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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721)화 (720/1,192)

제721화

그중에서도 아이들이 가장 즐거워했다. 다 같이 모이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기에 아이들은 사탕과 폭죽을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장난을 쳤다.

사봉봉은 조금 컸다고 청양의 무리를 따라다니지 않고 사앵앵 옆자리에 앉아 조용히 이모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늘 자신의 딸 때문에 골치가 아프던 백천범은 얌전히 앉아 있는 사봉봉이 유독 더 예뻐 보였다. 그녀는 간식을 하나 집어 들고 사봉봉에게 먹여 주며 물었다.

“봉봉아, 어째서 아이들과 같이 놀지 않고?”

사봉봉은 조금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

“마마, 봉봉은 이미 다 컸습니다.”

백천범은 정원에서 들려오는 청양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떠들썩하게 웃고 소리를 지르는 게 꼭 혼자 연극을 하는 것 같았다. 백천범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우리 청양이도 봉봉의 반 만큼만 닮아도 참 좋을 텐데.”

사앵앵이 웃으며 말했다.

“공주 전하의 발랄하고 생기 넘치는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 모릅니다. 전 봉봉이가 너무 조용해서 걱정인걸요.”

백천범이 쓴웃음을 지었다.

“발랄해도 정도껏이어야지. 궁에서 다들 귀신보다 무서운 공주라고 부른다니까. 다 저 애 아버지가 버릇을 잘못 들여서 그래.”

사봉봉은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느라 누군가 자신의 옆에 다가오는 것도 몰랐다. 누군가 제 옷자락을 살짝 당기는 느낌에 고개를 돌려 보니 성 황자였다. 성 황자는 사봉봉을 바라보며 의젓하게 미소를 지었다.

“누이, 이 옷 정말 예쁘다. 녹하 고고의 솜씨만큼이나 예뻐. 어디에서 산 거야?”

사봉봉이 아무리 성숙하다 한들 그녀 또한 꼬마 아가씨에 불과했다. 성 황자가 자신의 옷을 칭찬하자 그녀는 기분이 좋아졌다.

“강남에서 유명한 봉우鳳羽 수방에서 만든 거예요. 저희 외조부께서 상대에게 전달해 제게 보내주셨지요.”

“그렇구나. 다들 강남은 경치도 아름답고 뛰어난 인물도 많다던데… 누이도 강남에서 태어나 이렇게 예쁜 거였구나.”

사봉봉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전 서북에서 태어났어요. 거긴 아주 척박한 곳이죠.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산도 아주 많고요.”

“…….”

그들의 대화를 엿듣던 백천범은 웃음을 터뜨렸다. 성아의 고질병이 또 도진 것이었다. 아첨으로 사봉봉의 환심을 사려 했지만 안타깝게도 실패한 듯했다. 그때, 가소타가 아장아장 걸어와 그의 옷자락을 잡아끌었다.

“성 오라버니, 성 오라버니.”

“왜?”

성 황자는 슬그머니 가소타의 손길을 피했다. 방금 입에서 뺀 손엔 침이 흥건하게 묻어 있었다. 침으로 반짝이는 가소타의 손을 보자 성 황자는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소타랑 폭죽 해.”

“안 돼. 넌 아직 어려서 다칠 수도 있어.”

가소타는 손가락을 다시 입에 넣고 가여운 눈빛으로 성 황자를 바라보았다.

“소타, 보고 싶어.”

사봉봉은 가소타의 손가락을 빼내어 직접 손수건으로 깨끗이 닦아 준 뒤, 아이를 품에 안았다.

“소타야, 언니가 데려가 줄게.”

사봉봉은 아직 여섯 살이었지만 키가 컸기에 또래보다 더 성숙해 보였다. 아이를 안는 것도 전혀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성 황자는 사봉봉의 행동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얼굴도 예쁜데 마음씨까지 이렇게 곱다니, 꼭 어린 선녀 같았다! 넋이 빠져 있던 성 황자는 서둘러 사봉봉의 뒤를 쫓았다.

“누이, 같이 가.”

녹하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우리 전하께서는 우아하신 데다 다정하기까지 하시니, 나중에 얼마나 많은 여인을 울리실까요.”

백천범은 어쩔 도리가 없다는 듯 웃었다.

“육왕야를 쏙 빼닮았으니 장차 한가로이 지내는 왕야가 되는 것도 좋죠.”

담소를 나누는데 사봉봉이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가 삼촌께서 불꽃놀이를 한대요. 마마, 이모들! 어서 구경하러 오세요.”

불꽃놀이를 좋아하는 백천범과 녹하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다 같이 구경하러 가요. 가 대인이 힘들게 준비했는데 성의를 저버리면 안 되잖아요.”

녹하가 웃음을 터뜨렸다.

“마마, 가 대인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십니까? 아버지가 되었지만, 여전히 아이 같다니까요. 우리에게 보여 주려는 게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어서 준비한 거예요.”

사앵앵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아이고, 아이를 셋이나 돌보시는군요.”

“그러니까 말이에요. 난청이와 소타는 그래도 얌전한데 가장 큰 애가 어찌나 골치를 썩이는지.”

가동을 놀리는 그녀의 말에 다들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섣달그믐에 불꽃놀이를 하는 것은 가동 부부에게 연례행사나 마찬가지였다. 불꽃놀이를 좋아하는 녹하를 위해 가동은 매년 반 시진 동안 불꽃을 터뜨렸다. 올해는 황제와 황후도 있기 때문에 예년보다 더 많은 양을 준비했고 종류도 더 다양했다.

매년 불꽃놀이를 할 때마다 가 대인은 하인들에게 화포를 준비하게 한 뒤, 자신이 직접 향불을 가져가 불을 붙였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불씨가 하늘로 날아오르면 엄청난 불꽃이 어두운 밤하늘을 수놓았다. 마치 금실과 은실로 만든 커다란 꽃송이가 피어나는 듯 밤하늘을 아름답게 비추었다.

불꽃이 하나씩 터질 때마다 사람들의 갈채와 환호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가동은 좀 더 뽐내고 싶은 마음에 하인들에게 동시에 여러 개의 화포를 준비하라고 분부했다. 한꺼번에 불을 붙여 더 화려한 불꽃을 보여 주고 싶었다.

그는 숙련자라 향을 붙이는 속도가 빠르긴 했지만, 화포가 터지는 속도도 엄청나게 빨랐다. 그가 서너 개의 화포에 불을 붙이자 곧장 불꽃이 터져 올랐다. 하마터면 옷자락에도 불이 붙을 뻔하자 깜짝 놀란 가동은 허둥대며 몇 걸음 물러났다. 망연자실한 그의 모습에 다들 배꼽을 잡고 웃었다. 녹하가 말했다.

“잘난 체하지 말고 차라리 영 대인을 불러 봐. 영 대인이라면 성공할 수도 있을 테니까.”

가동이 시큰둥한 목소리로 말했다.

“만약 영구가 여섯 개를 터뜨리면 내가 세뱃돈을 주지.”

기홍이 말했다.

“불꽃놀이를 하는데 세뱃돈까지 받을 수 있다니, 그 좋은 걸 왜 안 하겠어요?”

그녀는 영안에게 영구를 불러오라고 했다. 영구까지 밖으로 나가자 술을 마시던 방에는 황제와 사장풍만 남았다. 황제는 술잔을 들고 손가락 사이에서 돌리며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사 장군, 도성 생활은 이제 좀 적응이 되었는가?”

사장풍이 말했다.

“과거 오랜 시간 도성에서 지낸 덕에 금방 적응했습니다.”

“자네 부인은?”

“제 부인은 어딜 가든 잘 적응하는 성격이라 아무 문제 없습니다. 황제의 관심에 그저 황송할 따름입니다.”

황제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니 다행이군. 짐은 자네 부인이 적응하지 못할까 봐 걱정했네. 부부가 다 적응을 했다니 천만다행이군.”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얼마 전 사 장군이 부인을 위해 야밤에 성문을 난입했다던데… 생각해 보면 짐이 자네 부부를 떨어뜨려 놓은 것이니 짐의 생각이 짧았네. 새해가 밝거든, 성안에 빈자리가 있는지 알아보고 그곳에서 일할 수 있게 해 주겠네.”

사장풍이 곧장 공수하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황상. 하오나 신은 무관 출신으로서 황상의 두터운 신임을 얻어 다시 꿈에 그리던 무관의 자리를 되찾았으니 이미 감격해 마지않습니다.”

“자네 마음대로 하게.”

황제가 희미하게 웃음을 보였다.

“자넨 공로를 세운 신하이니 도성으로 돌아오고 싶거든 가동에게 언질만 주게. 짐이 처리해 줄 터이니.”

사장풍은 잠시 고민하다가 술잔을 들어 올렸다.

“감사드립니다, 황상. 황상을 향한 신의 충심은 하늘이 알고 땅이 알 것입니다. 훗날 혹여 누군가 신을 헐뜯는 일이 있다 한들, 부디 신의 충심을 믿어 주시옵소서.”

황제가 눈썹을 살짝 치켜세웠다.

“어째… 성가신 일이라도 생긴 듯한 말투인데?”

사장풍이 대답했다.

“그렇다 한들, 신이 알아서 해결할 수 있습니다. 부디 황상께선 신을 믿어만 주십시오.”

황제는 그를 빤히 바라보더니 빙그레 미소를 짓고 술잔을 들어 올렸다.

“그래, 짐은 자네를 믿겠네.”

그렇게 얼마 뒤, 바깥에서 들려오는 시끌벅적한 소리에 결국 황제도 밖으로 나갔다. 복도에 선 그는 습관적으로 백천범부터 찾았다. 어두운 밤이었지만 그는 단번에 그녀를 찾을 수 있었다.

백천범은 가장 앞쪽에 서 있었다. 이따금 하늘로 솟아오르는 불꽃이 활짝 웃는 그녀의 얼굴을 밝게 비추었다. 활짝 만개한 불꽃은 그녀의 눈동자에서 가장 찬란한 별이 되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황제는 가슴이 두근거려 한동안 넋을 놓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때 누군가 조용히 다가와 그에게 예를 갖춰 인사를 올렸다.

“황상.”

황제는 백천범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고개를 돌렸다. 사앵앵이었다. 그가 옅은 미소로 화답했다.

“사 부인, 짐에게 할 말이 있어서 찾아왔는가?”

사앵앵은 황제가 단번에 자신이 찾아온 의도를 알아차릴 줄 몰랐다. 그녀는 단도직입적으로 묻기로 했다.

“그간 마음에 품고 계시던 응어리는 이제 다 풀어지셨는지요?”

그녀는 누구보다 세심한 사람이었다. 다들 밖으로 나와 불꽃놀이를 하는데 황제와 사장풍만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사장풍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그녀도 잘 알고 있었지만, 황제는 어째서 나오지 않는단 말인가?

마음이 놓이지 않던 그녀는 먼발치에 서서 방 쪽을 계속 힐끔거렸다. 황제와 사장풍은 여전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황제는 사장풍에게 복직을 명하고 그들 부부가 임안성에 돌아와 정착할 수 있게 해 주었다. 하나 황제가 코앞에 있는 만큼 그들은 항상 조심하고 신중해야 했다. 오죽하면 군주를 모시는 게 호랑이 곁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할까. 그는 만백성의 목숨을 좌지우지하는 군주였다!

“그게 무슨 말인가?”

“황상께선 그 해 사장풍이 황상과 함께 남원으로 마마를 구하러 갔던 일을 기억하시는지요?”

“기억하지.”

“전 그 후 황상의 응어리가 다 풀어진 줄 알았습니다. 사장풍이 자기 자신을 증명해 보였으니까요.”

황제는 조금 우스웠다.

“짐이 이제 와서 사 장군에게 해코지할까 걱정이 되는 것인가?”

황제에게 속내를 들켰다 한들 사앵앵은 전혀 겁나지 않았다. 애당초 그녀는 그가 솔직하고 시원시원한 성격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황상께서도 분명 사장풍에 대한 소문을 들으셨겠지요. 병사들을 이끌고 기루를 갔던 일이나 야밤에 성문을 난입한 일 말입니다. 사실 그 일들은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무슨 이유?”

“저 때문이지요.”

황상이 흥미롭다는 듯 말했다.

“아, 사 부인 때문이었다? 사 장군이 부인을 끔찍이 아끼나 보군.”

사앵앵이 그의 눈망울을 바라보았다.

“만약 누군가 마마를 업신여겼다면 황상께서도 분명 그리하셨겠지요.”

황제는 빙그레 웃기만 할 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사실 근래엔 그럴 기회가 전혀 없었다. 백천범을 업신여기는 자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네. 짐도 어리석은 군주는 아니라네. 사장풍이 어떤 사람인지는 짐도 다 알고 있지. 그렇지 않았다면 가동에게 사장풍을 부르라고 하지도 않았을 터. 옛정을 그리워하는 천범이 기뻐하면… 짐도 기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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