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왕비초장성 (697)화 (696/1,192)

제697화

금정각의 별실, 사내 몇 명이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화제는 바로 최근 임안성에서 새롭게 떠오른 여의루였다.

이들은 모두 시내에 주루를 가진 주인장이었다. 모두 동종업자들이라 암암리에 경쟁하는 사이였지만 평소에는 이렇게 모여 차를 마셨다. 하지만 깊은 대화는 일절 나누지 않았다. 고양이는 고양이의 길이 있고 개는 개의 길이 있는 법. 각자 호객을 하며 장사를 할 때는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었다.

하지만 여의루가 재개점을 한 후 그동안의 균형이 깨졌고, 주루마다 매출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여의루의 급부상으로 공포감을 느낀 주루 주인장들은 여의루를 따라 하거나 여의루 주방장에게 비싼 품삯을 제시하는 등 방법을 고심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금정각만이 여의루를 꺾을 수 있다는 생각에 이곳으로 모인 것이다. 금정각의 힘을 빌려 여의루를 상대하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금정각의 풍 관리인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

“이보게, 주인장들.”

풍 관리인이 그들을 달래듯 말했다.

“여의루는 간식과 분식을 팔지만, 우리는 요리를 팔고 있으니 노선이 다르지 않소? 이렇게 고심할 일이 아니오. 그녀는 하리파인下里巴人(통속적인 가곡)이나 하고 우리는 우리의 양춘백설陽春白雪(고상한 가곡)을 하면 되오.”

그가 이렇게 말하니 다들 대답을 하지 못했다. 사실 여의루의 부상은 금정각의 장사에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고관대작들은 여전히 금정각에서 먹고 마셨고 새하얀 은전을 물 쓰듯 썼다. 하지만 나머지 주인장들은 달랐다.

그들의 단골손님들은 모두 여의루로 가 분식과 특색 있는 간식을 즐기기 시작했다. 그들의 주루에서는 동전 스무 개로 겨우 한 끼를 먹을 수 있지만, 여의루에서는 두 끼를 먹을 수 있으니 어찌 즐겨 찾지 않겠는가? 풍 관리인이란 자는 정말 다른 주루는 생각도 않고 있었다!

* * *

다시 보름이 지난 후, 여의루의 위층이 마침내 공개되었다. 이번엔 대대적으로 선전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입구에 시가 한 구절이 적힌 간판을 걸어 두었다.

「강남에 취하지 않았음을 누가 알까? 웃으며 봄바람에 십리향을 바라본다.」

대청 오른쪽에는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로 삼는다’라고 적힌 간판이, 대청 왼쪽에는 ‘옥으로 된 그릇에 탕병湯餅(탕면을 이르는 옛말)을 감싸는 은실’이라고 적힌 간판이 내걸려 있었다. 대청에 있는 두 개의 간판은 해석하기 아주 쉬웠다.

하나는 두리뭉실하게 먹거리를 표현하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분명하게 분식을 가리켰다. 사람들은 그 간판을 보고 별실은 강남과 관련이 있다고 추측했다. 설마 위층에서 강남 요리를 먹는다는 말인가?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간판에 작은 글씨 한 줄이 더 적혀 있었다.

「이 층 별실은 예약해 주십시오.」

다들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왜 밥을 먹는데 예약을 해야 한단 말인가? 계단 입구엔 용모가 수려한 젊은 점원 두 명이 미소를 지은 채 서 있었다. 그들은 인내심을 가지고 모두의 궁금증을 해소해 주었다. 별실은 매일 여섯 상만 받을 수 있는데 점심과 저녁에 각각 세 상만 받을 수 있어 예약을 해야 했다.

어떤 사람은 여의루가 사람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술수를 좋아한다고 생각했고, 또 어떤 사람은 기어코 저 식사 기회를 쟁취하리라 다짐했다. 위층을 공개한 첫날, 점심과 저녁 여섯 상이 모두 예약되는 바람에 뒤에 온 사람들은 다음날로 예약할 수밖에 없었다.

위층의 별실을 예약한 사람들은 모두 부자들이었다. 계약금으로 은전 한 냥이 필요하니 일반 백성들은 감당하기 어려웠다. 위층에 오르니, 별실은 은은한 향기가 가득했다. 창문이 반쯤 열려 있어서 불어오는 미풍이 가슴을 확 트이게 했고 기분도 상쾌해졌다.

점원이 가져다준 따뜻한 손수건으로 손을 닦으면 점원은 차림표를 건넸다. 굳이 음식에 대한 설명을 들을 필요도 없었다. 차림표에는 음식이 하나하나 그려져 있고 자세한 설명까지 덧붙여져 있었으니까.

다들 처음 겪는 신기한 일이었다. 책자를 뒤적이며 요리들을 살펴보니 전부 다 마음에 드는 것들 뿐이었다. 이때 말솜씨가 좋은 점원들이 조언을 건네며 손님들이 요리를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왔다.

차는 상등품인 우전운무차雨前雲霧茶(곡우穀雨 이전에 운무가 낀 고산 지대에서 자란 찻잎을 따서 만든 차)를 뜨거운 물에 우리고 청자 찻잔에 위아래로 따라 향긋한 차향을 멀리 퍼트렸다. 이 찻잎은 비쌀 뿐만 아니라 도성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탓에 돈이 있어도 사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곳 여의루에 오면 마실 수 있었다. 물론 찻값이 싸지는 않았지만.

간판에는 강남이라는 두 글자가 쓰여 있었다. 역시나 강남 요리를 먹는 게 맞았다. 어릴 때부터 강남에서 자란 사앵앵에게 강남 요리는 아주 익숙했다. 그녀는 가게를 열기 전 다른 주루의 강남 요리들도 맛봤지만 그건 정통 강남 요리가 아니었다. 아마도 현지 사람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서였을 테지만, 원래의 맛은 사라져 있었다. 사앵앵은 있는 그대로의 정통 강남 요리를 선보이자고 마음먹었다.

서호초어西湖醋魚(새콤달콤한 산천어찜), 용정하인龍井蝦仁(새우와 찻잎 볶음), 항국소계杭菊燒雞(국화를 넣은 닭 요리), 낭리백조浪里白條(파와 생강을 넣은 흰살 생선찜), 간작향령干炸響鈴(고기를 두부피로 감싼 튀김), 남삼선南三鮮(세 가지 신선한 재료를 튀기고 볶은 요리), 벽옥순채탕碧玉莼菜湯(수생식물을 넣고 끓인 탕), 규화계叫化雞(닭의 배 속에 각종 재료를 넣고 구운 요리), 동파육東坡肉(돼지고기찜)……. 모든 요리가 부르기 쉽고 유명하며 재료의 원산지까지 적혀 있었다. 모양을 그대로 재현하기 위해 장거리로 운반 가능한 재료는 대부분 강남에서 운반해 왔다.

강남에서 이름난 건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먹거리, 두 번째는 가무였다. 고관대작들과 문인 그리고 묵객들이 천 리 길을 마다하지 않고 강남에 오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맛있는 음식을 먹고 가무를 보고 위해서였다. 한데 이제는 그 먼 곳까지 고생하며 찾아갈 필요가 없어졌다. 사앵앵이 이 두 가지를 결합시켰기 때문이다. 그녀는 식객들에게 먹거리뿐 아니라 눈요기까지 제공했다.

음식이 나오자 손님들은 음식에 푹 빠져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현악기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다. 점원들이 벽을 가리고 있던 발을 천천히 말아 올리니 커다란 창문이 드러났다. 손님들은 그제야 이곳이 다른 곳과는 격이 다르다는 걸 비로소 깨달았다.

은은한 곡조 사이로 비단옷을 입은 여자들이 느린 걸음으로 사뿐사뿐 움직였다. 얇은 면사로 얼굴을 가렸지만 어여쁜 눈매까지 가릴 순 없었다. 얇은 여름옷은 여인들의 윤곽을 따라 흐르며 가녀린 곡선을 그렸다.

채련곡采蓮曲(연꽃을 따며 부르는 사랑 노래)이 활발하고 경쾌하게 흐르니 여인들의 춤사위에도 생동감이 더해졌다. 손발의 움직임에 강남 여인의 수려함과 재기가 가득했다. 식객들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그들의 가무를 넋놓고 바라보았다.

밥을 먹으며 노래와 춤을 감상하는 건 드문 일이 아니었지만, 요리와 가무의 완벽한 결합은 그야말로 진귀했다.

한 곡조가 끝나면 여자들은 하나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유리 등이 비추는 큰 연꽃 한 송이가 남아 있었다. 사방을 둘러싼 벽에 붉은빛이 은은하게 퍼져, 보는 이의 마음을 녹였다.

한 끼의 식사로 이렇게 색다른 체험을 하다니. 손님들은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갔다고 탄식하며 계단을 내려왔다. 그들은 즉시 계산대에서 다음을 예약하려 했다. 그러나 이미 예약한 손님들이 열흘 후까지 꽉 차 있었다. 한 번 위층의 황홀함을 맛본 손님들은 열흘이 아니라 한 달을 기다리라고 해도 기다릴 수 있었다.

이렇게 여의루는 대대적인 선전도 없이 주루 중에 으뜸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이번에는 일반 백성이 아니라 고관대작을 겨냥했다. 부자들은 서로의 부와 경험을 비교하는 걸 즐겼다. 네가 가 봤다면 나도 가 봐야 하기에 너도나도 여의루로 달려가 별실을 예약했다. 이런 상황까지 오니 예약금을 받는 장부 선생이 놀라서 손을 덜덜 떨 정도였다.

아래층에서 받는 돈은 대부분 동전銅錢이었다. 궤짝 속에 던져 넣으면 똑같이 소리가 난다고 할지라도, 새하얀 은전만큼 마음이 편해지진 않았다. 한데 위층을 열자 사정이 달라졌다. 장부를 관리하는 진 선생은 이렇게 많은 은전을 세어 본 적이 없었다. 네모난 쟁반에 담은 은전을 한 쟁반 한 쟁반 겹쳐서 창고에 넣어 두었다가도, 혹여 잘못 세진 않았을까 겁이 나서 반 시간마다 한 번씩 다시 세어 보았다.

나삼은 두툼한 예약 명단을 들추어 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여기 쓰인 이름 하나하나가 다 돈이었다. 다만, 그는 이해할 수 없는 점이 생겨 사앵앵에게 물었다.

“주인어른, 우리 별실은 모두 다섯 칸인데 왜 세 칸씩만 예약을 받습니까?”

“장사를 할 땐, 너무 서두르면 안 되네. 천천히 움직여야지. 물건은 희소성이 있을수록 더 귀중해지는 법. 귀중해 보일수록 사람들도 오리처럼 우르르 몰려들지. 게다가 일단 개점해서 장사를 하려면 신용이 제일이네.

손님이 예약을 했으면 하늘이 두 쪽이 나도 별실을 마련해야 할 터. 하지만 세상에는 절대 밉보여선 안 되는 손님들이 있기 마련이지. 별실을 두 개나 여유로 남겨두는 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네.”

나삼은 진심으로 탄복했다.

“주인어른께선 참으로 총명하십니다. 정말 생각이 깊으시다니까요.”

사앵앵은 방긋 웃었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를 따라 장사를 했으니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다 세심하게 고려해야 했지. 지금은 그저 그런 것에 익숙해진 것뿐이라네.”

여의루의 별실이 영업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영향을 받은 곳은 금정각이었다. 금정각의 휘황찬란함에 질린 고관대작들은 여의루의 우아함을 신선하게 받아들였다.

동월에서는 서책을 읽는 사람을 최고로 쳤다. 아무리 돈이 많은 장사꾼이라고 해도 그 돈으로 관직을 사서 가문을 빛내고 싶어 했다. 그들은 구린내 나는 장사꾼이라는 말을 들을까 봐 항상 전전긍긍하며 살았다.

금정각은 자신들이 양춘백설이라고 자신만만했지만, 여의루의 강남 요리는 그들의 요리보다 훨씬 더 고상했고 겉치레를 중시하는 귀인들의 취향에 잘 맞았다. 금정각에 와서 식사를 하면서도 세 마디에 한 번씩 여의루를 언급했고 숨 쉴 때마다 두 주루를 비교하곤 했다.

말한 사람은 무심코 내뱉었지만, 듣는 사람은 가슴에 새겨지는 법. 게다가 그동안 장사가 부진했던 것도 사실이기에 풍 관리인은 미간이 뒤틀렸다.

임안에서 감히 금정각과 맞섰던 주루는 없었다. 그런데 외지에서 온 사람이 이렇게 날뛰다니. 그들에게 본때를 보여 주지 않으면 이대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아오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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