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15화
사앵앵은 성큼성큼 밖으로 나갔다. 정원에는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가득 들어서 있었다. 붉게 타오르는 횃불 덕에 정원은 대낮처럼 환해졌다. 사금언은 곧장 사앵앵에게 달려가 그녀의 다리를 붙잡았다.
“어머니, 저자들은 대체 누구예요? 왜 우리 집에 쳐들어온 거예요?”
“괜찮아, 겁낼 것 없어. 어머니가 있잖니.”
사앵앵은 류 어멈에게 두 아이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가 있으라고 분부했다. 그때, 관복을 입은 사람이 앞으로 나와 사앵앵을 빤히 바라보았다.
“당신이 여의루의 주인장인가?”
“그래요.”
사앵앵은 겁날 게 없었기에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물었다.
“관리 나리께선 누구신지요?”
옆에 있던 이가 곧장 목청을 높였다.
“예를 갖추거라. 이분은 부윤 장張 대인이시다.”
“장 대인께서 저희 저택은 무슨 일로 찾으셨습니까?”
“누군가 당신을 고발했네. 공물로 바치는 차를 사사로이 사용했다던데… 죄를 인정하는가?”
사앵앵이 흠칫 놀라며 물었다.
“공물로 바치는 차라니요?”
“여의루에서 사용하는 우전운무 특품차가 공물용 차라네. 몰랐나?”
“대인께서 잘못 아셨을 겁니다. 저희 여의루에서 우전운무차를 팔긴 하지만, 공물용 특품차는 아닙니다.”
“변명하지 말게. 조금 전 여의루를 수색했더니 이 찻잎이 발견되었네. 이것이 우전운무 특품차가 아니란 말인가?”
장 부윤은 손을 들어 올리며 찻잎 포대를 내보였다.
“대인, 제가 잠시 봐도 되겠습니까?”
그녀의 말에 장 부윤은 포대를 열고 그녀에게 찻잎을 보여주었다. 굵직한 포대 안에는 푸른 새싹 모양의 찻잎이 담겨 있었다. 여의루 위층에서 쓰는 찻잎과 유사한 찻잎이었다.
“대인께선 이것이 특품차라고 어찌 단정 지으셨습니까?”
“옳고 그름은 본관이 명확히 밝힐 것이오.”
별안간 날카로운 호각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옅은 남색 불빛이 하늘로 솟구쳤다. 장 부윤은 갑옷을 입은 총령과 눈짓을 주고받더니 목청을 높여 소리쳤다.
“여봐라, 당장 범인을 호송하라!”
순간, 주자가 앞으로 달려 나와 사앵앵 앞을 막아섰다.
“누구도 우리 부인을 데려갈 수 없소!”
하찮은 종이 감히 앞을 가로막자 장 부윤은 화를 내며 눈을 부릅떴다.
“멍하니 뭣들 하는 것이냐? 당장 끌어내지 않고!”
끌어내라는 말은 지극히 점잖은 표현에 불과했다. 몇몇 병사들은 앞으로 나와 주자와 몸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주자는 무술을 배운 적 없지만, 까무러칠 만한 힘을 가졌기 때문에 겁날 것이 없었다. 그는 한 손에 병사 한 명씩 들쳐 안더니 옆으로 휙 내던졌다. 나동그라진 두 병사는 연신 곡소리를 내었다.
“이런 쓸모없는 것들!”
금군 총령 류명풍이 소리쳤다. 바닥을 뒹구는 수하들의 모습에 그는 손을 휘저으며 즉각 명을 내렸다.
“저자도 함께 잡아들이거라!”
“잠깐.”
주자 혼자서 이 많은 병사들을 상대할 수 없다는 걸 사앵앵이 모를 리 없었다. 그녀가 목청을 높여 소리쳤다.
“저 애와는 아무 상관 없으니 나 혼자 가겠어요.”
“부인!”
금천아가 또다시 그녀 앞을 막아섰다.
“우리 나리께서는 성 밖 군영에 계시는 사 장군님이시다. 한데 누가 감히 우리 부인을 건드린단 말이냐!”
류명풍이 냉소를 지었다.
“왕자가 죄를 지어도 평민들과 똑같은 벌을 받는 법이거늘, 일개 장군 따위가 뭐라고! 당장 끌고 가거라!”
금천아와 주자가 어찌 가만히 지켜만 볼 수 있겠는가. 두 사람은 필사적으로 사앵앵 앞을 지켰다. 그 외에 나머지 하인들은 병사들의 기세에 눌려 함부로 나서지 못했다. 금천아는 급한 마음에 비수를 꺼내 들었지만 사앵앵이 그녀를 말렸다. 정말 여기서 싸움이 난다면 그 후환이 어떨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녀가 금천아에게 조용히 분부를 내렸다. 주인의 명에 금천아는 아무런 대꾸도 못 한 채 눈시울만 붉혔다. 사앵앵은 몸을 돌려세우고 대문을 향해 걸어갔다. 주자가 그 뒤를 쫓으려 했지만, 금천아가 그를 붙잡고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사앵앵이 끌려가자 주자는 초조함에 발을 구르며 금천아를 원망했다.
“왜 막지 못하게 붙잡은 거야? 저자들이 부인을 끌고 가잖아!”
“나도 알아.”
금천아가 말했다.
“아하가 장군께 보내는 신호 봤지? 장군께서 보셨다면 분명 부인을 구하러 오실 거야.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시간을 끄는 거라고.”
주자가 초조해하며 말했다.
“그래서 방금 시간을 끌려고 했잖아. 근데 왜 붙잡은…….”
“저택에서 시간을 끌면 안 되니까. 우리가 소란을 피우면 애당초 아무 잘못 없던 부인께서 약점을 잡힐 수도 있다고. 그러면 일을 더 망칠 거야.”
“그럼 어떡해?”
그때, 아하가 달려왔다. 손에는 주머니 하나가 들려 있었다.
“가자, 그자들이 어디로 가는지 알아냈어. 지름길로 질러가자.”
주자가 물었다.
“손에 든 건 뭐야?”
“폭죽!”
아하의 의도를 파악한 금천아가 그를 툭 치며 말했다.
“역시… 머리가 잘 돌아간다니까. 상황이 심상찮은 걸 보고 곧장 장군께 신호까지 보내고.”
그녀의 손길에 몸이 휘청거릴 정도였지만 아하는 헤헤 웃어 보였다. 주자는 조금 걱정스러운 눈치였다.
“장군께서 신호탄을 보셨어야 하는데.”
금천아와 아하가 입을 모아 말했다.
“분명 보셨을 거야.”
* * *
물론 사장풍은 신호탄을 보았다. 지난번 사앵앵이 대낮에 사라졌을 때, 금천아가 빠르게 주둔지로 사람을 보내 상황을 알린 덕에 급히 돌아갈 수 있었다. 그 후 다시 그런 일이 되풀이될까 걱정했던 그는 집에 신호탄을 구비해 두었다. 만약 그에게 소식을 전하기 어려운 상황일 땐 신호탄을 쏘라는 것이었다.
사실 그는 그저 예방 차원에서 준비해 둔 것이었을 뿐, 정말 신호탄이 쏘아 올려질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신호탄을 본 뒤 그는 줄곧 가슴이 쿵쿵 뛰었다. 일각도 지체할 수 없어 친위병을 이끌고 도성으로 돌아가려는데 부장副將이 그를 붙잡았다.
“장군, 상부의 군령도 없이 병사들을 이끌고 성으로 가실 수는 없습니다. 지난번 일을 잊으신 겁니까?”
그와 입씨름할 시간이 없었다. 사장풍은 있는 힘껏 그를 밀치며 소리쳤다.
“문제가 생기면 내가 책임질 것이다!”
“하지만… 장군께서 형제들과 모험을 하게 내버려 둘 수는 없습니다. 장군, 이러시다 누군가에게 트집이 잡히면 그땐 정말 큰일이 날 겁니다!”
잠시 고민에 잠긴 사장풍이 친위병들에게 명을 내렸다.
“너흰 남아 있거라. 나 홀로 갈 것이다.”
“장군!”
그의 최측근인 친위병들은 그를 혼자 보낼 순 없었다. 친위병들이 한쪽 무릎을 꿇고 고했다.
“무슨 일이 있든 저흰 장군을 따를 것입니다!”
“명령이다!”
사장풍은 친위병에게 호통을 친 뒤, 채찍을 휘두르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주둔지는 성에서 그리 멀지 않았기에 말을 빠르게 몰면 한 시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사장풍은 마음이 조급했다. 집에 무슨 일이 생긴 건진 알 수 없었지만 긴박한 일이 아니었다면 신호탄까지 쏘진 않았을 것이다.
그는 미친 듯 말을 몰며 갖가지 상황을 추측했다. 결국… 모든 추측이 한 사람의 이름을 가리켰다. 사정우. 사장풍은 이를 꽉 깨물었다. 분명 그자가 또다시 일을 꾸민 것일 터.
찬바람이 얼굴에 닿자 칼로 베는 듯한 통증을 남겼다. 하지만 서북의 열악한 환경에 이미 익숙해진 사 장군에게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저 갑작스레 찬기가 느껴지는 것 같아 고개를 들어보니 눈송이가 허공에서 나부끼고 있었다. 더욱 초조해진 그는 연신 채찍질을 했다.
마침내 성문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가 도착했을 땐 이미 성문이 굳게 닫힌 뒤라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사장풍은 말에서 훌쩍 뛰어내려 성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어라! 어서 문을 열래도. 성에 들어가야 한다……!”
한참을 두드려도 안에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구문제독이었던 사장풍은 성문 보초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아마 날이 너무 추운 탓에 보초병들이 누각에서 추위를 피하고 있는 듯했다.
몇 걸음 뒤로 물러나 고개를 들어보니 누각 안에 옅은 불빛이 보였다. 그는 돌을 하나 주워 있는 힘껏 누각으로 던졌다. 다행히 돌이 누각 처마 끝에 맞고 떨어졌다. 역시 누군가의 호통 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감히 이 시간에 성문을 들어오려 하느냐. 목숨이 아깝지 않단 말인가!”
사장풍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수도 위수 군영의 사장풍, 급한 용무로 입성해야 한다!”
급박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금세 성문이 열렸다. 보초병이 사장풍에게 예를 갖췄다.
“사 장군님, 입성 공문이 있으신지요.”
사장풍에겐 길게 설명할 시간이 없었다. 그는 대답도 않고 말에 올라타 전속력으로 돌진했다. 보초병들은 긴장한 모습으로 그를 뒤쫓았다.
“사 장군님, 멈추십시오! 야간에 성을 난입하는 건 문책 사유에 해당하는…….”
“뭣들 하고 있어, 어서 장군님을 막아!”
“야간에 임의로 성을 난입한 자가 있다, 어서 상부에 보고하라!”
보초들의 외침에도 사장풍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저택을 향해 빠르게 내달렸다.
* * *
지붕 위로 올라가는 건 금천아와 주자, 아하에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서북에 있을 때 늘 지붕 위에 올라가 달을 구경했기 때문이다. 이 습관은 사 장군 때문에 생긴 것인데, 당시 사 장군은 틈만 나면 지붕 위에 올라가 넋을 놓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점원들 역시 그를 따라 지붕에 올라갔다.
다만 서북의 평평한 지붕에 비해 도성의 지붕은 뾰족해서 걷는 게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간신히 지붕 위를 기어가며 아래에 있는 병사들에게 폭죽을 던졌다. 난데없는 폭음에 병사들은 혼비백산이 되었고 질서정연하던 대열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류명풍이 곧장 소리를 질렀다.
“당황하지 말고 범인을 포위하거라!”
병사들은 곧장 사앵앵을 에워싸고는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한 차례 폭음이 지나가자 주변은 다시 쥐 죽은 듯 고요해졌고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누군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폭죽 잔해를 집어 들었다.
“총령께 보고드립니다. 폭죽이었습니다! 아마 근처에 사는 아이들이 장난으로 던진 것 같습니다.”
류명풍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손을 내저었다.
“다시 대열을 갖추고 전진하라.”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또다시 폭죽이 던져졌다. 이번엔 다량의 폭죽이 터지는 바람에 병사들은 발을 동동 굴리며 난리법석을 떨었다. 류명풍은 미간을 찌푸린 채, 길 양쪽의 지붕을 훑었다.
“누군가 범임을 납치하려 한다. 지붕 위로 올라가거라!”
병사들은 그의 명령에 곧장 사앵앵을 에워쌌다. 또 일부는 짝을 이루어 상대의 어깨를 밟고 지붕 위로 올라갔다. 상황이 심상치 않자 금천아는 비수를 손에 쥐었다. 그녀가 아하에게 물었다.
“칼 가진 거 있어?”
아하가 허리를 툭툭 치며 말했다.
“칼이야 얼마든지.”
그가 주자에게 말했다.
“네가 길을 뚫어. 부인한테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