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4화
깜짝 놀란 사앵앵은 서둘러 하천으로 걸어갔다. 사람들을 헤치고 앞으로 다가가 시신을 확인하니… 역시나 성 서쪽에서 만났던 어린 걸인이었다. 창백한 얼굴은 물에 퉁퉁 불어 있었다. 아무래도 물에 빠진 지 시간이 꽤 흐른 것 같았다.
그녀는 충격에 머릿속이 진동하는 듯했다. 얼이 빠진 얼굴로 한참 동안 시신을 바라본 뒤에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 두 아이가 사라진 후, 한동안 걱정에 잠겨 있었다. 한데 이런 모습으로 다시 만날 줄이야.
그녀는 아하를 불러 서둘러 아이의 시신을 수습하라고 분부했다. 그래도 어딘가에 묻어 주는 것이 마음에 편할 성싶었다.
이런 일을 겪었는데 어찌 시장 구경을 할 수 있을까. 사앵앵은 서둘러 저택으로 돌아왔다. 금천아가 물었다.
“부인, 아우가 죽었는데… 누이는 괜찮을까요?”
사앵앵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금천아 말이 맞았다. 여자아이는 어찌 되었을까?
사앵앵이 돌아왔을 때, 사장풍도 이제 막 저택에 돌아와 세안하려던 참이었다. 사앵앵이 방으로 들어오는 모습에 사장풍이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부인, 나 왔소.”
사앵앵은 짤막하게 대꾸하고는 곧장 침실로 향했다. 사장풍은 누가 그녀의 심기를 건드린 것인지 궁금했다. 그는 손을 닦고 얼른 사앵앵을 따라 침실로 향했다.
“무슨 일이오, 앵앵. 오늘 주루와 포목점 매출이 좋지 않은 것이오?”
사앵앵이 고개를 저었다.
“성 서쪽에서 만났던 어린 남매 기억하죠? 오늘 하천에서 남자아이가 죽어 있는 걸 봤어요.”
사장풍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죽었다니, 어찌 죽었단 말이오?”
“익사한 것 같았어요. 얼굴이 다 부었더라고요.”
사앵앵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하한테 얇은 관이라도 사서 장례를 치러주라고 했어요. 정말 너무 가여워요.”
사장풍은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감싸 안았다.
“그래도 당신을 만났으니 그 애에겐 복인 셈이오.”
사앵앵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복은 싫어요. 그저 아무 탈 없이 살아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설령 걸인이라 해도 목숨은 소중한 것이잖아요. 그렇게 어린 것이 허무하게 떠나다니… 그 애 부모가 곁에 있었다면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요.”
사장풍이 그녀의 어깨를 어루만졌다.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시오. 고단한 삶을 살았으니 너무 빨리 환생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려.”
사앵앵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두 부부는 줄곧 말없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잠시 뒤, 사장풍이 물었다.
“그 애 누이는?”
사앵앵이 고개를 저었다.
“살아 있기만 바랄 뿐이에요.”
아하는 밤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목욕을 마친 뒤 옷을 갈아입은 그는 사앵앵을 찾아와 고했다.
“부인, 분부하신 대로 소인이 잘 처리했습니다.”
사앵앵이 물었다.
“그래, 별 탈은 없었고?”
“인부를 사서 묻어 주는 건 별 탈 없었습니다. 다만…….”
사장풍이 물었다.
“다만이라니, 무슨 일이 있던 것이냐?”
“수의로 갈아입힐 때, 몸에 상처가 난 걸 보았습니다.”
“무슨 상처?”
“커다란 멍 자국이 있었습니다.”
아하가 침을 꼴깍거렸다. 그 상처가 자꾸 생각나 온몸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가슴에는 움푹 파인 곳도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익사가 아니라 맞아 죽은 것 같습니다.”
사앵앵은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게 정말이냐? 어서 관청에 고해야겠다.”
사장풍이 그녀의 손목을 끌어와 제 옆에 앉혔다.
“관청에 고한다 한들 그게 무슨 소용이요. 걸인 하나 때문에 누가 조사를 해 주겠소?”
사장풍이 구문제독으로 있던 때에도 걸인이 사망하는 일은 자주 있었다. 어떤 이는 얼어 죽고, 어떤 이는 굶어 죽고, 또 맞아 죽는 이도 있었지만 관청에 고하는 사람이 없었을뿐더러 굳이 사인을 조사하는 일도 없었다. 그저 멍석에 말아 들판에 시체를 버리면 끝이었다. 사앵앵이 얼빠진 표정으로 물었다.
“어떻게 조사를 안 할 수가 있어요. 걸인 목숨은 목숨도 아니에요?”
“그 애가 죽은 걸 누가 신경이나 쓰겠소?”
“그 애 누이가 쓰겠죠.”
“그 누이는 어디 있고?”
“…….”
아하가 물었다.
“하지만 누가 어린 걸인을 때려죽이려 하겠어요?”
“그런 일은 충분히 있을 수 있지.”
사장풍이 여러 가능성에 대해 설명했다.
“그 애들의 자리를 빼앗거나 음식을 빼앗으려는 사람들이 없을까? 또 어쩌면 그 애의 누이 때문에…….”
그의 말을 듣자 사앵앵은 마음이 급해졌다.
“그 애 누이를 찾아야 해요. 그 애까지 이런 꼴을 만들 수는 없어요. 그건 너무 참혹하잖아요. 다들 동월의 백성들인데 왜 그 애들이 그런 삶을 살아야 해요?”
사장풍이 한숨을 내쉬었다.
“천하는 너무 넓소. 황상께서도 모든 걸 다 돌보실 수는 없소. 당신은 최선을 다했으니 이미 충분하오.”
사앵앵도 황제가 훌륭한 군주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세상은 계급에 따라 빈부가 크게 나뉘었다. 부잣집에선 술과 고기 냄새가 진동하고, 거리에는 얼어 죽은 시체가 나뒹굴었다. 한참 동안 침묵하던 사앵앵이 사장풍에게 물었다.
“혹시 아이의 죽음이 창륭 쌀집과 관련이 있진 않을까요?”
“무엇 때문에 그리 생각하오?”
“그날 죽을 받으러 간 뒤로 보이지 않았으니까요.”
사앵앵이 손가락을 꼽으며 설명했다.
“금정각부터 따져 보자고요. 금정각에 갑자기 건물 주인과 원래 주인장이 나타난 것도 수상했죠. 한 사람은 염춘원으로, 한 사람은 창륭 쌀집으로 돌아갔고요. 금정각의 원래 주인장을 뒤쫓다가 염춘원에 감금까지 당했고요. 그리고 그곳에서 사정우가 나타났어요.
창륭 쌀집에서는 연말에 죽을 나눠 주었고 두 아이는 죽을 받으러 갔다가 실종되었어요. 염춘원과 창륭 쌀집 간에 무슨 연관이 있는 거 아닐까요? 그리고 이 두 곳과 사정우 사이에도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고요.”
사장풍이 짧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당신 말대로라면 염춘원과 사정우는 관련이 있을지라도 창륭 쌀집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지 않소. 그 애들의 실종이 창륭 쌀집과 연관이 있다고 할 증거도 없고 말이오.”
“사정우와 창륭 쌀집의 주 주인장은 아주 친해요. 함께 여의루에 밥까지 먹으러 왔을 정도니까요.”
“장사꾼끼리 서로 잘 안다고 무슨 의미가 있겠소?”
“어쨌든 사정우가 염춘원과 관련이 있다는 건 확실해요. 염춘원에 검은 옷을 입은 무사들까지 두고 있잖아요.”
사앵앵은 고민이 되는 듯 손가락을 비틀었다.
“지금은 그 여자아이만이라도 찾고 싶어요.”
“당신은 신경 쓰지 말고 이 일은 내게 넘기시오. 내가 찾아보겠소.”
“어떻게 찾으려고요?”
“잊었소? 당신 부군은 구문제독이었소. 내 손으로 처리한 사건이 얼마나 많은데. 지금은 새로운 황조皇朝가 들어서 관리들도 많이 바뀌었지만, 그래도 임안성에는 잘 아는 동무들이 많으니 염춘원에 대해 알아보는 건 문제 없소.”
사앵앵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아이를 찾는다면서 왜 염춘원을 알아본다는 거예요?”
말을 마친 그녀는 곧장 입을 틀어막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그 아이가 염춘원에 들어갔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사장풍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만약 죽을 받으러 간 아이가 염춘원에 들어갔다면… 사정우와 창륭 쌀집도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지.”
사앵앵은 머리가 복잡해졌다.
“알겠어요. 가서 알아봐 줘요. 하지만… 조심해야 해요. 사정우는 정말 위험한 인간이거든요. 절대 그자한테 발각되면 안 돼요.”
그녀는 자꾸만 다른 문제들이 생각나는 듯 급히 말을 이었다.
“그보다 당신은 군영도 지켜야 하는데, 어떻게 알아보려고요?”
“병사들 훈련은 부장이 있으니 난 언제든 가도 상관없소. 누가 날 막겠소?”
“황상께서 아실까 겁나지도 않아요?”
“전혀. 황상께도 말씀드렸소. 혹 내가 집에 자주 돌아오거든 그건 부인이 보고 싶어서라고 말이오. 황상께서도 그쪽으로 워낙 깨어 있는 분이라, 보고 싶을 땐 언제든 보러 가도 좋다고… 시답잖은 말을 하는 자가 있거든 자신의 앞에 데려오라고 하셨소.”
그가 볼을 씰룩거리며 황제의 말을 따라 하자 사앵앵이 입을 가리고 킥킥댔다. 그녀는 그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황상께서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다고요?”
사장풍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황상께 날 믿어 달라고 했고, 황상께서 그리하겠다고 약조하셨소. 그런데 당신은 그날 황상과 대체 무슨 말을 한 것이오?”
“황상께 당신을 믿어 달라고 했어요. 황상께서도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다고 하시던걸요.”
사장풍은 마음이 따뜻해졌다. 부인만큼 부군을 잘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더니. 이렇듯 어떤 일은 황상의 신임을 얻어야만 마음 놓고 할 수 있었다. 정말인지 이 세상에선 오직 사앵앵만이 그를 가장 잘 이해했다. 그녀는 그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고민도 잘 알아차렸다. 그야말로 두 사람은 가장 호흡이 잘 맞는 천생연분이었다.
* * *
어린아이의 죽음 때문에 사앵앵은 한동안 괴로워했지만, 금세 마음을 다잡고 잡화점 준비에 몰두했다. 내부 단장도 이미 끝마친 뒤였다.
아치형 들보에 커다란 유리 등잔이 걸려 있었고 오동나무로 만든 진열대는 은은하게 나무 향을 내뿜었다. 곳곳에 기다란 사다리가 놓여 있었고 창가에는 푸른색 깔개를 깐 의자와 작은 탁자가 주르륵 놓였다. 한눈에 봐도 기존의 가게와 완전히 새로운 모습이었다.
내일이 잡화점의 개업일이라 기분이 들뜬 사앵앵은 한동안 잠들지 못하고 몸을 뒤척였다. 늦은 밤 겨우 잠들었는데, 별안간 누군가 그녀의 방문을 두드렸다.
“부인, 큰일 났습니다. 창고에 불이 났습니다!”
깜짝 놀란 사앵앵은 옷만 대충 걸치고 달려가 문을 열었다.
“대체 무슨 일이에요. 어디에 불이 났다고요?”
문을 두드린 사람은 원천림이었다. 그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창고요. 창고에 불이 났습니다. 지금 불을 끄고 있으니 어서 가 보십시오.”
사앵앵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가요, 어서요.”
다행히 야간에도 창고를 지키는 인력이 배치되어 있었다. 창고를 지키는 두 점원은 탄내를 맡고서 잠에서 깼다. 목이 터져라 소리지르며 주위에 도움을 요청했고, 서둘러 사람을 보내 이 소식을 원천림에게 알렸다.
사앵앵이 창고에 도착했을 땐 이미 불이 다 꺼진 뒤였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이따금 바람결을 따라 반짝였다 사라지는 불씨와 하늘로 치솟는 매캐한 연기가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