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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722)화 (721/1,192)

제722화

사앵앵은 황제의 말에 줄곧 조마조마했던 마음을 내려놓았다. 사장풍에겐 이미 마음을 놓은 그녀였지만 황제는 이쪽 일에 워낙 소심한 성격이 아니던가. 함께 모이다 보면 서로 마주치는 건 당연지사인데, 혹여나 무슨 마찰이라도 생길까 봐 그녀는 내내 불안했다. 그녀가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황상, 부디 노여움 푸시옵소서. 제가 너무 당돌하게 굴었습니다.”

“남편을 지키려는 마음이 깊은 것이지. 짐도 다 이해하네.”

황제는 빙그레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듣자니 임안성에 가게 두 곳을 열었다던데.”

“예, 주루와 포목점을 열었습니다.”

“장사는 잘되는가?”

“그럭저럭 먹고 살 만 합니다.”

“그간 역참을 잘 돌본 걸 보면 사 주인장은 천생이 장사꾼이야.”

“그리 칭찬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내년엔 계획이 어찌 되는가?”

사앵앵은 흠칫 놀랐다. 황제가 자신의 장사에 이렇게 관심을 가질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좀 더 자리를 잡은 뒤에 가게 몇 곳을 더 열 생각입니다.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추면 장사가 더 잘 될 테니까요.”

“좋은 생각이군. 도성은 동월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니 마음만 먹으면 장사가 잘될 걸세. 하지만 그만큼 몹시 어려운 일이기도 하지. 짐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듣겠나?”

“예, 잘 알고 있습니다. 도성이 큰 만큼 경쟁도 심한 법이지요.”

황제의 말뜻을 그녀는 곧장 이해할 수 있었다. 도성은 뛰는 놈도 많을뿐더러 나는 놈도 수두룩한 곳이었다. 더구나 타지 사람인 그녀가 도성에 터를 잡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녀가 나서면 누군가의 이익을 침범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사정우라든가.

“장사판에는 그곳만의 규율이 있는 법이라 잘 되는 때도 있지만 또 쉽게 망하기도 하지. 오직 자기 힘으로 이겨 내야 하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아무래도 황제는 그녀가 사장풍의 관직에 기대어 장사할까 봐 이런 말을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황제가 그녀를 잘못 본 것이다. 사앵앵은 지금껏 그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자신에게만 의지했다.

“황상, 걱정하지 마시옵소서. 그러한 건 저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방 안을 지키던 사장풍은 이따금 고개를 내밀고 밖을 바라보았다. 정말 갑갑해 미칠 것만 같았다. 대체 황상과 사앵앵은 무슨 이야기를 나누길래 저리 오랜 시간 대화를 이어간단 말인가?

소문난 애처가인 황제는 그 어떤 여인에게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한데 지금은 어찌 자신의 부인과 말을 섞는단 말인가. 설마…….

그는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 부디 자신이 걱정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길 바라면서. 만약 묵용감이 자신의 여인을 넘보는 거라면, 황제든 뭐든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그가 막 나오자마자 황제는 계단 아래로 내려가 사람들 곁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는 조용조용 다가가 사앵앵의 귓가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깜짝 놀란 그녀는 몸을 돌려 주먹을 날렸다.

“미쳤어요? 놀라 죽을 뻔했잖아요.”

말을 마친 그녀는 그제야 자신이 불길한 얘기를 했다는 걸 깨닫고 잇달아 침을 퉤퉤 뱉었다. 사장풍이 물었다.

“황상께서 뭐라 하시었소?”

“별거 아니에요.”

“별거 아닌데 그리 오랜 시간 얘기했단 말이오?”

사앵앵은 잔뜩 굳어진 그의 목소리에 절로 웃음이 났다.

“왜요, 질투 나요?”

사장풍이 코웃음을 쳤다.

“조심하시오. 황상은…….”

사장풍은 결국 말을 멈추었다. 그래도 황제인데 뒤에서 헐뜯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사앵앵은 그의 옆구리를 살짝 찌르며 물었다.

“황상께서 날 마음에 들어 하시면 어찌할 거예요?”

순간 사장풍의 안색이 어두워졌다가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그럴 리가? 당신이 마마보다 예쁘오?”

사앵앵은 곧장 그의 가슴팍에 주먹을 날린 뒤 발걸음을 돌렸다. 하지만 사장풍은 그런 그녀를 끌어당겨 품에 꼭 안았다.

“내 눈엔 당신이 가장 예쁘오.”

조금 전 치솟았던 화는 그의 말 한마디에 구름이 걷히듯 사르르 녹았다. 그녀가 피식 웃으며 그를 밀쳤다.

“됐네요.”

한창 툭탁대고 있는데 갑자기 환호성이 쏟아졌다. 영구와 가동이 둘 중 누가 더 빨리 화포에 불을 붙이는지 대결을 하고 있었다.

바닥에는 양쪽으로 일고여덟 개의 화포를 둥글게 설치해 놓았다. 영구는 원 밖에 서서 빠르게 불을 붙였다. 어찌나 발이 빠른지 동작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고 선홍빛 향불만 어둠을 가르며 빛을 내뿜을 뿐이었다. 영구를 지켜보던 이들은 일제히 박수를 보냈다.

가동은 잔꾀를 부려 원 안에서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반경이 더 좁으니 움직임을 최소화해서 불을 더 빨리 붙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빠른 속도만 생각했을 뿐, 엄청난 소리를 내며 불꽃이 잇달아 터질 것까진 생각하지 못했다. 원 안에 갇힌 그는 휘황찬란한 불씨를 피해 이리저리 피해 다니느라 허둥댔다. 가동을 지켜보던 이들은 다들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결국 영구가 화포 하나를 걷어찼고, 가동은 그 틈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얼굴은 연기로 잔뜩 그을려 있었고 옷자락엔 자그마한 구멍들이 송송 나 있었다. 녹하가 눈을 희번덕이자 가난청도 어머니를 따라 함께 눈을 희번덕였다. 가소타만이 활짝 웃으며 달려와 그의 다리를 끌어안았다.

“아버지, 최고!”

불꽃놀이를 마친 뒤에는 일행 모두 다시 방으로 돌아와 몸을 녹였다. 청양 공주는 가만히 있지 못하고 가소타를 안더니 영안에게 말했다.

“우리 소꿉놀이 하자.”

영안은 그녀의 말에 곧장 머리가 아파졌다.

“안 해요.”

청양 공주는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안 한다니, 넌 소타의 아버지잖아!”

마침 안으로 들어오던 가 대인은 청양 공주의 말에 눈이 뒤집힐 뻔했다. 하지만 그저 아이들끼리 소꿉장난을 하는 것이었기에 다시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영안은 성가시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소타 아버지는 다른 사람으로 찾아봐요. 여기 나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닌데.”

“하지만 네 키가 제일 크잖아. 그래서 제일 아버지 같단 말이야.”

사금언은 청양 공주의 해바라기였기에 영안이 거절하자 자발적으로 나섰다.

“영안 형님이 하기 싫으면 제가 할게요.”

청양 공주가 사금언을 힐끔거리며 말했다.

“부군이 부인보다 어린 경우가 어디 있어? 넌 너보다 어린 부인을 찾아야지.”

그저 청양 공주의 기분을 맞춰 주고 싶었을 뿐인데……. 예상치 못하게 푸대접을 받자 상처를 받은 사금언은 입을 삐죽거리며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가소타가 아장아장 걸어와 그의 옷깃을 잡아끌었다.

“금언 오라버니, 내가 부인 할게.”

청양 공주는 한숨을 내쉬며 가소타를 끌어안았다.

“넌 아기야. 아직 어려서 시집을 못 간다고. 게다가 저 앤 네 삼촌이니까 혼인할 수 없어.”

그녀의 말에 옆에 있던 황후와 녹하 등이 웃음을 터뜨렸다. 대체 뭐가 뭔지, 관계가 뒤죽박죽이었다. 청양 공주만 옆에 있으면 다들 머리가 복잡해지는 기분이다.

청양 공주를 중심으로 영안, 사금언, 가난청, 가소타가 모였다. 한구석에선 성 황자가 끈질기게 사봉봉의 주변을 맴돌았다. 성 황자는 주먹 쥔 손을 사봉봉에게 내밀며 말했다.

“누이, 손 펴 봐. 내가 좋은 걸 줄게.”

사봉봉이 물었다.

“무엇인데요?”

“묻지 말고, 손만 펴면 돼.”

사봉봉은 조금 걱정이 되었다.

“벌레는 아니겠지요?”

예전에 사금언이 그런 장난을 친 적 있었기 때문에 절로 겁이 난 것이다. 성 황자가 의젓하게 미소를 지었다.

“내가 어찌 누이 손에 벌레를 놓겠어? 그런 건 청양이나 하는 짓이라고.”

사봉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청양 공주가 벌레를 잡는단 말이에요?”

성 황자가 코웃음을 쳤다.

“벌레를 잡는 건 별것도 아니지. 이 세상에 그 애가 못 하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사봉봉은 그런 청양 공주가 부러웠다.

“청양 공주는 담이 참 크군요.”

“담이 큰 게 뭐가 좋다고. 그러니 귀신도 무서워한다는 소리나 듣는 거지. 그게 어디 듣기 좋은 말인가?”

성 황자가 입을 삐죽거렸다.

“여인이라면 응당 누이처럼 단아하고 고와야지. 그래야 여인답잖아.”

성 황자의 말에 안심한 사봉봉은 손바닥을 보였다. 성 황자는 조심스럽게 주먹을 펴고 자그마한 옥석 한 알을 사봉봉의 손 위에 올려놓았다. 새하얀 손에 올려진 옥석은 꼭 금세 녹을 것만 같았다. 정교하고 우아한 걸 좋아하는 성 황자는 사봉봉의 손을 보며 절로 감탄을 내뱉었다.

“누이 손 정말 예쁘다.”

사봉봉이 얼굴을 붉히며 옥석을 바라보았다.

“옥이 정말 예쁘네요.”

멀리서 이 모습을 바라보던 기홍이 백천범에게 말했다.

“전하께서 봉봉이를 좋아하시나 봅니다.”

녹하가 끼어들었다.

“맞아요, 전하께서 어떤 꼬마 아가씨한테도 이렇게 정성을 다한 적이 없으셨는데… 어쩌면 훗날 좋은 인연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앵앵이 서둘러 입을 열었다.

“저희같이 평범한 백성 집안이 어찌 감히 그리 높은 곳을 올려다보겠습니까.”

백천범이 웃으며 말했다.

“태자의 일은 내가 좌지우지할 수 없지만, 청양이와 성아는 문벌이나 규율에 얽매이지 않고 본인들이 좋아하는 사람을 고르게 할 거야.”

녹하가 웃으며 사앵앵에게 말했다.

“마마의 말을 들으니 봉봉이는 훗날 왕비가 될 운명인 것 같군요.”

사앵앵은 웃기만 할 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사봉봉은 겉으로 보기엔 얌전하고 참해 보이지만 주관이 뚜렷한 아이였다. 장사를 좋아했고, 훗날 사씨 집안의 사업을 크게 발전시키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아이가 어찌 집에만 틀어박혀 있어야 하는 왕비가 되겠는가?

기홍은 다른 쪽을 바라보며 턱을 들어 올렸다.

“금언이는 청양 공주에게 마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겹경사가 날 수도 있겠군요. 누이는 왕비가 되고, 아우는 부마가 되고. 이 얼마나 좋은 일이에요.”

사앵앵이 웃음을 터뜨렸다.

“금언이가 공주 전하께 장가를 갈 수 있다면 몇 생에 걸쳐 쌓은 복을 누리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공주께서는 금언이가 마음에 들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백천범이 말했다.

“아직 다들 어리니 지금 이런 얘기를 하는 것도 시기상조겠지. 난 그저… 아이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어. 자유분방한 청양이는 저 애의 마음을 고요하게 만들어 줄 부군을 만나야 할 거야. 안 그럼 사나흘에 한 번꼴로 소란을 피워서 머리가 아플 테니까.

성아는 마음이 여리고 온화하지만, 성격이 조금 방만하고 또 조금… 다정한 편이지. 언젠가 정말 한 여인에게 마음이 뺏긴다면 일편단심으로 그 여인만 바라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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