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05화
“금정각金汀閣의 주인장은 누구예요? 알아냈어요?”
“아직입니다. 풍 관리가 갑자기 실종되었더군요. 대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앵앵이 물었다.
“금정각의 주인장이 사정우일 것 같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원천림이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그럴 가능성도 있겠군요.”
“사정우.”
사앵앵이 눈을 반짝였다.
“이자가 우리에게 만만찮은 상대가 될 것 같네요.”
“주인어른, 어차피 비단 장사를 할 생각이시니 사정우의 반응을 한번 살펴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사앵앵이 뒷짐을 지며 담담히 웃었다.
“네, 그래야겠어요. 장사는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거죠. 감히 계략을 쓰는 자가 있다 한들, 나도 절대 겁먹지 않을 겁니다.”
* * *
사謝씨 저택. 멀구슬나무 의자에 앉은 사정우는 뜨거운 찻잔을 한 손으로 받친 채 찻잔 뚜껑으로 찻잎을 걸러냈다. 그의 앞에 선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보고를 올리고 있었다.
“…사앵앵은 본래 수성 사람입니다. 부친은 사성성이라는 자인데 역시 상인이지요. 부녀가 남북 양쪽에서 각각 장사하고 있습니다. 사앵앵의 관리 원천림은 한 상대의 두목이었는데 한동안 일을 그만두었다가, 지금은 다시 사앵앵을 위해 상대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상대는 육로와 수로를 교차하는 방식으로 움직입니다. 또한, 물건을 들여오기만 하는 게 아니라 북쪽의 물건을 남쪽으로 보내기도 하고 남쪽의 물건을 북쪽으로 가져오지요. 그래서 그때그때 물건을 운송할 수 있습니다.”
“찻잎과 무희들도 전부 상대가 운송한 것이더냐?”
“예.”
사정우는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장사 규모가 큰 것은 아니지만 화물 운송은 제법이구나. 남북의 수로와 육로를 교차하면 위험도 줄일 수 있고 운송도 빠를 테지. 아주 똑똑한 자로구나.”
안타깝게도 그에겐 쓸모가 없는 사람이었다.
“또 남쪽에서 전해진 소식에 의하면 이번에 상대의 화물 중 비단과 목화솜이 대량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전부 다 가을과 겨울에 쓰일 옷감이지요. 그렇게 많은 옷감과 솜을 가져온 걸 보면, 자신들의 옷을 지을 때만 쓸 건 아닐 듯합니다. 주인어른, 사앵앵이 혹 포목점을 열려는 것은 아닐까요?”
사정우가 웃음을 터뜨렸다.
“내 밥그릇을 빼앗겠다고?”
“주인어른, 사앵앵이 아무리 대단하다 한들 그저 여인일 뿐입니다. 어찌 주인어른의 뛰어난 지략과 수완을 따라올 수…….”
사정우가 손을 내저었다.
“그녀를 절대 얕보아선 안 된다. 우리 사씨 집안은 대대로 장사를 이어 왔지. 오랜 시간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한 덕에 제법 순조롭게 이어 왔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경쟁 상대도 있었지만, 우리의 적수가 되진 못했다. 하지만 이 사앵앵이란 여자는…….”
그가 코웃음을 쳤다.
“퍽 재미있군그래.”
* * *
팔월 초파일이 밝았다. 가을 하늘은 유달리 드높았고 햇살도 눈부시게 밝았다. 이날 여의루 바로 옆에 새로운 가게가 문을 열었다. 가게 주위엔 새빨간 폭죽이 파파파팍 소리를 내며 터졌다. 구경꾼들은 폭죽을 피해 이리저리 움직이며 깔깔 웃었다. 소란스러운 와중에도 누구 하나 자리를 뜨진 않았다. 방금 본 사자춤 공연이 정말 볼만 했기 때문이었다.
소란한 가운데 사앵앵은 간판을 덮고 있던 붉은 비단 천을 당겼다. 붉은 천에 싸여 있던 남색 간판에는 금색으로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금수錦綉 포목」
멀리서 간판을 바라보던 사정우는 입꼬리를 올려 미소를 지었다. 역시나 포목점을 열다니. 지금 그에게 도전장을 내민 것인가?
한편 사앵앵은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는 간판을 공개한 뒤 손님들을 맞이하는데 정신이 빠져 있었다.
포목점의 옷감은 전부 강남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강남의 옷감은 북쪽의 옷감보다 질감도 더 부드럽고 색감도 더 선명했다. 덕분에 부녀자들이 몰려들어 이것저것 구경하며 끊임없이 재잘댔다.
사앵앵은 발 디딜 틈 없이 몰려든 손님들을 바라보며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무사히 개업 첫날을 보내면 금수 포목도 널리 퍼질 테고 앞으로 순조롭게 장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손님들이 왁자지껄 떠들며 옷감을 끊으려는데, 갑자기 누군가 큰소리로 외쳤다.
“금창 포목에서 오늘 대폭 할인을 한다고 하니 어서들 가 보세요. 평소의 반값에 판답니다!”
금창 포목은 유명한 대형 포목점이었다. 옷감이 좋은 만큼 값도 비싸 일반 백성들은 감히 사기도 힘들었다. 평소의 절반 값이라는 말에 사람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때, 누군가 밖으로 달려 나가자 다른 사람들도 벌떼처럼 달려갔다. 금수 포목의 점원들은 어두워진 안색으로 서둘러 입구를 막아섰다.
“아가씨, 부인, 저희 가게도 할인을 해 드리니 둘러보시어요. 게다가 저희집 옷감은 강남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이 색감과 재질 좀 보십시오. 아이참, 가지 마시래도요. 저희는 여의루와 같이 운영하는 곳입니다. 누구에게나 공정한 가격으로…….”
창가에 서 있던 사앵앵은 여전히 소리치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금창 포목에서 떨이 판매를 한대요. 평소의 절반 가격으로요.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니니 어서들 가 보세요. 두 필만 사면 새해 때 새 옷을 지을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이득이에요!”
원천림이 사앵앵에게 다가와 물었다.
“주인어른, 사정우가 기선제압을 하려는 것 같습니다. 금창 포목은 도성에 분점도 여러 개고 재력이 어마어마합니다. 설령 밑지고 판다 해도 손해 볼 것이 없지요. 우린 어찌해야 할까요?”
발 디딜 틈 없이 붐비던 가게는 어느새 텅 비어 있었다. 사앵앵은 계산대에 놓인 각양각색의 옷감을 바라보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잠시 가게 안을 서성이던 그녀는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말했다.
“이렇게 해요. 생면부지인 사람 몇 명을 데리고 금창 포목에 찾아가세요. 얼마나 저렴하게 파는지 확인해 보고, 그걸 우리가 사들입시다. 그자들이 얼마나 떨이를 하려는지 봐야겠어요. 만약 제대로 할인하지도 않고 요란법석만 피운 거라면 공격적으로 가격을 흥정해 저렴하게 사들이세요. 사들인 옷감은 전부 창고에 보관하고요. 대신, 사정우가 알지 못하게 조심해야 해요.”
그녀가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그편이 강남에서 물건을 사 오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겠죠.”
* * *
사정우는 사앵앵의 포목점 개업을 어떻게 망치게 할지 진작 계획해 두었다. 본래 개업을 망치면 장사까지 망하게 하는 법이었다.
사실 그는 사앵앵이 마음에 들었다. 예쁘고, 능력도 좋고, 똑똑한 여인이 자신을 따른다면 분명 큰일을 해낼 수 있을 터. 하지만 그녀는 그를 방탕한 호색가라고 여겼다. 그날 사앵앵이 그에게 보였던 태도를 떠올리면 사정우는 아직도 부아가 치밀었다. 재력가인 그는 자신이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사앵앵의 호사를 망칠 수만 있다면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포목점의 관리인이 그에게 다가와 물었다.
“주인어른, 준비한 수량이 거의 다 팔렸습니다. 이제 그만하셔야 하지 않을까요?”
사정우는 자그마한 창으로 밖을 바라보았다. 가게 안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손님들은 저마다 목청을 높이며 옷감을 끊었다.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옷감은 이제 거의 밑바닥을 보였다. 이런 기세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옷감이 전부 팔릴 것이다.
“원래 계획대로 다 팔렸으면 그만두게. 많이 팔수록 적자인 셈이니까.”
“예, 주인어른.”
관리인은 허리를 굽혀 인사를 올린 뒤 밖으로 나갔다. 더 이상 옷감을 팔지 않는다는 말에 손님들의 감정이 격해졌고 가게 앞에선 고성이 오갔다.
“옷감이 이렇게나 많은데 왜 안 판다는 거예요? 어떻게 장사를 이렇게 해요? 아직도 줄이 이렇게 긴데 안 팔겠다고 하면 그만이에요? 무시도 정도껏 해야지!”
“맞아요. 사러 오라고 부를 땐 언제고 안 판다니.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금수 포목에서 샀지!”
“금수 포목은 여의루에서 운영하는 곳이니 다른 건 몰라도 손님과의 신뢰만큼은 중요시하겠지! 그냥 다 같이 금수 포목으로 갑시다.”
“맞아요, 맞아요. 다시 금수 포목으로 가요…….”
사정우는 관자놀이가 욱신거렸다. 그는 멀찍이 관리인에게 눈짓을 보냈다. 손님들을 다시 금수 포목으로 돌려보내면, 지금까지 저렴하게 판 것도 전부 헛고생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암시를 알아차린 관리인은 곧장 목청을 높였다.
“자자, 다들 당황하지 마시고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물건은 충분히 있으니…….”
사정우는 수하를 시켜 분점에서 물건을 더 가져오게 했다. 할인 판매는 저녁이 되어서야 열기가 점차 누그러졌다. 금창 포목의 문턱은 하마터면 손님들의 발걸음에 주저앉을 뻔했고 매대에는 옷감 한 필도 남지 않고 텅 비어 있었다. 관리인이 사정우에게 물었다.
“주인어른, 오늘 금수 포목의 장사를 망치긴 했지만, 내일은 어떻게 합니까? 계속 이렇게 떨이로 팔아야 하나요?”
사정우가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내일 상황을 보고 다시 결정하는 것으로 하지.”
그는 그저 사앵앵에게 본때를 조금 보여 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자신에게 미움을 사면 임안성에서 버티기 어렵다는 걸 알려 주고 싶었다.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 전갈을 보내 잘못을 인정할 터. 그리한다면 그도 더는 따지지 않을 참이었다.
하지만 이튿날, 금수 포목은 여전히 개업을 맞아 할인 판매를 시작했다. 어제 금창 포목에서 했던 것처럼 옷감을 반값에 팔기 시작했다.
그 소식을 접한 사정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사앵앵 이 여자가 대놓고 그에게 시비를 건단 말인가? 임안에 기반도 약한 타지 사람이 감히 그에게 시비를 걸다니… 이런 버르장머리를 보았나!
사정우는 화가 치밀었다. 사앵앵이 그에게 도전장을 내밀다니. 이 일엔 사내의 자존심이 걸려 있었다. 사앵앵을 굴복시키려 했는데 오히려 그에게 맞서다니. 그래, 나중에 안 봐줬다고 징징대지나 말거라! 그가 관리인에게 분부했다.
“오늘 준비한 옷감은 원래 가격의 삼 할만 받을 것이다. 금수 포목에 가서 손님을 전부 데리고 오너라!”
관리인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주인어른, 그리하시다간 정말 큰일이 날지도 모릅니다. 어제 판매한 건 해묵은 옷감이었지만 오늘 준비한 건 전부 새 옷감입니다. 그러다 정말 본전도 못 찾습니다.”
“겁낼 게 뭐 있느냐?”
사정우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사앵앵이 가진 수량이 얼마나 되겠느냐. 그 여자를 어떻게든 깔아뭉개야 한다. 안 그럼 이 사정우가 장사에서 졌다는 소문이 퍼질 텐데, 임안성에서 어찌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있겠느냐?”
관리인은 자신의 주인어른이 감정에 치우쳐 일을 처리한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명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기에 그의 말대로 움직였다. 금수 포목은 반값인데 금창 포목은 아예 삼 할 값만 받겠다니! 백성들은 자연스레 금창 포목으로 달려갔고 금수 포목은 또다시 한산해졌다. 사앵앵은 손을 허리에 얹고 길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정우에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가격을 또 내리지 않았다면 어제 그자에게서 사 온 옷감을 금세 다 내줄 뻔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