포 오영보다 인원수가 더 많습니다. 이번에는 정말로 그와 사앵앵을 처리할 수 있습니다.”
사정우는 눈을 치켜떴다.
“내가 언제 사앵앵을 처리하겠다고 했소?”
류명풍은 말을 잇지 못하다 조심스레 입을 뗐다.
“알겠습니다. 공춘홍만 처리하겠습니다.”
* * *
시간이 갈수록 사기 상점의 명성은 임안성을 더욱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평범한 백성이든 고관 귀족이든 모였다 하면 사기 상점에 대해 흥미진진한 대화를 이어 갔다. 동시에 사앵앵에 관한 소문도 자자하게 퍼져 나갔다.
사기를 당해 금정각을 넘겨야 했던 것과 창고가 불에 탄 일 등 몇 차례 우여곡절들이 있었지만, 그녀는 끝끝내 사기 상점을 개점했다. 모두들 사앵앵의 능력을 높게 사며 그녀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칭찬했다.
사기 상점이 잘 될수록 사앵앵에 대한 사람들의 호기심 또한 깊어졌다. 다들 사기 상점을 지나칠 때면 은근히 고개를 들이밀며 그녀를 찾았고, 안을 살피다가 이내 참지 못하고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보물 창고와 같은 그 가게에는 없는 게 없어서, 항상 사고 싶은 물건들이 가득했다.
상점 안에서 한참 구경하던 사람들은 바로 오른쪽에 있는 여의루로 자연스럽게 향했다. 그들은 허기를 달래기 위해 고소한 비빔면 한 그릇을 먹거나 입맛에 맞는 요리를 몇 가지 시켜서 배불리 먹곤 했다. 그렇게 배도 든든하고 양손도 든든히 채워 집으로 돌아가는 건 인생에 있어 큰 즐거움이었다.
가게 세 곳이 한데 붙어 있자 장사가 더욱더 잘 되었다. 사앵앵이 제일 잘하는 게 바로 이런 연계 장사였다.
새로 개점한 상점의 할인 혜택이 끝나고 물건 가격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아직 그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틈을 타 사앵앵은 또 게시문을 내걸었다. 사기 상점에서 일정한 은전을 소비하면 여의루에서 반값에 식사하거나, 금수 포목에서 반값에 옷감을 살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그 반대도 가능했다.
사앵앵이 창안한 전략은 매번 큰 효과를 냈다. 상점끼리 연계된 혜택은 사람들의 소비를 더 불러일으켰다. 그 덕에 그녀의 장사는 날이 갈수록 발전했다.
그리고 또 얼마 되지 않아 사앵앵은 게시문을 새것으로 바꿨다. 사실 내용은 그대로였지만 사람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기엔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