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13화
사장풍은 사앵앵이 또다시 말꼬리를 물고 늘어질까 봐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후원에 검은 옷을 입은 자들이 있다 하였소?”
“네.”
사앵앵은 어두워진 얼굴을 한 채 가위를 들고 촛불 심지를 잘랐다.
“처음엔 기루의 하수인들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엔 아닌 것 같았어요. 하나같이 몸놀림이 좋고 물건을 옮길 때도 소리 한번 내지 않더라고요. 말도 하지 않았고요. 꼭 특수 훈련을 받은 자들 같았어요.”
사장풍이 미간을 찌푸렸다.
“동월의 국법에 따르면 그 어떤 자도 사사로이 무사를 양성할 수 없소. 만약 염춘원에서 무사를 양성하는 것이라면… 이는 엄청난 대역죄요!”
“내가 볼 땐 사정우와 관련이 있는 자들 같아요. 사정우는 염춘원과 아무 관계도 없다면서 선을 그었지만, 그저 친숙한 게 다는 아닌 것 같았어요. 표정이나 말투, 검은 옷을 입은 자들이 그를 공경하던 것까지 생각해 보면 그가 염춘루의 주인일 가능성이 높아요.
만약 그렇다면 금정각의 원래 주인도 그자일 거예요. 심지어 창륭 쌀집도 그와 관련이 있겠죠. 사정우 그자는 알면 알수록 정말 기이한 사람이에요.”
“앵앵, 당신이 담력 좋은 건 나도 알지만 사정우는 너무 위험한 자요. 앞으로는 내가 알아보겠소. 정말 사사로이 무사를 기르는 거라면,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소!”
사앵앵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사정우는 정말 교활한 사람이에요 당신은 그자의 적수가 되지 못할 거예요.”
“…….”
자신은 그리 똑똑하지 않다는 뜻이란 말인가…….
“만약 그자가 정말 금정각의 주인이라면 금정각이 또다시 그자의 손에 넘어간 것이겠죠. 내 돈도 빼앗고 주루까지 가져간 것이니… 절대 용서치 않을 거예요.”
사장풍은 그녀의 말을 더 들어 줄 수가 없었다.
“앵앵!”
사앵앵은 그의 팔을 쓸어내리며 다독였다.
“알겠어요. 당신이 걱정하는 거 다 알아요. 하지만 저도 당신이 걱정된다고요. 군령 없이 독단적으로 병사를 이끌고 소란을 피웠으니 황상께서 아시면 어떡하겠어요.”
사장풍이 말했다.
“황상은 조금 모자라도 황후께선 똑 부러지시니…….”
사앵앵의 날카로운 눈빛에 그는 곧장 입을 다물었다.
* * *
사앵앵의 추측은 틀리지 않았다. 이틀도 채 지나지 않아 황상의 귀에 이 일이 전해졌다. 황제는 조회가 끝난 뒤, 느긋하게 승덕전으로 돌아왔다. 때마침 성 황자가 황후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그가 헛기침하자 성 황자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히 예를 갖췄다.
“부황, 다녀오셨습니까.”
“그래.”
황제가 그를 꾸짖었다.
“너도 이제 어린 나이가 아니니, 늘 어머니 곁에 붙어 있는 건 옳지 않다. 청양이 좀 보거라. 어찌 황저를 보고 배우지 않는단 말이냐.”
성 황자는 고개를 숙인 채 답했다.
“부황 말씀이 맞습니다. 소자가 잘못하였습니다.”
백천범이 혀를 차며 말했다.
“청양이 얘기는 꺼내지도 말아요. 그 애가 하는 건 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니까요.”
황제가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
“청양이가 또 무슨 짓을 저질렀길래?”
“태후 노불야의 삵이 수영을 못한다면서 강제로 물독에 빠뜨렸대요. 삵이 죽을 뻔했나 봐요.”
황제가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마음 씀씀이가 아주 깊은 아이오.”
그가 손을 내저어 성 황자를 밖으로 내보냈다. 그는 은은한 미소를 띤 채 황후에게 말했다.
“짐이 오늘 아주 재미난 이야기를 들었소.”
재미난 얘기라면 백천범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었다.
“뭔데요?”
“한 신하가 오늘 조정에서 사장풍이 저지른 일을 고했소. 그자가 병사들을 대거 이끌고 기루에 놀러 갔다는구려.”
황제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기루에 그리 요란하게 놀러 가는 자는 아마 사장풍 밖에 없을 것이오.”
백천범이 의아하다는 듯 대답했다.
“그럴 리가요. 사장풍은 그럴 사람이 아닌걸요. 게다가 앵앵이가 얼마나 무서운데요.”
“듣자니 사앵앵도 기루에 있었다고 하오. 부부가 각자 재미를 봤다더군.”
백천범이 입을 쩍 벌렸다.
“앵앵이도 갔다고요……?”
“뭘 그리 놀라시오.”
황제가 사앵앵을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사앵앵은 원래 호탕한 성격이니 한번 다녀왔을 수도 있지.”
백천범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 두 사람이 어떤 성격인지는 누구보다 제가 잘 알아요. 절대 그런 짓을 할 사람들이 아니에요.”
황제가 이 이야기를 하는 건 그녀 앞에서 사장풍의 흉을 보려는 것이었다. 어쨌든 사장풍은 과거 그의 연적이 아니었던가. 사장풍 부부의 됨됨이는 그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대꾸했다.
“맞소. 만약 두 사람 모두 기루에 간 거라면 분명 무슨 이유가 있었을 테지. 하지만 군령도 없이 병사들을 동원한 사실만으로도 짐은 그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소.”
백천범이 놀란 얼굴로 그에게 이야기했다.
“황상께서도 방금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고 하셨잖아요. 아님 사장풍은 가동과 막역한 사이니까 가동에게 한번 가 보라고 해보시어요.”
황제가 그녀를 흘기며 말했다.
“지금 사장풍 대신 내게 사정하는 것이오?”
백천범이 눈을 찡긋거리며 말했다.
“애들이 이렇게 컸는데도 아직도 그리 소심하게 구는 거예요?”
황제는 웃음을 터뜨리며 그녀를 품에 안고 입을 맞췄다.
“다른 건 다 괜찮지만, 이 일만큼은 끝까지 소심하게 굴어야겠소.”
그가 마구 입맞춤을 퍼붓자 백천범을 깔깔거리며 몸을 피했다.
“전 서방님 것이에요. 누구도 빼앗아가지 못한다고요.”
천하를 거느리는 황제는 부인이 불러주는 ‘서방님’이란 말이 가장 듣기 좋았다. 그 한마디에 조금 전 불쾌했던 기분은 눈 녹듯 사라졌다.
“알겠소. 당신 말대로 가동에게 알아보라 하겠소.”
* * *
가 대인은 사장풍과 술을 마시기 위해 성 외곽 주둔지로 찾아갔다. 장난기가 많은 가 대인은 사장풍을 보자마자 놀려 댔다.
“아이고, 우리 사 장군께서 아주 유명해지셨더군요.”
사장풍은 영문을 알지 못했다.
“무슨 말이야?”
“듣자니 병사들을 잔뜩 거느리고 기루에 갔다던데… 그 기백과 위엄이 황상보다 뛰어났다면서!”
사장풍은 황상이라는 말이 나오자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곧장 파악했다.
“황상께서도 아신 거야?”
“모르실 리가 있겠니. 누군가 진즉에 일러바쳤지.”
“누가 날 일러바쳐?”
“금군錦軍을 관리하는 류명풍劉銘豐이라는 자인데, 네가 보고도 없이 병사들을 이끌고 기루에 놀러 간 게 황당할 따름이라고 했대.”
“황상께선 뭐라 하셨어?”
가동이 술잔을 들고 한 모금 들이켰다.
“황상께서 널 어찌 보시는지 모르는 거야? 어쨌든 조심해. 황후 마마께서 사정하지 않으셨다면 분명 네게 그 죄를 물으셨을 테니까.”
사장풍이 미소를 지었다.
“그럼 그렇지. 황상께선 조금 모자라셔도 황후 마마는 똑 부러지시니까…….”
“야, 야, 제발 그 입 좀 다물어.”
가동은 서둘러 손을 내젓더니 문을 지키던 보초병에게 멀찍이 떨어지라고 분부했다.
“내가 볼 땐 네가 더 멍청하거든. 황상께서 뭘 싫어하는지 잘 알면서 어찌 그런 말을 뱉어. 황상 귀에 들어갔다간 아무리 황후 마마라도 널 구해 주지 못할 거라고.”
사장풍은 조금 성이 난 듯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서 말해 봐. 기루엔 뭐 하러 간 거야? 제수씨도 같이 갔다며?”
가 대인은 또다시 장난스럽게 말했다.
“부부가 쌍으로 기루에 놀러 가다니… 멋지다니까!”
“닥쳐.”
사장풍이 말했다.
“앵앵이를 찾으러 간 거였으니까.”
그는 가동에게 대략적인 얘기를 해주었지만 자세한 내막까진 언급하지 않았다.
사장풍의 말을 들은 가동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니까… 염춘원에서 제수씨를 납치했다고? 그렇게 큰일이 났는데 왜 당장 잡아들이지 않은 거야? 그 망할 기루 문을 봉쇄했어야지.”
“내가 포졸도 아니고 어찌 잡아들여. 게다가 증거가 있어야지. 아무런 증거도 없는데 앵앵이의 말만 믿고 대리시가 판결을 내려 주겠어?”
“염춘원에서 제수씨를 왜 납치했는데?”
“그걸 누가 알아.”
가동이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이야기했다.
“네가 부인을 찾으러 간 거였다면 황상께서도 눈 감아 주시겠네. 네가 제수씨를 걱정하는 척할수록 황상께선 더 마음을 놓으시니까.”
사장풍은 그의 말에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났다.
“누가 그런 척이래? 진짜 걱정돼 죽겠거든. 녹하가 납치됐어 봐, 너라고 걱정이 안 되겠어? 목숨 걸고 찾아가지 않겠냐고.”
가동이 스리슬쩍 다가와 말했다.
“이 형님한테 솔직히 말해봐. 진짜 더는 마마 생각 안 하는 거야?”
“저리 꺼져!”
사장풍이 그를 밀쳤다.
“난 이제 자식들이랑 부인 생각뿐, 다른 여인은 안중에도 없다고.”
가동은 시시덕거리며 자신은 못 속인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에 사장풍이 눈을 희번덕였다.
“믿든지 말든지.”
잠시 뒤, 사장풍이 다시 입을 열었다.
“사정우라는 자가 있는데, 들어 봤어?”
“당연히 알지.”
가동이 말했다.
“도성의 대상大商이잖아. 집안에서 내려오는 포복점을 그자가 이어받았잖아. 거기다 두 승상의 여동생을 부인으로 들였으니 제법 이름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왜, 그자가 네 심기를 건드렸어?”
“죽여 버리고 싶어.”
“…엥? 대체 왜?”
“내 부인을 탐내거든.”
그 말에 말문이 막힌 가동은 끝내 웃음을 터트렸다.
“이제 황상의 마음을 알겠지? 누군가 자신의 부인을 탐내면 얼마나 구역질이 나는지 말이야.”
“…넌 누구 편이야?”
가동이 헤헤 웃으며 말했다.
“난 그저 사실을 말한 거지. 내가 황상의 사람이긴 해도 우리 둘은 어린 시절부터 친형제나 마찬가지였잖아.”
사장풍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넌 영구랑 친형제 아니었어? 왜 갑자기 나로 바뀐 거야?”
“아이, 거참. 그런 말이 어디 있어. 암튼 걱정하지 마, 사정우는 내가 혼쭐을 내 줄 테니까. 넌 가만히 있어. 그자의 뒷배가 무려 승상이야. 너무 일이 커지면 좋을 게 없다니까.”
“내 부인 일인데 뭐 하러 남의 도움을 받아?”
“내가 남이야? 네 부인은 내… 제수씨잖아. 난 금언이를 내 아들처럼 여긴다고. 우리 난청이는 무술을 싫어하는데 금언이는 좋아하잖아. 매번 나를 볼 때마다 무술을 보여 달라고 어찌나 조르는지. 우리 소타도 금언이를 좋아하는데, 우리 사돈이나 맺을까…….”
“…….”
대체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