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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716)화 (715/1,192)

제716화

주자는 비수를 손에 쥔 채 기합을 내지르며 밑으로 뛰어 내려갔다. 그의 뒤를 따라 금천아와 아하도 지붕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지붕 위에 올라선 병사들은 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 그런데 누군가 지붕에서 뛰어내리자 병사들도 허둥지둥거리며 다시 밑으로 내려갔다.

키도 크고 우람한 몸을 가진 주자는 손에 든 칼을 마구 휘두르며 무지막지한 힘으로 길을 뚫었다. 아하가 그 뒤를 따랐고 금천아가 가장 뒤쪽을 지켰다. 금천아의 검광이 스칠 때마다 병사들의 참혹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사장풍의 저택에 이리 몸이 날랜 하인들이 있다니! 이런 상황을 예상치 못한 류명풍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어두운 곳에서 금천아의 기술을 유심히 관찰했다. 잠시 지켜본 그는 그녀가 일정한 손동작을 반복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저 손놀림이 너무 빨라 마냥 신기해 보일 뿐이었다.

몸을 낮춰 틈새를 노린 그는 단번에 금천아의 팔 안쪽을 내리쳤다. 그녀는 순간 손에 힘이 풀려 비수를 놓쳤다. 잇달아 그녀의 다리를 내리친 류명풍은 곧장 그녀의 팔을 뒤로 꺾어 움직이지 못하게 제압했다.

주자의 몸에 칼에 찔린 상처가 군데군데 보였다. 하지만 그는 있는 힘껏 사앵앵의 앞으로 달려갔다. 아하는 사앵앵에게 비수를 건넸다.

“부인, 우리 도망쳐요.”

아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금천아의 참혹한 비명이 들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류명풍이 금천아를 짓밟고 있었다. 그 틈에 두 병사가 다가가더니 그녀를 포박했다.

“천아!”

사앵앵과 주자, 아하가 동시에 외쳤다. 사앵앵은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지만 금천아를 구하기 위해 사병들의 손을 공격할 수밖에 없었다.

가장 흉포해 보이는 자가 총령에게 제압당하자 금군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 올라갔다. 병사들은 사앵앵을 겹겹이 에워싼 채 긴 창으로 그녀를 겨눴다.

다리를 베인 주자는 몸을 휘청거리더니 결국 한쪽 무릎을 바닥에 꿇었다. 아하와 사앵앵은 서둘러 그를 부축했다. 두 사람이 허리를 숙이는 순간, 날카로운 창끝이 사앵앵과 아하의 목 바로 앞에 놓였다.

주변은 정적에 휩싸였다. 그저 새하얀 눈꽃이 온 하늘을 수놓을 뿐이었다. 허공에서 춤을 추던 눈꽃은 모든 이의 얼굴과 머리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바닥에 쓰러진 금천아는 사앵앵을 겨누고 있는 창을 바라보며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사앵앵은 비수를 바닥에 던지고 아하를 바라보았다.

“칼을 버리거라.”

아하는 잠시 망설였지만, 사앵앵의 말대로 칼을 버렸다. 창끝이 목전에 있었지만 사앵앵은 천천히 주자를 일으켜 세웠다. 아하와 주자를 부축하며 꼿꼿이 서 있는 모습이 꼭 세 그루의 백양나무 같았다. 류명풍이 입꼬리를 올려 냉소를 짓더니 장 부윤에게 말했다.

“장 대인, 체포에 저항하는 범인이 거리에서 참살당하는 건 어찌 생각하시오?”

장 부윤은 그 이야기를 듣고 속으로 식은땀을 흘렸다.

“그것은… 도리에 어긋날 듯하오. 예정대로 저들을 옥에 가두는 것이…….”

류명풍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저들이 사장풍에게 신호를 보내지 않았소? 시간을 끌다 문제가 생길까 걱정이오.”

“총령, 잊으시었소? 지금은 성문이 굳게 닫혀 있으니 공문 없인 사장풍도 들어올 수 없소.”

류명풍이 고개를 저었다.

“듣자 하니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 하더군. 성문 하나로는 그자를 막지 못할 것이오.”

그가 말을 마치자마자 급박한 말발굽 소리가 고요한 침묵을 깼다. 누군가 눈보라를 뚫고 달려오더니 그들의 길목을 막아섰다. 장 부윤은 깜짝 놀라 입을 쩍 벌렸다.

“총령의 말이 맞았소.”

류명풍이 검집에 손을 올리곤 천천히 병사들 사이를 뚫고 앞으로 걸어갔다. 주자와 아하는 순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부인, 장군께서 오셨습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줄곧 나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던 사앵앵이었다. 하지만 사장풍을 발견한 순간, 그녀는 눈을 깜빡이며 참아 왔던 눈물을 쏟아 냈다.

눈보라를 사이에 두고 사장풍 또한 자신의 부인을 바라보았다. 언제든 어디서든 홀로 당당하던 그녀가 눈물을 머금은 채 자신을 바라보자 그는 가슴이 저렸다. 시선이 맞닿은 두 사람은 서로의 눈빛을 읽었다.

“사 장군.”

류명풍이 침묵을 깼다.

“어째서 내 길을 막는 것인가?”

“류 총령은 어째서 내 아내를 붙잡은 것이오?”

“공물로 바치는 차를 사사로이 사용하는 범죄를 저질렀네. 장 대인이 이 사건을 조사하는 책임자고, 본 총령은 범인을 압송하는 중이지.”

“증거는 있소이까?”

장 부윤이 찻잎 봉투를 들고 흔들었다.

“이것이 증거라네.”

“어디서 난 것이오?”

“당연히 여의루에서 났지.”

“그 차가 여의루에서 가져왔다는 증거 있소?”

“여의루의 점원들이 증명해줄 걸세.”

“점원들이 보지 못하는 틈에 미리 준비한 찻잎으로 내 아내를 모함하는 것일 수도 있을 터.”

“사 장군, 우릴 모독하지 말게!”

사장풍이 빈정거리며 웃었다.

“하면 이것이 공물로 바치는 차라는 건 어찌 증명할 것이오?”

“궁 내무부에서 찻잎을 담당하는 대인에게 판별을 맡길 것이네.”

“그 말은 아직 그 찻잎이 공물용이라는 건 밝혀지지 않았단 얘기로군?”

장 부윤이 말했다.

“그것이…….”

류명풍이 재빨리 말했다.

“지금은 범인을 압송하여 조사부터 해야 하네. 조사가 끝나면 자연스레 결과가 나올 것이고.”

“최종 판결이 나지 않은 이상 내 아내는 범인이 아니오. 풀어 주시오.”

“사 장군. 우리 일에 방해하지 말게.”

사장풍이 냉소를 짓더니 허리춤에서 천천히 장검을 뽑았다.

“내 당신들 일을 방해할 생각은 없소만… 내 아내과 하인들은 두고 가야 할 것이오.”

사장풍이 검을 들자, 류명풍은 웃음을 터뜨렸다.

“자네 혼자서 부인을 데려갈 수 있을 것 같나? 사 장군도 참 자부심이 넘치는군그래.”

그가 손짓하자 금군들은 검과 창으로 사장풍을 겨눴다. 일촉즉발의 상황에 사앵앵이 입을 열었다.

“사장풍, 병사들을 따라갈게요. 당신은 집에서 기다려요. 올곧은 사람은 그림자가 비뚤어져도 두렵지 않은 법이잖아요. 날조된 사건을 인정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대인께서 명확히 조사하시어 제 결백을 판명해 주시리라 믿어요.”

“앵앵.”

사장풍은 심장이 쪼그라드는 것 같은 엄청난 통증을 느꼈다. 어쩐지 예감이 좋지 않았다. 이대로 떠나면 사앵앵이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다. 말에서 뛰어내린 그는 사앵앵을 보고 한 글자 한 글자 힘주어 말했다.

“내가 한 약속을 잊은 것이오? 그대를 두고 떠나는 일은 결코 없을 거라는 약속 말이오.”

사앵앵이 코를 훌쩍였다. 물론 그녀도 잊지 않았다. 아주 오래전 사장풍이 마음을 다잡지 못하던 때, 그녀는 그가 자신을 두고 훌쩍 떠나버릴까 봐 늘 두려워 했다. 비로소 그가 마음을 정했을 때, 사장풍은 사앵앵에게 약속했다. 앞으로 어떤 상황이 오든 그녀를 혼자 두고 떠나는 일은 없을 거라고.

그때부터 그는 지금까지 갖은 고생을 하면서도 줄곧 그녀 곁을 지켰다. 그녀가 처음 사장풍을 보고 추측했던 게 맞았다. 사장풍은 정말 책임감이 강한 사내다. 류명풍이 큰소리로 외쳤다.

“공무 집행을 방해하는 자는 당장 치워 버리거라!”

금군들이 사장풍을 향해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는 그 자리에 꼿꼿이 선 채 검 끝을 류명풍에게 겨눴다. 많은 수를 상대할 땐 우두머리부터 잡아야 하는 법이다.

무술 고수인 류명풍은 위축된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금군들에게 후퇴를 명하더니 사장풍과 단둘이 제대로 붙으려 했다.

눈발은 점점 거세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듬성듬성 내리던 눈은 제법 큰 눈송이가 되어 솜털처럼 바닥에 내려앉았다. 가만히 서 있던 금군들의 투구 위에도 금세 눈이 쌓였고 속눈썹까지 새하얘졌다. 다들 긴장된 얼굴로 두 고수의 대결을 지켜보았다.

두 사람은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막상막하의 실력을 겨루었다. 서로의 그림자가 교차하는 가운데, 검끼리 맞붙는 낭랑한 소리만 울려 퍼졌다. 사장풍 역시 고수인 만큼 전력을 다해 싸웠다. 잠시 교착 상태가 이어지는 듯했지만, 그는 끊임없이 류명풍을 몰아세웠다. 마침내, 쇳소리와 함께 류명풍의 손에서 날아간 검이 새하얀 눈밭에 꽂혔다.

사장풍이 검을 뽑아 그를 겨누려는데, 뒤에서 칼바람이 매섭게 불어왔다. 순간적으로 몸을 틀은 금군들의 창을 헤쳐 허공에 몸을 날렸다. 이내 병사들을 뛰어넘은 그는 가뿐히 사앵앵 곁으로 착지했다. 그는 곧장 사앵앵의 손을 붙잡고 조용히 물었다.

“춥소?”

“괜찮아요.”

사장풍과 류명풍이 격전을 벌일 때, 사앵앵은 심장이 목구멍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런 상황에서 어찌 추위를 느꼈겠는가. 부군이 곁에 있는 지금 이 순간, 그녀는 오직 사장풍에게만 집중하고 있었다.

“겁낼 것 없소.”

“겁 안 나요.”

부부는 서로 따스한 눈빛을 주고받으며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의 모습은 온 하늘을 뒤덮은 눈송이와 어우러져 아름다운 정취를 더했다. 부부가 함께 있으니 두 사람의 마음이 놓였다. 한 사람은 검을, 한 사람은 비수를 쥔 채 주변을 에워싼 금군들을 차갑게 노려보았다.

금군들은 사앵앵과 하인들의 손에 쥐어진 비수를 보며 깜짝 놀랐다. 분명 아까 다 버리지 않았던가. 어찌 또 들고 있단 말인가? 비수에 손등을 베인 수많은 금군은 벌벌 떨며 차마 가까이 다가오지 못했다.

대치 중이던 때, 어둠 속에서 또다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류명풍과 장 부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말을 타고 달려온 사람은 순포 오영 병사들을 거닌 구문제독 공춘홍이었다. 공춘홍은 사장풍을 보자마자 곧장 명을 내렸다.

“성문을 난입한 범인을 포위하라!”

순포 오영의 병사들은 곧장 대열에서 흩어지더니 사장풍과 금군들을 모두 포위했다. 이를 지켜보던 류명풍은 어쩐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았다. 사장풍을 잡으면 될 것을… 어찌 금군들까지 포위한단 말인가?

“제독 대인, 이것이 무슨…….”

공춘홍은 그에게 읍하며 말했다.

“오늘 밤 성문을 난입한 자가 있다기에 본 제독은 범인을 추포하는 중이오. 류 총령께서는 어찌 이곳에……?”

류명풍이 말했다.

“하면 사장풍을 잡으려는 것이 아니오? 어찌 우리 병사들까지 포위하는 것이오?”

공춘홍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아, 송구하게 되었소. 하면 번거롭겠지만, 류 총령께서 총령의 병사들을 좀 물려 주시오.”

“…….”

물리라니! 하면 사앵앵을 순포 오영의 손에 넘겨주는 꼴이 아닌가. 그렇다고 물리지 않자니 걸리는 부분이 많았다. 혹여 사장풍이 공춘홍과 손을 잡았다면 금군들이 그들 손에 포위된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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