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17화
류명풍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자 공춘홍이 물었다.
“류 총령께서는 무슨 사안으로 오시었소?”
“장 부윤과 협조하여 여의루의 공물용 차 횡령 사건을 조사 중이오. 마침 범인을 관청으로 압송하고 있었소.”
“공물용 차를 횡령한 사건이라? 어째서 우리 순포 오영은 모르는 일이란 말이오?”
장 부윤이 한 발짝 앞으로 나와 말했다.
“제독 대인, 이 일은 본관이 맡은 사건입니다. 자네들 순포 오영이 관여할 필요 없소.”
네 사람은 직급이 다들 비슷했기에 상대의 체면을 봐줄 필요 없었다.
“거참 재미난 소리군. 도성 안의 모든 사건은 우리 순포 오영을 거치는데, 어찌 부윤 대인이 내성內城까지 관여한답니까?”
“제독 대인, 모르시었소? 도성의 각 구역을 나누지 않았소? 마침 여의루가 있는 곳은 내 관할이라 응당 내가 관여해야 한다오.”
“장 대인의 말대로라면 사 주인장이 사는 곳은 내 관할이니 응당 내가 담당해야 하오!”
공춘홍이 코웃음을 쳤다.
“여봐라, 이 범인들을 전부 관청으로 압송하라.”
“제독 대인, 지금 내 범인을 강탈하려는 것이오?”
“본 제독은 그저 규정대로 처리하는 것뿐이오.”
양측은 저마다의 논거를 대며 논쟁을 벌였다. 양측 병사들도 대열을 정비하여 서로 맞섰다. 병사들에게 포위된 사장풍 부부는 오히려 홀가분한 기색이었다. 사장풍은 피풍을 벗어 사앵앵의 어깨에 둘러 주고는 차갑게 얼어붙은 그녀의 얼굴을 가볍게 어루만졌다. 그가 공춘홍에게 소리쳤다.
“제독 대인, 눈을 피할 곳부터 찾고 다시 논하는 게 좋겠소. 너무 춥소이다.”
공춘홍이 말했다.
“이치에 맞는 말이오.”
그가 류명풍과 장 부윤을 바라보며 말했다.
“대인들, 우리 관청이 이곳에서 가까우니 거기서 몸을 좀 녹이는 게 어떻겠소?”
거리를 따지자면 순포 오영관청이 확실히 더 가까웠다. 류명풍과 장 부윤은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갑자기 공춘홍이 들이닥칠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말끝마다 성에 난입한 범인을 잡겠다고 하지만, 그게 진짜로 잡겠다는 것인지 아닌지 누가 알겠는가?
공춘홍과 사장풍의 사이가 막역한 건 그들도 알고 있었다. 사장풍이 구문제독이던 시절, 공춘홍은 그의 부하였다. 몇 년간 서로 만나지 못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옛정이 남았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공춘홍이 말했다.
“류 총령, 장 대인! 우린 다들 황상을 위해 일하는 사람 아닙니까? 그런 우리가 다툴 필요가 있겠습니까? 차라리 다 같이 처리하는 게 어떻겠소? 이 엄동설한에 계속 밖에 서 있는 것도 능사는 아니지 않소. 관청에서는 불도 땔 수 있고, 또 내게 좋은 술도 있으니 몇 잔 마시면서 함께 판결을 내리는 게 어떻겠소? 이렇게 밖에서 가만히 서 있는 것보단 낫지 않겠소이까? 게다가 우리 병사들 생각도 해야지요. 한밤중 근무에 다들 지쳤을 테니 빨리 철수시켜서 쉬게 해주어야 하지 않겠소?”
류 총령과 장 부윤은 퍽 난감했다. 공춘홍이 저리 이치에 맞는 말만 늘어놓는데 어찌 반박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장 부윤은 무관이 아니었기에 체력이 좋지 않았다. 이미 강추위에 몸이 얼어붙은 그는 피풍 자락만 자꾸 끌어당기고 있었다. 그가 류명풍에게 의논조로 물었다.
“류 총령 생각은 어떻소?”
류명풍이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좋소. 하면 제독 대인의 말대로 순포 오영으로 갑시다.”
결국 금군들은 전부 해산했고 순포 오영에서 사장풍 부부를 관청으로 압송했다. 하지만 관청에 들어서자 공춘홍은 갑작스레 태도를 바꾸었다. 판결에 관한 얘기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고, 범인도 수감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친 곳이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며 사앵앵을 내실로 들게 했다.
내실에는 부녀자들만 있기 때문에 류명풍은 감히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그저 장 부윤과 관청에 앉아 속수무책으로 기다릴 뿐이었다.
사앵앵의 몸을 확인해 보니 대부분 살갗을 스친 상처였지만, 주자의 상처는 조금 심했다. 넓적다리에 칼이 찔려 구멍이 뻥 뚫린 것이다. 공춘홍은 상처 부위를 깨끗이 닦고 가루약을 발라준 뒤, 곁채로 보내 휴식을 취할 수 있게 해주었다. 사장풍은 그제야 한시름 놓았다. 그가 맞잡은 두 손을 들어 올리며 공춘홍에게 말했다.
“고맙네, 춘홍.”
“오랜 형제 사이에 어찌 남에게 대하듯 고맙단 말씀을 하십니까.”
공춘홍이 웃으며 말했다.
“장군께서 성문을 무단으로 넘었다고 하길래 사달이 났을 거라고는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저자들이 형수님을 붙잡았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지요.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랍니까?”
사앵앵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오해입니다. 제가 공물용 찻잎을 어디서 가져올 수 있겠습니까. 그저 특별히 도성의 것보다 품질이 좋은 물건을 강남에서 들여오는 것이지요. 하지만 두 대인께서 다짜고짜 절 붙잡으셨습니다. 제가 걱정된 하인이 사 장군에게 신호탄을 쏘는 바람에 이이가 성문을 뚫고 달려온 것이지요. 저희 때문에 제독 대인을 번거롭게 해 드렸습니다.”
공춘홍이 말했다.
“번거롭기는요. 그저 이 일이 조금 수상쩍을 뿐이지요. 혹시 예전에 남에게 원한을 산 일이 있으십니까?”
“한 사람 있습니다.”
사앵앵이 말했다.
“금창 포목의 사 주인장입니다. 장사 때문에 그자의 원한을 샀습니다.”
“그렇군요.”
공춘홍이 턱을 만지며 말했다.
“사정우는 그리 만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두 승상의 매부가 아닙니까. 조정 관료들과도 사이가 좋아 인맥이 넓은 자인데, 형수님께서 그자의 원한을 사셨다면 꽤 골치 아픈 일이 될 겁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일은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사 형과 형수님께선 오늘 밤 이곳에서 편히 쉬십시오. 내일 이 공춘홍이 두 분을 저택까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사장풍이 다시 한번 두 손을 가슴 위로 올리며 말했다.
“그리해 준다면 정말 고맙겠네.”
공춘홍이 웃으며 말했다.
“형제지간에 고맙단 말은 필요 없습니다. 하면 두 분께선 그만 쉬십시오.”
사장풍은 그를 배웅한 뒤, 문을 걸어 잠그고 돌아섰다. 두 부부는 말없이 서로를 빤히 바라보았다.
“어째서 상황을 전부 말하지 않은 것이오?”
“당신도 말하지 않았잖아요.”
사장풍이 웃으며 그녀의 얼굴을 꼬집었다.
“역시 날 잘 안다니까. 난 가동에게도 말하지 않았소. 사정우의 인맥이 워낙 넓으니 아는 자가 많아지면 쉽게 꼬리를 감출 수도 있으니……. 만약 공춘홍에게 다 털어놓고 조사를 맡긴다면 아는 이가 많아져 비밀이 누설될 수도 있소.
게다가 두 승상과의 관계까지 있으니 관청에서 나서면 오히려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할 것이오. 차라리 지금 같은 상황을 유지하면서 우리가 증거를 찾아낸 뒤에 해결하는 게 더 낫소.”
“제 생각도 그래요. 만약 관청에서 암암리에 조사를 시작한다 해도 두 승상을 속일 수는 없겠죠. 염춘원과 금정각에서는 아무런 실마리도 찾을 수 없으니 창륭 쌀집부터 손댈 수밖에 없어요.”
“사정우가 이번 일에 실패했으니 앞으로 더 위험한 상황에 놓일 것이오.”
“하나도 겁 안 나요. 당신이 있잖아요.”
“내일은 몸이 아프다고 하고 집에서 당신 곁을 지키겠소.”
“금언이가 엄청나게 기뻐하겠네요. 자신의 무술 선생이 아버지보다 못하다고 하던걸요.”
“당신은 기쁘지 않소?”
사앵앵이 그를 흘기며 말했다.
“기쁘죠. 날 위해 이부자리를 따뜻하게 데워 줄 사람이 있는데.”
“…….”
그 말은 남편이 부인에게 하는 말이거늘, 역시 누가 사나운 부인 아니랄까 봐…….
* * *
공춘홍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일을 처리했다. 아침 일찍 내무부에서 찻잎을 관리하는 대인을 불러 찻잎 감정을 맡긴 결과, 역시나 특품차가 아닌 그저 평범한 운무차에 불과했다.
공연한 일로 한바탕 난리를 친 것이기에 사앵앵은 무죄로 석방되었다. 사장풍은 비록 한밤중에 도성에 난입하긴 했지만, 사정을 설명하며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쳤다. 게다가 풍한까지 들어 몸도 좋지 않았기 때문에 이쯤에서 사건을 종결했다.
사실, 다들 어찌 된 일인지 알면서도 아무런 내색도 할 수 없었다. 류명풍이 병사들을 이끌고 여의루에서 가지고 나온 차는 평범한 운무차였지만, 미리 준비해 둔 공물용 차와 맞바꿔 증거를 조작했다. 그런데 그 공물용 차를 손에 넣은 공춘홍이 다시 일반 운무차로 바꿔치기한 덕에 결국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된 이상, 일을 더 복잡하게 만들 수 없기에 다들 한 발씩 뒤로 물러서는 수밖에 없었다. 부아가 치민 사정우는 자신의 집에서 또 한바탕 분을 쏟았다. 이번에야말로 어렵사리 판을 벌여 사앵앵을 무너뜨리려 했는데 일이 이렇게 꼬일 줄 누가 알았겠는가.
결국, 그녀는 조금의 손해도 보지 않고 멀쩡히 집으로 돌아갔다. 연말이 코앞이었기에 그도 더는 손을 쓰기 힘들었다. 조금 더 기다렸다가 새해가 되면 그때 다시 기회를 노려 보기로 했다.
사장풍은 그날부터 병가를 내고 집에 머물렀다. 곧 새해였기 때문에 군영 내에서 처리해야 할 일도 얼추 끝낸 뒤였고, 나머지 업무는 부장이 알아서 해결할 수 있었다.
황제는 사장풍의 병가 소식을 듣고 가동을 불러 상황을 물었다. 뒤늦게 그날 밤 일을 알게 된 가동은 역시나 지난번처럼 중요한 내용은 한껏 부풀리고, 빼야 할 내용은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사장풍이 부인을 너무 걱정한 나머지 마음을 졸이다 그만 병이 났다고 둘러댈 뿐, 성문으로 난입했다거나 밤사이 양측이 다툰 일에 대해서는 한 글자도 내뱉지 않았다. 찻잔을 들고 뜨거운 차를 들이켜던 황제는 가동의 말이 끝나자 기괴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알겠다. 사장풍에게 가서 새해를 맞아야 하니 잘 쉬라고 전하거라. 병이 말끔히 나은 뒤엔 꼭 군영으로 복귀해야 한다고도 말이다.”
가동이 시시덕거리며 말했다.
“사장풍을 대신해 신이 황상의 은덕에 감사드립니다. 아마 그놈도 좋아 어쩔 줄 모를 것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더냐?”
가동은 기쁜 나머지 까불거리는 성격을 감추지 못했다.
“밤마다 봄이 찾아올 터인데, 어찌 즐겁지 않겠습니까?”
황제가 그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풍한에 걸렸다 하지 않았더냐?”
“…워낙 체력이 좋으니 분명 금방 나을 것입니다.”
황제는 차를 한 모금 들이켜고는 담담히 말했다.
“글쎄다. 꼭 그렇지만은 않을 텐데. 어쨌든 푹 쉬어야 할 것이다.”
가동은 조금 의아했다. 어쩐지 황상은 사장풍이 빨리 낫는 걸 원치 않는 듯했다. 빨리 나아서 황상의 일을 도와야 더 좋은 것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