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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725)화 (724/1,192)

제725화

진화를 도운 백성들은 한쪽에서 서로 웅성거리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쩌다가 불이 난 거야?”

“난들 아나. 오밤중에 갑자기 불길이 치솟던걸.”

“일찍 발견했으니 다행이지… 안 그랬음 다 타버릴 뻔했군, 그래.”

“불은 껐지만, 안에 있는 물건도 탔을 것 같은데.”

“여긴 누구네 창고래?”

“듣자니 여의루의 사 주인장 거래.”

“거기 주인장 아주 괜찮은 사람이던데. 지난번에 조카를 데리고 여의루에서 밥을 먹었더니 선물로 바람개비를 주더군. 조카가 어찌나 좋아하던지.”

“재수가 없었다고 여겨야지 뭐, 별수 있나. 그래도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잖나.”

“…….”

사앵앵은 사람들 사이를 뚫고 앞으로 걸어갔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던 그녀의 표정은 더없이 차분했다. 안 그래도 다친 사람이 있는지부터 물었던 그녀인데, 부상자가 없다는 걸 알았으니 마음이 놓였다. 그녀는 백성들을 바라보며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렇게 큰 도움을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은혜는 절대 잊지 않고 이 사앵앵이 반드시 보답하겠습니다.”

백성 중 누군가 입을 열어 대꾸했다.

“사 주인장, 별말씀을요. 이렇게 큰일이 났는데 어찌 지켜만 본답니까. 다들 이웃인데 응당 도와야지요.”

“맞소, 사 주인장. 이미 이렇게 되었으니 너무 속상해하지 말고, 어서 물건부터 정리하세요.”

아직은 쌀쌀한 봄밤이지만, 사앵앵은 허겁지겁 달려오느라 피풍도 걸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나 백성들의 말에 마음만큼은 더없이 따뜻했다. 그녀가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다시 한 번 더 인사를 전했다.

“감사합니다. 다들 피곤하실 텐데 어서 들어가 쉬시지요.”

백성들이 하나둘 흩어지자 사앵앵은 몸을 돌려 창고로 들어갔다. 탄내가 그녀의 코끝을 찌르는 통에 절로 기침이 났다. 문 앞을 지키던 두 점원은 넋이 나간 얼굴로 웅얼거렸다.

“주인어른…….”

“대체 어찌 된 일이더냐?”

점원은 서로를 멀뚱히 바라볼 뿐이었다. 어찌 된 일인지 그들이 어찌 알겠는가. 한창 자고 있을 때 갑자기 불길이 치솟은 것을.

“창고에 불씨를 흘린 건 아니고?”

“주인어른, 저희가 창고를 하루 이틀 지키는 것도 아니고… 해도 되는 것과 해서는 안 되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불씨를 흘릴 만한 건 절대 가지고 들어가지 않지요. 저희가 쓰는 유리등도 침대에 누울 때 곧장 꺼서 불씨는 전혀 없었습니다.

창고를 지키는 이들은 사앵앵이 직접 뽑은 이들이었다. 평소 성실하고 침착한 이들이란 건 그녀가 가장 잘 알았다. 게다가 창고를 지킨 지 이미 반년이 넘었고, 그간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다. 한데 어찌 갑자기 불이 났단 말인가? 이곳에서는 불을 때서 밥을 해 먹지도 않았다. 불씨가 될 만한 것도 없었다면, 대체 어쩌다 불이 났단 말인가?

사앵앵은 등불을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제때 불을 끈 덕분에 전체 물건의 삼 할 정도만 불에 탄 상태였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물건이 연기에 그을려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대충 계산해 봐도 절반 정도는 잃은 듯했다.

날이 밝는 대로 새로 개업할 가게에 진열할 것들이었는데… 절반을 잃었으니 진열할 물건이 턱없이 부족했다. 지금으로선 개업일을 연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장사꾼에게 정해진 계획이 틀어지는 건 정말 속상한 일이었다. 특히 잡화점을 여는 건 사앵앵이 오랜 시간 계획한 일이었다. 잡화점 개업일이 다가올수록 사앵앵의 마음은 점점 설렜다. 손님들로 북적거리는 가게를 상상하면 가슴이 간질거릴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의 가슴에 찬물을 끼얹듯 별안간 불이 났다. 그녀는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괴로움과 울분이 치솟았다.

하지만 장사판은 순식간에 많은 것들이 바뀌는 곳이었다. 오랜 시간 장사를 해온 사앵앵은 늘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에 하늘을 원망하거나 점원을 나무라지는 않았다. 그저 하인들을 불러 밤이 새도록 물건들을 점검하게 했고 연기가 더 퍼지기 전에 물건을 다른 곳으로 옮길 뿐이었다.

그녀 또한 매캐한 연기를 참으며 점원들과 함께 물건을 살폈다. 멀쩡한 물건은 깨끗이 닦아 급한 대로 점원들이 잠을 자던 방으로 옮겼다.

아침 햇살이 구름을 뚫고 대지를 비추었을 때, 사앵앵은 이미 점원들과 모든 물건을 정리한 뒤였다. 그녀는 원천림을 불러 멀쩡한 물건을 저택으로 옮기라고 분부했다. 이번 화재에 시종일관 의심을 하고 있던 사앵앵은 혹시 모를 사달에 대비해 물건을 옮겨 두기로 했다. 원천림이 마지막 물건까지 전부 싣고 떠나자 사앵앵이 점원을 불러 모았다.

물건을 반이나 잃었지만, 나름의 수확도 있었다. 이웃들의 헌신적인 도움과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일하는 점원들의 모습에 그녀는 크게 감동했다. 그녀의 분부 없이도 많은 점원이 소식을 듣고 오밤중에 창고로 달려와 그녀를 도와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큰 힘을 더해 준 덕분에 빨리 끝낼 수 있었다.

“다들 도와주러 와줘서 고맙네.”

사앵앵이 점원들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점원들이 어찌 그녀의 인사를 받을 수 있을까. 그들은 황급히 그녀를 따라 허리를 숙였다.

“주인어른, 이러시면 저희가 더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사앵앵이 웃으며 말했다.

“역시 내가 사람을 제대로 봤어. 여의루든 금수 포목이든 모두 우리 사기 사람이니 마땅히 서로 도와야지. 이번 달에는 봉급을 두 배씩 지급하겠다. 너희가 노력해 준 만큼 나도 은냥을 아끼지 않을 것이야.”

점원들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이렇게 호탕한 주인을 만나는 건 하늘이 내려준 복이었다. 한바탕 환호를 지르던 점원들은 금세 안정을 되찾았다. 불에 탄 창고가 눈앞에 있으니 주인어른의 막심한 손해가 절로 떠올랐다. 그때, 한 점원이 사앵앵에게 말했다.

“주인어른, 주인어른의 마음만 받겠습니다. 이렇게 많은 물건을 잃으셨는데… 다른 곳에 쓰시려면 그래도 은자를 아껴 두셔야지요.”

“맞습니다. 주인어른. 저희는 돈을 바라고 도와드린 게 아닙니다.”

“맞습니다, 맞아요. 저희는 돈을 바란 게 아닙니다.”

사앵앵이 웃으며 말했다.

“그 정도 돈은 줄 수 있으니 걱정들 말게. 정말 날 위한다면 정신들 차리고 열심히 일해서 내게 많은 돈을 벌어다 주게. 하면 난 또다시 모두에게 상여금을 줄 테니!”

호탕한 사앵앵의 목소리에 점원들은 다시 한번 환호를 내질렀다. 어쨌든 여의루와 금수 포목은 오늘도 장사를 이어 가야 했기에 사앵앵은 인력을 두 조로 나누어 한 조는 오전에, 다른 한 조는 오후에 근무하도록 했다. 돌아가면서 잠을 자기 위해서였다.

점원들은 그녀의 마음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주인이었다면 점원들의 노력을 당연하게 생각했을 텐데, 사앵앵은 한 명 한 명의 노력을 높게 평가하고 모두에게 자상하게 대해 주었다. 세상에 이런 주인이 또 어디 있을까.

사앵앵은 아침 햇살을 맞으며 집으로 돌아갔다. 금천아와 아하, 주자가 그녀의 곁을 따랐다.

시장 근처에 들어섰을 때, 그들은 사정우를 마주쳤다. 아니, 어쩌면 사정우가 일부러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금천아와 아하, 주자는 곧장 사앵앵 앞을 가로막았다. 세 사람은 허리춤에 꽂힌 비수를 만지작거리며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사앵앵이 조용히 분부했다.

“너흰 물러나거라. 내가 가 보겠다.”

“부인, 저자가 어떤 자인지 모르십니까.”

금천아가 말했다.

“나도 안다. 하지만 저자에게 묻고 싶은 게 있어.”

사앵앵은 그녀를 밀치고 사정우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사앵앵은 창고에 불이 난 이유를 수상쩍게 생각했지만, 그걸 사정우와 연관시키지는 못했다. 그런데 창고에 불이 난 다음 날 아침, 그녀가 항상 지나가는 길에 사정우가 서 있자 마음속에 의심이 피어올랐다.

사정우는 길가에 서서 사앵앵을 바라보았다.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한 그녀의 얼굴은 피곤해 보였지만, 두 눈은 여전히 맑게 빛났다. 그런 그녀를 보고 있자니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제껏 제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일들을 해왔던가. 하지만 그는 양심에 가책을 느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왜일까. 막상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자니 가슴에 잔잔한 파문이 일었다. 그는 그녀 앞에서 몸을 숨기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녀가 처음이었다, 이런 감정을 들게 한 것은. 사정우는 씩 웃었다. 그는 인사말을 건네며 마음속에서 떠오르는 불안을 감췄다.

“사 여주인장, 어젯밤 창고에 불이 났다는 소식을 들었소. 정말 심려가 크겠소.”

사앵앵은 가볍게 대꾸했다.

“괜찮아요. 피해가 크진 않아요. 사람이 괜찮으면 됐죠.”

“사 여주인장께서 그렇게 초연할 수 있다니 놀랍소.”

“그렇지 않으면요?”

사앵앵이 날카로운 눈초리로 그를 직시했다.

“불을 지른 썩을 놈을 찾아내서 한바탕 때려 줄까요?”

사정우는 어안이 벙벙했다.

“누군가 불을 질렀다고 생각하오?”

사앵앵은 그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아마 맞을 거예요.”

그녀의 말투와 표정이 의미하는 바가 있었다. 사정우는 자신을 경멸하는 듯한 눈초리를 보자 화가 치밀었다.

“사 여주인장이 분명 누군가에게 밉보인 게 아니겠소?”

그가 비아냥거리듯 웃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무런 까닭 없이, 누가, 왜 당신의 창고에 불을 지르겠소?”

“맞아요. 어떤 소인배의 미움을 샀죠.”

사앵앵이 흥하고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그 썩을 놈은 나한테 들키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일단 찾으면 내가 그놈의 힘줄을 뽑고 뼈를 골라낼 거니까.”

사정우는 허허 웃음을 터뜨렸다.

“사 여주인장이 이렇게 천지 분간 못 하는 사람인 줄 몰랐소. 좀 자중하기를 권하오. 또다시 창고를 불태우지 않으려면.”

“전 원래 이런 성질머리예요.”

사앵앵이 호호거리며 웃었다.

“또다시 태우겠다? 좋아요. 기대하죠. 어떤 망할 놈이 죽고 싶은지 한번 봐야겠네!”

“사 여주인장, 너무 큰소리치지 마시오.”

면전에서 두 번이나 욕을 먹은 사정우는 안색이 좋지 않았다.

“두고 봅시다.”

그는 소매를 뿌리치고 가 버렸다. 사정우가 가 버리자 금천아와 다른 시종들이 얼른 다가왔다.

“부인, 저자와 뭐 하러 그렇게 오래 이야기하십니까?”

사앵앵은 가마에 올라타는 사정우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녀가 어두워진 안색으로 말했다.

“몇 마디 대화 없이 어떻게 저자의 속을 떠보겠니? 어젯밤 우리 창고가 불탄 건 분명 저자가 수하를 시켜서 한 짓이야.”

“뭐라고요?”

금천아는 놀라 소리를 질렀다.

“저 사씨 놈이 불을 지른 거라고요?”

“틀림없어.”

사앵앵이 주먹을 꽉 쥐었다.

“저자가 아침 일찍부터 이곳에 서 있던 건 날 희롱하고 경고를 하기 위해서야. 애석하게도 그의 천진난만한 계략은 멍청한 짓이었지만. 나 사앵앵이 그런 협박에 무너질 줄 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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