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왕비초장성 (706)화 (705/1,192)

제706화

원천림이 웃으며 사앵앵의 말을 받았다.

“사정우가 장사를 잘한다고 다들 칭찬하더니만… 제가 볼 땐 영 별로입니다. 장사가 뭐 기 싸움이랍니까? 어제 저들이 판 옷감은 우리 창고에 있는걸요. 게다가 오늘은 삼 할 값만 받겠다니… 또 잔뜩 사들일 수 있겠습니다.

창고에 가 보니 오늘 저들이 팔려는 것들은 올해 나온 새 옷감이더군요. 안 그래도 가을비가 내릴 때라 옷감을 어떻게 운반할지 고민이 많았는데… 사정우가 도와주려나 봅니다. 굳이 남쪽까지 가지 않아도 창고가 가득 차겠습니다.”

사앵앵이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돈 자랑 하고 싶으면 마음껏 하라고 하지요! 저자가 손해를 볼수록 우리에겐 이익입니다. 저쪽이 다 팔아치울 때까지 우린 천천히 팔면 그만이니까요.”

옆에 있던 금천아가 입을 가리고 웃었다.

“우리가 싸게 파는 게 자신들 물건인 걸 알면 아마 피를 토할 것입니다.”

금창 포목은 사흘간 연이어 대폭 할인 판매를 했고 매일 가게는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관리인과 점원들은 웃으며 손님을 맞았지만 속으로는 울상을 지었다. 마냥 신이 난 건 손님들뿐이었다. 옷감이 많이 팔릴수록 가게에 손해라는 건 점원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지만, 주인어른은 금수 포목과 경쟁만 신경 쓰는 듯 가게 수익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금창 포목은 사흘간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금수 포목은 여유롭기 짝이 없었다. 사정우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사앵앵도 그간 깨달은 게 있을 터.

나흘째 되던 날, 관리인이 사앵앵에게 물었다.

“주인어른, 오늘도 반값만 받습니까?”

“되었네. 어차피 사정우를 이길 수도 없을 테고, 이런 악의적인 경쟁은 양쪽 모두에게 손해일 뿐이네. 저쪽에 큰 손해를 입히기는 했어도 사정우에게 계속 져 주기만 하는 건 옳은 방법은 아니지. 물건도 충분하겠다, 이제 정정당당히 장사할 때가 되었네.”

사앵앵은 앞으로의 계획을 세워 놓았다. 당장은 물건이 충분해도 가을비가 쏟아지면 상대의 발이 도중에 묶일 테고, 그리되면 물건을 제때 가져올 수 없으니 싸게만 파는 게 현명한 처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가게 세 곳은 함께 운영하기 더없이 좋았다. 금수 포목에서 일정 금액의 옷감을 사면 여의루에서 서북의 비빔면을 반값에 주는 혜택을 내걸었다. 여의루에서 일정 금액을 소비한 손님은 금정각에서 요리 하나를 반값에 먹을 수 있었다. 또한, 세 가게에서 쓸 수 있는 죽패도 만들었다. 한 가게에서 일정 금액을 소비한 손님에게 죽패를 하나씩 나눠 주면 나머지 두 가게에서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한데 엮어 혜택을 주자 사람들은 호기심을 가졌다. 어떤 손님들은 놀이하듯 죽패 모으는 것을 즐겼다. 특히 금수 포목과 여의루는 가까이 붙어 있었기 때문에 포목점에서 옷감을 산 손님들은 죽패를 받고 곧장 여의루에 가서 국수를 먹었다. 손님 입장에서는 정말 이득이 아닐 수 없었다. 개업 이후 며칠간은 장사를 망쳤지만 날이 갈수록 금수 포목도 제법 장사가 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명성은 여전히 금창 포목을 따라잡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먼 곳에서 도달한 계화주 덕에 여의루는 또 한차례 대박을 터뜨렸다. 많은 이들이 계화주 소문을 듣고 여의루 위층 강남루에서 식사를 했다.

사정우는 무표정으로 하인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사앵앵이 이렇게 다양한 것을 쥐고 있을 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것으로 또다시 손님들의 눈길을 끌다니. 그녀는 세 가게의 매출을 한꺼번에 올렸다. 그의 추측이 틀리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사앵앵은 세 가게 모두 제법 큰 규모로 키워 역사적인 기록을 남길지도 몰랐다. 다시 보니 그녀는 일생일대의 강적인 듯했다.

중추가 얼마 지나지 않아 역시나 가을비가 쏟아졌다. 깊어진 가을 날씨에 지친 것인지 앙상히 말라 버린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졌고, 세차지는 않아도 빗줄기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사정우는 속으로 주판을 굴리고 있었다. 그가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사앵앵의 상대가 제때 강남에서 돌아오지 못하면 금수 포목에는 더 이상 팔 물건이 없었다. 며칠 뒤, 또다시 소식이 전해졌다. 오랜 시간 폭우가 이어진 탓에 산사태가 일어나 통행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대단히 기뻐했다. 상대가 돌아오지 못하니 제아무리 솜씨 좋은 부인이라 해도 쌀 없이 밥을 지을 수는 없는 법. 이제 사앵앵이 어떻게 나올지 지켜보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금수 포목을 염탐하러 다녀온 하인은 영 이상한 소리를 했다. 매대에 옷감이 잔뜩 쌓여 있는 게 물건이 부족해 보이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고 했다. 조금 의아했던 사정우는 내막을 알아보기 위해 다시 사람을 보냈다.

얼마 뒤, 그는 금수 포목에 쌓여 있는 옷감이 그가 얼마 전에 반값에 팔거나 삼 할 값만 받고 판 그 물건이란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 소식을 접한 그는 얼이 빠져 있었다. 사앵앵이 이렇게 교활한 여인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총명하기로 이름난 그가 여인 앞에서 고꾸라진 꼴이 되었으니, 화가 치밀어 눈앞이 깜깜해진 그는 하마터면 그대로 쓰러질 뻔했다. 이렇게 엄청난 여인을 제 것으로 만들 수 없다면… 마구 짓밟아 없애버리는 수밖에!

하지만 사앵앵을 무너뜨리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며칠째 이어진 폭우 탓에 우산의 수요가 엄청났는데 사앵앵에 때맞춰 정교하고 아름다운 지우산을 선보였다. 강남의 지우산은 예부터 소문이 자자했다. 정교한 솜씨는 물론 모양새도 화려했기 때문이다. 북방의 투박한 청색 우산보다 모양으로 보든 기능으로 보든 뛰어난 게 한둘이 아니었다.

그녀는 우산을 따로 판매하는 게 아니라 사은품으로 주었다. 연말을 맞아 다들 새해에 입을 옷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였다. 옷감을 구매하면 무료로 예쁜 우산까지 받을 수 있다니! 평범한 백성들뿐만 아니라 관료 집안의 규수들, 장사꾼 집안의 아가씨들은 전부 금수 포목으로 몰려들었다. 우산을 미끼로 금창 포목에서 싸게 사 온 옷감을 몇 배로 부풀려 판매하니 그야말로 돈방석에 앉는 격이었다.

이야기를 전해 들은 사정우는 부아가 치밀어 피를 토할 지경이었다. 한참 고민하던 그는 사앵앵에게 만나고 싶다는 쪽지를 보냈다. 사앵앵은 그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그녀의 무정한 답장에 사정우는 조금 전 거금을 들여 사 온 문진을 산산이 부숴 버렸다. 두소진杜素珍이 서둘러 다가왔다.

“나리, 어찌 또 그리 화가 나셨습니까. 몸이 상하지 않게 조심하십시오.”

그녀는 산산조각이 난 문진을 훑은 뒤 사정우를 부축해 의자에 앉혔다.

“나리, 대체 그간 무슨 일이 있으셨던 것입니까? 장사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까?”

사정우는 입을 꾹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인이 차를 내오자 두소진이 받아 직접 사정우에게 건넸다.

“설마 어느 규수에게 반해 고백했다가 거절당한 것은…….”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오른 사정우는 찻잔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허튼소리, 그런 일이 어디 있다고!”

뜨거운 찻물이 두소진의 손등에 쏟아졌다. 그녀가 놀라 소리치자 사정우는 그제야 서둘러 하인을 불렀다.

“어서 화상에 바르는 연고를 가져오너라. 부인이 화상을 입었다.”

그가 두소진을 의자에 앉히고 한결 누그러진 말투로 말했다.

“당신도 참, 그리 쓸데없는 얘기를 해서는. 많이 아프오?”

두소진은 그의 본처이자 명문세가의 딸이었다. 그들 부부는 평소 서로를 존중했기에 말다툼하는 일도 극히 드물었다. 그는 밖에서 장사를 돌봤고, 두소진은 집안을 돌봤다. 집안에 부인이 네 명이나 있었지만 모두 별 탈 없이 잘 지냈다. 이번에 처음으로 그가 그녀에게 화를 낸 것이다.

두소진은 명문가의 딸이라 대국을 중시하고 남편을 하늘처럼 여기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조금 서럽긴 했지만 그녀는 화내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약을 바르면 괜찮아질 겁니다.”

계집종이 재빨리 연고를 가져와 두소진에게 발라 주었다. 사정우는 가만히 앉아 두소진의 손을 빤히 바라보았지만,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두소진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예측이 맞을 것이다. 분명 사정우의 마음에 드는 여인이 생긴 것이다. 그 여인을 손에 넣지 못해 요 근래 계속 울적해하는 것일 터. 두소진은 계집종을 물린 그녀는 사정우를 다정히 타일렀다.

“나리, 그간 우리가 부부로 지낸 게 몇 해인데 아직도 저를 모르십니까? 제가 어떤 사람입니까? 마음에 품은 여인이 생긴 거라면 첩으로 들이십시오. 전 신경 쓰실 것 없습니다. 나리를 모실 사람이 늘어나는 건 제가 늘 바라던 일이니까요.”

두소진은 듣기 좋은 말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눈치 빠른 사정우가 두소진의 본심을 어찌 모르겠는가. 그녀는 포용적인 언행이 몸에 밴 탓에 남에게 미움을 사는 걸 원치 않았다. 분명 첩을 들이는 걸 원치 않으면서도 도량이 큰 척 거짓된 행동을 하며 그를 위해 혼사를 준비할 것이다.

그는 또다시 사앵앵이 떠올랐다. 그녀는 속내를 숨기는 법이 없었다. 언제든 누구 앞에서건 제 마음을 직설적으로 내뱉었다. 어찌나 솔직한지 듣고 있으면 화가 다 날 정도였다. 돌려 말하는 법도 전혀 몰랐다. 어쨌든 두소진과 전혀 다른 성격이었다. 그는 멍하니 사앵앵의 짙은 이목구비를 떠올렸다. 거기에 시원시원하게 말하는 모습까지…….

“나리.”

두소진이 그를 불렀다. 그가 미동도 하지 않자 그녀는 가볍게 그를 흔들었다.

“나리,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십니까?”

사정우가 번뜩 정신을 차렸다.

“뭐라 하였소?”

두소진이 장난을 치며 말했다.

“설마 그 여인을 생각하신 겁니까?”

사정우는 애당초 사앵앵을 무너뜨려야겠다고 생각했지만, 한참이 지나도 쉽사리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조금 전 두소진의 말은 그를 꿈에서 깨게 해준 셈이었다. 설마 그가 정말 사앵앵을 좋아하게 되었단 말인가? 하나 좋아한다 한들…, 그 혼자만의 바람일 뿐이었다. 사앵앵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으니. 사정우가 담담히 웃었다.

“그런 일은 없으니 당신도 깊이 생각할 것 없소. 그저 장사에 조금 문제가 생긴 것뿐이오.”

“혹 도성에 새로 문을 열었다는 금수 포목 때문에 골머리를 앓으시는 겁니까?”

두소진이 말했다.

“금수 포목 때문에 우리 가게의 매출이 많이 줄었다고 들었습니다.”

사정우가 조금 놀란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좀처럼 집 밖을 나가지 않는 부인이 어찌 금수 포목을 안단 말인가?

“금수 포목이라는 곳이 새로 개업한 건 어찌 알았소?”

“얼마 전 금수 포목에서 우산을 증정하지 않았습니까? 셋째와 넷째 아우가 그 우산을 얻겠다고 금수 포목에서 옷감을 끊었다더군요. 그리곤 제게 알려주었습니다.”

“…….”

그는 자신의 기분을 어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밑지고 판 옷감을 그의 셋째 부인과 넷째 부인이 다시 높은 가격에 사들였다니. 이게 다 그의 업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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