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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709)화 (708/1,192)

제709화

잠시 뒤, 심부름을 보냈던 사람이 잘 차려입은 한 남자를 데려왔다. 서른이 좀 넘어 보이는 각진 얼굴에 반지를 낀 게 제법 부티가 나는 사람이었다. 사앵앵은 금정각의 원래 주인에게 기대를 걸어 볼 생각이었지만, 그는 입을 열자마자 찬물을 끼얹는 듯한 말을 꺼냈다.

“금정각을 풍 관리에게 맡기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금정각을 팔아넘기는 걸 허락한 일은 절대 없었소. 금정각의 관리인이 바뀌었다는 걸 누군가 알려 주지 않았다면 지금도 이 일을 모르고 있었을 것이오. 분명 풍 관리가 사기를 치고는 은자를 들고 튄 게 틀림없소. 나 또한 그자를 찾고 있다오.”

사앵앵은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자신이 사기를 당하다니! 금정각을 살 때 비싼 값을 치른 건 아니었지만, 이곳을 운영하는데 흘린 피와 땀은 돈으로 환산이 불가능했다.

“부인.”

금천아가 걱정에 잠긴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관아에 고하시지요.”

사앵앵이 쓴웃음을 지었다. 풍 관리인은 이미 멀리 도망쳤을 터인데 관아에 고하는 게 무슨 소용이겠는가?

“사 주인장.”

건물 주인이 그녀를 불렀다.

“가게에서 가져갈 게 없다면 그만 문을 잠그겠소.”

사앵앵이 얼른 대답했다.

“주인 말을 믿지 못하는 게 아닙니다. 단지… 갑작스러운 상황을 맞닥뜨린 제 마음도 조금은 헤아려 주실 수 있지 않습니까? 관아에 가서 계약서를 검토해 보는 게 어떨는지요.”

“좋소.”

건물 주인이 손짓하며 말했다.

“가 봅시다.”

결국 그들은 관아로 향했다. 그들은 관아의 최고 우두머리인 부윤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세세하게 설명했다. 부윤은 유심히 계약서를 살펴보았다. 금정각의 원래 주인이라고 나타난 자는 주루의 주인이 확실했기 때문에 사앵앵의 매매 계약은 효력이 없었다. 그저 재수 없는 일에 엮인 것일 뿐.

사앵앵은 예상한 결과에 그리 놀라지도 않았다. 관아를 나올 때, 그녀가 건물 주인에게 물었다.

“금정각을 어찌하실 계획입니까?”

건물 주인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주루를 열 생각이오. 사 주인장이 금정각을 잘 돌봐 주어 참으로 다행이오. 본래 금정각의 주인장은 더는 운영을 하지 않겠다고 하니, 내가 이어야지, 별수 있나.”

사앵앵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게 완벽히 준비된 상태입니다. 주방장과 점원들도 데려가지 않을 터이니 주루를 계속하실 거라면 그들도 계속 남아서 일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낯선 것보단 익숙한 게 낫겠지. 좋소, 전부 다 남겨두겠소.”

주인이 길가에 서서 사앵앵에게 읍했다.

“사 주인장, 하면 난 그만 돌아가겠소. 나중에 시간이 생기거든 금정각에 놀러 오시오.”

사앵앵은 손을 흔들며 미소를 지었다. 그를 태운 가마가 멀어지자 그녀가 아하에게 말했다.

“저자를 쫓거라.”

여의루에 돌아온 사앵앵은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녀의 모습에 사봉봉이 달려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어머니, 금정각에 문제가 생긴 거예요?”

사앵앵은 장사와 관련된 일이라면 뭐든 사봉봉에게 솔직히 말해 주었다.

“봉봉아, 앞으로 금정각은 우리 가게가 아니야.”

“예?”

사봉봉은 깜짝 놀랐다.

“왜요?”

사앵앵은 의자에 앉아 관자놀이를 힘껏 눌렀다.

“어머니가 실수했어. 경솔히 행동한 탓에 남에게 허점을 내주었구나.”

사봉봉은 피곤해 보이는 어머니의 어깨를 두드려 주며 위로했다.

“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예전에 제게 그러셨잖아요. 실수는 교훈으로 삼으면 되니 걱정할 것 없다고요. 돈을 주고 교훈을 샀다고 생각하세요. 훗날 똑같은 실수를 안 하면 되죠.”

사앵앵은 딸을 끌어안고 미소를 지었다.

“우리 봉봉이가 이렇게 생각하다니 참 기특하구나. 어머니는 괜찮아. 우리 식구가 함께 있다면 하늘이 무너져도 겁날 것 없어.”

사봉봉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앞으로 더 열심히 해서 손해를 메우면 되죠.”

“어제 장부는 다 정리했니?”

“포목점 장부는 다 확인했는데… 여의루 건 아직 못했어요.”

“넌 가서 네 할 일을 하렴. 어머니는 잠시 혼자 생각 좀 할게.”

“알겠어요, 어머니.”

사봉봉은 얌전히 대꾸한 뒤 밖으로 향했다. 거대한 주루를 날린 것은 장사꾼에게 살갗을 도려내는 것만큼이나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사앵앵은 금정각을 살 때 유달리 패기가 넘쳤던 그때의 기분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동서남북 네 곳에 주루를 열어 대문에 사자가 적힌 깃발을 내걸고 싶었는데……. 그 결심을 한 지 얼마나 지났다고, 금정각을 금세 빼앗기고 말았다.

대체 무엇이 문제였단 말인가? 사앵앵은 턱을 괸 채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똑똑한 장사꾼이었기에 남들보다 두뇌 회전이 훨씬 더 빨랐다. 아무래도 오늘 일은 우연이 아닌 것 같았다.

그녀는 사건의 전후 사정을 곰곰이 곱씹었다. 풍 관리인이 했던 말과 건물 주인의 태도, 금정각의 예전 주인 모습까지……. 세 사람의 얼굴이 그녀의 뇌리에 떠다니다 결국엔 금정각의 예전 주인장 얼굴만 남았다. 갑자기 나타난 그는 몇 마디 말만 남기고 또 황급히 자리를 떴다. 차림새와 외모 모두 부티가 철철 흘렀지만, 어딘가 조금 이상한 느낌이었다.

주인장은 주루 일에 관여하지 않고 관리인 혼자 일을 처리하는 건 그리 책망할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금정각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처럼 가게를 둘러보지 않았다. 게다가 자신이 고용한 관리인이 돈을 다 들고 도망쳤는데도 전혀 화가 난 모습이 아니었다. 그리고 건물 주인도 그랬다. 임대료를 받아먹고 사는 사람이 어떻게 주루를 직접 운영하겠다는 말인가? 어찌 이상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정말 이상했다. 무언가 크게 잘못된 게 틀림없었다. 그녀의 머릿속에 별안간 사정우의 얼굴이 번득였다. 그녀는 예전부터 사정우가 금정각의 주인이 아닐까 의심했었다. 만약 그녀의 의심이 맞다면 오늘 일은 쉽게 설명이 가능했다. 풍 관리인이 그를 속였든가, 아님… 당시 그녀가 금정각을 산 것 자체가 계략이었든가.

도성엔 온갖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뛰는 놈이 있는 반면 그 위를 나는 놈도 많았다. 누군가에게 사기를 당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지만, 그녀는 그저 자신에게 계략을 쓴 게 누구인지 궁금했다. 잠시 뒤, 주자가 돌아와 그녀에게 고했다.

“부인, 그자를 성 서쪽 홍등가까지 뒤쫓았습니다. 헌데 그자가 다른 가게에 들어가는 바람에 더는 쫓지 못했습니다.”

그가 말하는 홍등가는 기루가 모여 있는 곳이었다. 대낮엔 기루 장사를 하지 않을 텐데… 그는 그곳에 무얼 하러 갔단 말인가.

“어느 기루로 들어갔는지 기억하느냐?”

“예.”

주자가 얼굴을 붉혔다. 주자는 늘 품행이 정직했기에 난생처음으로 홍등가에 발을 들인 것이었다. 그는 기루 상호를 말하는 것만으로도 부끄러워했다.

“염춘루艳春樓라는 곳이었습니다.”

그때, 아하도 돌아왔다.

“부인, 멀리서 건물 주인을 쫓았는데 창륭昌隆 쌀집에 들어갔습니다.”

“창륭 쌀집?”

사앵앵도 아는 가게였다. 임안성에서 가장 이름난 쌀집이기도 했고 그곳 주인장도 만난 적 있었기 때문이다. 예전에 사정우와 함께 밥을 먹으러 왔던 상인 주씨였다.

“그자가 창륭 쌀집엔 무엇 하러 갔냔 말이냐? 쌀을 사러?”

“아뇨.”

아하가 말했다.

“뒷문으로 들어갔습니다. 아주 익숙해 보이는 게 꼭 제집을 드나드는 것 같았습니다.”

사앵앵이 잔에 물을 한 잔 따랐다. 한 사람은 기루로, 다른 한 사람은 쌀가게로 갔다. 말로 설명하긴 힘들었지만, 그녀의 의혹은 점점 커져만 갔다. 그녀는 하인에게 원천림을 데려오라고 분부했다.

“창륭 쌀집은 언제부터 장사를 했죠?”

원천림이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오래된 쌀집이니 정확히 언제 열었는진 저도 모릅니다. 십여 년 전에도 있었지요. 예전엔 무륭茂隆 쌀집이라고 불렀는데 일 년 전에 주인장이 바뀌어 창륭 쌀집으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오래된 가게라면서 어찌 갑자기 주인장이 바뀐 거예요?”

“그건 저도 잘 모릅니다. 아마 돈을 충분히 벌었으니 손을 뗀 것이겠지요.”

사앵앵이 웃음을 터뜨렸다. 돈을 충분히 벌었다는 말은 장사꾼에게 있을 수 없는 법이었다. 자신이 더는 장사를 할 수 없을 때가 아니고서는 장사꾼이 손을 뗄 일은 없었다. 특히 오래된 가게는 더더욱 그러했다. 중요한 이유가 아니라면 장사를 그리 쉽게 접을 리는 없을 터.

“예전 주인장은 아직 임안성에 있나요?”

원천림이 고개를 저었다.

“원래 주인장은 도 씨라고 하얗게 생긴 사람이었지요. 예전엔 몇 번 본 적 있지만 주인장이 바뀐 뒤로는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집이 어디인데요?”

“잘 모릅니다.”

“한번 알아봐 주세요. 도 주인장을 찾을 수 있는지 말이에요. 만약 찾지 못하면 그자의 고향이 어디인지… 아니면 가족들이라도요.”

그녀는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그자와 관련된 것이라면 무엇이든 알아봐 주세요.”

원천림은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주인어른, 그자는 무엇 하러 조사한단 말입니까? 설마 금정각의 일이 그자와 관련 있다고 여기시는 겁니까?”

사앵앵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냥 좀 이상해서 알아보려는 거예요.”

사앵앵이 알아보라고 한 이상, 분명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는 걸 원천림은 잘 알고 있었다.

“예. 사람을 구해 한번 알아보지요. 하지만 너무 오랜 시간 보이지 않았으니 찾을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사앵앵은 그에게 신신당부를 내렸다.

“은밀히 알아보셔야 해요. 절대 밖으로 새어 나가선 안 되는 일이니까요. 남들에게 물어볼 때도 절대 실마리를 남겨선 안 돼요.”

“알겠습니다.”

원천림이 맞잡은 두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일이 지체되어선 안 되니 바로 알아보러 가보겠습니다.”

원천림이 자리를 뜨자 아하가 물었다.

“부인, 창륭 쌀집에 감시할 사람을 보낼까요?”

“아니. 그러다 더 눈에 띌지도 몰라. 그들이 간 곳을 알았으니 우리는 신중하게 지켜보면 돼.”

사앵앵이 낮은 목소리로 일렀다.

“지금부터 너희도 바깥을 돌아다닐 땐 각별히 더 조심하고.”

그 말에 주자는 심상찮은 분위기를 느꼈다.

“부인, 누군가 저희를 공격할지도 모른단 말씀이십니까?”

“나도 잘 모르겠구나.”

사앵앵이 오른쪽 눈을 문지르며 말했다.

“그저… 좀 불길한 예감이 드니 다들 조심하도록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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