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7화
야심한 밤에도 기루는 등불을 밝히고 있었다. 고관들은 돈을 물 쓰듯 써가며 흥청망청하고 있었다.
염춘원 입구에는 높이 걸린 홍등 두 개가 흔들거리며 어슴푸레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작은 건물의 창문에서 밝은 빛이 밖으로 새어 나왔다. 향락에 빠진 귀족들이 있는 곳이었다. 간간이 여인의 간드러진 웃음소리와 남자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장풍은 비스듬한 지붕 뒤에 숨어 도마뱀처럼 기와 위를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뒷마당은 앞마당보다 훨씬 한산하고 어두컴컴했다. 모든 것이 어둠 속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사장풍이 손가락 사이에 끼고 있던 작은 돌멩이 하나를 가볍게 튕겨 뒷마당의 담장을 때리자, 어둠 속에서 어떤 그림자가 흔들거렸다. 그가 다시 입을 가린 채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내니, 흔들거리던 그림자는 다시 어두운 곳으로 되돌아갔다.
경비가 이렇게 삼엄하다니… 분명히 이 뒷마당엔 대단한 비밀이 숨겨져 있을 것이다. 어린 거지는 맞아 죽었고 소녀는 행방불명이다. 사앵앵의 추측처럼 염춘원이 창륭 쌀집과 연관이 있다면 그 여자아이를 이곳 뒷마당에 숨겨놨을 가능성이 가장 컸다.
사장풍은 구문제독이었을 때, 기루와 도박장에서 정보를 팔아 생계를 꾸리는 껄렁패들을 알고 지냈다. 그들을 통해, 염춘원이 문을 연 지 불과 3년밖에 안 됐지만 대단히 빠른 속도로 자리를 잡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염춘원은 비교적 외진 곳에 있는데도 귀족들이 많이 찾는다고 했다. 듣기로는 그곳의 아가씨들이 다른 곳보다 좋다는데… 어디가 좋은지는 비밀인 듯 누구도 말하려 하지 않았다.
말을 하지 않아도 사장풍은 짐작할 수 있었다. 다만, 그가 짐작한 것이 너무도 심각한 문제라 오히려 제 추측이 맞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 * *
사장풍의 끝없는 권유로 사앵앵은 결국 창고에 불이 난 사건을 신고했다. 사건은 구문제독인 공춘홍에게 보고되었다.
공춘홍은 이 사건을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그는 직접 현장을 살펴보기 위해 찾아왔다. 창고는 불이 난 뒤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폐쇄한 상태였다. 반나절 동안 살펴봤지만, 공춘홍은 아무런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그는 가동이 흔적을 찾는 것에 능하다는 걸 떠올리고 도움을 청했지만, 기대와 달리 가 대인은 거절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공춘홍이 물었다.
“가 대인, 사 장군은 동향 친구가 아닙니까? 사 부인의 창고에 불이 났는데 어찌 돕지 않으십니까?”
가동은 히죽히죽 웃으며 말했다.
“본 대인은 시위에 불과하네. 황상의 안전에만 신경 쓰고 다른 일에는 일절 상관하지 않을 것이네.”
“가 대인, 사 장군과 싸웠습니까?”
가동은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매일 바빠 죽겠는데 싸울 겨를이 어디 있겠나? 괜한 헛소문 내지 말게.”
이렇게 말하긴 했지만, 가동의 모호한 어투에 공춘홍은 사 장군이 틀림없이 가 대인의 심기를 건드렸다고 생각했다. 가 대인의 능력으로 방화범의 흔적을 찾는 건 어렵지 않을 터인데, 돕지 않겠다고 하는 것일까?
공춘홍은 사앵앵이 의심하고 있는 사정우를 불러 심문을 했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다. 증거가 없으니 사정우가 딱 잡아떼면 공춘홍도 어쩔 수 없었다.
다만 사정우는 임안성에서 명망 있는 인물이기에 순포 오영관청에 불려가 심문을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체면이 상했다. 사정우는 심문을 받는 내내 표정이 좋지 않았고, 그와 두 승상과의 관계는 공춘홍도 잘 알고 있었기에 오랜 시간 잡아둘 수는 없었다. 심문이 끝나자마자 공춘홍은 그를 정중히 배웅했다.
사정우는 사앵앵이 그랬듯이 그의 저택 대문에 누군가 불을 질렀다고 부윤에게 신고했다. 결국 지난번 일이 또다시 재현되었다. 장 부윤과 류명풍은 사람들을 데리고 사부社府로 사람을 잡으러 왔다.
지난번과 달리, 이번에는 사 장군도 집에 있었다. 그는 칼집에 손을 올리고 대문을 막고 서 있었다. 비록 그 혼자였지만, 천군만마도 뚫지 못할 기세였다.
“장 대인, 류 총령, 당신들은 온종일 빈둥빈둥 놀기만 하시오? 왜 자꾸 우리 집에 오는 거요?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오면 다 접대할 수가 없소이다.”
“사 장군.”
류명풍은 공수하며 말했다.
“이렇게 자꾸 성 밖의 주둔지를 이탈하면 어떡하오? 누가 황상에게 당신의 죄를 고할까 두렵지도 않소?”
사장풍은 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신고하려면 해 보시오. 이 몸은 전혀 두렵지 않으니까.”
황제가 초왕이었던 시절, 사장풍이 그에게 맞선 일은 관리라면 알음알음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원래도 괄괄한 성격이었건만, 사앵앵을 만난 뒤엔 독설까지 늘어난 것 같았다. 장 부윤은 헛기침을 한 번 하더니 공손하게 말했다.
“사 장군, 댁의 부인께서 방화 혐의가 있다고 신고가 들어왔소. 본관은 부인을 관아로 데리고 가서 물어볼 것이 있소.”
사장풍은 코웃음을 쳤다.
“웃기는 소리! 우리 부인은 매일 가게 두 곳을 운영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남의 집에 불을 지를 틈이 어디 있겠소? 그런데 누가 신고한 거요? 불에 탄 건 또 어느 집이고?”
“본성의 금창 포목 사 주인장이 신고한 사건이오. 그 저택 대문을 태웠다고 하오.”
사장풍은 피식 웃었다.
“그게 내 부인과 무슨 상관이오?”
“사 나리께서는 사 장군의 부인께서 불을 질렀다고 의심하고 계신다오.”
“말도 안 되는 소리!”
사장풍은 대문 앞에 서서 냉소를 지었다.
“근거 없는 거짓말이오. 내가 그놈을 모함으로 고발하겠소.”
“사 나리의 저택 하인이 당신 부인을 봤소.”
사장풍은 속으로 놀랐지만 아무렇지 않은 안색으로 소리쳤다.
“그를 데려와서 대질하시오. 만일 그가 감히 거짓말을 한다면 내가 그놈을 가만두지 않을 테니.”
“사 장군, 여기서 사건을 심의하는 법이 어디 있소? 일단 관청으로 가야 하오.”
“미안하지만, 우리 집사람은 요 며칠 너무 고단해서 오늘 모처럼 집에서 쉬고 있소. 어디에도 가지 않을 것이니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거든 여기서 하시오.”
인내심이 바닥난 류명풍은 딱딱한 태도로 소리쳤다.
“사 장군, 조정 관리가 공무를 방해하면 죄가 더 무겁소.”
사장풍은 여전히 똑같은 태도를 취했다.
“하면 가서 고발하시오.”
류명풍은 지난번에 사앵앵을 잡아가지 못해 생긴 울화가 아직도 가슴에 남아 있었기에,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그녀를 잡아가리라 다짐했다. 그가 막 입을 열려는데 안에서 사앵앵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고, 류 총령이세요? 오늘은 또 왜 우리 집에 와서 생떼를 부리시나요?”
고개를 들고 바라보니 사앵앵이 해바라기 씨 한 줌을 손에 들고 사장풍의 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좀 줄까요?”
사장풍이 씨앗 두 알을 집어 입안에 넣고 우적우적 씹더니 씨앗 껍질만 뱉어 냈다. 만약 류명풍이 재빨리 피하지 않았다면 사장풍이 뱉은 씨앗 껍질이 그의 몸 위로 뿌려졌을 것이다. 류명풍은 화가 나서 눈을 부릅떴다.
“사장풍, 사람을 이리 업신여기다니!”
그가 손을 크게 휘저었다.
“저자를 잡아들여라!”
사장풍은 번쩍이는 장검을 뽑아 들고 고함을 질렀다.
“죽고 싶은 자만 올라오너라!”
계단 밑에 있던 금군들은 그날 사앵앵의 시종들에게 당한 기억에 쉽사리 움직이지 못했다. 게다가 이번엔 사장풍이 위풍당당하게 검을 들고 대문을 막아서자 다들 주저하며 감히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화가 난 류명풍이 또다시 고함을 질렀다.
“겁낼 게 뭐가 있느냐! 어서 달려들어 죄인을 포박하라!”
“이게 누구야.”
그때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내 구역에 와서 사람을 잡으라 마라 하는가?”
고개를 돌려보니 공춘홍이었다. 이 사람은 무시해선 안 되었다. 류명풍이 사장풍의 뒷조사를 했을 때, 그가 황제의 곁을 지키는 가동과 동향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듣자 하니 친분이 꽤 두텁다고도 했다. 하지만 공춘홍이 가동에게 창고 방화에 관해 조사를 부탁했을 때, 가동은 그 제안을 거절했다.
이건 세상 물정을 잘 아는 가동이 사정우와 두 승상의 관계를 이미 알고 끼어들고 싶지 않아 한다는 걸 의미했다. 어쨌든 가동만 나서지 않는다면 이번 일은 처리하기 아주 수월했다.
“제독 대인께서 여기까진 어인 일로 납시었소이까?”
“신고를 받고 왔소. 누가 시끄럽게 소란을 피우고 있다더니… 류 총령이었군.”
공춘홍은 웃음을 터뜨렸다.
“류 총령, 사 장군 저택에는 무슨 일로 온 것이오?”
“나 또한 당연히 사건을 처리하러 왔소이다.”
공춘홍은 장 부윤을 힐끗 쳐다봤다.
“내성은 본 제독의 구역이오. 장 부윤께서 또 사건을 잘못 접수하셨군.”
장 부윤이 말했다.
“본 부윤은 신고가 들어오면 죄인을 데려가 단죄할 뿐이오.”
“하지만… 여기는 부윤의 관할 구역이 아니잖소.”
공춘홍이 턱을 들고 말했다.
“본 제독이 자네를 직권남용죄로 보고할 것이 두렵지 않소?”
장 부윤은 두려웠다. 사실 자신이 월권인 건 맞았다. 하지만 무언가를 받은 이상, 자기 마음대로 물러날 수도 없는 법이었다. 게다가 두 승상과의 관계를 생각해서라도 쉽게 물러날 수 없었다.
“안 그래도 신고인은 제독 대인과 사 장군이 돈독한 사이라는 것을 알고, 제독 대인께서 사건을 불공정하게 처리할까 걱정하여 저에게 신고한 것이오. 제독께서 본 부윤을 고발하신다면 본 부윤 또한 사실대로 고할 수밖에 없소.”
“하면 본 제독도 사양하지 않겠네.”
공춘홍이 측근을 불러 명했다.
“감찰 대인께 고하거라. 장 부윤이 월권하여 내성의 사건을 심의하려 하니 감찰 대인께서 합당한 조처를 해 달라고 아뢰어라.”
장 부윤은 공춘홍이 정말 일러바칠 줄 몰랐다. 눈이 휘둥그레진 그는 멍하니 류명풍을 바라봤다.
류명풍은 화가 치밀었지만, 그의 말이 일리가 있으므로 반박할 구실을 찾지 못했다. 감찰관 이 대인은 공명정대로 유명한 인물이었기에 반드시 이곳을 찾아올 것이다. 그리되면 또다시 성공을 눈앞에 두고 실패하고 말 터. 그는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손을 내저었다.
“나를 따르라! 범인을 포박하라!”
공춘홍 역시 손을 휘둘렀다.
“순포 오영은 대문을 지켜라! 감히 대문을 넘으려는 자가 있거든 본 제독이 뼈도 추리지 못하게 만들 것이다.”
그는 차갑게 류명풍을 바라봤다.
“류 총령, 뭘 그리 서두르시오. 어쩌면 감찰 대인께서 직접 오실 수도 있으니 불만이 있으면 직접 말씀하시오.”
그날 밤과 마찬가지로 두 무리가 대치했다. 대문 앞에선 일촉즉발의 긴장된 분위기가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