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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708)화 (707/1,192)

제708화

놀란 사정우는 곧장 몇 발짝 뒤로 물러났다. 그가 질겁한 얼굴로 말했다.

“군사 나리, 어찌…….”

“이런, 놀라게 했군.”

사장풍은 시시덕거리며 다시 검을 검집에 넣고는 그에게 손짓했다. 사정우는 그 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사장풍이 직접 그에게 걸어갔다. 이내 커다란 손으로 그의 어깨를 짓누르더니 낮게 읊조렸다.

“물을 얻어먹으러 온 게 아니라… 자네가 내 부인을 넘본다고 듣고 왔거든. 해서 경고를 좀 하러 온 것이지. 그 마음은 당장 접는 게 좋을 걸세. 그렇지 않으면.”

그가 검집을 툭툭 치며 입꼬리를 올렸다.

“내 검이 어느 쪽에서 날아들지 모르거든.”

역시 사정우의 예상대로 사장풍이었다. 하지만 겁이 나진 않았다. 이미 사장풍을 조사했던 사정우는 그가 삼품 장군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삼품도 제법 높은 고관이지만, 일품 승상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사정우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사 장군, 이런 식으로 부하들과 쳐들어오시다니. 황상께 고할까 두렵지도 않으십니까?”

사장풍이 눈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

“일개 장사꾼이 황상을 뵐 수 있다니… 황상께서 개나 소나 다 만날 수 있는 분이란 말인가?”

사정우는 잠시 입을 잘못 놀린 걸 깨달았다. 사장풍의 말을 들으니 그 또한 황상에게 고할 방법이 없는 듯했다.

“됐네.”

사장풍이 그의 어깨를 힘껏 내리치며 말했다.

“얘기는 여기까지 할 테니 한번 잘 생각해 보게.”

사장풍은 손을 휙 내저으며 수하들을 데리고 저택을 나섰다.

* * *

사앵앵은 사장풍이 그를 혼내 주었다는 말에 속으론 기분이 좋았지만, 나무라는 말이 먼저 나왔다.

“아직 그자의 본심도 모르는데 그리 경솔하게 행동하면 어떡해요? 그러다 일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찌하려고요?”

사장풍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런 일엔 백 명을 잘못 죽인다 한들 단 한 명도 놓칠 수 없소. 그자를 보자마자 좋은 자는 아니란 걸 단번에 알 정도였소. 게다가 당신의 경쟁 상대가 아니오. 상대할 기회가 생겼을 때 경고를 해두는 것도 나쁘지 않지.”

사앵앵은 방을 정리하며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였다. 그의 시선은 줄곧 그녀를 쫓았다.

“어찌 허리가 더 얇아진 것 같소?”

“그럴 리가요?”

사앵앵이 자신의 허리를 꼬집었다.

“전부 살인걸요. 가늘어지긴요.”

“이리 좀 와보시오.”

사장풍이 그녀의 허리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사앵앵은 그를 한 번 흘기며 미소를 지은 뒤, 옷을 한 아름 안고 나무상자 쪽으로 향했다. 사장풍은 곧장 팔을 휘감아 그녀를 끌어당겨 품 안에 안았다.

“부군의 말을 듣지 않겠다?”

두 사람 모두 낭만과는 거리가 멀었다. 평소에도 말다툼을 벌이는 일이 더 잦을 만큼 미운 정이 쌓인 부부였다. 그런 그가 안 하던 짓을 하자 사앵앵은 조금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녀가 사장풍의 가슴을 밀치며 말했다.

“뭐 하는 거예요?”

길게 끄는 그녀의 목소리는 어리광이 섞여 있었다. 마음이 근질근질해진 사장풍은 그녀의 얼굴에 입을 맞추곤 빤히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정말 예쁘다니까. 다른 이가 마음에 품는 것도 전혀 이상할 게 없지.”

사앵앵이 코웃음을 쳤다.

“부인 자랑을 그런 식으로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사장풍은 그녀의 허리를 쓸어내리며 살짝 꼬집었다.

“정말 부드럽소.”

사앵앵은 그의 품을 벗어나고 싶었다.

“지금 이럴 시간 없어요. 일해야 한다고요.”

하지만 사장풍은 그녀를 더 꼭 끌어안으며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가만히 좀 있어 보시오. 잠깐만 안아 봅시다.”

자신의 품에 얼굴을 꼭 붙인 그의 모습은 꼭 어린아이 같았다. 사앵앵은 결국 웃음을 참지 못했다.

“왜요. 위기감이라도 느껴진 거예요? 다른 이에게 날 빼앗길까 봐?”

“아니, 전혀.”

사장풍이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때 황후 자리도 포기했던 당신이 돈 냄새 풍기는 일개 상인에게 반하려고?”

사앵앵이 서글픈 한숨을 내쉬었다.

“맞아요. 황후 자리를 아쉽게 놓쳤죠. 정말 아쉽다니까요…….”

“지금 뭐라 하였소?”

사장풍이 그녀의 허리를 간질였다. 사앵앵은 그의 품에서 바르작거렸고 숨을 헐떡이며 용서를 구했다.

“알았어요. 내가 잘못했어요. 하나도 안 아쉬워요. 하나도…….”

그때 문이 덜컥 열리더니 사금언이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아이는 곧장 사장풍에게 달려들었다.

“어머니를 때리면 안 돼요. 아버지, 어머니 때리지 말아요…….”

사앵앵과 사장풍은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모처럼 분위기가 무르익었는데 아들에게 들켜버리다니…….

그때, 금천아가 쏜살같이 달려와 사금언을 안고 또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쾅 소리가 나도록 문을 닫는 것도 잊지 않았다.

“…….”

“…….”

문밖에서 사금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아 누나, 어머니랑 아버지랑 무얼 하는 거야?”

금천아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어머니랑 아버지를 방해하면 안 돼. 네 동생을 낳을지 말지 상의하고 계시니까!”

* * *

사정우는 삼십 년을 살아오면서 늘 탄탄대로의 길만 걸어왔다. 하지만 사앵앵이 나타난 후부터 그의 인생엔 재난이 닥친 것처럼 꼬이기 시작했다. 그는 분노가 들끓었다.

그녀를 무너뜨리고 싶으면서도 또 조금은 아쉬웠다. 그날 골목에서 다시 보았던 사앵앵은 더 예뻐지고 늘씬해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를 대하는 태도는 예전보다 더 쌀쌀맞아졌다. 계획한 일을 망쳐 오히려 미움만 사게 된 꼴이었다.

이제 하다 하다 그녀의 부군까지 저택에 쳐들어왔다.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모욕이었다. 만약 그들에게 본때를 보여 주지 않는다면, 계속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마구 덤벼들 터. 일개 삼품 장군 따위는 그에게 아무것도 아닌데도 말이다.

이날 사정우는 또다시 새로 산 문진을 깨부쉈다. 한바탕 분노를 발산한 그는 자신의 심복을 불러 몇 마디 분부를 내렸다. 심복이 떠난 뒤, 그는 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며 문진 조각을 치우는 시녀를 지켜보았다. 그러던 중, 갑작스레 무언가 이상한 낌새가 느껴졌다.

“조각을 가져와 보거라.”

시녀는 곧장 그에게 부스러기를 보여 주었다. 사정우는 한 조각 집어 들고 등불에 비춰 유심히 살폈다. 조금 누그러졌던 그의 안색이 또다시 곧장 급변했다.

“관리를 불러오너라!”

밖에서 대기 중이던 관리는 주인의 호통에 재빨리 안으로 들어왔다.

“나리, 부르셨습니까.”

사정우는 화를 참지 못하고 들고 있던 조각을 그에게 던졌다.

“감히 날 속인 것이냐? 이건 곤륜옥昆侖玉이 아니더냐!”

차마 거짓을 고할 수 없던 관리는 문진 조각에 긁혀 피가 맺힌 얼굴로 웅얼거렸다.

“나리…, 노여움 푸시옵소서. 그, 그것이 부인께서 지시하신 것입니다. 양지옥羊脂玉은 값이 너무 비싸니…….”

“말도 안 되는 소리!”

사정우가 화를 내며 소리쳤다.

“대체 넌 누구의 노비이냐? 누구의 말을 듣는 것이야?”

관리는 고개를 푹 숙였다. 부인의 말처럼 요즘 들어 주인어른은 꼭 다른 사람 같았다. 걸핏하면 화를 냈고 몇천 냥이나 하는 양지옥도 두 차례나 깨부쉈다. 속이 상했던 부인은 값이 조금 더 저렴한 곤륜옥으로 준비하라 그에게 분부했다. 하지만 결국 주인어른께 그 사실을 들키고 만 것이다.

얼굴에 난 상처가 화끈거렸지만, 그는 조용히 대답만 올렸다.

“소인은 나리의 노비입니다.”

“최상급 양지옥을 찾아 구해 오너라. 다시 한번 더 나를 속이려 했다간…….”

사정우가 눈을 가늘게 뜨며 음험하게 웃었다.

“관외로 나가 말을 기르며 지내게 될 것이다.”

“소인이 어찌 감히 나리를 속이겠나이까.”

관리는 머리를 더 깊게 조아리며 답했다. 심장이 절로 쿵쿵 뛰었다. 관외로 보내 말을 기르게 할 거라고는 하지만… 사실 정확히 어디로 보내지는 것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 * *

사앵앵은 이른 아침부터 오른쪽 눈꺼풀이 끊임없이 떨렸다. 그녀가 눈을 가볍게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왜 이러는 거지. 오늘 일진이 사나우려나 보네.”

옆에 있던 금천아가 말했다.

“부인, 운수가 나쁠 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런 말씀 마십시오.”

그때 금정루 관리인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주인어른, 큰일 났습니다. 누군가 금정루 대문을 막고 꿈쩍도 하질 않습니다. 자신의 가게이니 돌려 달라고 우깁니다.”

사앵앵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직접 가 봐야겠군. 어서 가세.”

나삼은 서둘러 가마를 준비하라고 분부했고 금천아는 주자와 아하를 불러 함께 길을 나섰다. 나삼은 더 많은 점원들과 함께 가는 게 나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사앵앵의 만류에 그리 할 수 없었다. 금정각에 문제가 생겼을수록 여의루가 더 잘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금정각에 도착한 사앵앵은 그제야 상황을 파악했다. 금정각은 원래 주인이 건물을 매입한 게 아니라 삼 년간 빌린 형태였고 약속한 계약 기간이 끝났으니 건물 주인이 건물을 되찾으러 온 것이었다.

건물 주인은 집문서와 계약서를 꺼냈다. 하얀 종이에는 묵으로 상황이 명확히 적혀 있었다. 이 주루의 건물주인 것이 확실했고 약속한 삼 년이 지났으니 주루를 되찾을 권리가 있었다. 금천아가 나지막이 말했다.

“부인, 우리가 작성한 매매 계약서도 보여 주세요.”

사앵앵은 금정각을 살 때 작성한 계약서를 건넸다. 건물 주인은 계약서를 살펴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사 주인장, 이 계약서는 풍 관리인이 서명한 것이 아니오? 그자는 이 주루의 진짜 주인이 아니오. 근데 어찌 효력이 있겠소?”

사앵앵이 물었다.

“하면 이 계약서는 금정각의 원래 주인과 체결한 것입니까?”

“물론이지요.”

“하면 그자를 불러오시오. 직접 대면해서 확실히 얘기해 봅시다.”

“그건…….”

주인이 조금 난처해했다.

“그분은 평소 얼굴을 드러내는 걸 싫어하셔서…….”

“원래 주인장을 불러올 수 없다니… 더 의논을 해 봐야겠군요.”

사앵앵이 말했다.

“난 풍 관리인과 계약을 맺었고, 풍 관리인은 주인장의 지시를 받고 처리한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니 그 주인장에게 직접 물어봐야 할 것 아닙니까?”

건물의 주인은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알겠소. 사람을 보내 모셔 오리다.”

곁에 있던 아하가 조용히 사앵앵에게 물었다.

“부인, 풍 관리인을 찾아오면 될 일 아닙니까?”

“그자는 이미 안 보인 지 오래다.”

사앵앵은 한숨을 내쉬었다. 당시에도 조금 이상하단 생각을 했지만, 금정각의 모든 일은 풍 관리인이 맡고 있었기에 그가 총관리자라는 걸 크게 의심하진 않았다.

개업 당시부터 금정각은 풍 관리인만이 돌봤을 뿐, 지금껏 금정각의 주인을 봤다고 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당시엔 금정각을 손에 얻으려고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이리 번거로운 일이 생길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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