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왕비초장성 (726)화 (725/1,192)

제726화

“제기랄.”

웬일로 주자가 욕설을 내뱉었다.

“저 사씨 놈은 인간이 글러 먹었어요. 부인, 이런 놈을 관청에 신고해야 합니다.”

금청아도 거들었다.

“맞아요. 관아에 신고해서 관리가 그를 잡아들이게 해야죠.”

아하가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장군께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좀 더 신중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그럴 필요 없어.”

사앵앵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늘 밤 우리끼리 바로 움직이자.”

“뭘 하시려고요?”

세 사람이 입을 모아 물었다. 사앵앵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목소리를 낮췄다.

“감히 내 창고를 불태우다니. 나도 그자의 저택에 불을 지를 거야!”

그 말을 들은 이들은 깜짝 놀라 멀뚱멀뚱 서로를 쳐다봤다. 원한은 계속 원한을 낳는 법,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니었지만……. 사앵앵은 가슴속에 치민 분노를 해소해야 했다. 사정우에게 그녀가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걸 보여 줘야 했다. 불태우려면 다 같이 불타야지, 누가 겁난다고!

그녀에게는 또 하나의 목적이 있었다. 사정우에게 많은 혐의가 있는 이상, 일을 크게 벌이는 게 더 낫다고 여긴 것이다. 일이 커지면 숨기고 싶어도 숨길 수 없는 비밀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사앵앵의 제안에 대해 아하는 못마땅했고, 주자는 주저했지만, 금천아는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서북의 처녀들은 천성적으로 용맹하고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녀는 오후 내내 자고, 저녁 무렵 일어나자마자 허겁지겁 밥을 먹었다. 그리곤 허리춤에 비수를 네 개나 꽂아 놓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아하와 주자는 비록 사앵앵의 의견에 찬성하진 않았지만, 제 주인을 말릴 방법은 없었다. 그러니 따라가서 돕는 수밖에… 그들에겐 별다른 방도가 없었다.

어둠을 틈타 그들은 담벼락 옆에 숨었다. 야경夜警(시각을 알림)을 도는 야경꾼이 멀어지자 아하가 불을 붙이려 했지만 사앵앵에게 제지당했다. 그녀는 손수 불을 놓으려고 했고, 금천아와 아하는 앞뒤에서 망을 보았다.

주자가 가져온 건초더미를 사부謝府 대문에 쌓자, 사앵앵은 화절자를 꺼내 불을 붙였다. 서서히 불길이 타올라 마당 문에 옮겨붙기 시작했다. 어두운 곳에서 조용히 기다리던 그들은 곧이어 숙직을 서던 하인이 놀라 소리치는 걸 들을 수 있었다.

“불이야! 빨리 나오시오! 어서 불을 꺼라!”

뒤이어 순식간에 요란한 발소리가 이어졌다. 사앵앵 일행은 목적을 달성하자 어둠을 틈타 조용히 도망쳤다.

사앵앵은 많이 타 봐야 저택의 대문 정도만 태울 뿐, 화재가 금방 진압되리란 걸 알고 있었다. 그녀의 목적은 정말로 사정우의 저택을 불태우는 게 아니었다. 아무리 사정우가 미워도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다만 이런 행동으로 그에게 자신이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고, 또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하려 했을 뿐이다.

밤중 소란에 깬 사정우는 대문에 불이 났다는 말에 속으로 깜짝 놀랐다. 순간 뇌리에 사앵앵이 떠올랐다. 두말할 것도 없이 불을 지른 사람은 그녀였다.

화가 난 그는 안색이 새파래졌다. 하마터면 피가 솟구쳐 토할 뻔했다. 계집종이 그에게 옷을 입혀 주러 달려왔다. 하지만 느려터진 시중에 짜증이 더 치솟은 사정우는 계집종의 뺨을 사정없이 내려치고 밖으로 나갔다.

대문 쪽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노비들은 우물에서 물을 길러 한 통씩 들고 가 부었다. 어둠 속에서 수많은 그림자가 왔다 갔다 하면서 이따금 부딪히고, 밟히고, 욕지거리가 들려왔다. 관리는 큰소리로 외쳤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입씨름이나 하고 있어? 빨리, 빨리, 어서 불길을 잡아! 집안에 옮겨붙으면 큰일이야!”

사정우를 발견한 그는 즉시 몸을 움츠리며 달려왔다.

“나리, 놀라셨습니까. 불길은 이미 거의 다 잡았습니다. 대문만 좀 탔을 뿐입니다.”

대문에 드문드문 꺼지지 않은 불씨를 본 사정우는 시종이 들고 있던 물통을 빼앗아 대문에 끼얹었다. 작은 불씨들은 곧장 꺼졌지만, 그 물이 튀어 그의 옷과 신발을 적셨다.

대문에 난 불이 완전히 꺼진 후, 그는 대문을 활짝 열라고 분부했다. 까맣게 탄 나무문 두 개가 열리자 타고 남은 건초 한 무더기가 안으로 날아들었다. 가장 먼저 밖으로 나간 몇 사람은 잿더미가 얼굴을 덮치는 바람에 눈을 뜰 수 없었다. 그중에는 사정우도 포함되어 있었다.

때마침 분부를 내리려는 찰나, 사정우는 재를 뒤집어썼다. 눈뿐만 아니라 입안에도 재가 들어가 씹힐 정도였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그는 얼른 몸을 돌려 고개를 숙이고 몇 번이고 힘껏 침을 뱉었다. 관리가 옆에서 얼른 소리를 질렀다.

“나리께서 눈을 못 뜨신다. 어서 수건으로 닦아 드려라!”

옆에 있던 계집종은 서둘러 손수건을 적신 뒤 사정우의 눈을 닦아 주었다. 사정우는 눈과 얼굴을 다 닦고 나서야 밖으로 나왔다. 계단 위에는 아직 바람에 날아가지 않은 잿더미가 남아 있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한 마디 한 마디 힘주어 내뱉었다.

“사앵앵, 어디 두고 보자!”

* * *

집에 돌아온 사장풍은 사앵앵이 사부의 대문에 불을 지른 사실을 알고 화를 내며 그녀를 혼냈다. 사앵앵은 목을 꼿꼿이 세운 채 자신을 변호했다.

“그놈이 내 창고를 불태웠다고요. 그런데 나는 그놈 대문에 불도 못 질러요? 그리고 나도 다 생각이 있어요. 화재로 사람을 다치게 하진 않았다고요.”

사장풍은 잿빛이 된 얼굴로 고함을 쳤다.

“대문을 태우든 사람을 태우든 난 상관없소. 난 부인이 그들에게 또 잡혀 버릴까 봐 두렵소. 지난번 염춘원 일을 떠올리면 난 아직도 덜컥 겁이 나오. 부인이 또다시 그들의 손에 들어갈까 봐! 그리되면 어찌할 거요?”

“아니, 그럴 일은 없어요. 금천아와 애들이 있잖아요.”

사장풍은 화가 치밀어 헛웃음이 터졌다.

“그 애들에게 사람을 지킬 능력은 없소. 단지 힘이 좀 세고 담력이 좀 크며 양의 뼈를 발라낼 수 있을 뿐이오. 일반인은 상대할 수 있다고 해도 정말 고수를 만나면 무슨 소용이 있겠소?

당신이 서북에 오래 있어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도성은 서북보다 위험하오. 서북의 도적과 짐승은 그 악행이 곧잘 드러나 보이지만, 도성 안의 나쁜 놈들은 모두 웃는 낯짝을 가진 맹수들이오. 겉과 속이 달라서 막으려 해도 막을 수 없소. 이리 겁 없이 상대하다간 상대방의 술수에 당하기 쉽소.”

사앵앵은 흥하고 코웃음을 쳤다.

“저는 장사꾼이에요. 제 뱃속에 구렁이가 없을 것 같아요? 그자에게 음모가 있다면 저도 있어요. 밝은 태양 아래 전부 다 까발려지면 누가 더 두려워하는지 어디 한번 보라고요!”

“앵앵.”

사장풍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나는 부인의 용맹함을 좋아하지만, 당신은 어쨌든 나의 부인이고 아이들의 어머니요. 당신은 두렵지 않겠지만, 나는 두렵소. 내 말을 들으시오. 사정우와의 원한은 잠시 내려놓고 모든 것을 나에게 맡기시오.”

사앵앵은 그를 힐끗 째려봤다.

“지난번에도 당신에게 맡기라고 했잖아요. 그 말을 한 지 꽤 됐는데… 그 여자아이의 행방은요? 알아봤어요?”

사장풍은 말끝을 흐렸다.

“아직 알아보는 중이오. 소식이 있으면 바로 알려 주리다.”

사앵앵은 바삐 달려온 그의 미간에 피곤이 잔뜩 끼어 있는 걸 알아차렸다.

“이번에는 집에서 며칠 동안 묵을 거예요?”

“부인이 자꾸 사고를 치니 불안해서 내가 더 오래 머무를 수밖에 없잖소.”

사앵앵이 딱 잘라 말했다.

“당신은 정말 잘난 것처럼 말하네요? 난 뭐 당신이 걱정 안 되는 줄 알아요?”

사장풍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밤이 늦었소. 얼른 잡시다.”

부부는 나란히 침상에 누워서 천장을 바라봤다. 둘 사람 다 말없이 각자의 걱정거리를 생각했다.

사앵앵이 고민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빨리 물건을 채워서 좋은 날짜를 택해 개점하느냐는 거였다. 비록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녀는 상점을 여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

고민이 깊어지던 찰나 이불 밑으로 커다란 손이 슬그머니 다가왔다. 그녀가 정신을 차리자 그 손은 그녀의 가슴을 덮쳤다. 사앵앵은 피식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당신, 뭐 하는 거예요?”

사장풍이 진지하게 말했다.

“우리 아이를 한 명 더 가질까? 아이가 생기면 부인이 이런 잡다한 일에 신경 쓰지 않을 거잖소.”

사앵앵이 그의 손을 내리눌렀다.

“원하면 솔직히 말해요. 아이 핑계 대지 말고요. 제가 당신을 모른다고 생각하세요?”

사장풍은 헤헤 웃었다.

“아이도 원하고 당신도 원하오.”

그는 그녀의 위로 올라와 입을 맞췄다.

사앵앵은 그를 한번도 거절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건장한 사내의 등을 더듬으며 기대감에 호흡이 가빠왔다.

“허리 부러지지 않게 적당히 해요.”

사장풍은 대답할 여유도 없이 바쁘게 움직였다. 그처럼 건강한 남자가 아내와 별거하고 있으니, 어찌 생각나지 않겠는가? 오랜만에 함께 침상에 누웠으니 참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그는 무인으로서의 삶과 병영의 분위기를 좋아했다. 하지만 유일한 옥에 티는 바로 아내와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낮에는 괜찮지만, 밤만 되면 외로움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따뜻하고 향기로운 여체를 품었던 날들이 너무 그리웠다.

다행히 황제가 은혜를 베푼 덕분에 이제는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었다. 설사 한밤중에 돌아온다고 해도, 아무도 그를 막을 수 없었다.

본래 호리호리하던 사장풍은 서북에서 지낸 몇 년 사이 건장한 체격의 사나이로 변했다. 탄탄해진 그의 근육을 어루만지던 사앵앵은 감정이 격해져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었다.

“사장풍, 내가 당신을 살찌게 잘 키웠죠.”

겨우 억제하고 있었는데……. 사장풍은 그녀의 말에 몸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사앵앵이 놀라 소리쳤다.

“아! 그러다 죽겠어요. 정말 허리 부러져요.”

사장풍은 급히 동작을 멈추며 그녀의 입술을 깨물었다.

“집중 좀 하시오. 있지도 않은 사실을 갖다 붙이지 말고.”

한바탕 폭풍이 지나고 사앵앵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사장풍은 물을 떠 와 손수건을 적셔 그녀의 몸을 닦아 주었다. 이내 자신의 몸을 닦은 뒤, 다시 침상에 누웠다. 그는 이불 속에서 아내를 품에 안은 채 속삭였다.

“난 정말 아이를 하나 더 갖고 싶소. 가장 바라는 건 아들이오. 내가 부인 곁에 없을 때, 그 녀석이 당신을 지켜줄 수 있잖소.”

사앵앵은 심장이 떨려오는 탓에 괜히 그의 가슴을 툭툭 쳤다.

“금언이 있잖아요.”

“그 녀석은 무인의 삶을 동경하오. 어쩌면 앞으로 나와 같은 길을 걸어갈 수도 있소. 부인 곁에 작은 아이가 남아서 돌봐주면 좋지 않소?”

“아이가 다 크면 당신은 늙었을 텐데… 그때도 돌아다닐 거예요?”

사앵앵이 고개를 치켜들고 바라봤다.

“장풍, 우리 10년을 기한으로 정해요. 10년 동안 저는 장사를 하고 당신은 군에 몸담는 거예요. 10년 후에는 아이들도 다 자랐으니, 그때 난 모든 걸 봉봉이에게 맡길 거예요. 그땐 당신도 집으로 돌아와서 매일매일 나랑 같이 지내요. 네?”

“알겠소. 그땐 집으로 돌아와서 부인과 함께 있겠소.”

사장풍은 큰 손바닥으로 그녀의 벗은 등을 쓰다듬었다.

“늦었으니까 이제 잡시다.”

그가 쓰다듬어 주자 사앵앵은 고양이처럼 눈을 가늘게 뜨더니 점점 깊은 잠에 빠졌다.

사앵앵의 편안하고 규칙적인 호흡에 사장풍은 그녀가 곤히 잠들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녀의 이마에 가벼운 입맞춤을 한 그는 살며시 팔을 빼고 이불 밖으로 나왔다. 야행복으로 갈아입은 그는 조용히 저택을 빠져나와 도성 서쪽으로 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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