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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714)화 (713/1,192)

제714화

이튿날, 가 대인은 이 일을 황제에게 보고했다. 물론 어떤 부분은 굳이 말하지 않았고, 또 어떤 부분은 한껏 부풀려서 설명했다. 황제는 사장풍이 사앵앵을 찾으러 기루에 갔다는 소리에,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이런 일이 재발해선 안 될 것이라고 전하거라.”

이 일은 이렇게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가 대인에게는 끝이 아니었다. 그와 사장풍은 친형제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그의 부인이 납치를 당했었다니.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게다가 사정우를 혼내 주겠다고 호언장담도 했겠다, 이젠 자신이 내뱉은 말을 행동으로 옮길 때였다.

그는 내무부에서 견사 제조를 전문으로 처리하는 곳을 찾아가 원단 구매 관료에게 은밀히 분부를 내렸다. 이튿날, 지시를 받은 관료는 황가의 이름을 대고 금창 포목을 찾아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으로 물건을 구매했다. 궁에서 온 사람이니 사정우도 미움을 살 수 없었고 손해를 보더라도 예를 갖춰 대우했다.

그는 황궁에 물건을 납품하는 황상皇商이 아니었기에 궁에서 누군가 그에게 물건을 사가는 일은 처음이었다. 똑똑한 사정우는 이 일이 수상쩍다는 걸 단번에 알아차렸다. 만약 처벌을 받게 하려고 누군가 손을 쓴 거라면, 범인은 사앵앵 부부밖엔 없었다.

사실 그날 그는 자신이 수를 제법 잘 썼다고 생각했다. 사앵앵을 설득한 뒤, 사장풍이 기녀들과 술을 마시는 모습까지 보여 주었으니 분명 부부 사이에 금이 갔을 것이고, 사앵앵이 제 품에 안기는 건 시간문제라고도.

하지만 사앵앵의 순종적인 모습이 거짓이었으리라고 누가 예상했겠는가. 심지어 사장풍이 술을 마시는 모습을 보며 화를 낸 것도 가짜였다니. 그가 마음을 놓는 사이, 그녀는 돌연 공격을 퍼부어 도망쳐 버렸고 자칫 잘못하면 그의 신분이 만천하에 드러날 뻔했다.

그는 이 일로 지난 앙심까지 한꺼번에 솟구쳐 피를 토할 뻔했다. 저택으로 돌아온 그는 순간 분을 참지 못하고 또다시 새로 산 문진을 깨부쉈다. 관리는 바닥에 흐트러진 옥 조각을 바라보며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그저 문진에 불과한 것이란 말인가? 다 새하얀 은자인 것을…….

* * *

섣달 열흘날은 사장풍의 휴가였다. 가동은 특별히 사장풍 부부를 저택에 초대했다. 녹하와 사앵앵이 자리를 비운 틈에 가동은 칭찬을 받으려는 애처럼 사정우를 처벌한 일을 사장풍에게 알려 주었다. 그의 말에 사장풍은 웃으며 가슴 앞으로 두 손을 모았다.

“고맙네, 가 대인.”

“가족끼리 어찌 그런 말을.”

가동이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됐어. 이 일은 이제 그만 넘어가. 사정우는 워낙 집안도 탄탄하고 뒷배도 든든하니까 괜히 골치 아픈 일에 빠지지 말고.”

사실 사장풍은 본인만의 계획이 있었다. 하지만 당분간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그래, 알겠어.”

문발이 걷히더니 가소타가 기우뚱거리며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아버지에게 손을 뻗기 직전 아이는 그만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하지만 가소타는 울기는커녕 바닥을 짚고 엉덩이를 쑥 들어 올리더니 다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꾀죄죄한 얼굴에 어리둥절한 표정이 어찌나 귀여운지 몰랐다. 속상했던 가동은 서둘러 아이를 일으켜 안고 바닥을 발로 힘껏 굴렀다.

“우리 소타를 넘어지게 하다니, 밟아서 죽여주마!”

가소타는 아버지의 얼굴을 감싸고는 부정확한 발음으로 말했다.

“아버지, 화내지 말아요. 타, 안 아파요.”

가동은 조심스레 아이 얼굴에 묻은 먼지를 깨끗이 털어주고는 전병같이 둥근 아이 얼굴에 힘껏 입을 맞췄다.

“우리 소타는 정말 착하다니까!”

사장풍도 눈이 다 감길 만큼 활짝 웃으며 가소타를 달랬다.

“소타는 진짜 용감하구나. 넘어져도 안 울고.”

가동이 사장풍에게 말했다.

“그날 내가 얘기했던 건 생각해 봤어?”

“무슨 얘기?”

“얘 좀 봐라.”

가동이 탐탁잖은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중요한 얘길 어떻게 잊고 있어?”

“무슨 일인데, 어서 얘기나 해 봐.”

“우리 소타를 금언이한테 시집보낸다고.”

“…….”

“왜? 싫어?”

“…아니.”

“우리 소타가 안 예쁘다는 거야?”

“…아니.”

“그럼 어디 얘기해 봐… 우리 소타가 예뻐?”

사장풍은 고개를 들고 가소타를 바라보았다. 아이는 자신의 손가락을 빨며 그를 향해 활짝 웃고 있었다. 입가엔 반들반들 침이 흘러내렸다. 손가락을 어찌나 맛있게 빠는지 빵빵한 두 볼이 부풀어져 얼굴이 더 둥글게 보였다. 사장풍이 헛기침을 했다.

“예쁘고 안 예쁘고가 뭐 그리 중요하다고. 이미 충분히 귀여운데.”

“우리 소타가 안 예쁘다는 거네.”

녹하는 때마침 사앵앵과 아이들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왔다. 가동의 말을 들은 녹하가 입을 열었다.

“또 시작이다. 왜 그리 남들한테 소타가 예쁘단 소릴 듣고 싶은 거야? 사 장군님 말이 맞잖아. 예쁜 게 뭐 그리 중요하다고, 이렇게 깜찍한데.”

그녀가 사장풍에게 말했다.

“장군, 개의치 말아요. 밖에서 딸이 예쁘지 않다는 말을 들었던 때부터 병적으로 소타가 예쁜지 안 예쁜지 물어보고 다닌다니까요. 한동안 잠잠하더니만, 어찌 오늘 또 저러는지…….”

사장풍도 조금은 민망했다. 사실 그저 한번 맞장구를 쳐 주면 그만인 일이었다. 그가 서둘러 아들을 불렀다.

“금언아, 나중에 커서 소타와 혼인을 하겠느냐?”

사금언은 고개를 들고 가소타를 힐끗 바라보았다. 그러다 그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뇨. 전 청양 누이를 부인으로 맞을 거예요.”

순간 방 안에 있던 어른들은 할 말을 잃은 듯 사금언을 바라보았다. 불쑥 정신을 차린 가동이 말했다.

“…패기가 넘치는걸!”

* * *

연말엔 시간이 유독 더 빨리 흘렀다. 성안의 백성들은 새해를 맞기 위하여 준비에 한창이었다. 섣달 스무닷샛날인 오늘, 거리에는 엄청난 규모의 시장이 열렸다.

온 마을 사람들이 시장에 나와 장을 보는 날이니만큼, 상점들은 일찌감치 문을 열고 색색의 깃발을 꽂았다. 가게 앞에는 수많은 매대가 펼쳐졌고 온갖 물건이 주르르 진열되었다. 마치 용 두 마리가 나란히 몸을 뻗은 듯 거리 양옆은 처음과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긴 장사 행렬을 이루었다.

거리는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제사에 쓸 각종 향을 사는 사람, 건과일을 사는 사람, 문신門神(문짝에 붙이는 신상神像)을 사는 사람 외에도 집안에 붙이는 새해 그림인 세화歲畫, 양초, 금박 종이, 종이, 간식, 사탕, 책력冊曆, 부엌신인 조왕신 그림, 장난감, 새 옷, 폭죽 등등 다양한 물건을 사 갔다. 또 한쪽에는 돼지, 양, 닭, 오리 등의 각종 고기, 채소와 과일, 술지게미, 도자기, 빗자루, 쓰레받기, 대나무 광주리 등을 팔고 있었다.

장은 사흘 내내 열렸다. 사앵앵은 날마다 두 아이와 금천아, 주자, 아하를 데리고 장을 보았다. 그녀는 돈을 버는 것만큼이나 쓰는 것도 좋아했다. 그녀에게 돈을 버는 것은 재미였고, 쓰는 것은 기쁨이었다. 그녀는 아이들이 필요한 것뿐만 아니라 금천아와 주자, 아하에게도 필요한 것들을 잔뜩 사주었다. 통이 큰 주인 덕에 세 사람은 입이 찢어질 듯 활짝 웃었다.

등불을 켤 때가 되어서야 사앵앵은 아이들과 하인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곧 새해였기에 그녀는 저택에 미리 붉은 등롱을 걸어두었다. 밤이 되면 등불의 붉은 빛이 축제 분위기를 내며 주변을 환히 밝혔다.

그녀가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류 어멈은 시녀들과 함께 음식을 내왔다. 사금언은 맛있는 냄새에 환호성을 내지르며 탁자로 달려갔다. 그때 류 어멈이 그를 붙잡고 웃으며 코를 꼬집었다.

“이런 먹보 도련님, 밥을 먹기 전엔 손을 깨끗이 닦아야죠?”

사금언이 어릴 때부터 류 어멈이 길러 주었기에 서로 애정이 남달랐다. 그가 손을 뻗으며 애교를 부렸다.

“어멈이 닦아줘.”

류 어멈은 아이를 안고 손을 깨끗이 닦아 준 뒤, 의자에 앉혀 밥을 먹여 주었다. 사앵앵이 말했다.

“류 어멈, 그리 응석을 다 받아 줄 것 없네. 제 아버지를 따라 장군이 되겠다면서 밥도 혼자 못 먹는 놈이 어찌 장군이 되겠어?”

사금언은 얼굴을 붉히더니 직접 수저를 들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류 어멈이 웃으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이렇게 시중을 들 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걸요. 도련님이 장가를 드실 때쯤엔 저도 늙어서 시중들지 못할 겁니다. 그땐 도련님 부인이 시중을 들어야겠지요.”

사앵앵은 그날 가동의 저택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라 웃음이 터졌다.

“저 애가 누구와 혼인하고 싶어 하는지 한번 물어보게.”

사금언은 전혀 망설임 없이 당당하게 말했다.

“전 청양 누님이랑 혼인할 거예요!”

류 어멈은 깜짝 놀라 두 손으로 입을 감쌌다.

“세상에! 우리 도련님, 그런 말은 함부로 해선 안 돼요. 그분은 공주이신걸요. 얼마나 귀한 분이신데요.”

사봉봉이 끼어들었다.

“게다가 설령 황상께서 은덕을 베푸시어 혼인을 허락해 주신다고 한들 공주가 널 모시는 게 아니라 네가 공주를 모셔야 해.”

사금언은 전혀 대수롭지 않다는 얼굴로 말했다.

“좋아하는 사람의 시중은 얼마든지 들 수 있어.”

사봉봉은 젓가락으로 동생의 머리를 한 대 때렸다.

“얘 봐라, 얘 봐. 꿈 깨. 감히 그리 높은 분을 넘봐선 안 돼. 내가 볼 때 금언이 넌 소타랑 혼인하는 게 더 나아.”

사금언은 코웃음을 한 번 치더니 고개를 숙이고 밥을 먹는 데 집중했다. 아직 어리긴 해도 청양 공주와 자신이 다르다는 건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청양 공주는 황제의 딸이자 고귀한 공주였다. 소타처럼 보고 싶다고 바로 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밥을 먹은 뒤, 사앵앵과 사봉봉은 등불 아래에서 장부를 맞춰 보았다. 바깥에선 이따금 펑 하고 폭죽 터트리는 소리가 났다. 주자와 금천아가 사금언을 데리고 폭죽을 터뜨리는 것이었다.

바깥에서는 손뼉을 치며 기뻐하는 아들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눈앞에는 어여쁜 딸이 앉아 있었다. 사앵앵은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정말이지 제가 복 많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자신을 끔찍이 사랑해 주는 부군에 귀여운 아이들, 여기에 매일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가게까지.

그녀는 이제 시작일 뿐 앞으로는 더욱더 좋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더 많은 가게를 차리고 장사 규모를 키워서 언젠가 임안성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매우 냉혹했다. 갑작스레 들려오는 다급한 외침에 사앵앵은 황급히 문 쪽을 바라보았다. 문지기 머슴이 허겁지겁 안으로 들어왔다.

“부인, 큰일 났습니다. 엄청 많은 관병들이 찾아와서는, 범, 범인을 잡으라며…….”

사앵앵이 탁자를 내리치며 벌떡 일어났다.

“그게 무슨 말이냐. 내 집에 와서 범인을 찾다니, 새해를 코앞에 두고 어찌 이리 재수 없는 짓을 벌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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