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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696)화 (695/1,192)

제696화

자세히 알아보니 여의루는 주방장들과 일정한 기한 동안 계약을 맺은 상태였다. 그 기한 내에 다른 곳으로 옮기면 그동안 받은 품삯을 반환해야 할 뿐만 아니라 더 많은 돈을 배상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그 당시에 이들은 죽도록 고생해도 겨우 살아갈 뿐이었다. 여의루가 그들에게 약속한 월급이 자기 혼자 버는 것보다 훨씬 많았기에 자연히 여의루와 계약하길 원했고, 다른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렇기에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대뜸 서명부터 했으리라. 하지만 여의루가 연일 성업을 이어가자 덩달아 주방장들도 여기저기서 관심을 받게 되었다.

어떤 사람은 여의루가 주는 것보다 두세 배나 되는 품삯을 제시하며 그들을 청했지만, 감히 따라나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제야 다들 여의루의 주인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게 되었다. 주방장들의 퇴로를 막아 버렸을 뿐만 아니라 그녀를 모방하려는 사람들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작은 점포의 별미 음식이 여의루에서만 맛볼 수 있는 간판 음식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그러나 여의루의 주인장이 여자라는 말에 다들 코웃음을 쳤다. 동월은 개방적인 풍조를 지녔기에 얼굴을 드러내는 여자들도 적지는 않았다. 다만 대개는 수방綉坊(자수 공방)을 열고 연지를 파는 처녀나 새댁이었고, 손님들 역시 같은 여인들이었다. 그러니 사앵앵처럼 남자들 틈에 섞여 있는 여인은 드물 수밖에.

한 아낙네가 수중에 열 명 이상의 남자를 거느리고 있는 건 어느 정도 수단을 써야 가능한 일이라고 다들 생각했다. 결국 모두의 머릿속이 삐딱한 생각으로 이어지기 쉬웠다. 세상에 소문내기만큼 쉬운 일은 없는 법… 여의루의 여주인에 대한 헛소문은 여기저기로 퍼져 갔다.

사람들은 요염한 여자가 주인장으로 있기에 여의루의 장사가 잘되는 거라고 말했다. 어떤 사람은 은근슬쩍 나삼에게 묻기도 했다. 그 말을 들은 나삼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소매를 휘두르며 그와 싸우려 했다.

비록 사앵앵을 안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는 진심으로 그녀를 우러러보았다. 그녀가 어떻게 여의루를 기사회생시키고 활기를 불어넣는지 직접 눈으로 목격하지 않았던가. 이렇게 멋진 여자는 보통 남자들보다 훨씬 나았다. 분명 누군가 그녀의 대단함에 샘이 나서 험담을 늘어놓는 것이 분명했다.

헛소문은 사앵앵의 귀에도 전해졌지만, 그녀는 피식 웃고 말 뿐이었다. 서북 지역에서 역참을 운영할 때도 온갖 사람들에게 별별 얘길 다 듣지 않았던가.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고 마음대로 떠들게 내버려 두었다. 어차피 그런 자들이 헛소리를 주고받는 동안에도 그녀는 대야로 돈을 끌어모으다시피 할 텐데. 내키면 그들에게 돈을 뿌리며 놀아 줄 수도 있을 정도였다.

집에 돌아와서 소문을 들은 사장풍은 얼굴이 잔뜩 일그러질 정도로 화가 났다. 헛소문을 퍼뜨린 사람들을 혼내 주겠다고 아우성쳤지만, 사앵앵이 그를 말렸다.

“장군씩이나 된 사람이 왜 이렇게 충동적이에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당신도 알고, 애들도 알고, 집안 하인들도, 가게 점원, 주방장들도 다 알잖아요. 내가 천지를 다스린다 한들, 헛된 말을 하는 자들의 입은 막을 수 없어요. 한데 누구를 찾아가서 결판을 내겠다는 거예요?

게다가 나 사앵앵이 똑바로 서서 올바르게 행하면 청자자청淸者自淸(굳이 말하지 않아도 깨끗한 사람은 깨끗함)이에요. 그들이 뭐라고 말하든 내버려 두세요. 돈 벌기도 바빠 죽겠는데 그런 말까지 상대할 이유가 없잖아요.”

사장풍은 여전히 미간을 찌푸렸다.

“당신의 명성은 고려하지 않아도 괜찮소?”

사앵앵은 입술 한쪽을 당기며 피식 웃었다.

“내가 명성에 그렇게 신경을 썼다면, 혼인하기도 전에 당신 집으로 들어갔을 일도 없겠죠? 제가 그렇게 질기게 매달리지 않았다면 어떻게 사 장군을 차지했겠어요? 명성이 부군夫君보다 값어치가 있나요?”

그녀의 말에 감동한 사장풍은 그녀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

“앵앵, 내가 집을 자주 비우는데 참 고생이 많소. 혼자 집안을 이끌어가랴 장사까지 하느랴…….”

“고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당신은 장군으로서의 인생을 살면 돼요. 저한테는 최고 부자라는 꿈이 있으니까요. 부부가 각자의 목표를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 얼마나 보기 좋아요?”

사장풍은 그녀의 말에 감탄했다.

“앵앵, 당신은 잘못 태어난 것 같소. 남자로 태어났다면 나보다 훨씬 대단한 인물이 되었을 거요.”

“내가 남자로 태어났어도 당신이 날 좋아했을까요?”

* * *

특색 있는 음식을 파는 여의루의 지명도는 빠르게 높아졌다. 많고 많은 음식 중 백성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건 서북 지방의 분식이었다.

북방에 있는 임안성은 밀가루를 주식으로 삼았다. 소가 없는 찐빵이나 만두, 칼국수, 잡장면雜獎麵, 와와두窩窩頭(옥수수 찐빵)…….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음식만 먹다가 서북 지방의 분식을 맛보고 나니 참으로 색다른 느낌이었다.

같은 면 요리여도 서북 지방의 유발면油潑麵(양념 비빔면)은 훨씬 더 맛있었다. 면이 쫄깃하고 끈기가 있어서 씹는 맛이 좋았다. 거기에 매운 기름을 끼얹어서 비벼 먹으면 눈썹이 번쩍 들릴 정도로 맛있었다.

여의루에서 파는 서북 지방의 분식은 종류도 다양했다. 면류만 헤아려도 유발면, 조자면臊子麵(매콤새콤한 비빔면), 장수면槳水麵(한 가닥의 면으로 이루어진 요리), 파탕면擺湯麵(별도의 국물에 찍어 먹는 면 요리), 고대면褲帶麵(넓적한 면 요리) 등등 여러 가지가 있었다. 요리마다 모양도 다르고 먹는 방법도 다 다르니 사람들은 신선함을 느꼈다.

하나같이 맛있는 요리들뿐이라 이걸 먹으면 저게 먹고 싶고, 집에 가서도 자꾸 떠오를 정도였다. 서북 분식에 중독된 사람들은 계속해서 여의루를 찾았다.

물론 분식은 면류뿐만 아니라 두툼한 빵떡인 과회鍋盔, 고소한 우육병牛肉餅, 육협막肉夾饃(다진 고기를 끼워 넣은 빵), 군만두까지……. 맛있는 요리가 잔뜩 준비되어 있으니 맛보러 오는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덕분에 왼쪽 편청은 항상 사람으로 북적였다. 조금만 늦게 와도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서북에서는 모든 사람이 밀가루 반죽 선수였다. 특히 주부들은 각종 분식을 손쉽게 만들어 냈다. 심지어 속도도 빠르고, 맛있기까지 했다. 서북에서 데려온 네 사람 중에서는 류씨 부인의 손재주가 가장 좋아서 그녀가 분식을 맡았다. 금천아와 주자는 그녀를 거들었고, 사앵앵도 서북에서 요리를 조금 배웠기에 바쁠 때는 일을 돕곤 했다.

매일 그녀들은 일찌감치 가게에 나와서 밀가루를 반죽했지만, 오전에 준비한 밀가루 반죽 한 단지는 하루도 채 안 되어 동이 났다. 비교적 저렴하게 음식 가격을 책정하여 박리다매를 목표로 삼는 그들의 장사는 꽤나 성공적이었다.

월말이 찾아왔고, 장부 선생은 각종 지출과 수입을 합산했다. 그는 결과를 보고 또 보더니 아연실색했다.

옆에서 그가 계산하는 것을 지켜보던 나삼은 마지막에 나온 숫자를 보고 어안이 벙벙해졌다. 장사가 잘되어 많은 돈을 벌었으리라 짐작은 했지만… 이렇게 많이 벌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 관리인.”

장부 선생이 싱글벙글 웃었다.

“우리 주인장은 정말 신통한 사람이야. 장사 첫 한 달 동안 이렇게 많은 돈을 벌다니.”

“누가 아니래요.”

나삼도 기뻐했다.

“우리 주인어른은 타고난 장사꾼이라니까요. 주인어른만 따르면 뭐든 될 거예요. 제가 가서 주인어른께 알려 드릴게요. 분명 기뻐하실 거예요.”

위층 복도 끝에 보이는 방이 여주인과 큰아가씨가 쉬는 공간이었다. 그가 갔을 땐 사앵앵이 사봉봉에게 글자를 가르치고 있었다.

“주인어른, 기쁜 소식입니다.”

사앵앵이 웃으며 물었다.

“무슨 일인가?”

“진 선생이 이번 달의 장부를 계산했습니다. 예상했던 것보다 이익이 훨씬 많습니다.”

“다들 수고했네. 이번 달에는 한 사람당 이백 문씩 품삯을 더 주도록 하게.”

“아이고.”

나삼은 얼른 공수한 손을 들어 올렸다.

“제가 모두를 대신해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내게 감사할 것 없네. 모두 마땅히 받아야 할 포상이니. 일을 잘하는 사람에겐 절대로 푸대접하지 않을 걸세.”

“솔직히 이렇게 많이 벌 줄은 몰랐습니다.”

나삼은 감격한 목소리로 말했다.

“예전에는 큰 연회를 열어도 손해를 봤는데, 지금은 주전부리나 분식을 팔아도 이렇게 많은 돈을 벌고 있습니다. 정말 믿기지 않습니다.”

사앵앵이 태연히 대답했다.

“큰 연회를 위주로 하는 주루가 너무 많아서 그렇다네. 우리는 인기도 명성도 없는데 어찌 저들과 경쟁할 수 있겠는가. 기왕 비교가 되지 않는다면 우리가 생각을 바꿔야지. 거창한 상차림은 비싸게 팔 수 있지만, 그걸 사 먹을 수 있는 건 부자들뿐이라네.

부자는 항상 소수고 다수를 차지하는 건 서민들이지. 우리가 파는 음식들은 원가가 낮고, 만들기도 간단하네. 가격은 비록 싸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사 먹을 수 있는 음식이지.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이렇게 많은 돈을 벌 수 있지 않은가?”

나삼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더군다나 이런 주루는 임안성에 하나밖에 없으니 다른 주루에서 우릴 따라 하진 못할 겁니다.”

사앵앵은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런 상황은 잠시뿐일 걸세. 시내에서 가장 유명한 간식 점포들을 여의루에 모았지만, 도성은 오가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 곳이지. 더 솜씨 좋은 주방장이 나타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없네. 서북 지방 분식도 마찬가지일세. 류씨 부인이 손재주가 좋지만, 누가 서북 지방에서 정식 주방장을 데려와 비슷한 분식 요리를 만들어 팔 수 있겠지.

해서 난 주루를 세 구역으로 나누었네. 새로운 음식을 탐하는 손님들을 끌기 위한 술책으로 특색 있는 주전부리를 준비하고, 대중을 겨냥한 분식으로 안전한 승리를 노렸지. 사실 진짜 큰돈을 버는 곳은 위층에 있는 별실이라네.”

위층 별실에 관해서는 나삼도 모르는 일이었다. 밖에는 신비로운 소문이 파다했지만, 아무도 그녀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알지 못했다.

수리를 한 후, 위층은 구조 자체가 바뀌었다. 원래는 양쪽에 복도가 있고 방이 중간에 있는 구조였지만, 지금은 방을 양쪽으로 옮기고 가운데에 공간을 만들었다. 모든 방에선 창문을 통해 가운데 빈 공간을 바라볼 수 있었다. 하지만, 방은 어긋나게 짜여 있어서 건너편 방에 있는 사람들은 서로 얼굴을 보지 못했다.

별실의 내부는 아름다운 장식으로 가득했다. 칸마다 각기 다른 분위기로 꾸며 놓아 어떤 곳은 원탁이 있었고 또 어떤 곳은 네모난 탁자가 있었다. 대나무 발을 드리운 곳이 있는가 하면 어떤 곳은 주렴을 드리웠다. 어떤 벽에는 큰 폭의 수묵단청水墨丹靑이 걸려 있고, 또 어떤 벽에는 아름다운 미인도가 걸려 있었다.

식탁에 깔린 식탁보엔 금테가 수놓아져 있어 아름답게 반짝거렸다. 어디 식탁보뿐일까. 탁자에 놓인 청자와 다기 모두 최상품이었다. 옥처럼 맑은 빛깔과 서늘한 촉감, 각기 다른 모양의 다기는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았다. 촛대와 유리잔도 질이 우수했으며 장식으로 놓은 골동품 도자기도 있었다. 식사는 고사하고,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호사스러운 곳이었다.

“주인어른.”

나삼이 슬쩍 물었다.

“위층 별실은 언제쯤 장사를 하실 예정입니까? 저렇게 비워 두면 낭비가 아닐까요?”

“곧 시작할걸세.”

사앵앵이 생긋 웃었다.

“서두르지 말게. 좋은 것은 당연히 기다릴 가치가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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