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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718)화 (717/1,192)

제718화

사장풍은 저택으로 돌아와 하인들에게 상을 내렸다. 그는 처음부터 금천아와 주자, 아하의 재능이 퍽 마음에 들었다. 금천아는 칼을 잘 쓰고 주자는 힘이 엄청났다. 또 아하는 유달리 두뇌 회전이 빨랐다. 그들은 사앵앵 곁을 빈틈없이 지키는 하인이기도, 또 경호원이기도 했다.

세 사람은 금원보 한 덩이씩을 상으로 받았다. 류 어멈도 마찬가지였다. 류 어멈은 어린 두 주인을 잘 지켜 주었기 때문이다. 사앵앵과 사장풍이 하룻밤 동안 집을 비웠어도 류 어멈이 아이를 돌봐 주니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사장풍이 저택에 머물자 사금언은 좋아 어쩔 줄 몰라 했다. 평소 그에게 무술을 가르쳐 주던 무사武師가 집으로 돌아가 명절을 보내는 바람에 안 그래도 권법을 가르쳐 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버지는 무술 실력이 무사보다 훨씬 더 뛰어나니 어찌 좋지 않겠는가. 다만 엄격한 것도 아버지가 훨씬 더 심했다.

엄동설한의 추운 날씨에도 연습 시간을 다 채우지 않으면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콧물이 얼어붙어도 소용없었다. 류 어멈은 마음이 아파 솜옷을 들고 아이 옆을 지켰다. 향이 다 타들어 가기만 하면 곧장 이 귀염둥이를 안고 집으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사봉봉은 집안에서 습자첩을 옮겨 썼다. 아직 어린 나이지만 사봉봉은 글씨를 제법 잘 썼다. 깨알같이 작은 글씨가 어찌나 예쁜지 정말 보기 좋았다. 옆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사앵앵은 자신도 모르게 절로 감탄이 나왔다.

“정말 대단하구나, 봉봉아. 이 어미보다 더 대단해. 어미는 어릴 때 글씨 연습을 잘 안 했거든. 어머니가 쓴 장부를 볼 때마다 너희 아버지는 늘 나를 비웃었단다. 그도 그럴 것이 지렁이가 기어가듯 삐뚤대는 게 어찌나 보기 흉해 죽겠던지.”

사봉봉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어머니, 곧 새해잖아요. 죽는다는 불길한 말씀은 하지 마시어요.”

사앵앵은 그제야 자신이 무어라 내뱉었는지 깨달았다.

“다시 말할게. 글씨가 아주 흉측했단다.”

그때, 류 어멈이 사금언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가 원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장군께서 도련님한테 너무 엄격하십니다. 이렇게 작은 아이가 꽁꽁 얼까 걱정도 되지 않으실까요? 새해를 앞두고 병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러시는지, 참.”

사앵앵이 아이를 데려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주었다.

“힘드니?”

어찌 힘들지 않을까. 한나절이나 연습을 한 탓에 몸은 거의 녹초가 되어 있었다. 사금언이 헉헉거리며 말했다.

“괜, 괜찮아요.”

사앵앵이 웃으며 말했다.

“아버지는 무술 선생이 되어 주신 게 아니라 널 자신의 병사처럼 여기고 훈련을 시키는구나.”

“저도 알아요.”

사금언이 자그마한 눈썹을 치켜세우며 진지하게 말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그러셨어요. 온갖 고생을 견뎌 내야 비로소 큰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이에요.”

“잘 알고 있다니 다행이다.”

사앵앵이 아이의 머리를 토닥이며 류 어멈에게 말했다.

“온통 땀범벅이니 감기에 걸리지 않게 어서 데려가 목욕부터 시키게.”

류 어멈은 알겠다 대꾸하고는 사금언을 데리고 밖으로 향했다. 뒤이어 아하가 안으로 들어왔다.

“부인, 창륭 쌀집에서 오늘 성 서쪽 지역에 죽을 나눠준다고 합니다.”

사앵앵이 말했다.

“예전에 원 관리한테서 들었다. 창륭 쌀집에서 매년 이맘때 성 서쪽에서 죽을 나눠 준다고 말이다. 보아하니 선행을 베풀려는 듯하구나. 성 서쪽 어느 지역에서 한다더냐?”

“대잡원 일대에 걸인들이 모이는 곳이 있다고 합니다. 거기에 노점을 차리고 죽을 나눠 준답니다.”

사앵앵이 흠칫 놀랐다.

“허, 멀리까지 오게 하지 않고 그자들이 사는 곳에 가서 나눠주다니. 꽤 주도면밀하구나.”

아하가 물었다.

“부인, 한번 직접 가 보시는 게 어떠신지요?”

사앵앵이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그래, 한번 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아, 주자의 상처는 좀 나았더냐?”

“예. 누워만 있기 싫다면서 지팡이를 짚고 부엌으로 가더니 호두를 깨고 있습니다. 돈을 받는데 하는 일도 없이 먹고 자는 건 마음이 편치 않답니다.”

사앵앵이 웃으며 말했다.

“성실한 녀석, 그 애는 내버려 두고 금천아를 불러오거라. 함께 가 보자꾸나.”

사봉봉이 말했다.

“어머니, 저도 갈래요.”

“날이 추우니 넌 집에 있어. 어미도 금방 다녀올 테니.”

사봉봉은 그녀의 말에 계속 글씨 연습을 이어 갔다. 사장풍은 지금 부인의 밀착 경호를 맡고 있기에 당연히 그녀를 따라나섰다. 도성에 온 이후 부부는 각자 바쁜 삶을 사느라 함께 있는 시간이 드물었다. 이런 좋은 기회에 함께 밖으로 나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터.

큰 눈이 내린 뒤로 연이어 화창한 날이 이어진 덕에 시장은 여전히 대목이었다. 내일이 섣달그믐이라 노점을 편 상인의 수는 눈에 띄게 줄었지만, 그래도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사장풍은 원래 습관대로 성큼성큼 걸었고, 호탕한 사앵앵도 사장풍의 속도에 맞춰 걸었다. 다만 행인이 많아 이따금 둘 사이가 벌어질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사장풍은 몇 차례나 뒤를 돌아보며 부인을 챙겼다. 결국 그는 아예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사앵앵이 말했다.

“왜요? 잃어버릴까 봐 무서워요?”

사장풍이 웃으며 말했다.

“아니, 당신이 날 잃어버릴까 무섭소.”

그들은 서로 툭탁거리는 게 더 익숙한 부부였다. 사장풍이 오래간만에 따스한 말을 내뱉자 사앵앵은 부끄러운 마음에 가만히 어여쁜 미소만 지었다. 밝은 햇살 아래, 옥처럼 보드라운 부인의 두 볼이 발그레하게 물들었다. 마치 눈앞에 활짝 피운 아름다운 꽃 한 송이가 있는 것 같았다. 그가 마른침을 삼키며 그녀를 불렀다.

“부인.”

“왜요?”

“정말 예쁘오.”

사앵앵은 몸을 파르르 떨더니 그의 손을 뿌리치고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이참, 오늘따라 사 장군이 왜 저런담…….

사장풍은 빠르게 걸어가는 사앵앵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사나운 줄만 알았던 그의 부인도 저리 부끄러워할 때가 있다니. 그가 빠르게 걸어가 사앵앵의 손을 붙잡았다.

“어딜 도망가려고?”

사앵앵은 결국 참았던 웃음을 터뜨렸다.

“사 장군, 당신도 변했네요.”

“내 어디가 변했소?”

“입이 어찌나 번지르르한지.”

“그리고?”

사앵앵은 그의 두 눈을 빤히 들여다보더니 별안간 탄식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분명 예전에 난 매끈한 도령들을 좋아했는데… 어쩌다 이렇게 거무죽죽한 사람에게 시집을 왔을까요.”

“매끈한 애송이가 뭐가 좋소?”

사장풍이 그녀를 흘기며 말했다.

“그런 자들이 튼실한 나처럼 당신을 든든히 보살펴 줄 수 있을 것 같소?”

사앵앵은 그의 말뜻을 알아듣고 또 한번 얼굴을 붉혔다. 확실히 튼실하긴 했다. 어떨 땐 그녀의 허리가 부러질 것 같을 정도였으니.

다정히 이야기를 나누다 또 금세 툭탁거리는 부부의 모습에 뒤따라가던 금천아와 아하는 입을 가린 채 킥킥 웃었다. 다시 서북에 돌아온 것처럼 좋은 날이었다.

예전에 부인과 장군은 날마다 말다툼을 했다. 어떤 땐 말다툼에서 끝나지 않아 서로 치고받고 싸울 때도 있었다. 두 사람은 한참을 싸우다 방으로 들어갔고, 다시 나올 땐 장군은 늘 가슴을 활짝 펴고 뒷짐을 진 채 당당히 앞뜰로, 부인은 얼굴을 붉힌 채 아무 말 없이 뒤뜰로 향했다.

사장풍은 오늘 제법 고상하게 굴었다. 자수 공방에서 예쁜 손수건을 사거나, 길을 가다 발견한 고운 비녀를 사서 모두 사앵앵에게 주었다. 뒤이어 얼린 감을 파는 집이 나오자 감도 몇 개 사고,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을 발견했을 때도 몇 조각 사 주었다. 네 사람은 함께 거리를 거닐며 구경도 하고 물건도 사고 음식도 사 먹으며 성 서쪽으로 향했다.

서쪽은 대부분 가난한 백성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다. 대잡원도 많았지만, 홍등가와 도박장도 많았다. 걸인들은 이런 곳에서 삼삼오오 모여 여름에는 야외에서 잠을 청하고 겨울에는 천막을 쳐서 서로 온기를 나누었다.

행색이 남루한 어린 걸인들을 바라보던 사앵앵은 아하에게 동전 몇 닢을 주라고 분부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동전을 받자마자 옆에 있던 어른 걸인이 곧장 빼앗아 갔다. 아하가 그의 뒤를 쫓으려는데, 사장풍이 호통쳤다.

“쫓지 말아라.”

사장풍은 손에 들고 있던 떡을 한 조각 잘라 아이에게 주었다.

“먹거라.”

아이는 꼬질꼬질한 손을 내밀더니 허겁지겁 입으로 집어넣었다. 또다시 어른들에게 빼앗길까 봐 걱정하는 듯했다.

사장풍은 그 자리에 서서 아이가 떡을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려 주었고 다시 한 조각을 잘라 아이에게 건넸다. 하지만 아이는 떡을 손에 꼭 쥐고 있었다. 사앵앵이 말했다.

“어서 먹어. 그러다 다른 사람이 또 빼앗아 갈라.”

아이는 고개를 돌려 나무 아래에 있는 천막을 바라보았다.

“누이한테 줄 거예요.”

사앵앵이 말했다.

“하면 누이더러 나와서 먹으라고 하렴.”

“누이는, 누이는 추워요.”

사앵앵은 천막으로 다가갔다. 천막 내부는 아주 낮고 어두웠다. 안을 한참 들여다본 뒤에야 까만 눈동자를 찾을 수 있었다. 제법 예쁘게 생긴 꼬마 아가씨였다. 하지만 옷이 너무 얇았다.

짚을 엮어 옷처럼 입고 있는 아이의 모습에 사앵앵은 코끝이 찡해졌다. 사봉봉보다 겨우 몇 살밖에 많지 않은 듯한데 이렇게 비참한 삶을 살아야 한다니. 그녀는 자신의 피풍을 벗어 아이에게 주었다.

“이거 입으렴. 내일은 사람을 보내 솜옷을 줄게.”

아이는 손을 덜덜 떨며 받아든 피풍을 몸에 걸치고는 바닥에 머리를 조아렸다.

“감사합니다, 부인. 감사합니다.”

사앵앵이 물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어디 계시니?”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사라지셨어요.”

“…….”

그녀는 금천아에게 조금 전 거리에서 산 음식을 전부 두 아이에게 주라고 분부했다. 다른 건 도와줄 수 없으니 작은 힘이라도 보태 주는 수밖에. 천막을 떠날 때, 금천아가 물었다.

“창륭 쌀집에서 죽을 나눠 준다던데, 너희는 왜 안 가니?”

여자아이가 말했다.

“지금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줄을 서야 해서요. 조금 늦게 가려고요.”

가여운 두 남매를 보고 나니 사앵앵은 조금 괴로웠다. 축 처져 있는 그녀를 보고 사장풍이 위로의 말을 건넸다.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시오. 지금은 우리 동월이 제법 태평한 시기지만, 아무리 번성했다 할지라도 모든 고통을 다 해결할 수는 없소.”

그렇게 또 한참을 걸어가자 저 멀리 뜨거운 김을 내뿜는 죽 노점이 보였다. 어른 키 반 정도까지 오는 커다란 부뚜막 두 개에 대형 솥이 걸려 있었고, 누군가 솥 앞을 지키며 끊임없이 주걱을 젓고 있었다. 덕분에 고소한 쌀죽 냄새가 바람을 타고 솔솔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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