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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703)화 (702/1,192)

제703화

점원들이 음식을 모두 내오자 그는 손을 흔들어 점원들을 내보냈다. 그리곤 조용히 다른 주인장들과 술을 마시며 담소를 나누었다.

그들은 임안성에서 난생 처음으로 거절을 당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밥을 먹을 수 없다니… 다시 생각해 봐도 정말 우스웠다. 부윤조차 그들을 만나면 체면을 세워 주는데 타향의 아낙네에게 거절을 당하다니. 덕창 객잔의 이 주인장이 술잔을 들어 올리며 하하 웃었다.

“주 형님, 제가 먼저 벌주를 마시겠소. 형님 말이 맞소. 사 여주인장은 확실히 예뻤소.”

창륭 쌀집의 주 주인장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말이 사실이지? 사 여주인장은 얼굴이 고운 건 물론 일도 잘하는 것 같네. 금정각을 보게. 예전보다 더 관리가 잘되고 있잖나.”

흥륭 전장의 유 주인장이 거들었다.

“역시 자네 말이 맞네. 이렇게 예쁘고 대단한 여자를 얻었으니… 그녀의 남편은 정말이지 땡잡았군.”

줄곧 말이 없던 사정우가 담담하게 웃었다.

“안타깝게도 그녀의 남편은 무장 출신이라 장사를 할 줄 모르지. 만약 부창부수로 두 부부가 협력하면 더 아름다운 미담이 만들어졌을 터인데.”

유 주인장이 그에게 눈짓을 보냈다.

“사 주인장, 설마 마음이 동한 거야? 정말 생각이 있다면 우리가 자네를 위해 힘을 보태겠네.”

다른 두 사람이 즉시 호응했다.

“내 말이 바로 그 말이요. 사 아우님이 말만 하면 열흘 안에 그녀를 사 주인장 댁으로 보내 줄 수 있소. 첩으로 말일세.”

사정우는 연거푸 손사래를 쳤다.

“절대 나서지들 마시오. 나는 그저 사 여주인장을 존경하는 것이니까. 어찌 그런 자를 욕보여 첩으로 삼을 수 있겠소? 절대로 안 되오. 이런 말은 농담으로도 하지 마시오.”

다른 이들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사정우가 저렇게 말하면 할수록 사앵앵에게 관심이 있다는 뜻이었다. 어쩌면 곧 재미난 광경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정우의 눈에 띈 여자 중에 그가 얻지 못한 여자는 없었다. 이제 사 여주인장은 스스로 살길을 도모하는 수밖에 없으리라.

* * *

방 안에 앉아 있던 사앵앵은 연이어 재채기를 하더니 코끝을 비볐다.

“누가 내 욕을 하나?”

사봉봉이 웃으며 말했다.

“아버지일 겁니다. 어머니 이야기를 하고 있을 거예요.”

“네 아버지가 내 욕을 한다고?”

“아버지가 어떻게 어머니 욕을 하시겠어요?”

사봉봉은 진지하게 말했다.

“류씨 부인이 아버지는 어머니를 아무리 사랑해도 부족하신 것 같다고 했어요.”

사앵앵은 얼굴을 붉혔다.

“류씨 부인도 참! 아이에게 뭘 그런 걸 말하고 그래. 아이가 뭘 안다고 사랑 타령이라니.”

사봉봉이 입을 삐죽거렸다.

“어머니, 저는 이제 아이가 아니에요. 벌써 일곱 살이나 먹었으니 다 큰 아가씨라고요.”

“그래. 그래.”

사앵앵은 사랑스럽다는 듯이 딸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 딸이 벌써 이렇게 컸구나. 몇 년 후에는 시댁을 찾아야겠는걸?”

이번에는 사봉봉이 얼굴을 붉히며 화를 냈다.

“어머니! 어떻게 벌써 그런 이야기를 하세요? 저는 아직 어리다고요.”

사앵앵이 그녀를 놀리기 시작했다.

“방금은 다 큰 아가씨라더니 지금은 또 어리다고? 류씨 부인이 말한 건 괜찮고 어미는 이렇게 말하면 안 된단 말이야? 어디 한번 제대로 물어보자꾸나. 봉봉이 넌 어떤 낭군을 만나고 싶니?”

사봉봉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버지랑 비슷한 사람이요.”

“네 아버지가 뭐가 좋아. 온종일 행군이나 훈련밖에 모르는데, 이 어미를 도울 줄도 모르잖니.”

“하지만… 아버지가 기쁘면 어머니도 기쁘다고 하셨잖아요. 아버지도 그러셨어요. 장사하는 건 아주 힘들지만, 어머니가 좋아하면 아버지도 좋다고요.”

“…….”

사앵앵은 딸아이의 말에 은은히 얼굴을 물들이고 말았다.

* * *

예약한 날이 다가왔다. 사정우는 혼자 여의루로 향했다. 가기 전에 특별히 치장에 신경을 썼다. 머리에는 청옥이 박힌 관을 쓰고, 남색 금포錦袍를 입은 채 길을 걸으니 비단에 새겨진 복이란 글자가 햇빛 아래에서 아른거렸다. 학자의 묵향이 느껴지면서도 귀티가 났다.

점원은 정성스럽게 응대하며 그를 위층으로 안내했다. 찻잔에 차를 따르니 하얀 김이 피어올라 방 안 가득 향기가 퍼졌다. 천천히 음미하니 강남의 우전운무雨前雲霧였다. 도성에 돈 있는 부자도 구하기 힘든, 매우 귀중한 찻잎이었다. 그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사앵앵이 이렇게 좋은 찻잎을 구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건 그야말로 진상품과도 견줄 만했다.

요리를 주문하고 점원이 물러나자, 그는 몇 걸음 서성거리며 방 안의 장식품들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벽에는 정교하고 아름다운 부채가 펼쳐진 채 걸려 있었다. 손을 뻗어 만져 보니 부채의 면이 약간 서늘한 게 강남에서 유명한 얼음 비단인 세골細縎(경직물의 일종)이었다.

다시 벽에 걸린 대나무 발을 보니 보통의 청죽과는 달랐다. 대나무 조각에 황금빛이 보이고 대나무 마디에 푸른 골짜기가 있었다. 이건 강남에서 이름 높은 진귀한 대나무인 금상옥金鑲玉으로 만든 것이다.

그의 얼굴에 감탄이 떠올랐다. 사앵앵이 참으로 세심한 사람이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귀함을 드러내고 고아함을 느끼게 하려고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쓴 티가 났다. 저속한 돈 냄새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내부 장식부터 귀인들이 추구하는 우아한 품격에 맞췄으니 장사가 잘되는 게 당연했다.

관현악기가 연주를 시작하니 무희가 줄지어 들어왔다. 그들의 비단옷이 휘날리며 가녀린 팔이 곱게 움직였다. 동작 하나하나에 강남 여인의 빼어난 아름다움이 담겨 있었다. 반투명한 비단 위로 물처럼 맑은 눈동자가 영롱한 미소를 짓고 있으니 정말 사람의 넋을 쏙 빼놓기 충분했다.

한때 강남에 갔었던 그는 현지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가무를 감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여의루의 무희들이 으뜸이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도성을 다 뒤져도 이만한 무희는 찾을 수 없으리라.

그가 오늘 보고 들은 것은 하나도 빠짐없이 완벽했다. 사앵앵은 모든 일을 최상으로 해내는 천생 장사꾼이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이러니 풍 관리인의 패배는 당연하지 않은가. 이런 이를 상대할 땐 도둑놈의 못된 심보를 부리면 안 되었다.

그는 강남의 가무에 감동했지만, 그녀들을 보려고 온 것이 아니었다. 그는 뒷짐을 지고 별실을 나와서 회랑을 따라 걸어갔다. 멀지 않은 곳, 계단 입구의 기둥에 한 사람이 기대어 있었다. 비록 두 아이의 모친이지만, 여전히 처녀처럼 보이는 여인이었다. 풍만한 몸매에 옥처럼 매끈한 얼굴, 짙은 눈썹과 맑은 두 눈에는 총명함이 가득했다. 그는 천천히 다가가 공수한 손을 들어 올렸다.

“사 주인장.”

아래층을 살펴보고 있던 사앵앵은 깜짝 놀랐다. 급하게 고개를 든 그녀도 예를 갖췄다.

“사 주인장이시군요.”

“무엇을 보고 계십니까?”

“아무것도 아니에요.”

사앵앵이 대답했다.

“많은 고관대작들께서 이곳을 예약하는 이유는 강남의 춤을 보기 위해서인데… 사 주인장께서는 마음에 안 드시나요?”

가무를 공연할 때 손님이 별실을 나온 일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 사앵앵이 이상하게 여길 수밖에. 사정우는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답했다.

“아닙니다. 혼자서 술만 마시니 좀 답답해서 밖으로 나왔습니다.”

사앵앵이 반문했다.

“다른 주인장들은 왜 안 오셨어요?”

“다들 바쁜 사람들이라서요. 같이 오자고 약속했는데 다들 일이 생겨서 못 오게 됐습니다. 그래서 혼자 오는 수밖에 없었지요.”

사정우는 미소를 지었다.

“어렵게 약속한 날인데 낭비하면 아깝지 않겠습니까? 아니면 사 주인장께서 제 체면을 좀 살려 주시어 함께 술이나 한잔하면 어떻겠습니까?”

사앵앵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는 아녀자인데 어찌 주인장과 함께 술을 마실 수 있겠어요?”

그녀는 눈을 흘기며 한마디 덧붙였다.

“저의 부군께서는 도량이 아주 좁아서, 그런 일이 알려지면 아주 큰 일이 벌어질 거예요.”

사정우는 그녀가 이리 단도직입적으로 거절할 줄은 몰랐다. 그는 머쓱한 미소를 지었다. 십여 년 동안 상계商界를 종횡무진 누비면서도 이렇게 무안을 당한 적은 처음이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무례했군요. 저는 사 주인장께서 여걸이시라 그런 문제를 생각지 않을 거라 여겼는데.”

사앵앵은 곁눈질로 그를 경계하며 바라봤다.

“저는 정숙한 아녀자입니다.”

“사 여주인장이 정숙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제 말은 사 여주인장을 여자로 여기고 한 말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사앵앵이 눈썹을 들어 올렸다.

“사 주인장 눈에는 제가 남자처럼 보이나요?”

“…오해입니다. 제 말은…….”

말솜씨가 좋았던 사정우도 이번에는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됐어요. 그만 돌아가세요.”

사앵앵은 손으로 별실을 가리켰다.

“유부녀가 외간 남자와 이렇게 대화를 하는 것은 적절치 않아요. 소문이 나면 서로에게 좋지 않을 거예요.”

면박을 당한 사정우는 천천히 마음을 가라앉혔다. 사앵앵의 말이 맞으니 화를 낼 수도 없었다.

그의 용모는 남자답고 준수한 편에 속했다. 기루에서는 으뜸 기녀 여럿이 그가 오기만을 기다렸고, 저택에는 꽃처럼 아름다운 부인이 네 명이나 있었다. 그녀들이 그에게 시집온 이유는 그의 집안뿐 아니라 그의 용모도 한몫했기 때문이다.

한데 어찌하여 사앵앵은 그를 호색한 무뢰배로 대하는가? 물론 그가 오늘 온 것은 어떤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찌어찌하여 사람은 만났지만… 그 후로는 그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의 신분으로 유부녀를 유혹하는 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했건만… 그녀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온 사정우는 옥으로 된 문진을 바닥에 내던졌다. 퍽 하는 커다란 소리가 들리자 하인들은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소식을 듣고 대부인 두소진杜素珍이 달려왔다. 바닥을 살펴보니 평소 그가 아끼던 문진이 산산이 조각나 있었다.

“나리, 왜 이렇게 화를 내십니까? 누가 나리를 이렇게 화나게 했습니까?”

두소진은 당대 두 정승의 친여동생이었다. 세가의 천금이 상인 집안에 시집왔으니 하가下嫁(신분이 낮은 집안에 시집감)인 셈이었다. 하지만 그가 강요한 혼인이 아니었다. 오히려 두씨 집안에서 전력으로 그와 인척 관계가 되길 원했다. 두소진은 친정에서 콧대 높은 큰아가씨였지만, 사가謝家에 시집와서는 눈살도 함부로 찌푸리지 못했다. 그런데 사앵앵 저 시골 여편네는…….

생각하면 할수록 사정우는 화가 치밀었다. 동월의 풍속은 비교적 개방적이어서 남녀가 함께 술을 마시는 경우도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사앵앵은 그가 나쁜 마음을 먹고 온 것처럼 대우했다. 하필이면……. 그가 실제로도 나쁜 마음을 먹고 있었다는 게 문제였다. 그 마음이 들통났기에 이렇게 분통이 터질 수밖에.

장사판에서 뒹구는 사람은 말을 할 때 나름의 법칙이 있었다. 의도를 분명하게 드러내지 않고, 말속에 뜻을 담아 표현했다. 서로 알아들으면 그만일 뿐, 그녀처럼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하는 경우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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