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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700)화 (699/1,192)

제700화

하지만 일이 이토록 크게 벌어졌는데, 어찌 종이로 불을 감싸 꺼트릴 수 있겠는가. 사장풍은 비록 성 밖에 있었지만, 성내 소식이 전해지지 않는 건 아니었다. 군수 물자를 전달하는 병사가 이번 일에 관해 떠드는 걸 들은 그는 놀라서 심장이 벌렁거렸다. 그는 부하를 불러 말을 끌고 오라고 분부한 후, 그대로 집으로 달려갔다.

저택으로 들어선 그는 말고삐를 하인에게 던지고 그대로 중문으로 들어섰다. 발을 내딛자마자 복도에서 금천아와 주자가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금정각의 주인장이 어디 부인의 적수가 되겠어? 요 며칠 동안 손님이 한 명도 없다니, 음흉한 놈은 당해도 싸지.”

주자는 그날의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두려워지는 듯했다.

“부인께서는 담도 크셔. 감히 자기 목숨을 걸고 도박을 하시다니, 남자들도 우리 부인처럼 할 수는 없을 거야.”

“누가 아니래? 그래도…….”

금천아의 말이 뚝 끊겼다. 눈앞에 까무잡잡한 장군의 얼굴이 나타나는 게 아닌가.

“모든 일을 솔직히 고하거라. 그렇지 않으면…….”

사장풍이 그들을 노려봤다.

“너희에게 채찍의 따끔한 맛을 보여 줄 것이다. 누구도 도망갈 생각하지 말거라!”

금천아는 충심으로 사앵앵을 모셨지만, 사 장군의 채찍은 너무 무서웠다. 두 사람은 서로 힐끔 쳐다보더니 더듬거리며 그날 일을 고했다.

사장풍은 대략적인 것만 알고 온 터였다. 그런데 금천아의 말을 들어보니 사앵앵이 정말로 쥐약을 먹은 게 아닌가! 폐가 터질 듯 화가 치밀어 오른 그는 두 사람을 호되게 질책했다.

“쓸모없는 것들! 먹으려면 너희가 먹어야지, 어떻게 부인이 먹게 내버려 두었느냐? 기다리고 있거라! 내 조만간 너희에게 채찍질을 할 것이니.”

말을 마친 사 장군은 부리나케 자리를 떠났다. 그가 멀어지자 금천아가 구시렁거렸다.

“말을 안 해도 맞고, 말을 해도 맞는다니… 어쨌든 맞는 거잖아. 그럴 줄 알았으면 말하지 말걸.”

주자가 덧붙였다.

“장군의 말씀이 옳아. 우리 잘못이지. 부인께 그런 위험을 무릅쓰게 해서는 안 되었는데. 난 지금도 그때만 떠올리면 식은땀이 나.”

“부인이 결정한 일을 누가 말릴 수 있겠어? 더군다나 우리가 부인을 모신지 얼마나 오래됐어? 부인께서 실수하는 거 한 번이라도 봤어?”

금천아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오히려 장군께서 가끔 일을 어설프게 하시지.”

사앵앵은 방 안에서 사봉봉에게 장부 쓰는 법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 순간, 바람이 몰아치더니 어두운 그림자가 달려들어 그녀를 끌어안았다. 이내 부두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쌀자루를 들듯, 그녀를 어깨에 메고 안쪽에 있는 침실로 사라졌다. 그는 그녀를 내려놓지도 않은 채 문을 쾅 닫아 버렸다.

이 집안에서 사앵앵을 감히 안을 수 있는 사람은 사 장군뿐이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그녀는 선제공격을 날렸다.

“병영에 있지 않고 이 시간에 왜 돌아왔어요? 누가 황상에게 일러바치면 어쩌려고 이러세요?”

그녀를 바닥에 내려놓은 사장풍이 무겁게 가라앉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 걸로 트집 잡지 마시오. 부인, 머리를 당나귀에게 걷어차였소? 대체 어떻게 된 거요? 감히 자기 목숨을 걸고 장난을 하다니! 왜 나한테 상의하지 않았소? 부인 눈에 내가 한 집안의 가장이 맞긴 한 거요? 참으로 대담하시구려, 어떻게…….”

이를 갈던 그가 침상을 가리키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거기 엎드리시오.”

사앵앵은 입술을 삐죽거렸다.

“엎드리라고요? 뭘 하려고요? 대낮에 부끄럽지도 않으세요?”

분노한 사장풍은 냅다 소리를 질렀다.

“내가 뭘 하려는 줄 아시오? 얼른 엎드리기나 하시오!”

그는 군대를 통솔하는 사람이었다. 누구라도 일을 망치면 엎드려 채찍을 맞는 것이 그가 정한 규칙이었다. 평소의 사앵앵은 부군이 전혀 무섭지 않았지만, 오늘은 살짝 겁이 났다. 그녀는 미적거리며 침상 옆으로 가서 물었다.

“정말 때릴 거예요?”

사장풍은 자신의 얼굴을 가리켰다.

“지금 내가 장난을 치는 것 같소?”

그는 정말 머리 끝까지 화가 난 것 같았다. 사앵앵이 그를 안 지 오래되었지만, 이렇게 험악한 표정은 처음이었다. 피할 수 없다는 걸 안 사앵앵은 얌전히 침상에 엎드렸다.

사장풍은 아내의 엉덩이를 향해 힘껏 손을 내렸다. 때마침 고개를 돌린 사앵앵은 다가오는 그의 손바닥을 발견했다. 살에 닿지도 않았지만, 그녀의 표정은 이미 고통에 일그러져 있었다.

사장풍의 손이 허공에서 멈칫거렸다. 내리치는 속도는 현저하게 줄어들었고, 결국 사앵앵의 엉덩이에 닿을 때는 아프지도 간지럽지도 않았다. 자신의 심약함에 화가 난 그는 자기 허벅지를 손바닥으로 세게 내리칠 뿐이었다.

“독을 먹을 때 내 생각은 하지 않은 거요? 부인에게 사고가 생긴다면… 나는 어떻게 하란 말이오? 또 아이들은 어떻게 하란 말이오?”

“사고가 날 일은 없었어요. 제가 다 계획한 일이에요.”

“일만은 두렵지 않지만, 만에 하나가 무서운 거요. 만일 그런 일이 생기면?”

“제가 하는 일에 아직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 거예요?”

“부인을 믿소. 믿으니까 부인의 일에는 한 번도 참견하지 않았소. 그런데 감히 그런 일을…….”

사장풍의 눈시울이 점점 붉어지더니 급기야 목이 잠겼다. 그의 괴로움이 절절히 묻어나왔다. 사앵앵이 그를 가볍게 안았다.

“사장풍, 안심하세요. 당신이 얼마를 살든 저도 그만큼 살 거예요. 한순간도 당신보다 적게 살지 않을 거예요. 당신이 갑옷을 벗고 낙향하고 백발이 되고 이가 다 빠질 때까지 저는 당신 곁에 있을 거예요.”

“쓸데없는 소리.”

사장풍이 팔을 들어 그녀를 꼭 껴안았다.

“내가 있든 없든 당신은 잘 살아야 하오. 당신은 이 나라에서 가장 사나운 사앵앵이니까.”

사앵앵은 그의 품에 기대 뾰로통하게 웃었다.

“칭찬하는 거예요? 아니면 욕하는 거예요?”

“칭찬하는 거요.”

사장풍은 그녀를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진심으로 칭찬하오. 당신은 내가 본 사람 중에서 가장 강하고 용감하며 가장 분수를 잘 알고 또 가장 뻔뻔하고, 또 이리 사나운데…….”

사앵앵이 그를 밀쳤다.

“앞에는 잘 나가다가 뒤로 가니까 이상해지네요.”

사장풍은 그녀의 머리 위에 턱을 올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머리 위에서 따스한 숨결이 느껴지자 사앵앵의 마음은 편안히 가라앉았다. 그녀가 그의 등을 토닥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난 당신 말대로 난 사나운 사앵앵이니까요. 항상 잘 있을게요.”

사장풍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부인은 다른 건 다 좋은데, 너무 강인하오. 그런 일이 생겼으면 당연히 나에게 알리고 내가 해결하게 해야 하오. 내가 이 집의 가장이지 않소?”

“당신이 어떻게 해결하려고요?”

사앵앵이 그를 올려다보며 웃었다.

“병사들을 데리고 가서 가게를 봉쇄하려고요?”

사장풍의 눈빛이 차갑게 얼어붙었다.

“감히 내 아내를 괴롭히다니… 내가 다 때려죽여야지.”

“됐어요. 당신이 그놈을 죽여 버리면 누군가 황상께 일러바칠 거예요.”

사앵앵이 말을 이었다.

“황상은 다른 건 괜찮은데 시시콜콜 따지는 걸 좋아하잖아요. 아마 당신에게… 어쩌면 저한테도 아직 원한을 품었을지도 몰라요. 제왕의 마음은 심오하여 헤아리기 어렵다고 하잖아요. 지금은 우리가 코앞에 있으니 주의를 기울이고 있을 거예요. 괜한 꼬투리를 잡히지 않는 게 좋아요.”

사장풍이 서스럼없이 대꾸했다.

“그가 나를 꺼리는 건 나도 알고 있소. 성 밖에 나가라는 것도 그것 때문일 거요. 나와 황후를 만나지 못하게 하려고.”

사앵앵은 대번에 눈살을 찌푸렸다.

“황후가 보고 싶어요?”

“아니, 내 말은 황상이 그렇다는 것이오. 왜 눈을 부릅뜨는 거요?”

사앵앵은 그의 손을 잡고 가슴에 올려놓았다.

“솔직히 말해 봐요. 황후를 보고 싶지 않아요?”

“나는 외신外臣인데, 황후를 뵈어서 무엇하오?”

“정말 보고 싶지 않아요?”

사장풍은 살짝 짜증이 났다.

“계속 이럴 거요?”

사앵앵은 침상에 털썩 앉더니 그를 손가락질했다.

“아니라고는 말 못 하겠죠? 그래요, 사장풍. 그 도둑놈 심보가 아직도 죽지 않았네요. 아이고, 내가 못 살아, 아이고…….”

사앵앵의 우는 소리에 바깥에서 다급히 문을 두드렸다. 문 너머에서 사봉봉이 목청을 높여 애원했다.

“아버지, 어머니 때리지 마세요. 어머니는 때리지 마세요…….”

어안이 벙벙해진 사장풍은 사앵앵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자신이 무얼 했다고 이런 오해를 받아야 한단 말인가?

“부인, 앵앵! 그러지 마시오.”

사 장군도 어쩔 수 없었다. 천하에 두려운 것이 아무것도 없는 그였지만, 아내가 생떼를 쓰고 시치미를 떼는 건 겁이 났다. 이대로 아내를 때린 남편 취급받는 건 너무도 억울했다. 사앵앵은 아예 침상에서 폴짝 뛰어내려서 그에게 삿대질을 했다.

“이렇게 오래됐는데 아직도 황후가 생각나요?”

“절대 아니오.”

“아니면 아니라고 왜 대답을 못 해요?”

사앵앵은 손에 들 것을 찾아 두리번거리다 벽에 걸린 닭털 먼지떨이를 발견했다. 곧바로 먼지떨이를 집어 든 그녀가 냅다 달려들었다.

사장풍은 뒤돌아 몸을 날렸다. 문을 여는 순간, 그는 거의 사람들 사이를 뚫다시피 하며 달아났다. 문밖에 가득 서 있던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분명 장군께서 부인을 혼내려던 게 아니던가? 어찌하여 부인께서 장군을 뒤쫓게 되었는가? 금천아는 부부가 쫓고 쫓기는 광경에 의기양양하게 주자를 바라보았다.

“거봐! 그래도 부인이 더 세지? 장군이 우리를 채찍질하는 일은 없을 거야.”

사봉봉도 의기양양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싸우면 결국 승리는 어머니 몫이야.”

사금언은 인정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양보하시는 거야. 아버지가 좋은 남자는 여자와 싸우지 않는다고 하셨어.”

류씨 부인도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우리 공자께서 잘 아시네요. 장군께서는 부인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계셔요.”

사앵앵은 뒤뜰까지 한달음에 달린 후에야 멈춰 섰다. 그녀는 숨이 턱 끝까지 찼지만 사장풍 저놈은 멀쩡하게 서서 그녀를 달랬다.

“앵앵, 난 부인 말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소. 정말이오. 나는 성 밖에 있었지만, 마음은 계속 부인을 따라다녔소. 우리 착한 부인, 난 너무 억울하오. 황후가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다 잊어버렸소.”

사실 화난 척하고 있던 사앵앵으로서는, 이렇게 되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정말 기억이 안 나요?”

“정말 기억이 안 나오.”

사장풍은 눈을 가늘게 뜨고 기억을 떠올리는 척 시치미를 뗐다.

“동글동글한 얼굴이었나?”

사앵앵은 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됐어요. 당신을 놀린 거예요. 당신 마음속에 내가 있는 거 나도 알아요. 아니라면 내가 독을 먹었다고 이렇게 화를 내지 않았겠죠.”

그녀는 문득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겨우 다른 곳으로 돌린 화제를 다시 꺼내고야 말았다. 얼른 만회하려 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사 장군의 안색에는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었다. 헉 하고 놀란 그녀가 고개를 돌리고 도망가자 사장풍이 뒤를 쫓았다.

“도망가지 마시오. 이 일은 제대로 이야기해야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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